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영의 사람이 되려면
당신의 증언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복음).
니코데모는 예수님께 ‘영적 세계’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그는 진정으로 새로운 가치관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에 깨달아질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갖고 ‘영원한 생명’을 찾아 나서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은총의 이끄심이 있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서 가능성을 보셨던 것입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라고 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자연이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며 활동한다는 암시입니다.
‘영적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찾아 나서야만 살아 있는 ‘영의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가까운 사람과 애정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영혼의 따뜻함을 깨닫는 것이 영적 체험의 시작입니다.
신앙인은 누구나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버지이신 주님과 함께 삽니다.
그러니 언제라도 맡기며 살아야 합니다.
맡기는 생활이 영적 생활의 출발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몇 미터 밖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밝은 분위기가 온몸에서 발산되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가면 행복감마저 느껴집니다.
니코데모는 예수님에게서 그런 분위기를 느꼈던 것입니다.
우주 전체가 축복의 꽃밭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일생에 단 한번만 태어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그 극진한 사랑도 체험해보지 못하고,
위로도 받아보지 못하고, 일생동안 죽으라고 ‘쌩고생’만 하다가
쓸쓸히 이 세상을 떠나갑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하느님 축복 속에 이 세상에 태어났지요.
다행스럽게도 물로 세례를 받으며 두 번째로 태어나지요.
그뿐만 아닙니다. 성령의 불로 또 다시 한번 태어납니다.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진정 ‘위로부터’ 태어날 때 얻게 되는 축복은
또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 모릅니다.
위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바람처럼 자유롭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바처럼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흘러갑니다.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위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모든 세상만사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자리에 연연하지도 않습니다.
물건에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하느님 안에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태어날 때 지루하고 고달프게만 느껴졌던 우리의 일상생활이
영롱하게 반짝반짝 빛나게 될 것입니다.
위로부터 태어날 때 매일 다가오는 갖은 형태의 십자가들도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선물로 변화될 것입니다.
위로부터 태어날 때 세상이 바뀝니다.
인생관이 바뀝니다. 거치관도 바뀝니다.
내 인생 전체, 우주 전체가 축복의 꽃밭으로 변화됩니다.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평생의 과제는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