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브라운 (1912~ 1945). 뮌헨에서 평범한 사진관의 점원이던 그녀는 사진관을 찾아온 히틀러를 만나게 되고 30년대부터 그의 비밀 정부가 되어 1945년 4월 29일 총통 관저에서 히틀러와 결혼하고 다음 날 함께 권총 자살함.
에바의 취미 중 하나는 '의상목록 카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헨리테 폰 쉬라흐의 글은 에바의 취미활동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실망감을 느꼈다. (베르그호프의 히틀러의 별장 에바의 방)중간급 여인숙 수준의 가구들, 용담칠이 된 벽장들, 몇 년 치의 영화잡지들, 하지만 선반 위의 서류철에는 기막힌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에바는 전문문서 관리자처럼 기록을 해두었다. 원피스면 원피스, 코트면 코트, 에바는 옷마다 카드를 만들어 놓았다. 상점이름과 가격은 물론 모델스케치까지 그려놓았다. 뿐만 아니라 그에 어울리는 구두, 가방, 장신구까지 기록해두었으며..., 엄청난 공을 들여 이 쓸데없는 종이들을 만들어 놓다니...
(히틀러에게 영혼을 저당잡힌 여인들 중에서...)
마그다 괴벨스(1901~1945)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아내로 금발머리에 파란눈, 6명의 자식을 낳음으로써 나치독일의 이상적인 여성상, 어머니상이었고 그녀의 아이들은 선전이나 국가 행사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야심이 많아 히틀러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남편의 출세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에미괴링과는 라이벌로 함께 퍼스트레이디를 다투었음. 당시 ‘총통 벙커’에서 히틀러 최후의 순간을 목격한 간호사 에르나 플레겔은 마그다에 대해서 “대부분 사람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듯한 품위있는 여성”이었다며 “나는 패망 직전 마그다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독일 밖으로 피신하길 권유했으나 그는 ‘나는 남편에 속해 있고 아이들은 나에게 속해 있다’며 이를 거부했다”고 안타까워했다.
1945년 5월 1일 오후에 마그다 괴벨스는 그녀가 신뢰하는 의사인 쿤츠 박사를 자신의 집으로 오도록 했다. 오후 8시 40분에 의사는 마그다의 소원대로 괴벨스의 6명의 아이들에게 약간의 모르핀을 주사하였지만, 그들에게 치명적인 독을 투입하는 것은 거부했다. 마그다 괴벨스는 그녀의 아이들을 직접 죽였다. 그녀는 유리로 된 청산가리 캡슐을 헬가, 힐데, 헬무트, 홀데, 헤다, 그리고 하이데의 입에 직접 하나하나씩 으깨 넣었다. 그 후 남편 요제프와 마그다 괴벨스는 아이들을 죽일 때 썼던 것과 동일한 청산가리 캡슐에 중독되어 죽었다. (죽음에 관한 잡학사전에서..)
카린 괴링(??~1934)
스웨덴의 남작 부인으로 1922년 괴링과 결혼. 1934년 죽음. 애처가였던 괴링은 후에 카린홀을 만들어 그녀를 기념했고, 약탈해온 온갖 예술품을 카린홀에다 꾸며놓았다고 함.
에미 괴링(19??~1970) .괴링의 두번째 부인.
빈의 오페라 가수 헬레네 폰 바인만은 에미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다.
"맙소사, 어찌나 허풍을 떠는지! 난 에미의 과거를 알고 있다구. 저명인사가 되기 전만 해도 커피 한잔을 사 마시기 위해 무대에 섰었지. 겨우 2실링 50그루쉔이 궁해서 말이야."
그러나 나치 시대에 괴링의 아내에 대한 이 같은 모독은 가혹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어느 충직한 국가사회주의자의 밀고로 바인만은 즉시 체포되었다. '제국 제 1여성'모독죄로 잡혀 온 바인만은 가혹한 심문과 고문을 당했다. 결국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그녀는 슈타델하임의 형무소에서 형기를 마쳐야 했다. (영혼을 저당잡힌 히틀러의 여인들에서)
1946년 감옥에 있는 괴링을 만나러 가는 에미괴링과 에다
1930년대 말 독일에서는 이런 유머가 유행했다. “자네, 독일의 고속도로가 폐쇄되었다는 말을 들었나?” “아니, 고속도로가 왜 폐쇄되었는데…” “그것도 몰라? 에다 괴링이 걸음마를 시작했잖아.”
헤르만 괴링은 누구인가. 히틀러의 총애를 받으며 제1후계자로 지명됐던 인물이다. 덕분에 괴링의 딸 에다는 태어날 때부터 스타였다. 1938년 6월2일 그녀가 태어나던 날은 국경일이나 다름없었고, 히틀러는 기꺼이 에다의 대부(代父)가 돼주었다. 괴링의 아내(에다의 어머니)는 생전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이란의 마지막 왕비 파라 디바가 황태자를 낳았을 때 축하전보가 1만6000통 왔다고 하지만 제 딸(에다)이 태어났을 때는 62만8000통이나 왔어요.”
괴링의 딸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죽은 아버지의 후광 아래 특별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다(한 예로 그녀는 매년 바이로이트 축제 개막공연의 초대권을 받고 있다). (나치의 자식들에서..)
첫댓글 마그다 괴벨스. 독하네요. 자기는 그렇다쳐도..어떻게 자신이 낳은 6명의 자식들을 모두..
그 오페라 가수는 입 한 번 잘 못 놀려서..난 제 3국이라고 해서 제 3세계를 생각했었는데ㅋㅋ
사악한놈들.. 악마로밖에 안보여..
22222 화려한 옷을입고 웃고있지만 제눈엔 다 악마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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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하이 히틀러.. 히틀러 사진을 이 카페에서 보게 되나니요.. 자료 잘 봤습니다. 여인들 모두 매우 평범해보이네요. 당시 독일인들은 외모만을 보지는 않았나봅니다.
와~ 이런 글 너무 좋아요^^
독일 영화 <몰락>에..마그다 괴벨스가 아이들을 죽이는 모습이 나오죠.
그래도.. 자기자식을 죽이는 어머니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