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산
경주 동대봉산 (691m)
동대봉산은 경주시 덕동과 황룡동에 자리하는 해발 691m의 산이다. 낙동정맥의 백운산(892m) 분기점에서 동쪽으로 곁가지를 내린 호미지맥은 치술령(603m)을 지나 북동녘으로 산줄기를 이어간다. 이 산줄기는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유명한 토함산을 솟구치고 추령을 건너 멀리 포항시 대보면의 호미곶까지 달려가 동해에 가라앉는다. 호미지맥의 주능선에서 서쪽으로 벗어나 덕동호반에 자리한 동대봉산은 오랫동안 지도에 이름이 없는 신비로운 산이었다. 최근에 영남의 산꾼들에게 겨우 알려지기 시작한 이 산은 산자락에 자리한 서라벌초등학교 교가에 산이름이 분명히 언급된다. 1953년 4월26일에 이종룡 선생이 작사하고 이안삼 선생이 곡을 붙인 교가의 1절은 다음과 같다.
'동대봉산 줄기줄기 뻗어내린 곳/ 화랑의 말굽소리 스며든 고장/ 우뚝 솟은 그 기상을 이어 받으리/ 늠름하게 자라난다 나라의 보배/ (후렴) 다가오는 세계는 우리들의 것/ 장하도다 그 이름 서라벌초등학교(덕동국민교)'
나는 이 고장 출신으로 덕동국민학교를 졸업한 윤권록(54세)씨와 한희석(55세)씨의 안내로 동대봉산과 함월산 종주산행을 시작했다. 오늘 산행에는 이들 외에 여행가 손승식(58세)씨, 수필가 박모니카(50세)씨도 동행했다.
동대봉산의 들머리인 황룡동 '시부거리 버스정류소' 맞은편에 자리한 간이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산행을 시작한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월성박씨 무덤을 만난다. 신갈나무와 떡갈나무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산길에 생강나무가 샛노란 꽃이 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나 하며 북켝 능선을 따라 전망능선에 이른다. 동쪽의 절골 너머로 함월산이 다가들고, 그 북족으로 산줄기를 이어간 무장봉의 특이한 산세가 손을 흔들며 반긴다. 절골에는 예부터 숱한 숯가마가 있었다고 한희석씨가 설명한다. 신라시대 서라벌 사람들이 사용하던 숯 상당 부분이 이 절골에서 생산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고 한다. 뚜렷한 산길을 이어 싸리나무와 억새가 우거진 660봉에 올라선 후 능선길은 오른쪽으로 굽어 돈다. 노란 복수초가 군락을 이룬 능선길을 이어가니 곧 동대봉산 정수리다.
묵무덤이 자리한 정수리에는 '동대봉산 680m' 라고 표시된 낡은 나무 팻말이 보인다. 우리는 볕 잘 드는 무덤가에 둘러앉아 잠시 동안 간식을 나누었다. 이 동대산은 동쪽 골짜기에 황룡사라는 절이 있어 황룡산이라고도 불리었으며, 조선시대 수군의 군함용 자재림이 있어 입산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봉산이라고도 하였다. 당시 통제영에서 파견된 관리가 산을 관리하였는데 비리가 심하여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잦은 방화를 일삼은 탓에 동대봉산의 산불이 지역의 명물이 되었다고 전한다.
다시 북동녘 능선을 이어가자니 왼쪽 나뭇가지 사이로 덕동호가 굽어보인다. 암곡동으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는 생태복원 팻말이 걸려 있다. 나무기둥에 '암곡, 동대봉, 무장산' 이라고 방향을 표시한 이곳에서 오른쪽의 무장산 방향을 따라야 한다. 조금 내려가면 밧줄로 길을 막은 삼거리가 나온다. 밧줄이 걸린 방향은 절골로 내려가는 길이니 이곳에서는 왼쪽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산길을 따른다. 음달말로 이어지는 안부를 지나자 아름드리 소나무와 진달래 군락이 우리를 반긴다.
662봉을 조금 못 미친 지점에는 전망바위가 있다. 절골을 굽어보는 이곳 전망대에서는 함월산이 한눈에 다가들고 북쪽으로는 무장봉과 옛 오리온목장, 시루봉(503m)이 잘 보인다. 662봉을 오른쪽으로 돌아간 능선은 경주시와 포항시의 경계다. 솔숲능선은 곧 '참봉 김호제' 무덤을 지나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의 고향인 포항시 오천면 문충리로 이어지는 안부에 닿는다.
안부에서 올라선 611봉은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큰 소나무 옆에 고사목이 자리하고 평지가 되어가는 묵무덤도 있다. 걸터앉을 바위도 있으니 이만한 쉼터도 없겠다. 동대봉산도 아니요, 함월산도 아닌 이곳은 오늘 능선길에서 가장 멋진 봉우리다. 바위에 걸터앉아 지나온 산길을 돌아보고 가야할 산길을 가늠하고, 삶과 죽음도 생각하고, 이승과 저승조차 살펴볼 기막힌 사색의 명당이었으니...
