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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유역의 남한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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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11.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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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유역의 남한강(2)
(가흥창의 번창)
조선은 한양으로 천도를 하면서 경상도 지방의 세곡을 서울로 용이하게 수송하기위하여 국토의 중심지역이였든 충주에 조창을 설치하기로 하였다. 경상도 지방의 세곡을 기존의 덕흥창에 전부 저장할 수 없어 새로운 창고가 필요하게 되었다. 1411년(태종11년) 국가 비축에도 여유가 있고 서울 양 강(서울 용산강과 마포강)에는 빈 창고가 없어 경상도 군자를 둘 곳이 없게 되자, 충주의 강변에 창고를 짓고 경상도민을 인부로 차출하여 충주 금천에 200여 칸의 창고를 만들었는데, 이를 “경원창”이라 하였다. 경원창은 주로 경상도에서 세금으로 받아들인 곡식을 보관하였다.
1404년(태종4년) 경상도 세곡(稅穀)이 육운(陸運)을 이용하게 되었다. 지리적으로 태백산맥에 이어 소백산맥이 지리산까지 이어져 경상도에서 높은 산을 넘어 한양까지 가는대는 사람이나 산업물동량이 모두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동 수단은 육운(陸運)일진데 사람이나 우마를 통한 이동수단일 수밖에 없었기에 어려움을 더하였다. 그래서 새로운 이동수단으로 내륙의 강을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김해. 창원. 밀양. 양산. 함안. 초계. 창녕. 칠원. 진해. 의령 지방은 낙동강의 수로를 이용하게 되었다. 농민이 직접 수송하는 것이 아니라 운송에 필요한 값을 지불하였으니 이를 삼가지세(三價之稅)라 하였다. 즉 선가(船價). 인가(人價). 마가(馬價)를 말한다. 사람과 배를 통하여 낙동강을 거슬러 상주까지는 선가(船價)와 인부임을 지불하고 이곳에서 문경과 조령을 넘어 충주의 경원창까지는 인부임과 마가를 지불하여 충주의 경원창에 납부하였다. 삼가지세는 전세와 동일한 액수가 되어 근방(近方) 사람들이 삼가지세의 이익을 얻고자 서로 다투어 세곡을 실어다가 경원창으로 운반하는 운송 사업에 이익을 얻고자 하였다.
낙동강의 수로(水路)와 조령로(鳥嶺路)는 세곡 수송에만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왜객인(倭客人)도 이 길을 이용하여 서울을 왕래 할 뿐만 아니라 경상도에서 충주에 이르는 육로는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로서 더욱 번성하였다. 경원창에 보관된 곡식은 완급을 보아서 시기를 결정하고 한강의 물길을 이용하여 서울의 창고로 수송하였다. 이리하여 충주는 조령을 통하여 경상도와 통하고 한강의 물길을 통하여 서울로 가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육로와 수로의 중요한 거점 도시가 되었다.
덕흥창과 경원창을 이용하는 선박들의 접안시설이 부족하여 가흥으로 이전하게 되었는데 덕흥창과 경원창을 합하여 가흥창을 설치하였다. 이로 인하여 더욱 남한강 수운의 활성화를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가흥창의 수납 범위는 충주, 음성, 괴산, 청안, 보은, 단양, 영춘, 제천, 황간, 영동, 청풍, 연풍, 청산 등 13개 고을의 전세를 수납하였다. 또 경상도의 경우 가흥창의 전신인 경원창은 경상도의 부 1개소, 대도호부 1개소, 목 3개소, 도호부 6개소, 군 15개소, 현 40개소 등 총 66개소의 경상도 지방 전세를 수납하였다, “경국대전”이 편찬 될 당시에는 경상도의 세곡은 충주 가흥창에 납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조선 전기부터 “경국대전”이 편찬되는 시기까지는 대략 경상도 전 지역과 충청도 동북의 13개 고을이 가흥창의 전세를 수납하는 범위로, 조선 전기 9개 조창 중에서 전세 수납 범위가 가장 넓은 조창이었다.
“경국대전”편찬 후에도 가흥창의 전세 수납 범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1470년(성종1)에 경기도 여주에 이포창(梨浦倉)을 설치하여 청안, 진천의 전세를 거두고, 또 우만창(宇萬倉)을 만들어 청산, 보은, 옥천, 황간, 영동, 음성 등 6개 고을의 전세를 거두었다 하나, 1477년(성종8)에 청안 등 8개 읍이 다시 가흥창에 전세를 납부하였다. 1443년(세종25) 이후 경상도 전세 중 일부는 왜료(倭料)를 주었다고 하지만 경상도 전세의 거의 전부가 가흥창에 납부되었다. 이 자료만 보아도 당시 충주의 중요성과 번창이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나는 가흥창이 이렇게 번창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가 정책에 의거 흥망성쇠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역사의 흐름일 것이다.
2016년 01월 11일(월요일)
夢室에서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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