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울이 마게도냐 환상을 보다(2)
인생의 우회도로
사도행전 16:6-10 / 인명진 목사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쌩쌩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가 있는가 하면, 돌고 돌아가는 우회도로를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눈앞에 빤하게 보이는 길인데, 그리고 성공이 보장되는 길인데, 수 백리, 수 천리를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바로 보이는데 그 길이 막혀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돌아서만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마저 멈추고 쉬라는 신호도 있습니다. 건강에 이상이 와서 어쩔 수 없이 병상에 누워서 있든지, 직장을 사임하게 되었든지,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멈춘 채로 쉬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인생을 우회하라는 신호를 받았을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인생의 멈춤 신호를 받았을 때,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속도대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는 리듬을 잃지 않습니다.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순조롭게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우회도로로 돌아서 갈 때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고 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 큰 문제는 돌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그냥 멈추고 서 있어야 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바울은 지금 실라와 함께 2차 전도여행 중인데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는 줄 알고 회당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헬라 사람들과 로마 사람들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상상하고 기대했던 것 이상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로인해 소아시아 지역에 교회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만나는 소아시아 일곱 개 교회가 이때쯤 세워진 것입니다.
수고하고, 힘은 들었지만 얼마나 신이 났을까요? 거기에다 디모데까지 선교여행에 합류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만사형통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왕이면 열매가 풍성한 황금어장과 같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계속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바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예 성령께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길인데 그것을 막아버립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바울이 계획하고 있는 그 길을 포기하게 만드십니다.
바울은 아시아 위쪽 비두니아에서 복음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은 유럽에 건너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유럽을 가려면 바다를 건너가야 합니다. 그러나 아시아로 가면 곧장 올라가면 됩니다. 더군다나 유럽이라는 지역만 넘어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를 접해야 합니다. 바울은 아시아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시아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기 훨씬 쉬웠고, 유럽에 대한 두려움과 문화적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이유로 인해 아시아에서 복음 계속 전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동북쪽에 있는 비두니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가서 전하는 것도 성령께서 금하셨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오 하나님! 내가 이곳으로 갈려고 해도 막으시고 저곳으로 갈려고 해도 막으시는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계십니까?" 그날 밤에 성령께서 바울에게 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환상이 무엇입니까? 마게도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면서 "이리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 환상이었습니다. 마게도냐는 지금의 유고 남쪽 지방이고, 그리스의 북쪽 지방입니다. 흑해를 사이에 두고 동쪽은 아시아, 서쪽은 유럽입니다.
지금 바울은 아시아에서 계속 복음을 전하고 싶은데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 유럽사람, 마게도냐 사람들이 손을 흔들면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손짓 하는 것을 환상을 본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한창 잘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리시는 명령은 열매가 풍성한 아시아를 버려두고 불모지 유럽을 향해 떠나라는 것입니다. 고속도로를 앞에 두고 삥 돌아서 가라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소아시아의 서쪽 드로아에 멈춰서 있습니다.
5년 전에 소아시아 일곱 개 교회와 바울의 선교 발자취를 따라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그냥 가면 기억에 남지 않을 것인데, 기독교신문사의 부탁을 받고 소아시아 성지순례기를 10회 연제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떠났습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 공부를 많이 하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 기억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성령의 음성을 따라 유럽 선교를 시작했던 곳이 드로아인데 지금의 트로이입니다. 여러분은 트로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부분 트로이 목마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잊어버리고 목마만 기억하는 슬픈 트로이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 트로이에서 복음으로 유럽을 변화시켰던 바울을 기억하면서 남다른 감회에 젖기도 했습니다. 제가 트로이에 대해 글을 쓰면서 제목을 이렇게 달았습니다. 아시아의 끝자리 드로아, 유럽의 시작이 되었다.
그가 흑해를 건너 최초로 건너간 지역은 빌립보 지경이었습니다. 유럽에 최초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베뢰아, 고린도, 그리고 아덴 등 바울이 건너가는 곳마다 새로운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생각할 때 비두니아를 포기하고 유럽으로 넘어가는 것은 고속도로를 포기하고 우회도로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깨닫고 보니 유럽이야말로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고속도로였습니다. 이미 헬라와 로마의 세계화로 인해 유럽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도시마다 회당을 세워 놓았습니다. 바울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면서 하나님 나라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고속도로보다 더 나은 우회도로였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들은 삥 돌아서 인생을 걸어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바울보다도 더 많이 인생의 우회도로를 걸어간 대표적인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덧입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은 똑같이 17살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던 사람들입니다. 똑같이 13년 동안 인생의 우회도로를 걸어갔습니다. 똑같이 서른 살에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요셉과 다윗입니다.
요셉은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두 가지 꿈을 통해서 "네가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꿈 얘기를 들은 형들이 “야, 네가 17살 밖에 안 된 어린 아이인데 우리를 다스린단 말이냐? 그리고 네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까지 다스린단 말이냐?” 하며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형들은 결국 미디안 상인들에게 동생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기고 말았습니다. 미디안 상인들은 요셉을 애굽의 보디발 장군 집에 팔았습니다. 그래서 17살짜리 소년이 애굽의 책임자 집에 가서 종노릇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 집에 가서 열심히 종노릇을 잘했기 때문에 점차 그 직위가 올라갔습니다. 몇 년 후에는 마침내 그 집안에 있는 모든 종들을 다스리는 총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을 유혹하려다가 실패한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장군의 아내를 성추행하려한 이방인 노예로 요셉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노예에다 주인의 아내를 넘본 사람이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디가고, 노예가 되어 감옥까지 갔습니다.
돌고 돌아도 이만저만 돌아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하나님의 계획은 비로소 감옥에서 이루어졌고, 13년을 돌고 돌다가 마침내 서른 살이 되어 애굽의 국무총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요셉의 생애는 무려 십 삼년간이나 돌아가는 세월을 살았습니다. 요셉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이 돌아가라 하면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돌아가는 고생이 헛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열매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그도 17살 되었을 때에 선지자 사무엘부터 이스라엘 왕으로서 기름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날 다윗이 왕좌를 향해서 달려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골리앗을 죽여서 전쟁 영웅이 되어 사울 왕의 사위까지 되어 꿈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인기가 치솟자 위기를 느낀 사울이 다윗을 미워했습니다. 민간에 퍼진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는 노래는 사울을 이성을 잃어버린 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나중에는 궁궐에서 조회를 하고 있는 다윗을 죽이려고 창까지 던졌습니다. 그 길로 다윗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다윗은 그때로 부터 다시 7년 동안 우회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울을 피해서 동굴이나 언덕이나 골짜기나 들판을 헤매고 숨어서 피해 살아야 했습니다. 결국 13년이 지난 서른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임금이 되었습니다.
요셉도 열일곱 살에 하나님의 비전을 꿈으로 보았고, 다윗도 열일곱 살에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이스라엘 임금이 될 것이라고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이들 두 사람은 13년이라는 긴 우회도로를 돌아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통치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셨고, 백성들은 평안했고, 나라는 부강한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결국 인생의 우회도로를 걸으면서 진짜로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과 다윗이 17살에 승승장구하여 장애물 하나 없이 고속도로를 다렸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뻔한 결과가 그려지지 않습니까? 기고만장, 안하무인이 그의 품성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성경으로 만나는 그런 인물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길이 막혀서 어쩔 수 없이 우회도로를 돌아서 간 적이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뻔히 보이는 고속도로를 앞에 두고 멀고 먼 길을 돌아가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먼저, 막으실 때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안 되게 하실 때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직행하는 도로로, 아니 고속도로로 쏜살같이 달려가려 합니다. 누구든지 돌아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살구나무와 같이 제일 이른 봄에 꽃을 피우고 여름 채 오기도 전에 열매를 맺는 그런 인생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비바람 찬 서리 다 맞고 가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과가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 살구가 풋 내음이 나는 맛이라면 사과는 국화는 농익은 깊은 맛을 안겨줍니다.
여름 휴가로 도시를 떠나 산과 들로 나갈 때 고속도로보다는 돌고 돌아가는 국도를 달릴 때 여행의 즐거움을 느낍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길이 막혀서 어쩔 수 없이 돌아갈 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꼭 쓰시겠다는 사람은 그 길을 막아서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막으시지만 한편으로 열어놓고 계십니다. 바울이 가는 아시아 선교의 길은 막았지만 유럽을 향한 선교의 길은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막힐 때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다른 계획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신앙이 무엇입니까? 막힌 문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열린 문을 찾는 것 아닙니까? 고속도로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우회도로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 아닙니까?
바울은 눈앞에 보이는 황금어장 아시아로 직행하고 싶었지만 길이 막혔습니다. 이때 바울은 하나님의 다른 계획이 있는 줄 믿고 즉시 무릎 꿇었습니다. 그러자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소리를 듣고, 손짓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막으시면서 다른 길과 계획을 이미 준비해 놓고 계신 분입니다.
두 번째로, 막히게 만들고, 돌아가게 하시면서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두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바울의 아시아 전도 계획을 왜 막았겠습니까? 분명히 막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렇습니다. 사실 아시아는 그리 큰 전도 현장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세계의 중심은 로마였습니다. 그러므로 중심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작은 것만 보고 있는 바울을 막으시면서 유럽, 로마를 향해 나가게 한 것입니다.
