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1~10 모세의 역설
암벽등반을 하는 클라이머들에게는 바이오그라피라는 꿈의 루트가 있다고 합니다. 이곳은 미국인 클라이머 크리스 샤마가 오르기 전까지 누구도 등반을 하지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중간에 잡을수 있는 홀더가 거의 없고, 수직으로 35미터나 솟아 있는 암벽입니다. 아무도 오르지 못했던 곳을 누군가가 오름으로서, 이제 클라이머들의 명소가 되어버린 곳입니다. 그곳에 한국의 선수들도 꿈을 키우기 위해 갔었습니다.
처음에는 송한나래 선수가 제일 먼저 자신의 기록을 갱신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면서 발뒤꿈치 손등 피가 나고 벗겨지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완등을 했기에 이 정도쯤이면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다음은 김대엽 선수 차례였습니다. 한때 신동이란 소리를 듣던 그는 박지환선수보다 뛰어났으나, 방황과 슬럼프에 빠져 있다가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 일등공신은 바로 라이벌이자 친구인 박지환이었습니다. 세 번째 박지환 선수가 도전을 합니다. 그런데 박지환 선수가 도전하는 루트가 더 어려워 졌습니다. 홀더가 하나 부러져 그 다음 포인트에 가는 것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거기다 박지환 선수는 키가 작아서 한번에 가기가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하지만 박지환 선수가 이것을 성공하게 되자, 그의 작은 키가, 홀더가 부러진 것이 그의 도전을 더욱 빛나게 해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2016년 전국 클라이밍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정상급 선수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매우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출애굽기 1장에 파라오의 명령으로 이제는 산파 두명이 아닌 모든 애굽사람들이 동원됐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여자가 남자아이를 낳으면 나일강에 빠져 죽게 만드는 전무후무한 학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예가 되고,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 것도 힘든데, 갓 태어난 남자아이들을 죽여서 결국 이스라엘의 대를 끊고 강제로 인구를 감축을 당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신음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한 사람을 세상을 보내십니다. 그 아이가 모세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레위 족속 남자 아므람이 레위 족속의 여자 요게벳에게 장가를 들었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아이는 나일강에 던져져서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가 애기가 너무 이뻐서 세 달을 숨겨서 키웁니다. 하지만 도저히 더 숨겨서 키울수 없게 되자, 3절에 갈대상자를 만들어 아이를 태우고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둡니다. 염평안씨의 CCM 요게벳의 노래가 이러한 상황속에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 맡기는 어머니의 아픔과 믿음의 모습을 배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갈대상자에 실린 하수에 내어놓은 동생이 걱정되어 지켜보고 있는 중에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5~6절에 바로의 딸이 즉 애굽의 공주가 목욕을 하러 왔다가 갈대상자에 누인 아이를 발견한 겁니다. 그때 마침 아이가 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공주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아이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셨고, 히브리 사람의 아이인줄 알면서도 호의를 베풀게 됩니다.
그 순간 똑똑한 미리암이 달려가서는 공주에게 그 아이를 키워줄 유모를 불러서 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키우도록 해드릴까요? 라고 제안을 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7절 뒤쪽에 당신을 위하여 즉 공주님을 위하여 유모를 불러드릴까요? 라고 한 겁니다. 사실은 자기 남동생이고 유모로 부를 사람은 아이의 친 엄마인데 말입니다. 애굽의 공주는 그것을 허락했고 자기 엄마를 급히 불러서 공주앞에 데리고 오니 공주가 9절에 하는 말이 이 애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여주면 그 품삯을 주겠다고 합니다. 이때도 ‘나를 위하여’ 라고 합니다.
일단 요게벳은 아이가 돌아온 것이 너무나 기뻤을 겁니다. 어미가 자식을 강가에 버려두고 올 때 , 진짜 피눈물을 흘렸을 텐데, 죽은 아들이 살아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바로의 딸 애굽의 공주가 부탁을 했기 때문에, 애굽 군인들이라도 이 아이를 죽일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안전이 보장이 된 겁니다. 거기다 친아들을 키우는데 월급까지 주겠다고 하니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을까요? 이렇게 아들을 잘 키워서 자란뒤에 10절에 바로의 딸에게 데려다주니 공주가 그 아들을 이름을 물에서 건져낸 자라는 뜻으로 모세라고 지어줍니다.
