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공동체의 분열
창 13 : 1-18
애굽으로 내려갔던 아브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다시 약속의 땅으로 올라옵니다.
아브람은 흉년이 왔을 때 사람의 생각을 따라 애굽으로 갔다가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자기 아내를 누이로 속였다가 바로 왕에게 지참금을 받고 자기아내를 팔게 되는 일을 당했지만
하나님이 바로를 간섭하여 큰 재앙을 내림으로 바로는 아브람을 불러 책망은 했지만 죽이지 않고
은금과 함께 그 아내와 모든 소유물을 보내주었습니다.
아브람은 이번 일을 통하여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어디에 있던지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았고
나의 생명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삶은 상황논리가 아니라 언약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야 될 것을 안 것입니다.
1,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일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람이 흉년으로 애굽에 내려가 고통을 당한 것처럼 그의 후손들도 흉년으로 인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서 바로에게 큰 고통을 당하여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애굽 왕에게 큰 재앙을 내림으로 은금과 함께 아브람을 보내준 것처럼
그의 후손들도 은금과 함께 가나안땅으로 올라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가나안 땅을 향해 올라오다가 네게브를 거쳐 벧엘에
이르렀고 전에 장막을 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아브람은 애굽에서 올라올 때부터 이곳을 마음에 두고 행군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장막을 치고 제사를 드리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감사했습니다.
다시 첫 사랑과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벧엘로 올라와 기도하며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각 사람에게 첫 사랑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 때는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아멘하고 조그만 일에도 감사하고 찬송을 부르면서
눈물이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교회 가는 것이 기뻤고 기도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봉사하며 화장실 청소하고 전도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부터 눈물이 사라지고 말씀을 들어도 가슴이 냉랭해졌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찬송을 불러도 봉사를 해도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점점 은혜가 떨어짐으로 첫 사랑을 잃어버리고 마음이 사막과 같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가만히 있을 일이 아니라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어디서부터 그 사랑을 잃어버렸는지 생각하고 사막과 같은 마음을 기경해야 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자각하고 고백하며 그 은혜를 회복시켜 달라고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을 새롭게 되어 심령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될 것입니다.
3, 벧엘로 올라온 아브람의 공동체는 소와 양들이 풍성해짐으로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거하는 땅은 비좁은데 아브람과 롯의 소유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곳에는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이 그 땅에 거주했기 때문에 아브람과 롯의 목자들은
제한된 곳에서 가축에게 풀과 물을 먹여야 했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도 작을 때는 다툼이 없는데 공동체가 커지면 사람도 많아지고 할일이 많아짐으로
다툼이 일어나는데 여기에는 사람의 생각과 욕심이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약 4:1-2)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하나님의 일은 사랑으로 해야 하고 성령님의 공급하심으로 해야 말이 없는데
사람의 의와 열심과 욕심이 개입됨으로 불만이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 앞에서 자꾸 다툼이 일어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니 아브람이 롯을 부릅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니 서로 다투지 말자고 하면서 네 앞에 온 땅이 있으니 나를 떠나가라 하면서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우하리라고 했습니다.
아브람은 공동체의 수장으로서 결정권이 있었지만 롯에게 선택권을 준 것입니다.
4, 아브람의 말을 들은 롯이 어떻게 했습니까?
삼촌 아닙니다. 삼촌이 먼저 해야 하고 제가 종들을 잘 교육시켜 더 이상 다툼이 없도록 하겠고
저는 절대로 삼촌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롯이 소유가 많아진 것은 아브람의 언약 안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이지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부요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롯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아브람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육신의 생각을 따라 풍요로운 요단 지역을 택하여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서 아브람의 자손만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음을 보이신 것이고
또 하나는 언약의 공동체를 떠나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롯이 향하는 요단 들은 물이 풍성함으로 에덴동산과 같고 애굽 땅과 같음으로 모든 것이 풍성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기애 좋았고 온갖 죄악이 만연한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들은 소돔을 중심으로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과 소알성이 있었습니다.
