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체코의 장쿠(Janku, J)라는 의사에게 환자가 하나 왔다. 환자는 태어난 지 11개월 된 아이였고, 뇌척수액의 순환이 안돼 머리에 물이 찬, 소위 수두증(hydrocephalus)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시시때때로 간질발작을 한 끝에 오래 못 견디고 죽어 버렸다. 아이의 조직을 현미경으로 보던 도중 망막에서 뭔가가 발견됐는데, 큰 주머니 안에 기생충으로 보이는 것들이 들어 있었다. 알고보니 그 기생충은 이전에 쥐와 토끼에서 발견되어 '톡소포자충'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 그러니까 아이가 이렇게 된 이유는 어머니가 임신 중 톡소포자충에 감염되었고, 이것이 혈액을 통해 태아에게 옮겨간 탓이었다. 소위 선천성 톡소포자충증(톡소플라스마증), 이 아이는 전 세계에서 톡소포자충에 걸린 첫 번째 환자로 기록됐다.
이후 몇 건의 인체 감염 사례가 발견되면서 톡소포자충은 중요한 인체감염 기생충으로 분류됐다. 톡소포자충에 대해 알아보자.
톡소포자충은 숙주의 몸 속에 커다란 주머니를 만들어 숨어 있다가 숙주의 면역이 약해지면 밖으로 나와 병을 일으킨다. <출처: ars.usda.gov>
톡소포자충의 생활사
모든 기생충이 그렇듯 톡소포자충도 중간숙주와 종숙주가 있다. 중간숙주가 유충 단계를 보유하는 반면 종숙주는 성충이 기생하고, 암수의 교미가 이루어져 알을 낳는 숙주를 일컫는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생각하는, 그래서 사람은 꼭 종숙주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아쉽겠지만, 사람은 쥐나 토끼가 그런 것처럼 톡소포자충의 중간숙주에 불과하다. 종숙주는 1970년에 가서야 밝혀졌는데, 바로 고양이였다. 즉 고양이 안에서 유성생식이 일어나고, 고양이 대변을 통해서 톡소포자충의 알이 외부로 나온다.
사람은 고양이 배설물의 알을 먹거나 다른 동물을 섭취를 통해 유충이 든 주머니를 먹음으로써 감염된다.
쥐 나 돼지 등 다른 동물들이 이 알을 먹으면 그 안에 있던 유충이 빠져나와 병을 일으키는데, 이때 동물이 죽어버릴 수도 있지만 살아남으면 면역이 작동하면서 톡소포자충과 싸움을 벌이게 된다. 유충으로서는 면역세포와 계속 싸움을 하자니 승산이 없어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는 커다란 주머니(cyst)를 만들어 그 안에 숨는다. 이 경우 숙주세포는 톡소포자충으로 인한 증상이 없어지니 좋고, 톡소포자충 역시 면역세포를 피해 편하게 있을 수 있으니, 일견 봐선 윈윈 (win-win)인 것 같다. 이런 주머니가 만들어지는 장소로 가장 흔한 곳은 뇌이며, 그 밖에 눈과 근육, 간 등이다. 앞서 설명한 환자가 톡소포자충에 걸린 것을 안 것도, 망막에 있던 주머니를 관찰해서, 라는 것을 상기하자.
사람은 알을 먹거나 유충이 든 주머니를 먹음으로써 감염된다. 톡소포자충의 알은 오직 고양이에서만 나오니 "아, 고양이를 가까이하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분이 계시겠지만, 실제로 고양이가 톡소포자충 감염의 원인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톡소포자충에 걸린 고양이가 대변으로 알을 내놓는 기간은 길어야 1-2주에 불과한데다, 고양이가 톡소포자충에 걸리려면 감염된 동물을 잡아먹어야 하는데, 사료나 생선만 먹고 나머지 시간에는 잠만 자는 요즘 집고양이가 톡소포자충에 걸릴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길고양이라면 좀 다를까? 아무래도 길고양이는 쥐를 잡아먹기도 할 테니 확률이 좀 더 높겠지만, 그래봤자 알을 배출하는 기간이 1-2주 아니겠는가? 학자들은 말한다. "고양이와 접촉한다고 톡소포자충에 걸릴 확률은 거의 없다."고. 애꿎은 고양이에게 의심의 화살을 돌리는 대신 현실을 제대로 보자.