유럽의 첫 관문인 빌립보에 들어서자마자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갔지만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양을 하니 옥문이 열리고, 지진이 일어나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나서 자기를 지키던 간수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하고, 기도했는지,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특별헌금을 하여 바울을 쓸 것을 공급했습니다. 아마 바울이 가장 사랑하는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을 것입니다. 유럽에 들어서자마자 이 교회를 만났습니다.
그 다음으로 방문한 곳이 데살로니가 지역입니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넘쳐나는 교회였습니다. 말씀 그대로 믿는 순전한 성도들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방문한 곳이 베뢰아 교회인데, 이 교회는 데살로니가 교회보다 더 좋은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1절에는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상경을 상고하였다.”고 말합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당시 문화와 종교의 중심지, 아덴을 방문했고, 항구 도시 고린도를 방문하여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아시아에서보다 더 좋은 성도들을 만나게 만드셨고, 이 교회 성도들이 로마와 유럽을 복음의 나라로 변화시키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시아에서 막으시면서 유럽의 문을 열어놓으시면서 훨씬 더 좋은 준비해 놓고 계셨고, 가는 곳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넘쳐났습니다. 이 믿음의 법은 비단 바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두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믿음의 법입니다.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막으시고, 돌아가게 하시고, 마침내 보물을 발견하게 만드십니다.
혹시 여러분! 미로 게임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옛날 신문에 보면 미로 찾기가 신문 한쪽 면에 실려 있었습니다. 그림 속에 보물을 두고 가는 길을 여러 군데 막아놓고, 오직 보물을 찾을 수 있는 한 길만 열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길을 막으시고, 돌아가게 하시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바로 가면 그곳에 보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돌아가더라도 더 좋은 것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 번째로, 돌아가게 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바울이 유럽으로 향해 나갔을 때 더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하였습니다. 바울이 가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에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은혜가 많았던 만큼 유대인들이 박해도 심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박해와 어려움을 이기고,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실 때에는 반드시 이길 능력 주십니다.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둠의 권세와 마귀의 권세를 이길 수 있도록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여러분! 얼마나 멋있고, 드라마틱합니까? 감옥에서 찬송하니 옥문이 열리고, 더 깊은 찬송을 하니 옥터에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깨어졌습니다.
저 옛날 요셉이 노예로 팔려갔지만 또,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갔지만 하나님은 노예보다, 감옥보다 더 큰 은혜 주셔서 이 모든 것을 이기게 하시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도, 현상수배범으로 방이 붙었지만 이 고난의 세월을 다 이겼습니다. 오히려 피난살이를 함께 아둘람 굴에서 만난 6백명의 용사로 나라를 세우는 기초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막으시고, 돌아가게 하면서 그냥 보낸 것이 아니라 이길 힘주시고, 능력 주시어 승리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깊으신 하나님의 계획을 헤아리면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우리는 어디를 가는지도 잘 알지 못하고 빨리 달리고 싶어서 고속도로만을 고집하기도 합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하면서 앞만 보며 달려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속도로에서 보지 못하는 것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우회도로에서 보게 하십니다. 때로는 달릴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까? 돌아가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더디 가더라도 사람 사랑하는 그 길이 갈릴리 성도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사랑하는 갈릴리 가족 여러분! 우리는 바로 가고 싶고, 눈앞에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고 싶지만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막으시기도 하고, 돌아가게 하시기도 합니다. 돌아가더라도 하나님을 뜻을 따라, 더디 가더라도 사람 사랑하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바울이 걸었던 인생의 우회도로였고, 우리 갈릴리 성도들이 걸어가야 할 인생의 우회도로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인생의 우회도로 걸어가는 갈릴리 성도들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가득 하시기를 바랍니다.
계획된 사랑
사도행전 16장 6-10절 / 이영무 목사
할렐루야 오늘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기쁨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은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절망이 희망으로 여러분의 상처가 기쁨으로 회복되는 은혜의 시간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옆에 분들과 웃으면서 인사하십니다. ‘오늘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치루는데 이런 문제가 났답니다. 한 밤중에 길거리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든가 크게 노래를 부르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힌트는 사자 성어로 4자인데 마지막은 ‘000가’자이다. 아이들이 나름대로 연구를 해서 답을 적었습니다. 첫 번째 아이가 답을 적어서 가지고 왔는데 보니까 뭐라고 썼느냐? ‘고음불가’라고 썼습니다. 너는 틀렸다. 두 번째 아이가 써서 가지고 왔는데 ‘고성방가’ 그래 너는 정답이다. 세 번째 아이가 써왔는데 ‘이럴수가’ 이렇게 써 왔어요. 넌 아니다. 네 번째 아이는 더 희귀한 답을 적어가지고 왔습니다. ‘미친건가’ 이렇게 써 가지고 왔어요. 다섯 번째 아이의 답에 모두가 뒤집어 졌습니다. 다섯 번째 아이는 뭐라고 써왔느냐? ‘아빠인가’ 라고 써 왔어요.
여러분 우리 인생에는 오답이 많이 있습니다. 틀린 답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은 종종 우리에게 틀린 답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정답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 인생을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성가 가사에 보면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직 주님의 음성에 예민하고 주님의 음성을 따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제2차 선교 여행을 시작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제 아시아의 관문인 비두니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비두니아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민하면서 드로아로 내려가다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해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바울은 환상을 보고 나서 비두니아로 가기로 힘쓰던 것을 내려놓고 그리고 유럽의 첫 성인 마게도냐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비두니아로 가기로 그렇게 애쓰던 사도 바울이 한 순간에 환상을 본 후에 그는 유럽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사도 바울이 비두니아가 아니라 마게도냐로 가게 되었을까? 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 2차 선교지의 방향으로 틀게 되었을까? 혹시 비두니아에서 오지 말라는 통지가 왔을까요? 아니면 산사태가 나서 길이 막혔을까요? 아니면 선교팀에 어떤 혼란이 왔을까요? 무엇이 사도 바울로 하여금 비두니아로 가지 못하고 마게도냐로 가게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삶에는 그런 일이 종종 있지 않습니까? 나는 이것을 원했는데 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다른 것을 얻게 되는 경우는 없습니까? 이제 우리 인생을 많이 사신 권사님들 계시지요? 여러분 인생은 꼭 내가 원하는 대로 됩니까? 안됩니까? 되는 경우도 많지만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지요. 내가 결혼상대로 Mr. 김을 원했는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분은 지금 Mr. 박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나는 이런 직장을 갖기를 원했는데 나는 엉뚱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대학에 가고 싶었는데 나는 전혀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나는 이런 전공을 하고 싶었는데 전공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앞길을 막을 때가 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우리를 인도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음성에 예민한 성도가 바로 신령한 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제가 알고 있는 김 집사님은 한 회사에 20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그 회사는 20년 정도 근무하면 지방에 가서 3년 동안 지사에 가서 근무하는 게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직원들이 제일 선호하는 지사가 제주 지사였습니다. 제주도에 가면 3년 동안 올레길도 마음대로 걷고 바다낚시도 하고 공기도 맑고 등산도 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모두가 다 원했어요. 이 김 집사님은 분명히 자기 정도면 제주 지사에 갈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3년 동안 거기 갈 준비를 하고 아이들 전학도 생각하고 자기가 가서 살 집도 알아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가 3년을 지낸 곳은 그 경치 좋은 제주도가 아니라 들어보지도 못한 강원도 영월 지사에 가서 3년을 보내고 왔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어떻게 그는 제주도가 아닌 영월에 가서 3년을 보내야만 했을까요? 혹시 영월에 감자가 맛있기로 유명해서 그것 때문에 거기로 갔을까요? 아니면 영월에 고시동굴이 유명해서, 아니면 단종이 죽은 장릉이 거기 관광지가 있어서, 왜 그곳으로 갔을 까요? 무엇이 그의 인생을 뒤바꾸어 놓을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 ▶
자! 여러분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A.D. 60년경의 사건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제2차 선교여행을 시작할 때 드로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1차 선교여행을 성공적으로 아시아에서 마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2차도 아시아에서 선교하기를 꿈꾸었습니다. 자 오늘 성경 5절 말씀을 한 번 자막에서 읽어 볼까요. 5절입니다. 시작 “이에 여려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 가니라.” 아멘. 1차 선교여행의 결과가 이렇게 아름다웠어요. 믿음이 굳건해 지고 교회가 날마다 늘어가고, 숫자가 부흥되어 갔더라. 바울은 거기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2차 선교여행은 아시아나 비두니아로 가서 그곳에서 열심히 복음을 증거 해야지. 그리고 준비했습니다. 새로운 선교 팀 멤버로 바울과 실라 외에 칭찬 받는 믿음 좋은 디모데도 새로 영입했습니다. 아주 튼튼해졌습니다. 그리고 비두니아에 대한 정보를 공부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인종의 종류들, 또 어떤 종교적인 문화, 또 그들이 섬기는 어떤 우상들, 어떻게 효과적으로 선교할 수 있는가를 위해서 많이 기도하고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의 성격은 헐렁헐렁합니까? 철저합니까? 철저합니다. 우리가 아는 바울은 철저한 사람입니다. 그는 뭐 대충 대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뭘 하면 똑 부러지게 합니다. 생명 걸고 합니다. 최선을 다해 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특징입니다. 바울은 비두니아를 마음에 품고 목표로 정한 후, 최선을 다해 준비합니다. 기대감이 있습니다. 마음이 고무가 됩니다. 새로운 선교팀을 꾸렸습니다. 의욕이 넘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들은요, 늘 마음속에 희망과 꿈과 기대가 있는 거에요. 자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비두니아로 가기를 애쓰고 노력을 했는데, 결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왜? 비두니아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했더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니, 선교하러 가는데 왜 하나님이 길을 막고 열어 주시지 않으실까? 왜 하나님이 반대 하실까?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는 드로아라는 항구로 고민하며 내려갔는데 드로아에서 어느 밤 기도하다가 환상을 봤어요.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와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 라고 소리칩니다.
