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자기의와 부정성으로 더러워진 마음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주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주님께 연합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안뜰 동쪽을 향한 문은 일하는 엿새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초하루에도 열고
2. 군주는 바깥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 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군주는 문 통로에서 예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
3. 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초하루에 이 문 입구에서 나 여호와 앞에 예배할 것이며
4. 안식일에 군주가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 양 여섯 마리와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라
5. 그 소제는 숫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 씩이니라
6. 초하루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어린 양 여섯 마리와 숫양 한 마리를 드리되 모두 흠 없는 것으로 할 것이며
7. 또 소제를 준비하되 수송아지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에도 밀가루 한 에바며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요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8. 군주가 올 때에는 이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오고 나갈 때에도 그리할지니라
9. 그러나 모든 정한 절기에 이 땅 백성이 나 여호와 앞에 나아올 때에는 북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하는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북문으로 나갈지라 들어온 문으로 도로 나가지 말고 그 몸이 앞으로 향한 대로 나갈지며
10. 군주가 무리 가운데에 있어서 그들이 들어올 때에 들어오고 그들이 나갈 때에 나갈지니라
11. 명절과 성회 때에 그 소제는 수송아지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 한 마리에도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12. 만일 군주가 자원하여 번제를 준비하거나 혹은 자원하여 감사제를 준비하여 나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그를 위하여 동쪽을 향한 문을 열고 그가 번제와 감사제를 안식일에 드림 같이 드리고 밖으로 나갈지며 나간 후에 문을 닫을지니라
13. 아침마다 일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한 마리를 번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리고
14. 또 아침마다 그것과 함께 드릴 소제를 갖추되 곧 밀가루 육분의 일 에바와 기름 삼분의 일 힌을 섞을 것이니 이는 영원한 규례로 삼아 항상 나 여호와께 드릴 소제라
15. 이같이 아침마다 그 어린 양과 밀가루와 기름을 준비하여 항상 드리는 번제물로 삼을지니라
(본문 주해)
1~12절 : 안식일과 월삭에 관한 규정이다.
1~3절--성소의 동쪽을 향하고 있는 안쪽 동쪽 중문은 일하는 엿새 동안 닫아두어야 한다. 그러다가 안식일과 초하루 축제일에 그 문을 열어야 한다.
그날에 왕이 이 현관문을 통해 들어오고 제사장은 왕을 대신하여 태워드리는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바칠 것이다. 왕은 그동안 문 입구에서 경배한 후에 밖으로 나갈 것이며, 문은 저녁까지 열어두어야 한다. 백성들은 오직 문 입구에 가만히 서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4~7절--4~5절은 안식일에 바칠 제물을, 6~7절은 월삭에 바칠 제물을 규정한다.
그런데 여기 규정된 제물은 모세의 율법에 규전된 것과 다소 다르다.
8~10절-- 왕이 다시 성전에 들어오는 규정을 다룬다.
안쪽 문의 현관으로 들어온 왕은 나갈 때에도 그 문으로 나가야 한다. 이 규례는 왕은 그 성전의 안뜰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고 있다. 왕이라도 그 입구에서 제사를 드린 후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또 백성들이 절기를 맞아 여호와 앞에 나올 때 북쪽 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반대편인 남쪽 문으로 나가고, 남쪽 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역시 반대편인 북쪽 문으로 나가야 한다. 즉 누구든지 들어온 문으로 되돌아 나가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절기에 혼잡을 피하기 위함이다.
왕도 백성이 들어올 때 같이 왔다가 백성들이 나갈 때 같이 나가야 한다.
왕은 백성의 대표적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 행렬의 맨 앞에서 백성을 인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룩한 제사장은 아니기 때문에 백성들과 함께 나가야 한다.
11~12--11절은 명절과 성회 때 바칠 소제에 관한 규정이다.