미 국에서는 육회를 통한 감염이 많다는 조사결과에서 보듯, 사람 감염의 대부분은 동물의 고기를 통해서라고 한다. 동물의 근육 안에 있는, 유충이 잔뜩 들어있는 주머니가 톡소포자충에 걸리는 원인인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논문을 보면 국내 감염자 10명 중 상당수가 멧돼지 고기나 사슴피를 먹은 적이 있다니, 정 톡소포자충이 무섭다면 날것을 피하고 손을 잘 씻는 것이 방법이다. 야채나 과일을 대충 씻어 먹는 것도 감염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이것 역시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고양이가 마음에 걸린다면 고양이에게 날고기를 대신 통조림 같은 것을 주고, 고양이가 변을 보는 모래상자를 잘 관리해 주면 된다.
톡소포자충의 증상
톡소포자충에 의해 발생한 뇌 농양(화살표) CT 사진.
대 부분의 사람들은 톡소포자충에 걸려도 별 증상이 없다. 잘 해야 감기몸살 정도가 고작이니, 톡소포자충에 걸려도 걸린 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실험실에서 쥐에게 톡소포자충을 감염시키려다 손가락을 찔렸던 한 교수님도 림프절이 붓고 열이 좀 나는 정도였다. 혈액검사를 해보면 전 국민의 5% 정도가 톡소포자충에 한 번씩 걸린 것으로 나타나지만 이 병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서 증상이 약한 것은 아니어서, 눈에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간혹 있다. 안과의사들이 톡소포자충에 대해 잘 아는 이유는 이 때문으로, 눈이 잘 안 보인다든지 통증이 있을 때는, 물론 톡소포자충이 원인인 경우는 드물겠지만, 톡소포자충 감염 여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전에 톡소포자충에 걸리지 않아 항체가 없는 임산부가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톡소포자충에 걸렸다면, 앞서 소개한 예처럼 아이에게 '선천성 톡소포자충증'이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눈에 염증이 생기거나 경련을 한다든지, 발육지연이나 정신지체까지 올 수 있다. 임산부는 날것을 피하고 야채나 과일을 잘 씻어 먹는 등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톡소포자충 감염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고, 또 아기가 생기면 알아서 잘 조심하는 탓에 임산부가 톡소포자충에 걸리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2005년 조사에 따르면 5천명이 넘는 임산부의 혈액을 검사해 본 결과 톡소포자충에 걸린 사람은 딱 하나였고,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톡소포자충이 주목을 받았던 것은 에이즈가 창궐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였다. 이유인즉슨 건강한 사람은 면역세포가 톡소포자충을 효과적으로 제어해 몸살 정도의 증상만 나타나는 데 반해 에이즈처럼 면역이 약해진 경우에선 톡소포자충이 뇌를 침범해 뇌염을 일으키거나 폐렴 등을 일으킬 수 있어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꼭 에이즈가 아니라도 항암치료를 받거나 스테로이드 치료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진 경우도 비슷한 증상이 생길 수 있으니, 면역이 약할수록 위생에 신경 쓰고 고기는 꼭 익혀서 먹자.
