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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시간, 문화, 그리고 정서를 초월하는 힘을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초상화는 그림의 주제를 포착하는 독특한 방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창의성이라는 캔버스 위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초상화들을 살펴보려고 하는데, 특히 그림의 이면에 감춰진 화가의 생각, 수수께끼 등을 살펴봄으로써 그림 속의 삶이 살아온 길을 더듬어 나 자신의 어제를 반추하고 내일의 거울로 삼으려 한다. 그림 하나 감상하면서 인트로가 너무 거창한 듯 하구만, 부끄럽구로...
1. Mona Lisa(Leonardo da Vinci)
1503년과 1506년 사이에 제작된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모나리자」는 너무나 유명해서리 아예 여인을 그린 모든 초상화의 제1의 귀부인(the grand dame)으로 칭송받는 지경이라는데... 이 그림은 갖가지 신비에 둘러싸여 있고 따라서 수많은 논쟁과 음모론까지 촉발시켜왔다고도 한다. 어떤 이들은 다빈치가 모나리자의 불가사의한 미소를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이용했다고도 하더만...
사실 이 그림만큼 사연도 많고 말도 많은 작품은 없을 것인 바, 정말 웃기는 건 그림이 도난당하고 찾는 몇 번의 사건을 겪으면서 유명해짐으로써 덩달아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는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도 있을 정도이다. 그림 속의 실제 주인공이 누구인가에서부터 시작하여 눈썹은 왜 없느냐, 입술은 웃고 있으나 얼굴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등 시대를 아우르는 의문들은 꾸준히 제기되고 그런 현상이 또 그림의 인기에 상승작용을 하는 건 아닌지...또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모나리자의 미소가 바뀐다고 하지만 뭐 보는 사람의 위치, 시각, 의식에 따라 그림이 달리 보이는 건 일반적인 현상일 텐데 그게 이 작품만의 훌륭한 점이라는 둥... 에궁! 나야 뭐 실제 그림을 보지 못했으니 뭐 딱히 느낌도 없다만...
2. Girl with a Pearl Earring(Johannes Vermeer)
밝고 깊은 색채와 정밀(靜謐)한 구도의 작품으로 뒤늦게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네델란드 출신의 베르메르(Johannes Vermeer)가 그린「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1665년경) 는 빛과 정서를 포착한 화가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림 속 소녀의 묘한 매력을 보여주는 시선과 밝게 빛나는 진주 귀걸이는 수 세기 동안 미술 애호가들을 사로잡아왔다는데...
위대한 화가라고 뒤늦게 인정받긴 했지만 사실 베르메르에 대하여선 별로 알려진 얘기가 없다고 한다. 화가로서의 활동보다는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화상(畵商)을 운영하고 자식을 열 한 명이나 두었다는 정도, 그리고 현재까지 알려진 그의 그림이 35점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그럼에도 작품「뚜쟁이」,「우유 따르는 하녀」, 그리고 「화실의 화가」등을 보면 베르메르가 대상을 얼마나 정밀하게 묘사하고 빛을 적절하게 활용했다는 점에서 그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그림 속 소녀가 화가의 딸 중 하나일 거라는 얘기들도 많지만,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한 동명 영화에서는 화가의 집에 고용된 하녀로 설정되어 있는데, 후자 즉 하녀일 거라는 게 다수 의견이라고 한다.
3.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Gustav Klimt)
클림트(Gustav Klimt)의 그림들은 관능적인 여성 이미지와 찬란한 황금빛, 그리고 화려한 색채를 특징으로 한다. 한편으로 그러한 성향들과는 달리 그는 성(性)과 사랑, 죽음에 대한 풍성하고도 수수께끼 같은 알레고리로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기도 했다는데...특히 그가 그린「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Ⅰ」은 당시 유행했던 사조 아르누보(art nouveau)의 기념비란 칭송을 받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자극적인 에로티시즘을 강조했다는 이유로 강력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림은 평면 위에 물감이 스며든 듯 입체감이 드러나지 않지만 오히려 그게 보는 이들에게 신비감을 주고 마치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주게 한다는 사람들도 있더만...당초 그림은 아델레가 죽은 후 남편 페르디난트가 소유하고 있었으나 나치 점령기에 몰수당하여 오스트리아 정부 소유가 되어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오스트리아의 어느 기자가 그림을 정부가 소유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지적하는 데서 시작하여 기나긴 소송 끝에 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페르디난트 가문에 반환되었고(사실 원 소유자이자 그림 속의 주인공인 아델레는 자식 셋을 두었지만 모두 일찍 사망했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2006년 세계적인 화장품회사 에스티 로더의 창업자의 아들에게 1억 3,5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렸다고 한다. 이 그림의 반환을 둘러싼 이야기는「Woman in Gold」(2015)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4. Whistler’s Mother(James McNeill Whistler)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는 미국 출신이지만 작품활동은 주로 영국의 런던에서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 대부분에 추상적인 제목을 달고 작품의 소재가 되는 대상에 따라 부제를 붙였다고 하는데, 이 그림 역시「회색과 검정색의 배열, 제1번」(1871)이란 제목에 '휘슬러의 어머니'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림에서 나타나듯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통찰력 있는 인물 표현과 인상적인 구도, 그리고 색채의 조화는 휘슬러가 엄격하게 추구하고 고수해 왔던 미학적인 신념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으로 근대 회화의 아이콘이라고까지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더만...하지만 막상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그림 속 연로한 화가의 어머니에게서 아들인 화가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이 읽혀진다고 감상하기도 하고, 실제 미국에서 어머니의 날 기념우표에 이 그림을 삽입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럼 휘슬러는 왜 연로한 어머니를 모델로 하여 그림을 그렸을까? 일설에는 계약된 모델이 나타나지 않아서 화가는 급히 자신의 어머니를 대타로 세웠는데, 연세가 많은 어머니가 오래 서 있을 수 없어서리 의자에 앉은 자세로 그렸다는, 믿거나 말거나...
