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지드 (Caged)
1950년 미국영화
감독 : 존 크롬웰
음악 : 맥스 스타이너
출연 : 엘레노어 파커, 아그네스 무어헤드, 호프 에머슨
베티 가드, 잔 스털링, 엘렌 코비
리 패트릭, 제인 다웰, 거트루드 미첼
쉴리 맥레이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엘레노어 파커)
고전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가장 큰 묘미 중 하나가 '상당히 덜 알려진 꽤 괜찮은 영화'를 감상할 때 입니다. 사실 이런 재미를 계속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너무 한정된 좁은 영화'만을 소개하는 평론가들의 '우물안 개구리 역할' 때문입니다. 책에 나와있는 고전은 정말 무한한 영화의 바다에서 너무 거기서 거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볼만한 영화들을 새록새록 계속 발견할 수 있지요.
1950년 작품 '케이지드'는 이런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물론 무턱대고 아무 영화나 막 골라서 볼 ㅅ 있는 건 아니죠. 어떤 영화를, 그것도 오래 된 고전을 찾아서 꺼내는 건 크고 작은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영화 역시 엘레노어 파커 라는 배우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그냥 무심히 넘길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 배우가 뭐 아주 대단한 전설급 이라서가 아닙니다. 당연히 엘레노어 파커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오드리 헵번, 마릴린 먼로 급의 스타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 배우가 그런 전설급 여배우들과 견줄 때 뒤지지 않는 것 한 가지가 있어요. 바로 '미모' 입니다. 덜 유명한데 비해서 미모는 특급 여배우들과 견주어 뒤질게 없는 배우라면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그런 배우의 영화 중 알려진 작품들이 전성기를 좀 지난 작품들이 많다면? 당연히 한창 시절 영화가 궁금해지기 마련입니다. 몇 번 언급했지만 우리나라 관객들이 기억하는 엘레노어 파커의 가장 알려진 모습은 '사운드 오브 뮤직' 에서 폰 트랍 대령에게 딱지를 맞는 미모의 중년 백작부인 입니다. 이 작품은 엘레노어 파커가 전성기를 지난 시기에 출연한 조연으로 흑역사 같은 영화지요. 다만 줄리 앤드류스보다 미모에서는 앞섰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 일까요? 40년대의 나름 인기 배우가 이런 역할로만 기억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도 고전 영화에 좀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황금의 팔을 가진 사나이' '애정이 꽃피는 양지' '탐정야화(형사 이야기)' '브라보 요새의 탈출' 같은 영화를 기억할 순 있을 겁니다. 다 50년대 영화이고 30대 혹은 20대 후반 출연작이지요. 좀 더 젊을 때의 영화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초범 죄수로 역으로 출연한
엘레노어 파커
엘레노어 파커는 이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두려운 첫 수감 생활
'케이지드'는 그녀가 28세에 발표된 영화입니다. 촬영당시에는 27세 였을 수 있겠죠.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미모가 최절정인 시기입니다. 30대, 40대에도 아름다운 배우가 20대 시절은 말할 것도 없죠. 이 영화는 여자 감옥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여성들이죠. 수십 명 여성들 틈에서의 엘레노어 파커는 단연 압도적으로 미모가 빛납니다. 일반인들 틈에 연예인이 한 명 끼워있을 때 발산되는 광채 같다고 할까요. 이 영화만 봐도 어느 정도 대단한 미모의 여배우인지 알 수 있지요.
이 영화가 아마도 여성 감독 영화의 원조 급 정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감옥 영화의 걸작은 무척 많지만 대부분 남자 감옥 이야기 입니다. '빠삐용'을 비롯해서 '쇼생크 탈출' '알카트라즈의 조류가' '알카트라즈 탈출' '반항(버트 랭커스터 주연의 걸작)' '허리케인 카터' '그린 마일' 폴 뉴만의 탈옥' '광복절 특사' '7번방의 선물(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영화입니다.)' 등등 잘 만들었거나 많이 알려진 남자 감옥 영화는 많죠. 몇 편은 제 인생 영화이기도 하고. 여자 감옥을 다룬 영화는 대부분 눈요기 용 영화가 많은데 그렇지 않은 완성도가 좀 있는 작품들은 샤론 스톤의 '라스트 댄스' 우리나라 영화 '하모니' 정도가 생각나는군요. 아, '항거: 유관순 이야기'도 있었군요.