톡소포자충의 숙주 조종
톡 소포자충이 동물에게 침투하면 면역계와의 싸움이 벌어진다. 초반에는 톡소포자충이 기세를 올리지만, 시간이 갈수록 면역계에게 밀리게 된다. 그 결과 둘 간의 타협이 이루어져, 톡소포자충은 근육이나 조직에 주머니를 만들고 그 안에 살게 된다. 어찌 보면 감옥에 톡소포자충을 가둬놓은 숙주의 승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감옥에서 가끔씩 죄수가 탈출하는 것처럼, 톡소포자충도 주머니에서 나와 다시 병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이런저런 이유로 숙주의 면역이 약해졌을 때로, 뇌에 있는 톡소포자충이 밖으로 나오면 뇌염이나 기타 신경학적 증상을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숙 주 면역이 약해지지 않아도 톡소포자충이 숙주의 삶을 위협할 수 있다. 톡소포자충에 걸린 쥐가 고양이를 덜 무서워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 예. 그렇다고 쥐가 고양이에게 맞짱을 뜨자고 하는 차원은 아니다. 원래 쥐는 고양이 소변에 강한 공포감을 드러내는데, 톡소포자충에 걸린 쥐는 그게 좀 덜하고, 고양이 소변을 뿌려 놓은 방에 보통 쥐보다 더 자주 드나든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걸 '치명적 유혹(fatal attraction)'이라 표현하면서 이것이 쥐의 뇌 주머니 안에 사는 톡소포자충이 종숙주인 고양이에게 가기 위해 숙주를 조종한 거라고 주장했다. 이후의 연구에 의해 톡소포자충은 기생충이 숙주를 조종하는 예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톡소포자충은 종숙주인 고양이에게 가기 위해 기생충이 중간숙주를 조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를 덜 무서워 하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사람은 쥐보다 훨씬 고등한 동물로, 기생충에게 절대 조종될 리가 없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하지만 플레그르(Flegr, J)라는 체코 학자가 여기에 이의를 제기했다. 창형흡충(Dicrocoelium dendriticum)에 의해 개미가 조종되는 얘기를 들은 플레그르는 자기가 했던 이상한 행동들, 그러니까 정신을 차려보니 차가 달리는 길거리 한 가운데 있다든지, 근처에서 총격전이 벌어져도 태연하게 앉아 있다든지, 공산당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감옥에 갈 뻔한 일들이 사실은 톡소포자충의 조종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의 주장은 "UFO를 봤다"는 것과 비슷한 헛소리로 치부되었다. 플레그르의 훌륭한 점은 거기 굴하지 않고 계속적인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톡소포자충 감염자들의 행동을 일반인과 비교, 분석했고, 다음과 같은 결과를 학술지에 발표했다.
"톡소포자충에 걸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2.6배 교통사고를 더 냈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은 톡소포자충에 양성인 비율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남자의 경우 톡소포자충에 걸리면 친구가 없다."
맨 마지막 연구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앞의 두 경우는 사람에 있던 톡소포자충이 고양이로 가기 위해 숙주를 조종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런 일련의 발표가 있은 후 연구자들은 플레그르의 말을 믿기 시작했고, 톡소포자충에 대한 여러 형태의 연구를 시행한다. 톡소포자충이 정신분열증의 위험인자라는 논문도 발표된 바 있고(하지만 그 반대의 결과도 있다), 심지어 "톡소포자충에 걸린 남자는 고양이 냄새를 더 좋아한다"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니, 톡소포자충이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어떤 기전으로 이런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선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진단과 치료
사 람은 종숙주가 아니라 중간숙주라고 했다. 사람의 대변을 아무리 뒤져도 톡소포자충의 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니, 진단을 위해선 혈액을 뽑아 톡소포자충에 대한 항체가 있는지 여부를 검사하면 된다. 문제는 치료법으로, 톡소포자충의 특효약이 없는 탓에 그런대로 듣는 약을 써야 한다. 피리메타민(pyrimethamine)이 가장 널리 쓰이고, 임산부에게는 태아한테 넘어갈 염려가 없는 스피라마이신(spiramycin) 을 예방적으로 쓰기도 한다. 최근에는 클린다마이신(clindamycin)도 치료약으로 쓰이는데, 이것들이 톡소포자충을 완벽하게 치료하는 게 아닌만큼, 좀 더 완벽한 특효약 개발이 필요하다. 특히 뇌나 신경계에 주머니를 만들고 사는 톡소포자충을 죽이는 약이 개발되는 게 시급한 과제다. 더 이상 기생충에 의해 인간의 행동이 조종되어서는 안 되니까.
참고문헌
Jitender. P. Dubey, [The History of Toxoplasma gondii—-The First 100 Years], J. Eukaryot. Microbiol., 55(6), 2008, pp. 467~475; Louis M. Weissa, and Jitender. P. Dubey, [Toxoplasmosis: a history of clinical observations], Int J Parasitol, 39(8), 2009 July 1, pp. 895~901; http://www.fsijournal.org/article/S0379-0738(10)00076-9/abstract
- 글
- 서민 /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호칭·직책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다. 저서로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