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공감'이란 주제로 어린이 도서관 '모두' 개관 1주년 기념행사를 하였습니다.
기념식과 다양한 공연, 주민들과 음식 나누기를 하였는데
저는 남자직원 2명, 자원봉사자 2명과 장장 4시간동안 삼겹살, 목살을 구웠습니다.
다행히 전날보다는 더위가 주춤하였지만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습니다.
그래도 행복했던 건 다문화가족, 주민과 함께 하는 행사에
맛있는 고기를 구워줄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이었지요.
이 행사를 통해 더욱 많은 학생들이 '모두'를 알게 되었고
앞으로 자주 이용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을 들으며 기분 좋았습니다.
며칠 전, 어머니 수술 예후를 진단하고 떼어낸 혹의 조직검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혹의 크기가 10cm가 넘어 당신은 혹시나 악성종양으로 악화되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남아 있었나봅니다. 우리 남매들은 평소 어머니의 건강상태를 잘
알기에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병원에서 진료실을 나오시는 어머니의 표정만 보고도 전혀 이상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은 환한 보름달같이 활짝 웃음을 머금으셨는데
마치 후광을 입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 어머니의 생신날이었으니 이보다 더한 선물이 없었지요.
수술 후 다른 이상은 없었지만 힘이 없고 기력이 딸린다는 말씀을 하셨기에
삼계탕을 먹으러 갔습니다. 어머니가 가끔 가신다는, 약전골목에 있는
삼계탕 집이었는데 겨우 남은 한 자리를 차고 앉았습니다.
찬찬히 돌아보니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주류였고 가족나들이가 일부,
젊은 직장인이 조금 보였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이 친구분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좋았습니다만
노부부가 함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 아쉽기도 하였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갔던 진골목은 대구의 역사를 그대로 안고 있는 오래된 골목으로,
진골목 인근에는 노포들이 몰려있지요.
이곳의 노포들에서는 최근 정보가 쏟아지는 맛집과는 다른 친밀감이 앞섭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먼저 눈에 띕니다.
서너 분씩 짝을 지어 음식을 드시며 반주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정겹고
세월을 뛰어넘는, 아니 세월이 깊을수록 더해지는 우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가족손님이 적지 않은 것도 눈에 띄고 간혹 젊은 연인들도 보입니다.
어찌되었건 이런 노포들의 주인은 어르신들이라 생각합니다.
진골목에는 오래된, 그래서 소중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에 나오는 대구 최초의 2층 양옥집이었던 정소아과,
(정소아과 자제분이 제 대학선배이신데 3대째 의학을 이어온 대단한 의사 가문입니다)
달성서씨들의 한옥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진골목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오래된 식당이지요.
지나칠 정도로 고아진 걸쭉한 국물의 육개장 전문인 진골목식당,
40여년 전통의 손맛을 자랑하는 보리밥정식집 우리식당,
진한 국물의 돼지국밥과 수육으로 명성을 얻은 소두불식당,
맛집이라기보다는 멋집이라는 표현이 더맞을 것 같은 종로숯불갈비,
진골목 인근에도 유명한 식당이 많이 있습니다.
따로국밥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집 중의 하나인 대구따로국밥집,
만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생덕,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고추굴짬뽕의 저력이 느껴지는 복해반점,
구수하고 순한 맛, 제대로 들어간 재료가 돋보이는 할배짬뽕의 경미반점,
마주보고 있으며 오랜 세월 함께 한 우동, 초밥, 오뎅탕이 싸고 맛있는 종로/미성초밥,
운동권 학생들의 아지트였기에 어르신들보다는 중장년이 단골인 지짐, 막걸리의 곡주사,
그리고 식당은 아니지만 어르신들의 만남과 소일거리의 장소로 최고인,
선친 살아생전 단골이셨던 미도다방 등등...
오래되었다고 무조건 좋은건 아닙니다.
하지만 오래되어 좋은 것이 참 많습니다.
술이 그렇고 간장, 된장이 그러하고,
단골식당이, 나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소장품이 그러합니다.
빛바랜 사진이, 오래된 건축물의 아름다움이 그러합니다.
오래된 친구와의 우정은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청춘남녀의 건강과 발랄함이 좋기도 하지만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벗들과 함께 여행하는 모습,
반주와 함께 정담을 나누시는 모습이 더욱 정겹고 좋아집니다.
그분들의 우정이 부러워집니다.
그래서 제 주변을 더욱 돌아보게 됩니다.
꼬부랑노인이 되었을 때 나와 함께 할 친구들은 몇이나 되고
누구와 함께 하면 더욱 즐거울까 생각을 해 봅니다.
나이 들어 함께 하려면 마음도 맞아야겠지만 건강이 최우선이겠지요.
그래서 술친구들에게는 항상 조금만 덜 마시고 건강에 신경쓰자고 얘기합니다.
땅을 보고 걷는 나이가 되더라도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건강과 여유를 가지자고 얘기합니다.
미도다방에서 약차 한잔을 마시며 담소나누는 여유를 가지자고 얘기합니다.
내일이면 팔순인 어머니가 수술을 받으시고도 건강을 유지하실 수 있어
더욱 기쁘고 행복한 주말 한낮입니다.
미도다방(모셔온 글)==========================
종로2가 미도다방에 가면
정인숙 여사가 햇살을 쓸어 모은다
햇살은 햇살끼리 모여앉아
도란도란 무슨 얘기를 나눈다
꽃시절 나비 이야기도 하고
장마철에 꺾인 상처 이야기도 하고
익어가는 가을 열매 이야기도 하고
가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도
추억은 가슴에 훈장을 달아준다
종로2가 진골목 미도다방에 가면
가슴에 훈장을 단 노인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풀어놓고
차 한 잔 값의 추억을 판다
가끔 정여사도 끼어들지만
그들은 그들끼리
주고받으면서
한 시대의 시간벌이를 하고 있다.
-----전상열시인
첫댓글 공감 백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