그곳을 향하여 길을 떠난 롯의 공동체는 목초지가 좋은 요단들에 장막을 치고 살았지만
아브람처럼 제단을 쌓거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아브람과 함께 있을 때는 제사도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은혜도 체험했지만
그 공동체의 수장인 롯이 책임감을 가지고 그들을 신앙으로 이끌지 못함으로 믿음을 잃고
점점 소돔으로 가까이 가다가 결국에는 죄가 가득한 소돔 성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1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롯이 거하는 소돔을 멸망시킨다고 했을 때 아브람이 기도합니다.
그 성에 의인 50명이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습니까라고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러하겠다고 했습니다.
원래 소돔 성에는 의인이 없고 악한 사람들만 있는데 왜 아브람이 의인 50명이 있으면 이라고 기도했을까요?
아브람을 떠난 롯의 공동체가 수백명이 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아브람과 함께 있을 때는 함께 제사도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비록 그들이 아브람을 떠났을지라도 최소한 의인 50명은 넘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50명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의인 45명이 있으면 40명이 있으면 30명이 있으면
20명이 있으면 10명이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습니까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대한 믿음과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그 성 사람들에게 동화된 것입니다.
모닥불은 나무가 많으면 많을수록 잘 타고 화력이 좋습니다.
그 안에 있으면 생나무도 단단한 나무도 불이 붙어 모닥불에 생기를 불어 넣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닥불을 떠나면 연기를 내며 불이 꺼지는데 이와 같은 원리가 교회 공동체의 원리입니다.
교회는 하나 되게 하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입니다.
그곳에 주의 영광이 임하고 성령님의 운행하시는 역사가 있는데 좋지 못한 일로 공동체를 떠나면
더불어 주시는 은혜를 받지 못함으로 모든 것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힘들게 살다가 예수님을 믿고 복을 받으면 어떤 사람들은 그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복을 받고도 겸손하지 못하고 믿음이 없음으로 세상을 가까이 하다가 하나님을 등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롯에 속한 사람들의 결말은 이런 사람들을 위한 교훈이요 거울인 것입니다.
5, 롯을 떠나간 뒤 아브람이 상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네 자손을 땅의 티끌과 많게 하리라고 하시며
일어나서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다녀보라 그 땅을 내가 주리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믿는 눈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네 자손이 번성하여
이 땅을 상속받고 살 것을 바라보며 걸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아브람에게 자꾸 보이는 땅을 주겠다고 하시고,
나이가 늙어 자식을 낳을 수 없음에도 땅의 티끌과 같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은
반드시 줄 것이니 너는 흔들리지 말고 그 때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아직 보이지 않고 소망 중에 있지만 하나님의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대로 믿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히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이루려고 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벧엘을 떠나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로 자리를 옮겨
장막을 치고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처럼 아브람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는데 그것은 여호와 중심으로 삶을 살겠다는 신앙고백이며
우리 공동체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제사장의 나라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장막을 이곳저곳으로 옮기며 살았습니다.
하란에서 ... 세겜 ... 벧엘 ... 애굽... 벧엘 ... 헤브론 ... 그랄 ... 헤브론<브엘세바>
이렇게 옮겨 다닌 것은 자기 땅이 없고 목축을 했기 때문이지만 우리 인생이 이 땅에서
나그네이며 외국인으로서 하늘 본향을 찾는 순례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들은 거룩한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어떤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잠시 집을 떠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 있는 곳이 아무리 좋아도 그곳에 정착하지 않는 것은
일이 끝나는 대로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부자였지만 호화롭게 집을 짓거나 땅을 사지 않고
가는 곳마다 장막을 치고 제사를 드리며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 본향을 사모하며 찾는 자의 모습입니다.
예수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들은 외국인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본토사람과 외모와 언어와 풍습과 종교가 달랐고
특히 여호와를 믿음으로 가치관이 달랐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낮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법적으로 보장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억울함과 손해를 보았지만 보복하지 않고
여호와를 의지하고 하늘에 소망을 둠으로 갈수록 그들과 구별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음으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믿는 시간이 더해질수록 세상 사람과 구별된 천국시민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변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저들이나 우리나 똑같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됩니다.
갈수록 변화되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됨으로 그들이 우리를 보고 낮선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빛이요 거룩한 하나님나라 대사로서 소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주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