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조선왕조의 멸망이 누적된 성리학적 폐단이라고 지적하면서 그것때문에 근대화를 제대로 못해서 일본에 정복당했다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 논리가 얼마나 합리적인 발상일까요?
그와 관련해서 혹자는 임진왜란후 조선왕조가 망했서야 한다라고들 합니다.
문제는 왕조교체만을 가지고 어떤 혁신적인 방향으로의 개혁을 기대할수 있는가입니다.
정치사조나 체제개혁과 왕조교체 이 두가지 상관관계에 대해서
1. 이둘은 반드시 서로 엮이어서 둘이 같이 가야 한다
2. 이 둘 중 어디가 먼저선행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1번의 경우 반드시 두가지가 같이 엮이어서 진행되어야 하는가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고려말 신진사대부세력중에서 왕조교체를 원하는 급진개혁파와 고려왕조는 그대로둔채 개혁을 주장하는 온건개혁파가 있습니다. 정도전같은 이들의 생각대로 한다면 이 두가지가 같이 엮이어야 한다라는 생각이고 정몽주같은 이들은 둘이 엮일 이유가 없시 내부개혁으로 충분하다라는 생각이죠.
2번의 경우 무었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바라본다면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의 예를 든다면 정치사조 및 체제개혁이 먼저였습니다. 우선 신진사대부들의 확대로 인해서 이들은 고려왕조의 누적된 여러 폐단을 비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결국은 이성계와 손을 잡고 왕조교체를 이루어 낸 것이죠.
그리고 이 말고도 중요한 사안으로 한 왕조의 적정수명이 어느정도이냐라는 것도 생각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왕조들은 중국이나 서구의 왕조들보다 수명이 길다라고합니다.
헌데 왕조교체를 역사적 발전이나 혁신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입장대로 한다면 한국은 한 왕조의 수명이 너무 길어서 혁신과 발전이 더딜수밖에 없었다라고 평가해야 맞습니다.
하지만 왕조교체가 자주일어난다고 그것이 혁신과 발전을 의미할까요?
과도한 왕조교체는 되려 혼란만을 가중시킬뿐입니다. 5대10국등의 중국상황이 그 대표적이죠.
만일 임진왜란후 조선왕조가 망하지 않아서 혁신성이 떨어졌다라고 평가한다면 고려왕조역시 대략 무신집권기즘 망하고 새 왕조로 교체되었서야 합니다. 고려왕조도 그때 이미 기존 문벌귀중중심체제에 여러 폐단과 한계성을 보였기에 그렇게 평할수도 있죠.
그리고 조선왕조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 비판이 타켓을 왕조 그 자체인지 아니면 조선왕조를 지탱한 성리학적 정치사조와 그것을 신봉하는 집권층 사대부세력들인지를 제대로 짚어야 할 것입니다.
후자를 비판의 대상으로 보겠다면 여기서도 위의 두가지 관점을 적용해보아야 합니다.
조선왕조 그 자체는 그대로 가더라도 성리학적 정치상조가 망하고 새로운 개혁적 사조가 등장하는 가능성을 기대해야 할지 아니면 조선왕조가 망해야 새로운 개혁사조가 가능할지? 그리고 그러한 개혁사조를 지향하는 세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했는지?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개혁사조를 지향한 정치세력은 조선이 망할때까지 등장하지 못했다라고 보아야 합니다.
조선 후기 실학을 들기도 하겠지만 실학역시 성리학적 정치사조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조선말기 개화파는 다만 당시사정상 근대화라는 조류를 타고 개화를 주장한 것일뿐 유교 성리학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조선이 망하고난후 일제시대 나 대한민국정부수립이후 상당시간이 흐른후에까지도 조선시대 유교적 가치관 문화가 쉽게 사라지지 못했죠.
또 한가지 중요한 사안으로 조선이 주자성리학의 폐단으로 망했다라고 하지만 엄연히 분석하면 19세기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기강이 썩었다라고 평하는 견해가 많고 문제는 세도정치를 들먹이기전에 기존의 시스템이 순조조 이후로 점차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혼란상이라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주자성리학의 가치관으로 비판하는 대표적인 경제분야로 성리학은 상공업을 억제하고 과학기술을 천시했다라고 하는데 이 역시 분석해보면 억지주장입니다. 이미 15세기 세종때 비약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어왔고 그후로 발전이 정체된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외부환경문제로 한동안 장기간 평화가 유지된것에 비해 유럽같이 자주 전쟁을 겪어서 거기에 따른 생존투쟁이라는 동기부여가 없었다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것입니다.
그 다음에 양난후 대략 숙종조이후부터 상공업분야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혁신분위기가 일어나서 조선후기에는 상업이 활발했다라는 점을 무시할수가 없습니다.
이런듯 여러가지 학문적이나 역사적 지식을 가지고 조선왕조를 비판하던 조선왕조를 지탱했던 성리학적 정치사조체제를 비판하든지 해야 하는데 막연히 겉으로 들어난 사건만을 가지고 조선왕조와 성리학전 역사적 퇴보를 가져왔다라는 식의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지극히도 기본 학문적 시각이 결여된 사람들입니다.
첫댓글 조선이 유교 망했다는건 단재 신채호 등 민족주의 역사학자들도 공통적으로 인정했던 담론이라 유교와 조선 멸망의 연결고리에 연구 입장을 그렇게 학문 시각이 결여된다고 배격하는건 문제가 많아 보일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유교가 조선 멸망의 전체적인 요인으로 결론내리기가 어렵지만 그러나 천주교 동학 같은 신흥 사상에 대한 탄압을 한것만 봐도 유교가 구시대적인 기득권 수호를 위해 이들 사상과 타협하지 않고 물리력으로 억누르려고 했음을 알수가 있지요 천주교 동학에 대한 유교 기득권층의 구시대적 배타적 행태가 조선 멸망과 무관하다고 볼수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