다시 산길을 내려가니 이번은 늪지대가 나타난다. 제법 너른 늪지에는 숲한 양서류와 곤충들의 생명이 꿈틀거리고, 물 오른 연초록 버들강아지가 봄볕에 눈이 부시다. 이윽고 다다른 함월산 정수리. 울창한 참나무 숲속의 너른 정수리에는 깨어진 플라스틱 정상 팻말이 나무기둥에 걸려있다. 그러나 함월산(584m)이라는 멋진 산이름을 생각하면 정상석 조차 보이지 않는 삭막한 풍경에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동남쪽으로 바위능선을 내려가니 481봉과의 안부에 도통골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능선길을 버리고 왼쪽 계곡길을 따라내리니 폐농가 삼거리를 지나 도통길 긴 계곡길이 이어진다. 맑은 골물을 따라 내리는 계곡길은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흥겹고 상쾌한 길이다. 이윽고 지형도에 기림폭포라고 적힌 용연폭포에 닿는다. 아버지 문무대왕의 동해바다 수중무덤이 자리한 감포를 드나들던 신라 31대 신문왕(681~692)의 전설이 전하는 이 폭포는 삼국유사에도 기록된 전설의 명소다. 아름드리 적송이 하늘을 찌르고 벼랑 가에 진달래가 꽃모닥불을 지핀 용연폭포는 오늘산행의 백미를 이루었다.
폭포를 뒤로하고 계곡길을 내려가니 매화향이 천지에 흩날린다. 산중 너른 차밭을 둘러싼 담벼락의 매화나무에 향기로운 매화꽃이 만개한 이 행운을 무어라고 감사해야 하는가. 감로암을 지나자 스님들이 이용하는 길이 연결되는 기림사 뒷문에서 허리 굽은 호호백발 느티나무 노파와 아름반의 서어나무 처사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보낸다. 석가모니 시절 인도의 기원정사를 뜻하는 기림사 경내에도 반송, 향나무, 배롱나무, 아름드리 장송과 느티나무 등 고목 거목이 수두룩하다. 대적광전, 건칠보살좌상, 삼신불, 복장유물, 목탑지, 삼층석탑, 오백나한상 등 보물과 문화재를 두루 살펴보고 일주문을 향하는 신라고찰 기림사의 경내에는 천여 년의 오랜 불향이 그득히도 넘쳐 흘렀으니...
*산행길잡이
시부거리 버스정류소-(1시간30분)-동대봉산 정수리-(30분)-임곡 삼거리 생태복원 팻말-(1시간)-무장봉 삼거리-(40분)-611봉-(50분)-함월산 정수리-(1시간)-용연폭포-30분)-기림사
동대봉산~함월산 종주산행의 들머리는 경주시 황룡동 4번 국도변에 자리한 '시부거리 버스정류소'다. 정류소 동쪽으로 철책이 끝나는 지점에 걸린 산악회 표지기를 따라 지그재그로 이어진 능선길을 올라가면 월성박씨 무덤을 만난다. 북녘 능선길을 길게 이어가면 660봉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능선을 이어 동대봉산 정수리에 올라선다. 정수리에는 낡은 팻말과 묵무덤이 자리한다.
동대봉산에서 북동쪽으로 능선길을 이어가면 생태복원팻말이 걸린 암곡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에서 산허리를 이어 소나무에 밧줄이 걸린 절골삼거리까지 간다. 여기서는 왼쪽으로 이어가면 664봉으로 길이 이어진다. 전망대바위를 지난 664봉 직전에서 오른쪽으로 허리길이 내려가고 포항시와 경주시의 시계능선이 이어진다. 참봉 김호재의 묘를 지나면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인 611m의 무덤봉에 올라선다.
무덤봉을 내려서면 너른 늪지대가 나오고 다시 오르면 삼거리다. 이곳에서 오른쪽(남쪽)으로 능선길을 오르내리면 또 삼거리에 닿는다. 왼쪽 비탈길을 오르면 플라스틱 정상팻말이 걸린 함월산 정수리다.
하산은 남동녘 능선을 내려간 안부에서 동쪽의 계곡길을 따른다. 도통골을 따라 길게 내려가면 신문왕의 전설이 전하는 용연폭포(기림폭포)에 이른다. 폭포에서 내림길을 이어가면 매화향이 흩날리는 차밭과 감로암을 지나 기림사에 이르고, 조금 더 내려가면 매표소다.
시부거리에서 기림사로 이어지는 동대봉산~함월산 종주코스는 7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산행이다.
*교통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0번, 150번 시내버스를 타고 황용동 시부거리 버스정류소에서 내린다. 날머리 기림사는 양북면 어일을 연결하는 마을버스(1일 4회)와 어일택시를 이용하면 안동리와 어일에서 100번, 150번 시내버스와 연결된다.
기림사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하산지점인 시부거리에서 교통편 연결이 편하다.
*잘 데와 먹을 데
들머리인 시부거리에는 식당이나 여관이 없다. 날머리인 기림사 입구에는 무량식당(054-744-1730), 소나무식당, 경동식당을 비롯한 식당과 민박집이 많다.
글쓴이:김은남
참조:동대봉
참조:동대봉산~함월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