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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니스트 김승국
오늘날 우리네 달력은 일 년 내내 '축제'와 '페스티벌', 그리고 '페스타(Festa)'라는 화려한 이름들로 빼곡하다. 근대화 과정에서 정착된 일본식 한자어 '축제'를 넘어, 이제는 라틴어 '페스타'가 그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름이 화려해질수록,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았던 공동체의 진정한 '신명'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축제’라는 용어는 한국과 일본에서만 사용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축제(祝祭)'라는 말은 사실 우리 몸에 맞는 옷이 아니다. 이 단어는 일본 메이지 유신 시절, 서구의 'Festival'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국가 신토(神道) 의식인 '마쓰리'와 서양의 행사를 결합해 급조한 조어다. 축하할 축(祝)과 제사 제(祭)를 합친 이 용어는 일본과 그 영향권에 있었던 한국에서만 통용될 뿐, 정작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중국은 예부터 '절일(節日)'이나 '회(會)', '광환절(狂歡節)'이라는 표현을 쓰며, 서구식 번역어인 ‘축제’라는 용어를 수용하지 않았다.
모든 행사를 천편일률적으로 '축제'라 부르거나 상업적인 '페스타'로 포장하는 것은 우리의 놀이 문화를 스스로 단순화하는 일이다.
문제는 이 '축제'라는 단어가 우리 고유의 역동적인 놀이 문화를 담아내기엔 지나치게 정적이고 의례적이라는 점이다. 최근 유행하는 '페스타' 역시 글로벌 마케팅 언어로서는 훌륭할지 모르나, 그 안에서 우리만의 정서적 뿌리를 찾기는 힘들다. 우리는 줄곧 남의 옷을 빌려 입은 채 우리의 흥을 표현하려 애써온 셈이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축제(祝祭)'라는 말은 사실 우리 몸에 맞는 옷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고유의 대동의 ‘판’ ‘마을굿’과 ‘고을굿’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축제'보다 훨씬 깊고 뜨거웠던 이름들이 있었다. 바로 '마을굿'과 '고을굿'이다. 과거 마을과 고을 단위에서 열렸던 이 대동(大同) 행사는 단순히 구경하는 '공연'이 아니었다. 마을굿은 공동체의 아픔을 달래고 내일의 희망을 비는 '치유의 장'이었고, 고을굿은 신분과 계층을 넘어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대동의 판'이었다. 그곳엔 관객과 주인공의 구분이 없었다. 모두가 제관이자 광대였으며, 그 어우러짐 자체가 거대한 생명력이었다.
이름은 본질을 규정한다. 정신은 언어를 타고 흐르기 때문이다. 모든 행사를 천편일률적으로 '축제'라 부르거나 상업적인 '페스타'로 포장하는 것은 우리의 놀이 문화를 스스로 단순화하는 일이다. 이제는 엉킨 실타래를 풀듯, 행사의 성격에 맞는 우리만의 이름을 되찾아주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축제'보다 훨씬 깊고 뜨거웠던 이름들이 있었다.
‘축제’의 명칭, 잃어버린 대동의 정신 담겨야
현대적이고 글로벌한 감각의 행사에는 '페스티벌'이나 '페스타'를 전략적으로 수용하되,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 격식 있는 자리에는 '축전(祝典)'을, 예술적 기량을 겨루는 장에는 '제전(祭典)'이라는 이름을 써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공동체가 평등하게 어우러져 에너지를 분출하는 즐거움의 장에는 '잔치', '판', '마당', '어울림'이라는 정겨운 우리말을 다시 불러와야 한다.
모든 행사를 천편일률적으로 '축제'라 부르거나 상업적인 '페스타'로 포장하는 것은 우리의 놀이 문화를 스스로 단순화하는 일이다.
명칭을 바로잡는 작업은 단순히 사전을 뒤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대동의 정신'을 어떤 그릇에 담아 미래로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화적 선언이다. 일본식 번역어의 굴레와 외래어의 유혹을 넘어, 마을굿이 지녔던 그 뜨거운 ‘어울림’의 이름을 회복하자. 이름이 제 자리를 찾을 때, 우리의 놀이 문화 또한 비로소 우리 몸에 꼭 맞는 옷을 입고 다시 숨 쉬기 시작할 것이다. -문화 칼럼니스트 김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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