그때서야 바울은 깨달았어요. 아! 하나님의 뜻은 저 바다 건너 유럽 마게도냐에 있구나! 나를 그곳으로 가라고 방향을 바꾸셨구나. 깨달았어요. 그 순간 바울은 몹시 당황했습니다. 성격상 그는 비두니아 선교를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해 왔는데 갑자기 마게도냐라니요. 마게도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요. 그는 쉽사리 마게도냐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오랫동안 비두니아를 마음에 품고 기도해 왔기 때문에, 바울 성격상 아마 먼저 선발대를 보내서 아마 그 얘기를 전했을 것이고, 그들은 기도로 바울 오기를 준비하고 있었을 거에요. 그런데 차마 그들에게 “내가 거기에 갈 수가 없다. 내가 마게도냐로 가야된다.” 이렇게 말하기가 어려웠을 거에요. 선교팀 내부에서도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뭐 바울이 뭐 이러냐 말이야! 왔다 갔다 하느냐! 지난 번엔 하나님의 뜻이 비두니아 가는 거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또 마게도냐 가는 거라구 뭐 지도자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느냐!” 선교팀에 리더십이 허물어질 수 있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더더욱 바울은 아시아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았습니다. 기대치가. 또한 마게도냐가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릅니다. 뭘 타고 가야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거기에 가서 어떻게 선교를 합니까? 여러분! 바울의 성격상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바울의 앞길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사랑에 충만하지 못한 바울은 선교지가 변경되었을 때에 큰 시험에 들고 낙심에 빠지게 됩니다. 바울의 어려움이 무엇입니까?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마게도냐에 있는 것을 알지만, 그리로 방향을 틀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왜, 준비해 온 세월이 있습니다. 갑자기 바꾸라니요, 큰집 채만한 바위가 자기의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습니다. 비두니아의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서 원망할 소리를 들으니까 끔찍한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납니다. 마치 블랙홀에 빠져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할까? 나를 향해 뭐라고 돌을 던지진 않을까? 하나님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어요. 무슨 하나님이 그렇게 왔다 갔다 하십니까! 말이에요. 하나님 가시려면 당신이나 가십시오. 나는 못 가겠습니다. 이게 바로 바울의 심정이에요. 바울의 심정.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에 충만하지 못한 바울은 하나님의 변경된 계획을 받아들이기가 역부족이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 바울은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기도하며 갈등합니다. 고뇌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바울은 뭐라고 외칩니까? “비록 내 뜻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면 가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겠습니다.” 비두니아를 가기로, 그렇게 애쓰고 힘쓰던 바울은 자기의 꿈과 자기의 계획을 철저하게 내려놓습니다. 포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라는 마게도냐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을 한 번도 그릇된 곳으로 인도한 적이 없지, 때로는 내 생각이 어긋나도 하나님은 늘 나를 옳은 곳으로 인도하셨어. 이번에도 하나님은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실 거야!” 그리고 하나님이 가라는 마게도냐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을 한번도 그릇된 곳으로 인도 한적이 없지. 때로는 내 생각이 어긋나도 하나님은 늘 나를 오른곳으로 인도하셨어. 이번에도 하나님은 나를 바른길로 인도하실 거야. 바울은 마음을 고쳐먹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비두니아를 치워버립니다. 아시아의 그가 염원했던 비두니아를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마케도냐를 마음에 품고 그곳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과 실라 디모데외에 아주 성령 충만한 누가가 와서 합류했습니다. 선교 팀들은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마케도냐에 대한 정보를 얻습니다 인구분포와 어디로 어떤 배를 타야하는지 배삯을 준비합니다. 모든 것을 준비하는데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일사천리로 준비가 됐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니까. 이제 결국 바울 선교 팀은 배를 타고 유럽에 있는 마케도냐로 출항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보다 더 높은 계획을 가지시고 우리를 가장 선한 것으로 인도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론 우리 앞길에 방해가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때문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평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생각보다 높으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실려고 힘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 질문 할 때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크게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길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사랑. 종종 우리 앞길이 막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늘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의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기회를 붙잡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의 인생길에 이런 일이 올때는 아 하나님의 사랑이구나 합력해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 내 인생을 새롭게 탈 바꿈 시키고 있구나 여러분 생각하시면 맞는 것에요.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유럽의 위대한 개척자로 새우시기 원하시고 오랫동안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가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 할 때도 참고 기다리시고 사도로 부르시고 그를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 힘들지만 비두기아를 향한 마음을 내려놓게 하시고 마케도냐를 향한 선교의 열정을 품게 하시고 동역자와 배와 배 삿과 순풍을 주십니다. 필요한 선장과 선원을 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다 준비해 주십니다. 여러분 비두니아로 가려던 바울을 마케도냐로 향하게 하신 분이 여호와 인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때로 180도 바꾸는 분이 누구냐.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더 좋은 계획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만드니 시련과 역경 만날 때 절대로 낙심하면 안됩니다.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그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의 애쓰고 힘쓰던 비두니아를 내려놓고 마케도냐를 품었을 때 하나님은 사랑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모든걸 준비시켜 위대한 개척자, 선교사로 세워 존경과 인정을 건강과 평화를 주십니다. 그리고 바울의 모든 선교과정이 순풍을 단 듯 이루어지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입니다.
▶ 저는 서두에서 김 집사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분은 그토록 원하는 제주지사에 못가고 강원도 영월에 가야했을까. 처음엔 이유를 몰랐어. 마음이 낙심되고 슬프고 버림받은 것 같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상한 마음으로 금요심야 기도회에 나갔습니다. 교회에서 기도하는데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김집사야 너 마음 아프지. 네 아퍼요. 내가 너를 이제부터 위로해 줄 거야. 그가 기도하는데 자꾸 영월이라는 지명이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난 가보지도 못한 곳이데. 아 하나님의 뜻이 영월에 있는가 보다. 그는 다음날 출근해서 영월 지사에 어떤 일이 있습니까? 하니까 아 직원이 아무도 없다는 거에요. 내가 신청하면 갈수 있나요 하니 당장 갈 수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영월지사로 부임했어요. 가보니까 제주도보다 공기가 더 좋습니다. 구경할 곳도 산책할 곳도 많아요. 바다고기보다 더 좋은 민물고기를 잡으니까 맛도 더 좋습니다. 주일날 교회를 가는데 저 산 밑에 시골에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갔더니, 나이 많은 전도사님이 교회를 목회하고 계셨습니다. 보니깐, 교회학교가 없어요. “왜 교회학교가 없습니까?”, 젊은 교사가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그때, “할렐루야, 내가 서울에서 20년 동안 교회에서 교사했는데, 하나님의 역사가 여기 있구나.” 그래서, “전도사님 제가 이제 주일학교를 만들겠습니다. 개척자가 되었어요. 3년 동안 열심히 전도해서 아이가 한 20명이 모여서 열심히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는 평신도 선교사의 역할을 담당하고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고 3년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인간이 볼 때는 망하는 것 같은데, 인간이 볼 때는 안 되는 것 같은데,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흥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복을 주십니다.
■ 어떤 집사님은 남편이 퇴직하고, 우리가 뭘 좀 해야 하는데 젊은 나이에, 그래서 이 추어탕 집을 열려고 준비를 합니다. 미꾸라지를 어떻게 사오는지, 미꾸라지 요리를 어떻게 하는지, 뭐 어느 집이 맛있게 하는지,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제, 그래서 추어탕 집을 열려고 이제 다 준비하고 계약도 해 놓았습니다. 근데 한 3주 전에 교회 와서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자꾸 그런 마음을 “야, 추어탕이 아니고, 갈비탕이다 갈비탕.” “아니, 뭔 놈의 갈비탕이에요? 하나님 난 추어탕을 지금 몇 개월 동안 준비했는데?” 갈비탕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수 없죠. 내가 업종을 바꿔야죠.” 그래서 그냥 모든 것을 취소하고, 갈비탕 집을 갑자기 개업했어요. 이유를 몰랐어요. 한 달 지났는데, 중국에서 미꾸라지가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데, 항생제를 너무 많이 놔가지고 그게 건강에 해롭다고 해서, 수입이 다 금지가 되었다는 거예요. 이 미꾸라지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구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미꾸라지 한 마리를. 그래서 추어탕 집이 다 문 닫는다는 거예요. 그때서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미국에서 고기는 늘 수입해 들어오고, 한국에도 한우는 많은데, 갈비탕은 재료가 넘쳐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있었구나. 여러분 인간이 망하는 것 같은데, 하나님의 계획은 더 높은 데에 있었다 하는 것입니다.