'케이지드'는 제목을 보면 마치 새장이나 짐승의 우리를 빗댄 느낌입니다. 엘레노어 파커는 원톱 주인공이지요. 여러 영화에서 주연을 맡더라도 근사한 남자 배우의 사실상 들러리 같은 역할이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대표작이라도 해도 될만한 작품이죠. 수작이고, 원톱 주연이고,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올랐으니. 물론 수상은 못했습니다. 유독 그 해가 경쟁이 치열했거든요. '이브의 모든 것'의 베티 데이비스 조차 낙방했고 같은 영화에서 앤 백스터도 인생 연기를 보였고, 유명한 걸작 '선셋 대로'에서의 글로리아 스완슨의 광기어린 연기야 워낙 유명하죠. 그 배우들이 모두 고배를 마실 정도였는데 엘레노어 파커에게 수상이 가긴 어려웠죠. 물론 상당히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단지 얼굴만 예쁜 배우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비록 아카데미상 수상은 못했지만 대신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교도소장과의 면담
어느 감옥 영화나 악덕 간수는
등장하기 마련
이 영화는 엘레노어 파커에게 미모, 연기, 캐릭터 등
모든 면에서 자신의 배우 이력에서
만족스러운 영화가 되었다.
엘레노어 파커는 19세의 나이로 감옥에 수감된 초범 마리 알렌 역입니다. 마리는 사악한 여자는 아닌데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고, 못된 남편의 범죄를 돕다가 붙잡힌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남편은 죽었고. 더구나 임신까지 한 상황입니다. 겁에 질려 감옥에 들어온 그녀의 모습은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소녀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안타까운 여주인공의 험난한 감옥 생활이 시작되지요.
험난한 감옥 생활 이라고 표현했지만 남자 감독 영화들처럼 섬찟하진 않습니다. 많은 감옥 영화들의 특징이 죄수들 끼리는 잘 지내고 악덕 간수와의 대립을 그린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도 그렇더군요. 여기서 악덕 간수 역할은 남자보다 더 키도 크고 덩치도 큰, 거의 헤비급 격투기 선수같은 위압적인 몸을 가진 하퍼 라는 간수입니다. 아주 사악한 역할이지요. 교소도장 조차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그야말로 독재자 같은 존재입니다. 교도소장 역은 아그네스 무어헤드 인데 저는 처음에 참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워낙 사악하고 도도한 역에 최적화 된 여배우로 인식되었으니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선역' 이더군요.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선역입니다. 여걸 다운 기질도 있고 인간적이기도 하고. 일종의 '교도소 인권'에 대해서 투쟁하는 역할이랄 수 있습니다. 열악하고 냉혹한 교도소를 인간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펼치죠. 그녀는 죄수를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대우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런 인권 교도소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도소의 독재자 하퍼의 존재는 죄수들이 결코 편히 지내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지요. 뭐 그렇다고 아주 나쁜 감옥도 아닙니다. 감옥은 나쁜 짓 한 사람들 격리하는 곳이지 호텔이 아니잖아요.
초범인 마리에게 동료 죄수들은
출감 후 소매치기 사회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혹을 하는데, 유혹을 받아들이면
손을 써서 빨리 보석으로 나갈 수 있다.
가석방 심사에서 절규하는 마리와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교도소장
영화의 흐름은 크게 세 줄기입니다. 사악한 간수 하퍼의 만행, 인권 교도소장의 변화에 대한 노력, 그리고 순진하고 겁에 질린 초범 죄수 마리가 어떻게 감옥 생활에 적응하며 변해가고 강해지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 세 가지 줄기가 서로 경쟁하는 느낌입니다. 주도권을 잡으려는 듯. 하퍼의 이야기가 득세할 경우 비인간적인 비극이 되겠지요. 교도소장의 이야기가 득세할 경우 따뜻한 해피엔딩이 되겠지요. 마리의 이야기 위주라면? 그건 예측할 수 없습니다. 마리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는. 이 험한 감옥 생활을 슬기롭게 견디고 출옥을 할지, 아니면 적응을 못하고 애를 먹을지, 아니면 분위기에 휩쓸려 사악하게 변해갈지. 마리의 운명이 궁금해서 계속 집중하면서 보게 되는 영화지요. 마리는 안타까운 응원을 받을만한 주인공입니다. 사정도 딱하고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가녀린 젊은 여성의 이미지고. 아마 교도소장이 마리는 보는 시각이 관객이 보는 시각과 비슷하겠지요.