5. The Scream(Edvard Munch)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 뭉크(Edvard Munch)가 그린「절규」(1893)는 그림에 문외한인 나조차 익히 알듯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그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그림은 통상 말하는 초상화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현대인이 겪는 실존적 불안에 대한 원초적 감정을 포착한 기념비적 표현주의 사조의 대작이라고 한다. 원색적으로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얼굴을 감싼 채 놀란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은 현대인의 전형적인 불안심리를 잘 드러냈다고 하더만...
뭉크가 제작한「절규」라는 제목의 미술품은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작픔은 유화, 두 번째 작품은 판화, 네 번째 작품은 수채화, 그리고 세 번째 작품은 석판화로 2012년 경매에서 팔렸는데 낙찰가가 무려 1,990만 달러였다는데, 그 가격표야말로 정말 '절규'할 일이 아니겠는가!
6. Self-Portrait with Cropped Hair(Frida Kahlo)
당당한 자아 표현의 여왕 칼로(Frida Kahlo)는 그림과 같이 '짧게 깎은 머리의 자화상(1940)'을 공개했는데, 대담한 스타일과 일자형 눈썹으로 유명한 그녀는 화가 리베라(Diego Rivera)와의 이혼 후에 이 그림을 그렸다. 성차별적 규범에 대한 조롱 섞인 반항기로 그녀는 허름한 옷차림에 중머리의 자화상으로 정체성과 독립에 대한 과감한 발언을 했다고 하는데...
그녀를 상징하는 일자형 눈썹이 상징하듯 칼로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평생을 공산주의를 열렬히 지지했지만, 막상 그녀의 일생은 고난과 배신의 나날이었다고 한다. 여섯살 때 소아마비에 걸린 데다 열 여덟 살 때 입은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그녀는 걸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게다가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남편 리베라가 자신의 여동생까지 겁탈하였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해서리 오늘날 사람들은 그녀를 페미니즘의 원조라 일컫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자칫 사위어 갈지도 모를 자아를 확인하고자 자주 거울을 보면서 자화상을 특히 많이 그렸다고 한다.
7. American Gothic(Grant Wood)
우드(Grant Wood)는 초기에는 주로 인상주의 경향의 풍경화, 초상화를 그렸지만, 독일 여행을 다녀온 뒤로 사실주의적이며 정확한 세부 묘사에 치중하여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수준에 버금가는 묘사 능력을 드러내는 작품을 선보였다고 하였는데, 바로 당시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 위의「아메리칸 고딕」(1930)이라고 한다.
그의 그림「아메리칸 고딕」은 미국 중서부 지역의 금욕주의(stoicism)를 전형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라고 한다. 그림 속에서 침착하고 엄숙한 얼굴을 한 농부는 마을의 치과의사이고 여인은 화가의 딸이라고 하는데, 작가는 이 그림을 통해 눈부시게 발전하는 산업화에 밀려 사라져 가는 미국 농경사회에 대한 진한 향수를 드러내고 있다고 평론가들은 설명한다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그림이 융통성이 없이 원칙만을 고집하는 미국 중서부 지역 주민들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데 자주 이용되어 왔다고 한다.
8. The Arnolfini Portrait(Jan van Eyck)
에이크(Jan van Eyck)의 작품「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1434)는 사실적이고 정밀한 표현에 더한 화려한 색채, 그리고 공간적 깊이감 등으로 이 그림이 대단한 수작임을 말해주고 있는데...이 그림은 북부 르네상스 시대 플랑드르 지방의 화풍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며, 혹자는 이 작품을 단순한 결혼식 초상화가 아니라 상징주의의 교향곡(symphony of symbolism)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당시 플랑드르 지방의 그림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림 속의 인물 또는 배경이 되는 사물들은 당시 사람들의 의식이나 화가 자신의 생각들을 교묘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주의와 인내, 그리고 사전 지식들(특히 기독교)을 필요로 한다고 하겠다.
