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5일(화)
* 시작 기도
(시 33:1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주님...
하나님의 언약 백성 곧 창세전 언약 안에서 주의 자녀로 택함 받은 자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은 오직 죄악밖에 없는데 이런 자를 주의 자녀 삼아주심은 오직 은혜입니다.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어찌 나 같은 죄인 중에 괴수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는지요?
그것도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주님이 대신 지시고 나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심이 그저 죄송스럽고 면목이 없어 두 손으로 입을 가릴 뿐입니다.
이 하루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거하기 원합니다.
지금 베캄선교대회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모여 예배하는 자리마다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주의 영광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예배가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나의 뜻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뜻대로 사는 이 하루가 되게 하소서.
주님만이 나의 온전한 소망이오니 이 땅에 있는 존재물에 치심하지 않고 주의 나라에 온 마음을 쏟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겔 46:1-15
제목 : 아침마다 1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한 마리를 번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리고
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안뜰 동쪽을 향한 문은 일하는 엿새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초하루에도 열고
2 군주는 바깥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 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군주는 문 통로에서 예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
3 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초하루에 이 문 입구에서 나 여호와 앞에 예배할 것이며
4 안식일에 군주가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 양 여섯 마리와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라.
5 그 소제는 숫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니라.
6 초하루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어린 양 여섯 마리와 숫양 한 마리를 드리되 모두 흠 없는 것으로 할 것이며
7 또 소제를 준비하되 수송아지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에도 밀가루 한 에바며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요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8 군주가 올 때에는 이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오고 나갈 때에도 그리할지니라.
9 그러나 모든 정한 절기에 이 땅 백성이 나 여호와 앞에 나아올 때에는 북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하는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북문으로 나갈지라. 들어온 문으로 도로 나가지 말고 그 몸이 앞으로 향한 대로 나갈지며
10 군주가 무리 가운데에 있어서 그들이 들어올 때에 들어오고 그들이 나갈 때에 나갈지니라.
11 명절과 성회 때에 그 소제는 수송아지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 한 마리에도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12 만일 군주가 자원하여 번제를 준비하거나 혹은 자원하여 감사제를 준비하여 나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그를 위하여 동쪽을 향한 문을 열고 그가 번제와 감사제를 안식일에 드림 같이 드리고 밖으로 나갈지며 나간 후에 문을 닫을지니라.
13 아침마다 1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한 마리를 번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리고
14 또 아침마다 그것과 함께 드릴 소제를 갖추되 곧 밀가루 1/6에바와 기름 1/3힌을 섞을 것이니 이는 영원한 규례로 삼아 항상 나 여호와께 드릴 소제라.
15 이같이 아침마다 그 어린 양과 밀가루와 기름을 준비하여 항상 드리는 번제물로 삼을지니라.
* 나의 묵상
하나님은 성전 동문을 통하여 돌아오셔서 새 성전에서 드릴 새 제사의 새로운 규례를 말씀하신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의 규례가 다 다르고 제사하는 방법과 규례도 다 다르다.
이것은 제사하는 제사장이나 사람들을 복잡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하나하나의 규례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심이다.
무엇보다 제사, 즉 예배는 그 중심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하셨다.
(시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특히 아침마다 매일 번제를 드려야 하는데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양 한 마리를 드리라고 하셨다.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제물이다.
하나님께는 가장 귀한 제물을 드려야 한다.
그것은 바로 번제로 드려지는 희생 제물을 보면서 나의 죄에 대한 통회하는 마음을 함께 드리는 것이다.
그것도 매일 드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하나님 중심의 예배,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좋은 예배가 아니라 내가 하기 좋은 예배요, 내가 좋을 대로 드리면 하나님은 받아 주시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예배가 판을 치고 있다.
주님께서는 건물 성전을 무너뜨리셨는데, 오히려 오늘 이 시대는 건물 성전의 회복시대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자칭 성전의 화려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아마도 예수님의 12제자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다면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도 어안이 벙벙했던 그들이 기절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주님은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어디서든지 지금 이 때에 예배하라고 하셨다.
예배의 중요한 두 축은 바로 영과 진리이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과 진리로 지금 드리는 예배는 예배의 화려함이나 멋진 장소를 결코 의지하지 않는다.