■ 여러분! 우리가 세계 무역 협회 총재인 이희돈 장로님의 얘기를 잘 알지 않습니까? 그 분은 워싱턴에서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아침마다 출퇴근 합니다. 여러분! 오늘 교회에 올 때 뭐 타고 오셨어요? 비행기 타고 오신 분 계세요? 그 분은 늘 출퇴근을 비행기로 합니다. 그래도 살려면 그 정도는 살아야지. 그런데 공항에 내렸는데, 이 뭔가 커피를 먹고 싶은데 마침 스타벅스가 문을 닫고, 그저 공항 밖에 허술한 데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먹고 가려고 시간이 있어서, 아 그랬는데, 그 커피가 좀 위생상 안 좋은지, 먹고 나서 설사가 나기 시작했어요. 공항 화장실을 한 30분을 들락날락 거렸어요. “아이, 아침에 회의 시간이 지나버렸네.” 회의를 취소해버렸어요. 그리고 이제 그가 30분 늦게 차를 타고, 이 세계무역센터 건물 앞에 왔는데, 그 때 꽝 하면서 비행기가 그 건물을 들이 받은 거예요. 자기가 회의해야 되는 곳은 110층이고, 자기 사무실은 79층인데, 비행기가 테러비행기가 79층에 들이 박아 버렸어요. 여러분, 그 시간은 자기가 거기에 있어야 될 시간입니다. 회의하는 110층도 다 날라 갔을 거예요. 그때 그는 “하나님이 내 생명을 살려주셨구나.” 그 장로님, 기도 많이 하는 장로님이십니다. 정말.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안전하게 대피시켜 주신 거예요. 설사가 나도, 이게 다 하나님의 뜻이 있구나, 라고 여러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에 고난이 오고, 아픔이 오고, 질병이 오고, 실패가 올 때,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뭐에요? “나를 바라봐라.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 내 음성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근데 우리가 원망만 하고, 불평만 하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데 말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우리의 인생을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위대한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자기의 길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해보세요. 위대한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자기의 길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길을 따른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 때문에, 내 길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것, 이것이 바로 위대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의 인생을 위대하게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세워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참고 인내하면서 여러분을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은 사도 바울처럼 귀하게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비두니아로 가려던 사도 바울의 길을 막으신 것처럼 여러분의 길을 막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동시에 마게도냐의 환상을 보게 하십니다. 새롤운 꿈과 비전을 보게 하십니다.
동역자를 붙여 주십니다. 준비하게 하십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앞길이 막힐 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향해 무릎으로 꿇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계획을 준비하고 계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계획된 사랑’입니다. 드라마에는 끝없는 사랑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계획된 사랑을 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말슴에 순종하고 내가 아끼고 힘쓰던 것을 내려놓고 주님이 아끼고 힘쓰던 것을 잡을 때,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인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준비시켜 주십니다. 우리를 세워 주십니다. 존경받게 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여러분 이 변함없고 실 수 없는 주의 사랑을 붙잡고 그 사랑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피르기야로 가려던 바울을 마게도냐로 가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일까요? 유럽에 있는 더 많은 영혼을 구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선교사로 파송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 오신 것입니다. 그게 뭐냐면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예수님이 머라고 하셨어요. “내가 온 이유는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함이라.” 그게 바로 선교에요. 하나님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130년 전에 한국 땅에 선교사가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고, 이땅에 많은 교회가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선교라는 것은 찾아 오는 것이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선교받은 우리가 선교하는 차례가 된 것입니다. 지난 주 인도 선교를 준비하는 청년이 아르바이트로 번 120만원을 가지고 돈이 없어서 못가는 다른 청년의 경비를 대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비를 벌기 위해 지금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참 훌륭하죠. 제가 그 말씀을 드렸더니 은혜받은 우리 성도님들이 많았습니다. 지난 주 청년 목사님이 보고를 합니다. 지난 주 중국에서 오신 성도님인데 그 자매님이 청년 목사님을 만나자고 해서 만났더니 중국에서 자신이 하나님을 모를 때 한국에서 오신 선교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선교사님이 자신을 많이 도와주셨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답하기 위해서 조그마한 정성을 준비했으니 받아주세요 그래서 목사님은 10만원 20만원을 가져왔겠구나 했는데 봉투안에 100만원이 들어있었습니다. 아마 그분의 한 달 월급을 다 가져온 것 같았어요. 그래서 교역자들이 다 감동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시는 구나. 하나님꼐서는 넉넉한 사람들을 통해서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의치 않은 사람들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한 집사님께서는 인도가는 청년들이 물품 모집한다고 하니깐 헌옷을 모아오면서 봉투를 준비해주셨습니다. 50만원을 후원해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은퇴권사회에서도 인도선교를 위해서 헌금해주시고, 우리 또 한 분 권사님도 헌금해주시고 감사해요. 여러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오래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가 주님의 선교에 동참할 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교에 동참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3가지를 도전하고 싶습니다.
첫 째는 기도 선교사가 되기 바랍니다.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세계의 선교지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두 번째는 방문선교사가 되십시오. 이렇게 인도 선교 가는 청년들처럼 현장에 가서 기도하고 현장에서 돕는 것입니다. 우리 영신 교회가 캄보디아에 가서 교회를 세울 때 많은 분들이 가서 기도하고 동참했습니다. 이것이 방문선교입니다.
두 번째는 방문 선교사가 되십시오. 이렇게 인도선교를 가는 청년들처럼 단기간이지만 인도에 가서 내가 현장을 보고 기도하고 사역을 돕는 것입니다. 방문 선교입니다. 방문선교. 우리 영신교회가 캄보디아 교회를 세울 때 많은 분들이 가서 함께 기도하고 동참했습니다. 그것도 방문 선교입니다. 선교의 마음을 협력해서 돕는 것입니다. 방문 선교.
세 번째가 뭡니까? 물질 선교사입니다. 나는 선교사로 갈 수는 없지만 대신 가는 분을 위해 물질로 돕는 것입니다.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는 것. 이게 물질선교사에요 여러분.
여러분들이 다 물질선교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영신교회는 매월 첫째주일을 선교헌금주일로 지킵니다. 우리 교회가 건축하고 그 부채를 갚느라고 사실 선교에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그런데 우리 영신교회가 선교에 총력을 다 할 때가 왔다고 믿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내는 선교헌금을 통해서 8명의 선교사들을 우리교회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11개의 국내 교회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국내의 여러 선교기관들을 돕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내는 선교헌금을 통해서 그런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척한 깜봇 영신교회도 물질로 계속 지원하고 있습니다.
5월에 사임하고 일산에 개척한 유성식 목사님 하늘 품 초대교회를 개척하셨는데 우리 영신교회가 매월 30만원씩 지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내는 선교헌금은 그렇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거룩한 일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여러분이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애쓰던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힘쓰시던 것을 하나님이 애쓰시는 일에 여러분이 이제 협력자가 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여러분들이 좀 선교헌금에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보면 정말 눈물겹게 헌금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형편이 어려운데도 선교헌금을 매달 꼬박꼬박 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선교헌금에 전혀 무관심한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헌금이 있는지 조차 몰라요. 참 답답하죠. 하나님께서는 온 교회가 함께 힘을 모으고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다. 선교에 동참하는 일이 바로 복 받는 일이다.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 우리 자막으로 한번 읽어볼까요? 누가복음 6장 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아멘.
너희가 나누고 베풀면 후에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여러분 다음 주 선교헌금에 기쁨으로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액수가 많지 않아도 좋아요.
여러분의 마음이 담겨있으면 됩니다. 단돈 5천원도 만원도 2만원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넉넉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번 주 다음 주에 휴가를 많이 가시는데 휴가 떠나실 때 조금만 절약하시면 됩니다. 조금만. 해외로 가실 분들이 국내로 가면은 50만원 100만원도 선교 헌금 할 수도 있어요. 여러분 호텔에서 예약할 것을 민박이나 펜션을 예약하면은 20만원 30만원도 선교헌금 할 수 있어요.
식당가서 갈비나 고기 먹을 거 한번쯤은 된장찌개로 바꾸면 2만원 3만원은 헌금할 수 있어요. 적어도 우리가 아끼고 절약해서 선교헌금 할 때 생명을 살리는데 동참 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나? 그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예요.