12절에서 왕이 자원하여 번제물이나 화목제물을 바치려고 할 때는 아무 때나 동쪽으로 난 중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가 나간 다음에는 그 문을 닫아야 한다.
이 문은 온종일 열려 있지 않음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역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규례는 성전의 거룩성의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3~15절 : 매일 바치는 번제(상번제)에 관한 규정이다.
그런데 출애굽기에서는 아침 외에 저녁에도 번제를 드려야 했다.(출29:41)
본문에서는 아침에 드리는 제사만이 언급되어 있지만, 아침과 저녁의 제사 모두가 전제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의 묵상)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 중에 성전을 보고 있다.
그런데 에스겔이 환상으로 본 성전은 역사상 세워진 적이 없던 성전이다. 따라서 이 성전의 환상은 곧 죽으시고 부활하실 예수님의 몸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제사장으로서 자기 몸을 제물로 내어주셨다. 그의 몸은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성소, 또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셨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 본문은 안식일과 월삭의 제사 그리고 매일 드리는 제사에 관한 말씀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예배요, 매일 하나님께 나아가는 말씀 묵상의 자리이다.
그런데 오늘날 내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구약의 제사처럼 날짜와 때와 제물에 대한 규정이 없을 뿐 아니라, 내게 허락되지 않은 금지 구역도 없다.
구약 때는 세상의 권력의 집결 존재인 왕도 들어가지 못했던 성소, 지성소까지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시도때도 없이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시니 참으로 어마어마한 일이 내게 벌어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이제 나는 새 언약 백성으로서 예수님께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산 길, 즉 영생의 삶을 사는 자가 되었다.
새 언약 백성의 삶은 정말 세상 사람들의 삶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세상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독립심이라든가 자립심이 없다.
세상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면 독립심과 자립심의 아이로 키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늘 나라의 백성들은 절대로 아버지를 떠나 살 수 없고 또 그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주구장창 아버지께 붙어 있어야 하고, 아버지께로 눈과 귀가 온통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가 행하고 말한 것을 보고 그대로 하신다’는 것을 늘 말씀하셨다.
그런데 오늘 문득 예수님의 이런 말씀과 행보가 세상의 시각으로 본다면 참으로 한심한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참으로 경망스럽고 불량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이 말씀대로라면 ‘자식을 저렇게 키워서 우짜노?’ 할 일이다. 독립심과 자립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참으로 근심되는 자식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립심도 없고 자립심도 없는 그런 자녀를 기뻐하신단다.
‘네가 힘을 떨쳐 일할 필요가 없다. 그냥 내게 붙어 있어라’ 하시는 것이다.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킬 필요도 없다.
숫송아지, 숫양, 어린 양, 밀가루, 기름.....다 필요 없다.
오직 참 왕이신 예수님을 따라갈 것이요, 완전한 제물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면 되는 것이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예수님께 붙어 있기 위해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날마다 주님의 보혈 아래로 나아가는 것이요,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요, 나의 매일이 제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은 가장 기뻐하시는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해 주신다.
그렇게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순간순간 탄식하며 주님께 기도하게 된다.
그 기도는 그저 이 땅의 삶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살아도 주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가장 근원적이고도, 가장 궁극적인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요, 오늘날 내가 드리는 제사이다.
문득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30)
‘아멘, 아멘!’의 눈을 꿈벅이며.....
(묵상 기도)
주님,
다른 말씀도 그러하지만
특히 에스겔 말씀을 묵상하노라면 ‘이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언젠가부터 제 묵상의 조회수가 많은 것을 보면 기쁘기도 하지만 걱정도 됩니다.
복음 없는 교회에 사람들이 북적대는 상황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님 의지하여 하는 묵상이니 저의 두려움과 근심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깊은 진리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오직 예수님의 보혈을 힘입어 나아가는 모든 예배와 교제의 자리임을 가르쳐 주시고,
주님께서 열어놓으신 아버지 품속의 평강과 기쁨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령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