예배자가 나 혼자이거나 불과 두세 사람일지라도 그 안에 진리의 말씀이 있고, 그 말씀 위에 성령이 역사하신다면 그 예배는 지상 최고의 예배가 되는 것이다.
사람 숫자가 많다고, 찬양이 4부 합창으로 멋지게 울려퍼진다고, 헌금이 많이 나온다고, 예배당의 조명과 분위기가 은은하고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편안하게 예배한다고, 목사의 설교가 은혜가 된다고 해서 좋은 예배가 아니라는 말이다.
예배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함께 있어야 하는데, 말씀은 다름 아니라 우리의 감정을 고양시켜 주거나 교훈을 주는 그런 말씀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진리의 말씀만 선포되어야 한다.
그 말씀 속에 주의 영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구약 시대 제사 규례가 복잡한 것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정신을 차리고 준비하지 않으면 그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그 제사가 제사의 행위만 남고, 그 중심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의를 담당하는 대제사장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그토록 책망하신 것이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도 역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예배의 성공 실패 여부는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도들이 듣고 싶은 말씀을 듣고, 그들의 감정을 고양시키며, 눈물이 나도록 위로 받는 예배가 되면 그 예배는 자칭 성공한 예배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복음이 선포되고 주의 성령이 역사한다 해도 내가 은혜 받지 못하면 그 예배는 실패한 예배가 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목사들은 교회의 분위기나 환경 등을 잘 꾸며서 성도들이 은혜 받을 수 있도록 최고의 세팅을 한다.
예배의 중심,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아니라 성도들이 얼마나 은혜 받았는가 하는데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현실이다.
내가 바로 이런 자였다.
예전에는 내가 집례하는 예배는 하나님 중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니라 성도 중심이요 성도들이 은혜 받고 위로 받고 기뻐하는 그런 예배였다.
그러면서 찬양을 멋지게 하여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분위기를 띄우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을 선곡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은혜 받고 위로 받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선곡을 하였던 자이다.
나는 예배를 인도했지만, 여로보암과 같이 유사 신앙을 전파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였다.
복음을 알고서도 가끔 그런 유혹을 받는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예배가 아니라 성도를 먼저 생각하여 예배를 준비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이 정신이 번쩍 들곤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예배 받기를 기뻐하신다.
주의 찬송을 부르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를 지으셨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나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주님을 높이는 찬송을 부른다.
큰 교회들처럼 모든 세션이 다 갖추어져 있지 않아도, 설교가 성도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지 못할지라도, 영과 진리의 말씀으로 드리는 예배는 성령께서 성도들의 마음을 만져주신다.
왜냐하면 예배는 교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만 일방적으로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이 예배를 통하여 또한 하나님께서도 가장 귀한 것을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생명이며, 또한 교제를 통한 위로와 은혜이다.
내가 좋을 대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받는 은혜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금방 무너지고 만다.
또한 그런 위로와 은혜는 금방 환난과 곤고함으로 바뀌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아버지의 품속에서 느끼는 위로요 은혜다.
사람의 감정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이 먼저다.
사람에게서 인정받고 칭찬받는데 관심을 가지기보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데 초점을 맞추는 그런 목사이고 싶다.
예배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을 묵상하며 나의 죄를 통회하는 상한 심령의 제물이기를 소원한다.
그런 자를 주님은 기뻐하시며 크신 은혜와 위로로 화답하실 것임을 확신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용은 변질되고 텅 비어 속빈 강정과도 같은 예배자가 여기 있나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좋아하고 칭찬 듣는 것에 초미의 관심을 가지면서도 하나님께는 무관심했던 자, 그러면서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앞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파렴치한이 여기 있나이다.
주님, 제 자신이 저를 주님께 고발하나이다.
나는 죽은 죄인입니다.
죽어 마땅한 자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주님 죽여주십시오.
주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죄의 법이 나를 사로잡아 가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오직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어, 주님만 높이는 찬양을 부르게 하소서.
성도들이 우선인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선인 예배가 되어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예배의 향기에 온전히 취하게 하소서.
내 심령의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자로 서게 하소서.
주의 영이 제한 없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나를 주의 보혈로 정결케 하옵소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만이 주님께 합당한 예배임을 알고 외적인 것들과 타협하지 않게 하소서.
오직 주님만 영광 받으소서.
높임을 받으소서.
나의 중심으로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