당장 이 그림이 결혼식을 그린 것인지 아님 약혼식을 묘사한 것인지 말들이 많다고 하는데...이 그림은 결혼식 장면을 그린 것이라는 게 오랫동안 정설로 여겨져 왔지만, 미술사학자 홀(Edwin Hall)은 신랑·신부가 손을 잡은 모양, 행사장이 가정집 거실이라는 점, 당시의 관례라 할 수 있는 신부의 머리에 왕관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사제나 목사 등 결혼식 주제자가 없다는 점 등에서 약혼식이라 봐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어쨌거나 엄청난 양의 상징을 포함한 이 그림의 영향을 받아 100여 년이 지난 뒤 브뤼헐(Pieter Bruegel) 역시 그림 한 장에 100가지가 넘는 네델란드 속담을 담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지 않나 말이지.
9. Portrait of Dora Maar(Pablo Picasso)
입체파의 거장 피카소(Pablo Picasso)의 작품「도라 마르의 초상」(1937)은 입체파 미술의 특징인 파편화되고 왜곡된 스타일로 묘사되어 있다. 사진작가이자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도라 마르가 그림 속에서 지적이고 도도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데 비해, 같은 시기 피카소의 또 다른 연인 마리 테레즈 발테르의 초상화는 부드럽고 온화한 여인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후덕해야 몸에 좋은데 도라 마르는 이후 피카소의 사랑이 예전 같지 않자 잦은 병치레에 시달렸다나 뭐래나.
언젠가 피카소가 말했다지? '예술은 우리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만들어주는 거짓말(Art is a lie that makes us realize the truth)'이라고 말이지. 풀어 말하자면, 예술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모방이지만 실질적으로 예술은 인간이 깨달을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해 주는 수단이라는 거지. 이거야말로 우리들에게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진리의 폭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10. Napoleon Crossing the Alps(Jacques Louis David)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 널리 유행했던 예술사조인 신고전주의(Néo-Classicisme)가 미술에서는 엄격하고 균형잡힌 구도와 명확한 윤곽, 그리고 입체적인 형태의 완성 등이 우선시되었다. 일찍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다비드(Jacques Louis David)는 로베스 피에르를 중심으로 한 공화파의 활동에 참여하기도 하다 나중에는 나폴레옹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활동함으로서 당시 화가로서도 대단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사후 화가로서의 명성은 급격히 쇠퇴하여 대중들 사이에서 잊혀져 가다 2차대전 후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다비드의 그림「알프스 산맥을 넘어가는 나폴레옹」(1801)은 말을 탄 프랑스의 지도자를 거창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그림 속에는 나폴레옹의 대담한 모험보다는 보다 전략적인 의도가 감춰져 있다고 하는 바, 그림 제작에 나폴레옹의 입김(북한 뚱뗑이가 어딜 가서 뭐라고 씨부린 걸 그들은 '지도하셨다'고 말하더만)이 꽤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다. 실제 나폴레옹은 위풍당당한 말을 탄 게 아니라 노새를 타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냥새로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고 한다.
11. The Laughing Cavalier(Frans Hals)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할스(Frans Hals)는 초상화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즉흥적이고 대담한 붓 터치로 순간의 표정을 포착하여 인물의 특징을 생생하게 묘사했다는데... 특히 그가 그린 인물들은 모두 웃거나 기분 좋게 술에 취해 있어 그의 활달한 붓 터치와 자유분방하고 낙천적인 기질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화풍은 200여 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 이후 마네 등의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할스는 그림「웃고 있는 기사」(1624)로 우리들에게 약간의 즐거움을 선사해 주고 있는데, 생동감 넘치는 이 그림은 네덜란드의 문화적 자부심이 한껏 고양된 황금시대(Golden Age)의 활기를 포착하고 있다. 주인공의 전염성 강한 웃음과 대담한 차림새는 이 그림으로 하여금 즐거운 인생을 찬양하게 만들고 있다. 이로 볼 때 할스는 17세기 판(version) 배꼽 빠지게 하는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2. Portrait of Dr. Gachet(Vincent van Gogh)
「가셰 박사의 초상」(1890)은 고흐(Vincent van Gogh)가 자살하기 2주 전에 자신을 치료해 왔던 가셰 박사의 의뢰로 그린 그림이라 하나 고흐의 유작으로 봐야 하겠는데... 화가 자신의 정신질환을 치료하던 의사의 슬픈 얼굴은 죽기 전 몇 주 동안의 고흐의 감정적 격동 상태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가셰 박사의 초상」이라는 이름의 초상화는 두 점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한 동안 고흐의 그림이 아닌 위작이란 소문도 있었다고 한다)는 위의 작품보다 약간 조악한 편인 데다 탁자 위에 책이 놓여있지 않고 색상도 조금 어두워서 구분하기는 쉬운 편이고, 가셰 박사의 후손들이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고흐의 작품으로 인정받은 위의 그림은 1990년 경매에서 8,250만 달러로 일본의 어느 사업가에게 팔려 갔는데 그는 이 그림의 열 세 번째 소장자가 되었으며, 이후 그림은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없고 정확한 소재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어느 글에는 1999년 미국의 어느 사업가가 구매해 갔다는 말도 있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