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들은 헛되이 세월만 보낼 뿐 선정을 얻을 수 없다. 그 잘못된 길을 떠나 정도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정의라고 했다.
어떤 약이든지 약은 그에 맞는 용도를 떠나서는 쓸 수가 없다. 그처럼 참선의 용도도 오로지 복을 짓는 것 말고는 써서는 안 된다. 명예와 이익은 참선의 용도가 아니다. 그 용도로 쓰는 자가 있다면 그는 邪道者다. 사도자는 邪道를 행하는 자들이다.
佛法과 不法은 같은 발음이면서도 다른 뜻이다. 不信과 佛信도 마찬가지다. 祖師와 釣士조사도 역시 그렇다. 완전 반대어다. 祖師는 제자를 낚고 釣士는 고기를 낚는다. 하나는 살리기 위해 낚고 하나는 죽이기 위해 낚는다.
원래 그렇다. 나쁜 것들은 다 좋은 것과 함께 하고 있다. 그러므로 까딱 잘못하다가는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취할 수 있다. 복이 없으면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매력을 느낀다. 그런 사람을 낚아채기 위해서 眞假진가의 구별을 애매하게 만들어놓았다. 그때 스승이 진가를 가려준다.
참선하는 흉내를 내면서 邪法을 구하는 자는 세월만 헛되이 보내지 결코 선정은 얻을 수 없다. 그렇게 의미없이 버린 세월을 그들은 명예를 구하는 이력의 무기로 쓴다.
대집경에 사견을 지녀 깨달음을 얻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정견을 지녀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가슴에 새겨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런 못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기에 正意라고 하였다.
□해동소□ 直欲定心與理相應 自度度他至無上道 如是名爲正意也
선정에 들고자 하는 마음이 이치와 더불어 바르게 상응하면 자기도 제도되고 타인도 제도되어 무상도에 이른다. 그와 같은 마음을 정의라고 한다.
정심은 선정의 마음이다. 그러니까 정심이 진리와 더불어 상응하면 공덕이 쌓이고 후득지가 나온다. 그 공덕과 후득지로 중생을 제도하면 본인도 제도되고 타인도 제도된다. 그런 생각이 正意다. 그런 생각을 갖고 참선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상도에 이른다는 말이 의미가 있다. 무상도는 깨달음의 길을 말한다. 그러니까 정심으로 선정에 들고 자리이타의 행으로 공덕을 쌓아나가면 십주에 올라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10주가 무상도다.
지금 공부하는 이 대목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대목은 수행신심분이다. 신심을 수행해서 어디에 쓰려고? 하근기인 범부가 이 방법을 써서 복덕을 짓는다. 그러면 신심이 굳어진다. 그것을 바탕으로 상근기가 되어 10주에 오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신심을 수행한다.
그러니까 부정취중생이 자력으로 복덕을 지어 정정취에 들어가는 제일 밑바닥의 수행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 과정을 거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자력이 아니라 타력수행을 할 것입니다."
첫댓글 원효성사 영정사진 와~카리스마 작렬!
너무 잘 표현하신 것 같아 화가가 궁금할 지경^^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 邪道者에게 낚여 佛法을 불신하는 복없는 자로 추락하지 않아 참 다행입니다.
자력으로 복을 짓기 힘든 부정취중생이 타력수행으로 정정취에 들어가는 무상도.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
좋은글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