우리 영신교회 교우들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음성에 예민한 위대한 성도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국의 사명
사도행전 16:6-10 / 김태복 목사
지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서울노회원수련회가 중국 상해와 소주, 항주를 중심해서 있었습니다. 약 150명의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참석하였으므로 버스만도 4대가 될 정도여서 그 대부대가 여행한다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인지라 큰 어려움이나 사고 없이 은혜 가운데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특히 제가 특강을 맡아서 “교회성장과 당회의 화합”에 대해서 말씀을 전했더니 모두가 은혜를 받았다고 인사를 하여서 대단히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많은 교회들이 적지 않은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여행하면서 15억 인구와 우리나라의 50배의 큰 땅을 가진 중국이 거대한 몸집을 일으키고 강하게 솟구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강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라고 알려지고 있는 상해를 돌아보면서, 거대한 빌딩의 숲들과 거리를 메우고 있는 엄청난 차량들,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물결들이 보면서 세계를 향해 활기 있게 뻗치고 있는 강한 힘 앞에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6․25사변 때에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런 속도로 계속 경제가 급성장한다면 머지않아 우리나라나 일본도 훨씬 앞지를 것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은 많은 문제점에 안고 있습니다. 오직 돈을 벌겠다는 진한 욕망들이 너무나 팽배함으로 빈부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음으로, 못 가진 자들의 범죄가 극에 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해도 얼마나 심한지 상해 같은 도시는 너무나 공기가 탁하여 냄새가 나고 골이 아픕니다. 이번 중국을 돌아보면서, 일본과 중국, 러시아라는 강대국 틈에 끼어 있는 한국, 그나마 남북한으로 갈라진 채 서로 대치하고 있는 한국은 과연 어느 시점에 와있으며, 한국의 장래와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몇 가지로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1. 첫째로 깨달은 것은 지금은 태평양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세계는 성경대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비울 사도가 처음에는 아시아 쪽, 즉 동쪽을 항해 복음을 전하려고 했으나 성령이 막으시고 반대로 서쪽인 마게도냐, 즉 유럽 쪽으로 복음의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바울 사도의 생각에는 우선 동쪽인 동양부터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옳아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동양은 유교, 불교, 기타 종교가 무성한 지역인 반면, 유럽은 야만족과 해적이 판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셨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의 주관을 버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서쪽을 향해 선교를 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복음의 방향은 오직 서향(西向) 이었습니다. 그 결과 먼저 로마가 복음 중심지가 되고, 이어서 야만족과 해적이 판을 치던 북부 유럽과 영국이 복음 선교지로 꽃피우더니, 다시 복음은 서쪽인 대서양을 건너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전달됨으로 미국이 20세기의 복음 선교 중심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인 아니었던 동쪽을 향해 선교를 한 것은 거의 실패했습니다. 중동이나 인도, 중국과 러시아의 선교는 거의가 실패하여 회교권이나 공산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미국에서의 서쪽 방향은 아시아입니다. 거의 100여 년 동안 복음의 물결이 아시아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아시아가 복음 선교지가 되고 있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세계의 중심지가 태평양 시대를 맞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세계 중심지가 지중해를 중심하여 이루어지더니, 그 다음에는 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유럽과 미국 동부에서 18세기와 19세기까지 찬란한 꽃을 피워 왔습니다.
그러나 세계 2차대전 이후부터는 세계의 중심지가 태평양 시대로 옮겨 왔습니다. 미국의 서부와 일본, 중국과 러시아 지역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미국만 보더라도 동부의 하버드대학 보다는 서부의 버클리대학이 더 우세해지고 있고 노벨상도 버클리에서 더 많이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돈도 동부보다는 서부 쪽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과연 지금은 태평양 시대라 일본이 알부자가 되어 있고 지금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관심은 바로 극동 아시아 3개국 일본, 중국, 한국에 모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중국과 일본 틈에서 한국은 어떤 면에서 뛰어난 역할을 합니까? 돈입니까? 강대국이 되는 것입니까?
한국은 그런 면에서는 두 나라를 결코 앞설 수는 없습니다.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알부자로 재력(財力)이 가장 강한 나라요, 중국은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아 인력(人力)이 가장 강한 나라라면, 한국은 기독교열이 세계에서 강한 나라로 영력(靈力)이 가장 강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세계는 태평양 시대에 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2. 둘째로 깨달은 것은 한국은 세계선교지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역사 속에서 세계 선교의 방향이 서쪽이었다면 지금까지 미국이 선교 중심지였다가 이제는 아시아로 옮기어졌다면 그 바톤을 이어 받을 나라는 한국뿐이 없습니다. 이번 중국 여행에서 조선족 가이드가 말하기를 “여러분들은 남자로서 한국에서 사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이유인즉 지금 중국은 여성상위시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은 과거에는 ‘남존여비사상’이었으나 1981년 모택동이 ‘남녀평등원칙’을 법으로 제정하여 남녀가 ‘동일노동, 동일보수 원칙’을 법으로 제정하였고, 가정에서도 동시의무수행을 하도록 만들 결과, 지금은 ‘여존남비사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들도 여자들과 똑같이 가정에서 가사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여자들의 수가 부족한 탓인지 여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남자들이 대부분의 살림을 맡아서 하는 가정이 많아져 간다고 합니다. 특히 그런 풍토가 가장 강한 곳이 상해여서 대부분의 남자들이 5시나 6시에 퇴근해서 시장에서 장을 본 후에 저녁식사를 지어놓아야 할 정도라고 합니다. 사실, 과거 상해에서는 ‘상해판 4대 강령’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강령에 의하면 훌륭한 남편이 되려면 네 가지를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1) 월급은 봉투째 모두 아내에게 바친다. (2) 모든 빨래는 자신이 한다. (3) 식사 후 남은 음식은 혼자서 먹어 치운다. (4) 아내의 말은 모두 따른다.”라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장관이든 대학 총장이든 집에 와서 설거지하기 일 수이고 호칭도 서로 이름을 부른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남자 분들은 한국에서 사는 것을 참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 감사할 일이 떠오른 것은, 우리가 한국에서 사는 것을 가장 감사할 일은 기독교가 가장 왕성한 곳이 한국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중국 여행에서 보면 항주에서 상해로 오는 동안 두 개의 교회당을 보았는데 그 중의 하나는 천주교회당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보십시오. 밤에 조금 높은 곳에서 보면 온통 십자가등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이처럼 십자가가 많은 나라는 없습니다. 그만큼 기독교열이 불타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더 나가서는 미국이나 중국에 비하면 50분지 1이 될 정도로 작은 나라, 거기에 반으로 나누어진 나라이지만, 선교사를 15,000명을 보냄으로 세계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보내는 선교강국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이 세계 선교의 주역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선교주역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 몇 가지를 든다면
(l)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열이 불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 당시 중국은 선교 130년이 지난 때인데도 5억이나 되는 인구 중 교인이 불과 40만 명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선교가 시작된 지 50년이 지난 그 무렵에 이미 30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산하의 25개 선교지 중 하나였던 한국 교회는 성장면에서 놀라운 역사를 나타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선교부 사업의 총량의 비례로 보아 교회 수 40%, 목사 수 40%, 세례 교인 수 28%, 주일 학생 수 37%, 매일 학교 수 17%, 매일 학교의 학생 수 20%, 자급 교회 수 87%를 한국 교회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추세는 계속되어서 선교 100년 만에 인구의 4분지 1인 1,200만이 기독교인이 된 나라는 한국뿐이 없습니다. 외적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 열심도 대단합니다. 로빈손 샘스라는 학자는 한국은 참 놀라운 나라라고 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일본인들은 자동차와 전자 제품을 팔고, 중국인은 어디를 가나 식당을 운영한다면, 한국인은 어디를 가나 십자가를 세우고 교회를 세운다고 합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어디를 가나 회당을 세우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모이기에 힘써서 새벽예배와 수요예배, 구역예배와 철야예배에 열심이요, 기도하기에 얼마나 열심인지 교회마다, 기도원마다, 골짜기마다 기도 소리가 떠나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교회는 문제도 많습니다. 그러나 세계 어디를 가나 한국교회처럼 열심히 모이고 기도하는 곳은 없습니다.
(2) 동양권에 선교 주역은 한국인이 적격이기 때문입니다.
동양권은 계속 침략만 받은 나라이기 때문에 강대국 미국이나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은 침략만 받은 나라이기에 동양권의 어느 나라든지 반감을 가지지 않고 환영을 받는다는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베트남 같은 나라는 우리나라에 대해서 얼마든지 원한을 기질 수도 있습니다.
1964년 미국과 함께 베트남 전쟁에 약 30만 명이 개입하여 1973년에 종전이 될 때까지 4,960명이 전사하고 10만 명이 부상한 반면 적군은 41,400명을 죽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것처럼 얼마나 한국이 얄밉겠습니까? 그리고 월남 여자와 결혼을 해서 살다가 도망쳐 오므로 한국인 2세가 어림잡고 천 여 명이 된다고 하니 한국인라면 이를 갈 만도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베트남인들은 한국인에게 친절합니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에게는 강한 반감과 경계심이 있는 것과 아주 대조적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이 자기들에게 경제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속은 밉지만 겉으로만 아부를 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베트남인들은 자존심이 대단한 민족입니다. 그들의 민족은 역사 속에서 많은 침략을 받았으나 굽히지를 않았습니다. 중국이나 프랑스, 일본이나 미국의 침략을 받고 싸워서 독립했습니다.
그렇게 자존심이 센 나라이지만 원수의 나라와 같은 한국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한국인이 어디를 가나 미움을 안 받는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것은 회교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군대가 이라크에 가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반발심을 받지 않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이는 마지막 때 동남아시아와 중동에 선교의 주역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3) 한국인이 마지막 때 선교 주역이 될 조건은 선교 열정에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추세를 대체적으로 분석한다면 1960년대는 개척 교회 설립과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 열심이었고, 1970년대에서는 교회 성장과 교회 건축하기에 열심을 나타내는 추세였다면 1980년대에서는 농촌 교회를 돕는데 열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990년대 이후부터는 무엇에 대한 열심이 있습니까?
많은 교회들이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에 주력하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아세아홍익교회처럼 처음 개척하면서도 선교사를 몇 명 파송하는 교회가 되겠다고 하고, 여전히 보조를 받고 있는 교회 중에도 선교사를 돕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이는 시람이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바람과 같습니다.
이러한 선교 바람은 더 거세져야 합니다. 폭풍적인 선교 열풍이 중국과 동남아시아와 중동으로 흘러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비로 한국이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선교를 강권적으로 시키실 때 순종하면 하나님은 그 나라를 더욱 강하게 쓰시나 하나님이 선교의 사명을 주었으나 순종하지 않으면 그 국가는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 역사의 증언입니다.
