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년납월십오야[年年臘月十五夜]
<유천>이라는 주막에서 우국지사와 작별한 김삿갓은
겨울을 무사히 넘기려고 강진에 있는 안복경이라는 사람을 찾아 가기로 결심하였다.
진주에서 강진 고을까지는 몇백 리가 되는지
김삿갓은 정확한 거리를 모르지만, 마음놓고 겨울을 보내려면 아무리 멀더라도 따뜻한곳을 찾아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병이 워낙 심상치 않은데다가 우국지사를 만나 밤샘을 해가며 폭음을 한 탓인지 몸이 천근 같이 무거웠다.
게다가 날씨조차 갑자기 추워져서 사지가 오그라들 지경이었다.
(이거 큰일났구나. 몸이 이래 가지고서야 하루에 10리인들 걷겠나?)
김삿갓은 날이 갈수록 몸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어떤 때에는 절간으로 찾아 들어가
10여 일씩 몸조리를 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때에는 서당방에서 4-5일씩 쉬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끈질기게 강진 고을을 향해 조금씩 거리를 줄여 나갔다.
이 해도 저물어 가는 섣달 중순께의 일이다.
김삿갓은 이날도 저녁을 얻어 먹으려고 어느 기와집을 찾아가니 마침 그날이 제삿날이어서
많은 친척들이 음식을 차리느라고 법석을 떨고 있었다.
그 집은 돈도 많은데다가 제사를 지내는 법도가 엄격한지, 밤이 이슥해 오자 예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헌관과 집사까지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다.
(옳다 됐다. 제사를 지낸 뒤에는 으례 음복을 나눠 먹을 테니, 그 때에 나도 맛나는 음식을 푸짐하게 얻어먹을 수가 있겠구나.)
김삿갓은 자기 나름대로 잔뜩 기대를 가지고,
행랑방에 혼자 누워 제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복을 얻어 먹을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무슨 기대에 어긋나는 처사인가.
주인집 일가 친척들은 제사가 끝나자 안방과 사랑방에서 저희끼리만 음복을 나눠 먹을 뿐,
김삿갓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김삿갓이 있는 행랑채에는 개다리 소반에 떡 한그릇, 김치와 숙주나물 한 접시만 덜렁 들여놔 주는 게 아닌가?
(이게 웬일이야, 빌어먹을 놈들!
조상의 제사를 지냈으면 음복만은 손님에게도 똑같이 나눠줘야 옳을 일인데, 사람을 이렇게까지 차별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 심보를 가지고 어떻게 조상의 음덕을 바란단 말인가?)
김삿갓은 홧김에 욕이 절로 나왔다.
그리하여 즉석에서 글자를 읽으면 욕설이 되는
시 한수를 읊어 대었다.
연연납월 십오야(年年臘月十五夜)
해마다 섣달 보름 날 밤은
군가제사 내자지(君家祭祀 乃自知)
그대 집 제삿날임을 잘 알고 있노라.
제전등물 용도질(弟奠登物 用刀疾)
젯상에 올린 것은 칼을 잘 쓴 음식이요,
헌관집사 개고알(獻官執事 皆告謁)
헌관과 집사들은 모두 업드려 아뢰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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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얻어먹는자의 설움과 슬픔이
잘 나타나있어? 헌디' 배는 내배가
고프거늘'제주를 원망한들무엇하랴'
그 제주들 땜에 내배가 고팠으랴?
**사평35" 소설/김삿갓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