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부로 살면서
박래여
대한 추위가 까칠했다. 이틀 동안 농부와 딸은 감산 가지치기를 접고 쉬기로 했다. 딸은 고단했는지 집안 청소 끝내놓고 잠을 자겠단다. 우리 부부는 유 선생 부부랑 점심을 먹으러 갔다. 민물장어구이 집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하고 고향으로 들어온 유 선생 부부는 여유롭게 산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래식 집을 헐어 전원주택을 짓고 농지에 농사를 짓고 교사연금 받으며 유유자적이다. 직장생활 하던 아들 부부도 귀촌을 했다. 청년 창업 자금을 받아 카페를 운영한다. 의외로 장사가 잘 된다. 대박 났단다. 몇 년 만에 근교 도시에 카페 2호점까지 냈단다. 유 선생은 우리 딸에게도 돈 버는 방법을 전수해주고 싶어서 안달을 낸다. 고맙긴 한데 나는 별 감흥이 안 생긴다.
집에 돌아와 딸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그 친구 부부는 돈 버는 방법에 정통했더라. 너보고 돈 길을 가라네.
엄마, 돈 많이 벌어 뭐할래?
돈은 다다익선이다. 없는 것보다 풍족하면 좋지.
생활비 모자라는 거야?
쓰기 나름이지만 아껴 써야겠다. 물가가 워낙 비싸야지.
엄마는 돈 많으면 뭐하고 싶은데?
몇 천만 원 한다는 명품 백이나 살까?
딸은 박장대소를 한다.
예전에 의사와 결혼한 새댁이 있었다. 시댁도 중산층이고 친정도 중산층이었다. 새댁은 새내기로 의사부인들 모임에 나갔다가 충격 받았다. 모두들 명품을 걸치고 나와 명품 자랑, 돈 자랑을 하는데 자신은 형편없이 초라해 보였다. 나라고 못할까보냐. 남편의 카드를 가지고 백화점 갔다. 명품 백과 명품 옷과 신발을 샀다. 3천만 원이 넘는 카드 대금을 확인한 남편이 기함을 했다. ‘당신 미쳤어? 의사봉급이 많다고 해도 나는 새내기 의사야. 부모님 생활비도 드려야 하고, 대출금도 갚아야 해. 무엇보다 나는 통 큰 여자랑 살 수 없다. 이혼하기 싫으면 물건 반품시켜. 장모님께 이미 알렸으니 그렇게 알아.’ 득달같이 달려온 친정엄마랑 물건을 챙겨 백화점에 가서 반품을 하고 왔단다.
지금 그 새댁은 중년부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변했을까. 의사부인으로서 품위유지를 하느라 명품으로 휘감고 다닐까. 중저가 브랜드로 치장하고도 기품이 넘칠까. 옷이 날개라지만 명품으로 몸을 감싼다고 사람도 명품이 되지 않는다. 값싼 옷을 걸쳐도 행동거지에서 인품은 드러난다. 그런 사람은 어느 자리에 있든 품위를 잃지 않는다. 속이 잘 여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잘 여문 사람이고 싶은데 노인이 되니 품위와 상관없이 편한 것이 좋다. 졸수가 되어도 여자는 가꾸는 맛에 산다는데. 영 글렀다.
아들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다. 수영장에 갔더니 일흔 중반의 할머니가 아들 결혼식 잘 치렀냐고 물어보면서 아들 결혼식 사진을 보여 달란다. 보여드렸다. 그녀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설마 아들 결혼식 가면서도 화장도 안하고 한복도 안 입고 이대로 간 거야?
화장할 줄도 모르는 걸 어쩌우? 평소대로 입어도 된다고 해서.
이러는 거 예의가 아니다. 사돈보기 부끄럽지 않던?
젊은 사돈은 친동기간 같아 편했어요.
구십이 넘어도 여자는 여자란다. 화장하면 없던 인물도 나온다는데 진짜 너무 했다.
허례허식 없으니 편하고 좋기만 하던 걸요.
대답해놓고도 조금 머쓱하다. 진짜 내가 시어머니 구실도 못했나. 너무 초라했나. ‘에이, 이미 끝난 일인 걸. 아들 부부가 잘 살면 더 바랄 것도 없는 걸.’ 그렇게 생각했다. 내 편한 데로 해석하고 결정 내려 버렸지만 곱씹게 되는 점도 있다. 사람살이가 남의 눈치나 잣대를 깡그리 무시할 수도 없다. 티를 안 낸다고 티가 안 나나. 좋게 생각한다고 다 좋을 수도 없고 나쁘게 생각한다고 다 나쁠 수도 없다. 사람에겐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단점보다 장점에 초점을 맞추면 장점이 단점을 덮어줄 수 있고, 단점에 초점을 맞추면 단점만 드러날 수도 있다.
며칠 전 이재명 대통령의 기자 간담회를 보면서 감탄했다. 대통령은 기자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면서도 중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대답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 단단한 내공이 느껴지는 답변이었다. 저 정도가 되니 그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 대통령이 될 수 있었구나 감탄했다. 내공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노력하고 심혈을 기울여야 이룰 수 있는 내재된 힘이다. 필부로 사는 내게도 내적으로 쌓인 힘이 있긴 할까.
딸아, 그래도 돈은 좋은 거야. 없는 것보다 풍족한 게 낫지.
돈 많아 봤자 야. 영부인까지 됐던 그 여자 행복하게 보여?
말 되네. 그래도 난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
얼마 필요해 내가 줄게.
관두자. 쥐가 고양이 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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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스레를 풀었다. 유 선생과 맛있는 장어구이 원 없이 먹고 와서 풍월만 읊는 것은 아닌지. 사는 건 각자 나름이다. 행복도 불행도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다. 내 나이쯤 되면 행복도 불행도 평준화된다. 분별하지 않는 마음이 천심이라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