작년에 동유럽을 돌아보았는데 그 지역은 과거에 왕성한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비대해지자 선교에는 열심히 사라지고 교회당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데만 열심이다가 결국 공산당에게 빼앗기는 날을 만났던 것입니다. 로마의 기독교가 선교에 열심일 때 더욱 부흥되었으나 베드로 성당처럼 엄청난 돈으로 교회당의 치장에만 몰두할 때 결국 고트족에 빼앗기는 날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러시아 교회도 16세기 초반만 해도 강력하였고 러시아 교회를 크게 흥기시킨 이반 3세는 제 2의 콘스탄티누스였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선교하는 열심을 바꾸어 교회당을 화려하게 금으로 치장하기에 열심일 때 마침내 공산 치하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도 한때는 60%가 기독교인이 될 정도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유고 어느 여자 대학을 중심으로 선교 운동이 맹렬히 일어날 때 유고의 일각에서는 선교 운동을 짓밟아 버리므로 결국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공산화되고 만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하기에는 최상의 조건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때에 온 교회들이 교회를 화려하게 치장하려는 열심에서 선교의 열심으로 대전환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이 나라를 더욱 강하게 붙들어 주실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은 강대국의 침략과 간섭 속에서도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하나님의 강하신 도움 때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큰 결점이 ‘빨리 빨리’라고 평가받아 왔습니다.
중소기업연구원 서건일 상임고문은 글을 쓰기를 “길을 걸어갈 때를 봐도 한국인의 걸음걸이는 보통 외국인보다 1.5배가량 빠르다고 한다. 거리의 자동차들은 왜 그렇게 바쁜지 서로가 끼어들고 약삭빨리 앞지르기 경쟁을 벌인다. 음식점에서는 주문하기 바쁘게 금방 독촉이다. 기다려 주지 않는다. 먹는데도 보통 10분, 20분 단위다.”
“건설공사하면 빨리빨리 지어야 적은 비용으로 빨리 많은 돈을 번다. 그러니 부실해질 수밖에 없고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사고가 빈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빨리빨리 문화가 반드시 마이너스 효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고 하면서,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인구당 휴대전화 보급율이 미국과 일본을 앞질렀고, 코스닥과 반도체 점유율이 세계 최고를 기록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의 약점을 오히려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만들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어느 분은 우리나라가 세계화가 되려면 젓가락 문화에서 포크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젓가락 때문에 한국이 얼마나 큰 이익을 보고 있습니까?
최근에 신나는 일이 별로 보이지 않는 우리 국민들에게 큰 감동과 희망을 주고 있는 분이 황우석 교수님입니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은 11개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배양했다고 발표함으로 세계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심지어 산업혁명과 맞먹는 사건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앞으로 배아줄기세포의 실험이 인체의 특정 세포로 분화시키는 기술이나 안전성이 검증된다면 재생 불가능한 세포를 줄기세포를 이용해 만든 새로운 세포로 대체하는 방법으로 많은 난치병 환자가 치료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즉 척수신경이 손상된 환자와 당뇨 환자, 선천성 면역 결핍증 등 각종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보임으로 온 세계가 한국에 눈을 돌릴 것이며, 그 경제효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이 연구에 절대 필요한 것은 난자입니다. 난자에서 핵을 꺼내서 다시 다른 핵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난자는 크기가 10분의 1㎜에 불과한 데다 풀이 묻은 것처럼 끈적끈적한 사람의 난자는 잘못 건드리면 터지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난자 10개에서 핵을 꺼내는 데 미국 연구진이 1시간 걸리는 동안 황 교수팀은 5~10분이면 끝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어릴 때부터 젓가락 사용을 많이 한 결과 가능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요즈음 세계인들은 젓가락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뉴스에 보니까,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국계 정보기술 기업인들의 모임인 한민족 IT 네트워크(KIN) 본부가 오는 6일 한국과 미국의 IT 종사자들이 모여 신기술 투자와 최신 업계 동향을 교류하는 연례행사 ''킨콘 2005''에 참가하는 미국인들에게 줄 선물로 쇠 젓가락 500세트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선교에 전력하면 하나님은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경제적으로 도와주심으로 선교비를 채워주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안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사는 길은 세계선교에 있는 줄 아시고 선교에 열심을 더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온 교인들이 선교하려는 열심으로 가득 찬 것을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여러분이여,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중심이 문제입니다. 온 성도들은 이 마지막 때 가장 시급한 것이 선교 인줄 알고 모두 합심함으로 더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깨달은 것은 중국이 우리 선교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중국에서 개최된 노회원수련회에 상해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인덕 선교사님이 중국 선교에 대한 현황과 전망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이제는 한국교회가 ‘중국 선교’란 말 대신에 ‘선교 중국’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중국 교회를 선교 동역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중국은 경제 뿐 아니라 교회성장도 급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일어난 ‘문화대혁명’으로 기독교인들이 고문, 추방, 학살당함으로 70만 정도에 불과했던 기독교인들이 지금은 1억 내지 1억 2천만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강 선교사님은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중국 교회들을 위해서 교회운영 보조금이나 교회 건축을 지원해 왔으나 이제는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 중국 교회가 절대 필요한 것은 교회 지도자 양성입니다. 교인들은 엄청나게 많은 데 비해 제대로 훈련받는 목회자나 지도자들이 너무 없습니다. 더 나가서는 앞으로 동남 아시아나 중동까지 파송할 선교사들을 양성하는 것이 시급합니다.”고 했습니다. 중국 교회 지도자들도 이런 점을 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백투예루살렘」이라는 책에서 보면 인터콥 선교회 최바울 대표가 중국 교회 지도자에게 “중국 교회는 한국교회보다 12배 많은 성도가 있으니, 한국교회가 1만 5천 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면. 지금 시점에서 중국 교회는 20만 명 정도의 선교사를 파송했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지도자는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선교자들을 훈련하고 보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일찍이 주께서 남으로, 서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거쳐 아랍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고 예루살렘으로 갈 것입니다. 실크로드를 따라 아랍 무슬림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으로 갈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지금 기독교를 강하게 통제하고 있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가능한 이야기 입니까? 아닙니다. 가능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최근에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위원회 지젠훙(季劍虹)주석 등 중국 기독교계 인사 27명과 함께 참석했던 중국 정부 국가 종교국 부국장인 왕쭤안(王作安)은 “지금까지 기독교는 미국 등 서방 종교인 줄 알았더니 한국에 와서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아마, 중국 정부도 앞으로 4년 후에 개최될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기독교를 개방하느냐, 마느냐 하는 입장에서 여러 가지 모색하는 중에 그런 결론을 얻은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종교도 개방하고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도 취하게 됨으로 중국은 세계를 향해 활짝 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중국 교회라는 거대한 에너지를 잘 활용함으로 마지막 때 세계 선교의 큰 획을 그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은 우리나라가 마지막 때 중국 교회를 동역자로 삼아서 선교국가로 우뚝 서기를 원하시는 줄 알고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도 이 일에 적극적으로 힘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꿈이 이루어지려면
박헌승 목사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똑 같지는 않습니다. 무가치한 삶을 살다가 허무한 인생을 마치는 자가 있는 반면에 참으로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을 살다가 가는 인생이 있습니다. 차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꿈을 가지고 사느냐 아니면 그냥 사느냐에 있습니다. 꿈은 중요합니다. 꿈에는 내일을 창조하는 힘이 담겨져있습니다. 동물은 밥을 먹고삽니다. 그러나 사람은 꿈을 먹고삽니다. 우리는 꿈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창세기 37:19절에 요셉을 가리켜 꿈꾸는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모두 하나님 나라를 위한 좋은 꿈, 큰 꿈을 가져야합니다.
믿음이 적은 자는 큰 믿음의 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사랑의 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늘 실패하는 사람은 성공의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가난한자는 부요한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병든 자는 건강한 꿈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전도를 못하는 분은 전도왕의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꾸는 꿈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젼이요 주님의 뜻이 되어야합니다.
빌립보서 2:13 하나님은 우리 속에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는 것은 꿈을 심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원이 있습니까? 주님의 뜻이 되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꿈이 망상이 아니라 삶의 현장가운데 실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꿈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면 본문말씀에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본문에 환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비젼입니다. 바울이 보았던 마게도냐의 환상, 바울의 비젼입니다. 아시아선교에만 머물렀던 바울의 선교사역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유럽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바울은 유럽선교의 꿈을 꾸었고 그 꿈을 꾼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16장은 마게도냐의 첫성 빌립보지역에 교회가 세워지는 스토리를 담고 있는데 꿈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합니다
- 바울은 1차 선교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제 실라를 데리고 2차 선교여행길에 나섰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아시아에서만 복음을 전하려고 문을 두드렸지만 열리지 않았습니다. 힘쓰고 애써보았지만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6절, 7절입니다. 바울은 처음에 성령보다 앞서갔습니다. 그러나 몇 번 길이 막히자 겸허히 자신을 내려놓았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셨습니다. 밤에 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9절에 마게도냐인이 나타나 건너와 우리를 도와달라고 손짓을 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성령께서 복음의 발걸음을 유럽으로 돌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0절,11절에 바울은 이때 주저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자기의 꿈, 아시아에 대한 꿈을 접어두고 하나님의 꿈, 성령의 비젼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꿈이 이루어지려면 자기를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에 따르는 순종함이 있어야합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따라야합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방법이 내가 원하는 스타일과 다르다 할지라도 순복해야합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때가 내가 바라는 때와 다르다 할지라도 복종해야합니다. 성령은 단지 우리의 개인의 야망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는 능력이나 도구가 아닙니다. 성령은 무지한 우리들에게 나타나셔서 꿈을 꾸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분명한 목적과 의지를 가지고 꿈의 성취를 위해 주도적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꿈을 꾸게 하며 꿈을 성취케 하는 영이십니다. 사도행전 2:17절에 성령이 임하면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젊은이는 환상을 보며 늙은이는 꿈을 꾼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꿈을 이루시기 위해 고후6:6에 우리에게 감화감동을 주십니다. 성령은 때로 요16:8 책망을 하십니다. 성령은 요16:13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행1:8 갈3:5우리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 순종해야하는 것입니다. 갈5:16 성령을 쫓아 행하여야 합니다. 갈5:25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성령이 충만하면 꿈은 이루어지고 성령이 소멸되면 아무리 좋은 꿈도 일장춘몽이 되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성령이 역사 하는 곳에 꿈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19:34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도다'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령이 충만하셨기 때문입니다. 요 3:34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행10:38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공급받았기 때문입니다. 꿈의 사람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2. 기도의 대가를 치루어야합니다.