엔딩은 관객이 예상하거나 기대하는 부분과 약간 빗나간 결말처럼 느껴지는데, 어쩌면 '교도소' 라는 곳의 상황에 대한 현실적 반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즉 이 영화는 판타지가 아니에요. 그렇다고 무조건 극단적으로 치닫는 내용도 아니고, 감옥 영화 치고는 비교적 차분하고 깔끔하게 흘러가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그네스 무어헤드를 저렇게 선역으로 어울리게 써먹을 수도 있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선역 이지만 그간 그녀의 역할에서 보았던 중성적이고 도도한 느낌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기존에 느끼던 모습과 캐릭터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선역 역할로 활용했을 뿐입니다. 다만 호감 가는 캐릭터가 된 거죠.
교소도의 크리스마스
보기 드물게 매우 인간적인 선역을 연기한
악녀 전담 배우 아그네스 무어헤드
삭발 열연까지 감행한 엘레노어 파커
마치 샤론 스톤을 연상시키는 미모의 배우
엘레노어 파커
엘레노어 파커가 출연한 영화 중 가장 인상적으로 돋보인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연한 남자에게 역할을 할당 당하지 않은 그야말로 완전한 원톱 주연이었으니까요. 연기, 미모, 캐릭터 호감도 모두 좋았던 작품입니다. 40년대~50년대 초반까지, 즉 그녀의 절정기 시절 영화를 좀 더 보고 싶게 만들어 줍니다. 심지어 삭발 열연까지 하지요. 영화도 덜 알려졌고 배우로서 엘레노어 파커도 덜 알려진 건 아무튼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엄청난 히트는 나름 40-50년대의 좋은 여배우인 엘레노어 파커의 다른 작품들을 희석 시킨 결과가 되버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케이지드'는 그녀의 진가를 많이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ps1 : 여자 감옥 영화지만 쓸데없는 눈요기나 노출 같은 장면은 없습니다. 1950년 작품이라서 그런 면도 있지만. 진지하게 감옥 생활을 잘 묘사한 내용이지요.
ps2 : 가석방 심사에서 불승인이 나면 정말 상당한 멘붕이 올 것 같습니다. '쇼생크 탈출'의 모건 프리맨이 생각나네요. 그 영화에서 그가 가석방 되는 심사에서 한 명대사와 비슷한 말을 '케이지드' 에서도 71살 된 늙은 여죄수가 마리에게 합니다. '나도 너처럼 초범이던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곧 71세가 되는 지금 종신 죄수야' 라면서 일침을 주죠. 모건 프리맨의 명대사를 기억나는 대로 다시 상기해 봅니다. 모건 프리맨은 심사관이 후회하느냐 묻자 이렇게 대답하죠.
"한 순간도 후회 안 한 적이 없소, 철없는 젊은 녀석이 끔찍한 일을 저질렀지. 그 때로 돌아가서 얘기해주고 싶어요. 그렇게 살지 말라고. 지금 내 꼴을 보라고. 하지만 그럴 수 없지. 그 젊은 녀석은 이제 사라지고 여기 이 늙은이만 남았으니., 그러니 당신들도 내 시간 그만 뺏고 빨리 불승인 도장 찍고 가라고. 난 상관 안하니까"
ps3 : 엘레노어 파커는 이 영화로 첫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이고 총 세 번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수상은 못했지요. 하지만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으로 보상을 받았습니다.
ps4 : 엘레노어 파커는 샤론 스톤과 외모나 분위기가 많이 비슷한 느낌입니다. 조상이 같을 것 같은.
ps5 : 존 크롬웰 감독이 연출했는데 우리에게는 덜 알려진 수작을 은근 많이 연출한 인물입니다. '풍운의 젠다성(37)'(우리에겐 50년대 영화가 많이 알려져있죠) '님은 가시고' '안나와 샴왕'(왕과 나의 원조) 등
[출처] 케이지드 (Caged, 50년) 여자 감옥 영화의 원조?|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