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곡 석양
방학 첫날이다. 나는 방학에 들면 어디를 다녀오고 누구를 만나 볼지 대략 설계를 해두었다. 행선지는 앞뒤 바뀔 수 있고 만나보려는 사람도 그쪽 사정 따라 여의치 않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침나절 글을 몇 줄 쓰고 점심을 일찍 먹고 길을 나섰다. 평소 같으면 배낭이라도 메었는데 그렇지 않아 홀가분했다. 집 앞에서 101번을 타고 신마산에서 구복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기다렸다.
어시장을 지난 마산의료원에서 61번을 탔다. 저도 연륙교까지 가는 버스였다. 버스는 가포를 둘러 덕동을 지났다. 나는 유산마을 입구에서 내려 포장도로 따라 걸었다. 근래 거제에서 마산으로 새로운 국도 공사를 하고 있었다. 산등선이 깎여지고 터널이 뚫리고 있었다. 차량 통행이 한적하리라 생각하고 찻길을 걸었는데 공사 현장 덤프트럭이 간간이 오가 내 예상이 빗나가고 말았다.
유산마을에서 마전으로 향하는 고개를 넘자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가 드러났다. 고개를 넘어 군령 삼거리에 이르니 덤프트럭 행렬이 끊겨 걷기에 좋았다. 군령 삼거리에는 인부들이 굴을 까서 포장해 트럭에 실었다. 썰물로 갯벌이 드러난 해안가에는 몇몇 아낙이 바지락을 캐고 있었다. 사철나무 울타리 너머는 한 할아버지가 양봉 벌통을 돌보았다. 곁의 텃밭에는 마늘이 웃자라 있었다.
산모롱이를 돌자 해양 드라마 세트장이 나타났다. 예전에 두 차례 들려본 적 있었지만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드라마 세트장 관람객으로 중년의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더러 보였다. 드라마 세트장 곁의 해안가에도 바지락을 캐는 사람들이 보였다. 겨울답지 않은 날씨에 아낙들의 등에는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았다. 드라마 세트장을 돌아 명주 갯가를 지났다. 바다는 윤슬로 반짝였다.
명주마을 앞에는 길가에 한 아주머니가 비닐봉지에 담은 굴과 오만둥이를 팔고 있었다. 내가 배낭을 짊어졌다면 한 봉지 사 가고 싶었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명주 앞 바다는 굴이나 오만둥이와 미더덕을 양식하는 곳이었다. 바다에는 양식장 하얀 부표가 줄지어 떠 있었다. 산모롱이를 돌아 낮은 고개를 넘자 찻집과 모텔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곳은 바다를 바라보기 좋은 자리였다.
엊그제 거창 금원산 자연 휴양림에서 형제와 조카들과 함께 하룻밤 묵었다. 나는 이튿날 새벽 금원산을 올라 용추계곡으로 빠져나왔다. 그 아침 해발 천 삼백 고지에서 아침 일출을 보았다. 지리산 천왕봉 일출에 버금할 장관이었다. 저무는 을미년을 이틀 앞두고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보려고 명주 갯가로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저녁놀을 보기에는 아직 시간이 좀 더 남아 있었더랬다.
나는 명주에서 욱곡을 향해 걸었다. 욱곡도 명주처럼 갯마을로 바다에는 양식장 부표가 점점이 떠 있었다. 산언덕엔 찻집과 모텔이 연이었다. 욱곡에 이르러서도 해가 저물기는 시간이 일렀다. 자주 나와 보는 해변도 아닌데 어떡하던 붉게 물들 저녁놀을 보고 싶은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그렇다고 훤한 대낮에 찻길에서 실성한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자니 내 모습이 어색할 듯했다.
욱곡마을이 끝난 지점 왕새우와 삼겹살을 구워 파는 가게가 있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너른 주차장은 비어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내부는 꽤 넓었다. 장작불로 철판을 데워 왕새우와 삼겹살을 구워 먹도록 되어 있었다. 산적들이 화덕에 둘러 앉아 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가게 이름이 ‘석양’이었다. 내가 석양을 보려고 길을 나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남의 가게 앞에서 저녁놀이 올 때까지 서성이고 있을 수 없어 왕새우 구이를 시켜놓고 한동안기다렷다. 주인장이 철판 위 왕새우를 올려놓고 뒤집어 굽는 사이 욱곡 바다와 서쪽 산자락 위 하늘은 붉게 물들어갔다. 자연이 빚어낸 황홀하고 장엄한 풍광이었다. 과연 ‘석양’이라는 옥호가 절묘하게 어울리는 가게였다. 저녁놀을 보려고 생각에 없던 왕새우를 맛본 기회비용이 아깝지 않았다. 2015.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