- 본문이하에 보면 바울이 유럽선교의 꿈을 가지는 데서부터 그 꿈을 성취해나 가는 모든 과정에서 그는 끊임없이 기도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9절 밤에 .... 잠을 자다가 환상을 본 것이 아닐 것입니다. 분명 기도했을 것입니다
- 13절 기도처를 찾아 강가에 나갔습니다. 거기서 루디아를 만나게 됩니다.
- 16절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칩니다.
- 25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간수장과 그의 가족이 구원을 얻게 됩니다
- 평범하지만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니깐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 귀신들이 떠나가는 역사. 전도의 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기도안하면 아무런 역사가 안 일어나고 기도하면 무슨 역사이든지 일어납니다. 바울의 세계선교의 꿈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기도, 중단 없는 기도, 쉬임없는 기도 속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살전 5:17 쉬지 않고 기도
엡 6:18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 .
골 4:2 범사에 감사함으로 기도에 깨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냥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꿈은 기도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지만 하나님과 관련된 꿈은 반드시 기도해야만 이루어집니다.
에스겔 36:37의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도 기도하여야 할지니라' 반드시 기도해야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은 역사 하셔서 불가능한 것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하셔서 없는 가운데서 있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약속과 꿈은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70년만에 돌아오리라는 꿈을 예레미야는 가졌습니다. 그는 그 꿈의 성취를 위해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예레미야 33:2-3절의 말씀입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 꿈을 다니엘이 이어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이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다니엘서 9장 3절에 보면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9:19절에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 다니엘의 기도로 말미암아 에스라 1:1에 보면 파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하나님이 감동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의 본토귀환 명령이 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 보십시오 예수님이 그냥 구원사역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정말 기도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 히 5:7 눈물과 통곡의 기도 ,
막 1:35 새벽기도 ,
마 4:1 금식 40일기도 ,
눅 6:12 철야기도,
눅 22:44 겟세마네동산의 피와 땀방울의 기도 .
십자가 위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눅 23:34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들을 알지 못하나이다
막 15:3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눅 23:46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님은 성령충만하여 한 시라도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았기에 마지막까지 기도로 승리하였기에 위대한 꿈을 이룰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꿈의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요 기도의 사람입니다.
3.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 그냥 꿈이 이루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고난을 통한 연단의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유럽선교의 초석을 놓은 빌립보 선교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실라의 엄청난 핍박과 고난과 시련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귀신들린 여종을 쫓아냄으로 말미암아 그 주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했습니다.
22절-24절에 보면 관청에 끌려가 죽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옷이 다 찢겨졌습니다. 깊은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발은 쇠사슬에 꽁꽁 묶였습니다.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분명 성령의 환상과 인도가운데 기도가운데 빌립보에 왔는데 웬일입니까? 잘못 환상을 본 것입니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고난을 통해 꿈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고난을 비젼성취의 도구로 쓰시기로 원하셨던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어두운 밤, 깊은 감옥에서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25절에 고난 속에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음을 믿고 오히려 기도하며 찬송했습니다. 기도와 찬송가운데 아픔은 사라졌습니다. 내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공포도 사라졌습니다. 갑자기 지진이 나며 옥터가 흔들리며 묶인 쇠사슬이 풀어지기를 시작했습니다. 간수장이 놀랐습니다.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알고 문책을 당할 것이 두려워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외칩니다. 31절에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간수장과 그의 집안 모두가 구원을 얻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든든히 세워졌습니다. 보세요. 하나님의 섭리는 놀랍습니다. 매맞고 감옥에 들어가는 고난이 없었다면 어찌 간수장과 그 가정이 구원을 얻었겠습니까? 그 고난 때문에 꿈은 이루어지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고난은 나쁜 것만이 아닙니다. 고난에 대한 시각전환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비전의 시각으로 고난을 재해석하는 능력이 있어야합니다. 요셉을 보세요. 그가 채색 옷을 입고 특별한 사랑만 받으며 집에서 온실에서 자라듯 컸다면 요셉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형들의 미움과 시기, 구덩이 속에 던져진 쓰라린 아픔, 돈 몇 푼에 노예로 팔려 가는 처량한 신세, 억울한 옥살이, 잊혀진 사람으로 살아갔던 세월들, 그는 13년 동안 갖은 고생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러한 연단 끝에 드디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온 식구들을 구원하고 이스라엘나라의 초석 을 놓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적은 고난은 적은 꿈이 이루어지고 큰 고난은 큰 꿈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롬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꿈이 이루어지려면 어떤 어려움과 시련가운데서도 좌절하지 말아야합니다.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소망을 가져야합니다. 희망을 가져야합니다.
롬 5:3-5의 말씀처럼 환난가운데서 즐거워해야합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고 마침내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속에 부어져 꿈은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고난을 이겨내셨기에 부활의 산 소망으로 영생의 비젼을 이루고야 마셨던 것입니다. 꿈의 사람은 절대로 고난 앞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미래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하고야 맙니다. 영롱한 진주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모래를 끌어않고 아픔과 상처를 견디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정금의 찬란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까? 고난의 연단과정을 기도와 인내로 잘 통과하시기를 바랍니다.
욥기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꿈의 사람은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큰 역사를 이루는 자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꿈꾸는 자가 창조적인 사람입니다. 꿈꾸는 자만이 새역사를 창조하는 데 쓰임받을 수 가 있습니다. 꿈을 꿉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꿈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비젼이 주님께로 온 것이라면 반드시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 꿈은 일장춘몽이요 화무십일홍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맙니다.
1) 성령의 인도를 받읍시다
2) 기도의 대가를 치룹시다
성령의 인도하심
사도행전 16:6-10 / 안양준 목사
제가 몇 달 전에 지방 사경회에서 사도행전 강의를 맡게 되어, 2시간 동안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라 자세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사도행전은 “초대교회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사도와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해 복음이 어떻게 전해졌는가?”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13: 이후에는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을 기록하고 있는데 1차 전도여행은 13:4-14:28에, 2차 전도여행은 15:36-18:22에, 3차 여행은 18:23-21:17에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 읽은 본문은 2차 전도 여행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로 인해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루스드라라는 곳에서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쳤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15:36에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는 말씀처럼 2차 전도여행은 1차 전도여행 중에 세운 교회들을 돌아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15:41에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가는 곳마다 아직 믿음이 약한 교회들이 믿음이 굳게 세워졌고, 1절에 보면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1차 전도여행에서 2차 전도여행까지의 시간차가 5년이라고 볼 때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5년만에 디모데는 2절에 보면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디모데는 후에 잘 아시는 대로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신앙 안에서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관계로 발전되는데 이 귀한 만남이 2차 여행이 시작된지 얼마 않된 시기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16:5절에 기록된 것처럼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해” 졌습니다.
한 사람의 전도인으로서 이런 결과를 볼 때 얼마나 보람있겠습니까? 아마도 1차 전도여행 때 겪었던 모든 어려움들이 한 순간에 모두 씻겨져 내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문제가 무엇입니까?
6절에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입니다. 처음 계획은 1차 전도여행 시에 세운 교회들을 다니며 그들의 신앙을 돌보는 것이었는데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습니까?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신 것’은 1차 전도여행 때 세웠던 교회 전체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확한 해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저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신 것’이 전부입니다. 답답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사도 바울은 답답하지 않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답답한 심정을 제가 지도를 통해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지도 참조)
1차 전도여행: 실루기아(13:4 배를 탐) → 구브로의 살라미 → 바보 → 밤빌리아의 버가(13:13) → 마가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감 → 비시디아 안디옥(13:14) → 이고니온(13:51) → 루가오니아의 루스드라와 더베(14:6) → 더베(14:20) →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14:21) → 밤빌리아의 버가(14:25) → 앗달리아(14:25) → 안디옥(배를 타고)
2차 전도여행: 수리아와 길리기아를 거쳐 더베와 루스드라(16:1) → 브루기아와 갈라디아(16:5) → 무시아 옆 비두니아로 가려 애씀(16:6) → 드로아(환상을 봄) → 사모드라게(16:11) → 네압볼리 → 빌립보 →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17:1) → 베뢰아(17:10) → 아덴(17:16) → 고린도(18:1) → 수리아의 겐그레아(18:18) → 에베소(18:19) → 가이사랴(18:22) → 안디옥
여정에 대해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
지도를 보면서 사도 바울의 답답한 심정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성경에는 성령께서 막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일을 처음 당할 때는 그런 문제 때문에 더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아니,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데 왜 자꾸만 어려운 일이 생기나?”하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어려움이 사단으로부터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❶ 사단이 주는 시험이나 어려움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반드시 이겨내야 합니다. 어려움이 닥친다고 주저앉으면 안 됩니다. 포기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❷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지만 내 속에 더러운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때도 있습니다. 수 8:에 보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킨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라고 하는 성을 정복하다가 대패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이성은 여리고 성에 비하면 정말 아이같은 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우습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성 사람들에게 대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하나님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항변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스라엘이 범죄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지만, 불의를 보고 넘어가시는 분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갈6:7).
