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 서예가 언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미 고조선 때에 한자(漢字)가 유입되었다고 추정된다. 이후 삼국시대부터는 전돌, 비석, 묘지명 등의 각종 유물에서 서예의 변천을 추적할 수 있다. 이토록 오래된 서예의 발달 과정에서 여러 글씨체들이 창안되었는데, 대표적인 한자 서체로는 해서(楷書), 전서(篆書), 초서(草書), 행서(行書)를 들 수 있다. 이중 행서는 정자체인 해서와 흘림체인 초서의 중간 서체로 반흘림체이다. 행서는 중국 한나라 때 유덕승이 완성한 것을 중국 위나라 초기에 종요(鐘繇)와 호소(胡昭)가 계승한 것이다. 행서의 특징은 중용(中庸)이므로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분방한 것을 삼가한다. 또 획과 획의 필순에 따른 연결성을 중시한다. 이것은 조선시대 말기의 명필가 김정희가 쓴 행서이다. 그가 쓴 행서에는 단아하면서도 유려한 서풍(書風)이 배어 있어, 행서의 핵심적인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송운경입연시'(送雲卿入燕詩)는 종이에 먹으로 쓴 것으로 중국으로 가는 사신 운경에 준 시구이다. 운경은 조용진(曺龍振)의 호인데, 운경은 이조판서 조윤대(曺允大)의 아들이다. 조윤대가 중국으로 파견되는 사절인 동지사(冬至使)로 북경에 갈 때 조용진이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이때 김정희가 중국의 학자 옹방강을 꼭 찾아보고 오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
첫댓글 전돌은 벽돌을 말함. 추사선생은 한 때 옹방강에게서 배웠다고 함. 그러나 글씨의 분위기는 전혀 다른 모습의 독창성을 띰.
귀한자료 공부잘하고 갑니다 ...
어렵지만 배우려 노력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