(시작 기도)
주님,
어제 <로마서 주해 묵상> 출판 기념회를 은혜 중에 마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사모하는 지체들이 나아와 기쁨으로 함께 한 시간이었습니다.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하도록 귀한 책을 선물해 주신 주님께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시고,
성도의 풍성한 교제가 있는 주일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성령께서 말씀을 조명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너희는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으로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지니 그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이라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하리라
2. 그 중에서 성소에 속할 땅은 길이가 오백 척이요 너비가 오백 척이니 네모가 반듯하며 그 외에 사방 쉰 척으로 전원이 되게 하되
3. 이 측량한 가운데에서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을 너비는 만 척을 측량하고 그 안에 성소를 둘지니 지극히 거룩한 곳이요
4. 그 곳은 성소에서 수종드는 제사장들 곧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수종드는 자들에게 주는 거룩한 땅이니 그들이 집을 지을 땅이며 성소를 위한 거룩한 곳이라
5. 또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을 너비는 만 척을 측량하여 성전에서 수종드는 레위 사람에게 돌려 그들의 거주지를 삼아 마을 스물을 세우게 하고
6. 구별한 거룩한 구역 옆에 너비는 오천 척을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을 측량하여 성읍의 기지로 삼아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돌리고
7. 드린 거룩한 구역과 성읍의 기지 된 땅의 좌우편 곧 드린 거룩한 구역의 옆과 성읍의 기지 옆의 땅을 왕에게 돌리되 서쪽으로 향하여 서쪽 국경까지와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국경까지니 그 길이가 구역 하나와 서로 같을지니라
8. 이 땅을 왕에게 돌려 이스라엘 가운데에 기업으로 삼게 하면 나의 왕들이 다시는 내 백성을 압제하지 아니하리라 그 나머지 땅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 지파대로 줄지니라
(본문 주해)
가나안 원주민들이 쫓겨난 이유는 그들이 성적인 타락과 우상숭배로 땅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짓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대로 행하였다. 그러면 땅이 그들을 토하여 낼 것이라고 하신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더럽혔기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다.
그런 그들에게 에스겔을 통하여 계시가 주어진다.
그 계시의 중심은 그들의 죄악을 드러내는 것과 성전의 회복과 땅의 회복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제 70년 동안 황페하여진 땅과 성전이 다시 회복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새롭게 정비되는 땅을 말씀한다.
1절 :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땅을 분배할 때 한 구역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그 땅의 길이는 12km(이만 오천 척)이며, 넓이는 10km(이만 척)인데 그 땅 전체가 거룩하다.
2~3절 : 이 구역 안에서, 길이와 넓이가 각각 250m인 정사각형 땅은 성전이 들어설 자리이다.
4~5절 : 그 둘레에 25m 되는 땅은 그대로 남겨둘 것이다.
거룩한 땅을 이등분하여 절반은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사독 계열 제사장의 소유로 삼고, 나머지 절반은 사독 가문이 아닌 일반 레위인의 소유로 삼을 것이다.
6절 : 그 옆으로 길이가 11km, 넓이가 2.5km 되는 지역을 따로 재어 이스라엘의 공동소유로 삼을 것이다.
7~8절 : 거룩한 땅의 양편은 왕이 차지한다.
서쪽으로는 지중해, 동쪽으로는 국경 요단강까지 이르는 지역이며, 그 길이는 각 지파가 차지할 땅의 길이와 같다.
왕의 땅을 하나님의 거룩한 땅과 직접 맞닿아 있게 한 것은 왕에게 우월한 지위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이 땅을 차지한 왕들은 백성들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나의 묵상)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어도 오늘 본문처럼 온전하게 정리되고 땅을 나누어준 적은 없다. 물론 부분적으로 땅과 성전이 회복되지만, 이렇게 온전하게 기업이 나누어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멸망한 이후 왕(8절)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본 환상 중의 새로운 땅의 회복과 성전의 회복은 이 땅에 문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성전의 회복과 땅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새 사람이 만들어져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내가 이제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다.
오늘 본문을 보며 내 마음의 구역이 깨끗이 잘 정비되고 정리되어야 함을 생각해 본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을 알지 못했을 때 내 안의 중심에는 당연히 내가 있었고, 나를 위해 세운 우상으로 그득했다.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행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어 태어났으니 죄에 대해 감각이 없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문제가 되기는커녕 자기중심적으로, 자아확장을 위해 열심히 사는 자를 세상은 오히려 ‘성실하다’고 추켜세워주었다. ‘너, 머리가 단단하구나’ 하는 칭찬을 들으니 머리가 깨지는 줄도 모르고 다듬이 돌에 머리를 박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복음을 듣게 되고 그로부터 말씀의 자리에 나아가 앉으니 내 안에 복음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는 자기중심으로 높아진 산이 있었고, 세상과 짝하여 음행한 더러운 골짜기가 이어진 것이 보여진다.
이곳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매일 말씀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말씀과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십자가로 이 모든 더러운 구역을 정리하시는 것이다.
가끔씩 말씀 묵상의 은혜를 견증할 기회가 주어지면 내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고-통독, 암송, 필사, 공부 등-,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은혜를 구한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통독, 암송, 필사, 공부 등-이 땅을 매는 ‘호미’라고 한다면, ‘말씀 묵상’은 ‘포크레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나는 늘 강조한다.
쪼그려 앉아서 호미로 땅을 정리하는 것과 포크레인으로 땅을 갈아엎는 것을 상상해 보면 알 수 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사40:3~5)
오염되고 굳어진 내 마음, 교만으로 높아진 곳과 세상과 짝한 더러운 것으로 깊어진 곳은 호미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포크레인으로 갈아엎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말씀 묵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것은 기껏 잘한다고 해야 이내 사라질 ‘반성과 결심’뿐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알아가게 하신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죄의 깊이 알아가게 되고, 그것이 내 힘으로 해결되지 않고 전적으로 성령을 의지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신실하신 주님은 이러한 간구는 반드시 들어주시는 것을 알게 된다.
십자가의 주님께서 이미 다 이루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구역 정리는 매일 새벽에 성령께서 해 주신다.
자기중심적이고 높아질 대로 높아진 마음을 평평하게 깎아 주시고, 오염된 곳을 십자가 보혈로 정하게 하시고, 그곳에 주님께서 거하시는 아름다운 자리를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주님의 성전이 되어가는 것이다.
어제 네팔선교 준비 모임과 출판기념회를 통해서 지체들을 다시 새롭게 보았다.
주님께서 우리들 각자에게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이 우리 모두를 성전 되게 하시고 그 안에 거하시고자 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묵상 기도)
주님,
매일 제 마음을 말씀의 포크레인으로 갈아엎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함으로 정결케 하시고
교만의 산을 깎으시고
더러움의 골짜기를 메우십니다.
그렇게 정리된 내 마음의 자리를 주님께 내어드리니 너무도 기쁩니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성령님께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