❸ 사단이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내게 죄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께 다른 특별한 계획이 있으시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 계속 막힐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당한 어려움은 바로 세 번째 이유 때문입니다.
물론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 한 것은 육신의 평안을 위해서나, 어떤 세상적인 목적을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복음 전파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성령께서 못하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과 바울의 뜻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하려는 일이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이 바울에게 원하시는 뜻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말씀 중에 잠 16:9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 스코틀랜드 한 교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1년이 지나도록 한 사람 밖에 전도하지 못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나마 어린아이 한 명을 전도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무능한 목사님으로 여깁니다. 물론 본인도 자신의 사역에 대해 낙심해 있는데 전도된 그 어린이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목사님, 제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제 꿈이 바뀌었어요. 저는 선교사가 될 거예요. 제가 좋은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가르쳐주세요.” 그래서 그 아이의 신앙이 잘 자라도록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훗날에 위대한 선교사가 되었는데 아프리카의 선교의 대부인 모펫 선교사입니다. 그리고 모펫 선교사의 사위가 리빙스턴인데 원래 리빙스턴은 중국 복음화를 위해 준비하다가 아편전쟁으로 인해 꿈이 좌절되어 낙심해 있을 때 모펫 선교사를 만나 위대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생은 항상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아주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을 계획하시고 계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고 그래서 불안하고 또 어떤 때는 낙심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나를 통해 내가 알지 못하시는 일을 이루기 위해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막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야 하고, 영적 통찰력을 달라고 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2. 환상을 통해 보여 주십니다.
지도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드로아는 처음 바울이 진행했던 곳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바울을 드로아까지 인도하신 것도 하나님의 섭리 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드로아로 내려갔을 때 바울에게 일어난 사건이 무엇입니까?
8절에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그 먼 길을 여행해 왔을 때 그 밤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바울이 본 환상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그에게 청하는 것”입니다.
사실 마게도냐 지역은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마게도니아란 나라는 1991년에 유고 연방에서 독립한 나라인데 원래는 옛날 알렉산더 대왕이 이을 통일하고 마케도니아라고 불렀습니다. 이 마게도니아가 중요한 이유는 아시아에서는 유럽으로 건너가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 7:2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에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라는 말씀이 있는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어떤 방법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분명히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출 3:2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 10:을 보면 이방 선교를 위해 가이사랴에 있는 백부장 고넬료를 만나게 하실 때 환상을 통해 베드로에게 나타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 8:을 보면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의 하나인 빌립이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의 전도 사역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에게 가사로 내려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마리아에서 가사까지는 너무나 먼 거리입니다. 무엇보다 성경에도 기록된 것처럼 그 길은 광야입니다. 하루 종일 걸어도 몇 사람 만나기 어려운 그런 길입니다. 왜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잘 전하고 있는 빌립에게 가사로 내려가라고 하십니까? 그런데 말씀에 순종하여 내려갔더니 이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예루살렘에 절기를 지키러 왔다가 내려가는 길에 성경을 해석하지 못하여 어려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가 읽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함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그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물론 저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 꼭 꿈이나 환상을 통해 보여주신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필요로 하실 때 자신이 기뻐하시는 방법을 통해 믿음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나타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바울에게 환상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는 무엇입니까? 본문의 사건은 2천년 세계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선교사에 새로운 장을 열어 놓는 전환점이 된 사건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피카소의 조각 중에 「황소 머리」란 작품이 있답니다. 그 작품의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재료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고물 자전거였습니다. 그런데 피카소가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쓰레기는 위대한 가능성을 가졌다.” 물론 작품의 재료는 쓰레기였지만, 피카소가 작품을 만들었을 때 위대한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입니까? 사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바울도 하나님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이 쓰셨기에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께서 쓰시기로 작정하신다면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여러분들에게 환상을 통해서든지, 다른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주님을 뵙는 귀한 영안이 열려지기를 소원합니다.
3. 순종하십시오.
바울이 환상을 본 후에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 10절에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로 힘썼습니다. 물론 마게도냐는 바다를 건너야 하는 새로운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바울에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안 순간 바로 순종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행동은 이래야 합니다. 환상을 보는 순간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힘이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빨리 마게도냐를 향해 가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헌신할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우리를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몸에 힘이 있을 때 순종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사명을 주실 때 기쁜 맘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자동차가 좋다는 것은 운전사 없이 제 멋대로 간다는 것이 아니라 운전사가 운전할 때 얼마나 쉽고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느냐, 또 얼마나 안락하냐, 그리고 고장이 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최첨단 재료로 만들었어도, 운전사가 조정할 수 없는 자동차라면 아무 쓸모가 없는 고철에 불과한 것입니다.
저도 목회를 하며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서 여러 종류의 성도들을 보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무엇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목회자입니다. 물론 가끔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철저하게 여러분 신앙을 위해서 도움이 될 때에만 합니다.
제가 제단에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이스라엘을 여행하면서 양을 치는 목자들을 많이 보았는데 목자가 그 많은 양을 다 돌보는 것이 아닙니다.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양들 중에 방울이 달린 양이 있습니다. 이 양을 목자는 항상 품고 지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양은 철저하게 목자를 따르는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양들은 이 양의 방울소리를 들으며 따라오는 것이구요.
제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무릎을 쳤습니다. 물론 저는 여러분이 저를 그렇게 따라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 그런 사랑을 받고 또 그래서 다른 모든 양들이 여러분의 신앙을 본받고 따라올 수 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보다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이 이것을 증거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들이 “이런 자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했습니다.
주님만을 바라보기에 세상에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 주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놓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상하셨습니까?
바울과 같이 환상을 본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정되었다면 곧 순종하는 자세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할 때 바울을 모든 사람들이 지금까지 위대한 사도로 인정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는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게 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계속 앞길이 막힐 때
이재철 목사
♬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뒤돌아 서지 않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요즘 내가 하는 일이 앞길이 막히고 꼬이지 않습니까?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아닌고, 기도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앞길이 자꾸 막히십니까?
우리만 길이 막히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의 사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도바울도 앞길이 꽉 막혔습니다. 6절 말씀에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새로운 곳을 찾아 동쪽으로 이동합니다. 그러나 그곳도 막으셨습니다. 이번에는 서쪽 무시아땅으로 가보고, 북쪽으로도 가보지만 마찬가지로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앞길이 막히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곳에는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큰 뜻이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자녀의 앞길을 막을 때는 두 가지 경우입니다.
① 새로운 길을 여시려고 할 때입니다. (9절)
마게도냐에서 자신에게 손짓하는 환상을 보고 그제 서야 자신의 길을 막았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10절)
이 새 길을 열려고 그동안 앞길을 막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방향을 바꾸려고 할 때 반드시 새 길을 열어 놓고 막습니다.
② 내 지경을 넓히려고 할 때 (12절)
바울은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에게 유럽으로 복음을 전하는 데 지경을 넓히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시아에서 시작된 복음이 유럽으로 전파됩니다.
마음의 지경을 넓히면 한 사람도 품기 힘들었던 자가 열 사람도 거뜬히 품게 됩니다.
내 생각으로는 지경을 넓힐 수 없습니다. 앞길을 막아 놓고 지경을 넓혀주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 하나님께서 어떤 길을 여시는가를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즉시 순종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0절 말씀에 보면 "곧 마게도냐로 가기를 힘쓰니"라고 나옵니다. 바울은 유럽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바로 순종하였습니다.
▶ 내 길이 막히고 새 길을 열 때까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지금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면 새로운 길을 여시고 더 귀한 일을 맡기십니다.
새 길을 열 때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깨끗하게 마무리하십시오.
그래야 새로운 곳에 가서도 더 귀한 사람을 만나고 귀한 일을 주십니다.
㉡ 하나님의 구체적인 인도를 믿고 기도하십시오.
②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을 만나게 하고 도와주십니다. (14절)
하나님께서는 마게도냐에서 큰 사업가인 루디아를 만나게 하십니다.
루디아는 바울이 자신의 집에 기거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자신의 집을 내어주었습니다.
빌립보에서 사역하는 데 루디아가 뒷바라지를 다 해주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십시오.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앞길을 막았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유럽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센터가 되었습니다.
지경을 넓히려고 할 때 준비된 사람, 도움을 주는 사람을 보내 주십니다.
▶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사람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3절에 보면 바울이 기도처를 찾으러 가서 루디아를 만납니다. 바울이 루디아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이런 것들이 이루어 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 먼저 배우자를 알아보십시오.
배우자는 돕는 베필로 주셨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돕는 자를 주셨는데 그것을 모르고 돕는 자를 달라고 불평하면 돕는자를 주시지 않습니다.
㉡ 돕는 자를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십니다.
㉢ 도움을 받으려고만 하지말고 내가 도우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루디아 같은 동역자를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