이 사건에는 애굽의 공주의 긍휼한 마음과 미리암의 지혜 그리고 믿음으로 자식을 하나님께 맡긴 요게벳의 신앙이 함께 작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크게 배후에서 역사하고 계셨던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400여년이 지난 이때 하나님의 언약이 누군가를 통해서 성취가 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그 사람이 모세였던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왜 요게벳은 모세를 갈대상자에 실어서 하숫가 갈대사이에 놔뒀을까요? 자신들의 집에는 군사들이 수색을 하고, 애기가 우니까, 못 숨겨놓는건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나일강은 그 수많은 남자아이들을 던져 죽이던 곳이잖아요. 어떤 면에서 매우 불길하고 피하고 싶은 장소일거 같은데, 하필 나일강 하숫가에 놔뒀습니다. 성경은 여기에 다른 설명을 안 합니다. 하지만 다른 정황을 보면 힌트가 있습니다.
모세의 이름을 원어로 살펴보면 사실 다른 뜻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끌어내다’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물에서 건져냄을 받았다는 뜻과 끌어내다라는 뜻 둘을 가진 이름인데, 자신이 물에 건져냄을 받기도 했지만, 그 이름 자체에 미래에 이스라엘이 이집트로부터 홍해라는 물 앞에 섰을 때 건짐을 받는 사건이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동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에서 약속의 땅으로 끌어내시는 사건 즉 출애굽의 사건이 예언되어 있었던 겁니다. 마치 므두셀라 이름과도 비슷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가수는 자신이 부르는 노랫말대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확실하게 사람은 자신의 이름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정말 잘 지어야 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이름대로 출애굽을 위해 선택된 아이였습니다. 그걸 위해서는 많은 조건들이 필요했는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요게벳의 믿음과 미리암의 지혜와 애굽 공주의 모성애를 통하여 이것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남자 아이들을 빠뜨려 죽이는 그 죽음의 장소 나일강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모세를 애굽의 왕궁으로 보내셨습니다.
거기서 공주의 아들로서 마치 지금의 미국이 강해서 수많은 유학생들이 거기로 가는 것처럼 당시 전세계 제일의 문명국이었던 애굽의 왕궁교육을 받게 하십니다. 그 속에는 정치, 군사, 각종 학문교육이 다 들어있었고, 나이가 찼을 때 모세를 능가할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제왕교육, 킹덤교육을 받고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킬 리더로 준비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상황과 바로의 학살, 자식을 하숫가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어머니의 눈물 이 모든 어려움과 약점이, 마치 서두에 나온 박지환 선수의 작은 키와 홀더가 부러지는 상황들이 그의 성공을 더욱 빛나게 해준 것처럼, 그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을 더욱더 부각시켜주고 있는 겁니다.
역사를 보면 모세때만 이랬던 것이 아닙니다. 서기 70년에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 이스라엘에 있는 성전은 무너졌지만, 이로 인해 유대인들이 전 로마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가 일어나면서 성령을 받은 움직이는 성전 즉 크리스챤들이 로마를 덮었고, 하나님은 결국 313년에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화되게 해버리셨습니다.
중세말기에도 서방교회가 타락하고 인문학이 부흥하고 인본주의도 같이 부흥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인문학을 이용하여 종교개혁을 일으켜버리셨습니다. 18세기 19세기 즈음에 신세계질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세상을 어지럽히자 하나님께서는 보란 듯이 약속대로 이스라엘을 세워버리십니다. 심지어 그 사람들을 돈을 이용해서 이스라엘을 세우셨습니다.
20세기에 공산주의가 극심했던 소련에서는 정부에 의해 6천만명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러시아 남성 절반이 전쟁, 기근, 처형, 투옥으로 사망합니다. 경제가 무능해지고 빈곤율이 최악에 달했습니다. 기독교는 그 속에서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끝났을 때 러시아에서 나온 통계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자료는 러시아인들의 61%가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밝혔다는 한 설문 결과였습니다. 역사상 가장 단호하게 신앙을 없애려고 했던 시도의 결과였습니다.
악한 자들은 늘 하나님의 길을 막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그들의 데스티니를 막으려고 시도해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늘 역전의 명수셨고, 핍박이 심할수록 죽음과 어둠이 깊을수록 엄청난 생명과 부흥의 길을 내 오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미리암처럼 지혜롭게, 요게벳처럼 한때는 죽음의 강이었던 나일강처럼 몰려오는 이 어려운 상황속에서 주님께 맡길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걸 통해 이 땅을 다스리시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