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의 마지막 고승들
-태고·나옹·백운선사 (1298~1382년)-
고려말기에 활약한 고승으로서는 태고 보우와 나옹 혜근 및 백운 경한스님 등이 있다.
오늘날까지도 한국 선종의 종조로 추앙받고 있는 보우스님은 본래 가지산파(선문 9산의 하나)로 출가하여 조사의 화두를 참구하는 참선수행에 전념했다. 보우스님(1301~1382)는 속성이 홍씨, 홍주 (충남 홍성) 사람으로서 13세에 출가하여 회암사의 광지스님에게 득도했다. 19세에 만법귀일 (萬法歸一)ᅳ의 화두를 참구했으며, 성서의 감로사에 있으면서 의심의 응어리가 해결되어 37세에 개성 전단원에 우거하면서 '무(無)자'를 참구하여 대오했다. 1341년, 삼각산 중홍사에 있을 때 수많은 학자가 모여들었다.
원(元)의 순종은 보우스님을 초빙하여 영녕사에서 개당, 설법케 하고 금란가사와 침향을 하사했다. 1348년에 귀국한 스님은 곧 공민왕의 존중을 받게 되어 1356년에는 왕사가 되었다. 왕사가 된 직후 왕명으로 설치된 원융부(圓融府)를 통해 스님은 승직 임명을 관장하였다. 아울러 당시까지 분열·대립하고 있던 선종 각파의 통합을 도모하였다. 후일 희양산 봉암사, 가지산 보림사, 전주 보광사, 영원사 등지에 머물렀으며 1382년(우왕 8년)에 소설산으로 가서 82세로 입적했다. 시호를 원증이라 하며 태고(太古)는 스님의 호다. 스님은 구산선을 통합하고 임제선을 계승했으며 많은 시와 노래를 저작했다. 스님의 법어와 가송을 문인 운서가 편찬한 <태고화상어록>이 현존하며, <태고유음>은 전하지 않고 있다. 그의 제자로는 혼수·찬영등 천 수백 명이 있었다.
고려말의 혼란기에 활약한 또 한 분의 고승이 나옹 혜근스님이다. 혜근스님(1320-1376)은 속성이 아씨이며, 영해 사람이다. 20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그것이 동기가 되어 공덕산 묘적암의 요연스님에게 출가했다. 스님은 여러 산을 편력하다가 양주 회암사에 4년 동안 머물면서 정진하여 개오했다. 1348년 3월 원나라로 들어가 연경의 법원사에서 지공스님을 만났다. 지공스님은 인도 마가다국의 왕자로서 출가하여 가섭으로부터 백 여덟 번째의 법을 이었으므로 인도 108대 조사라 한다. 혜근스님은 지공스님에게서 법을 듣고 정자사로 가서 평산처림스님의 법을 얻었다. 처음 스님이 처림을 찾아갔을 때 처림은 혜근에게 누구를 만나고 왔느냐고 물었다. 지공을 만났다고 하니, 그는 지공이 무엇을 하던가 하고 물었다. 그는 천검을 쓰더라고 혜근이 답하니, 처림은 천검은 그만두고 그대의 일검을 가져오라고 했다. 이에 혜근이 좌구로 후려치니 처림은 쓰러지면서,“이 도둑이 날 죽인다”고 외쳤다. 혜근이 처림을 일으키면서, "나의 칼은 살활을 능히 합니다" 하니, 처림은 크게 웃었다. 후에 보타낙가산의 관음을 참배하고 순종의 부름을 받아 광제사에서 개당·설법하고, 법원사에 가서 지공의 부촉을 받은 뒤 1358년 귀국하였다. 공민왕의 초청으로 성중에서 법을 설하고 후일 금강산 정양암, 청평사, 오대산 등지를 유력하였으며, 송광사·회암사에 있다가 밀양 영원사로 가는 도중에 여주 신륵사에서 1376년 입적하였다. 시호를 선각이라 하였고, 문인 각련이 집록하고 환암 혼수가 교정한 <나옹화상어록> 을 비롯하여 <나옹화상가송> <나옹화상백납가> 등이 있다. 제자로는 혼수·자초 등 백여 명이 있었다.
보우와 함께 석옥 청공의 법을 받은 또 다른 스님으로서 경한스님(1298-1374)이 있다. 스님의 호는 백운이며 호남 고부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보우와 마찬가지로 원나라 호주에 가서 석옥의 심법을 전해받고, 지공에게도 법을 물었다. 1353년(공민왕) 크게 깨우친 바가 있었으며, 이듬해 석옥의 제자 법안이 석옥의 게송을 갖고 와서 그에게 전했다. 나옹의 추천으로 1355년 해주 신광사의 주지가 되었고, 1370년 공부선의 시관이 되었다. 그는 태고 보우와 마찬가지로 석옥의 법을 받았지만, 보우가 주로 간화선을 중시한 데 비해 그는 무심무념을 궁극으로 삼는 묵조선으로 선풍을 드날렸다. 저술로는 현존하는 <불조직지심체절요>2권과 <백운화상어록> 2권이 있다. 이중 <불조직지심체절요> 권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주자본이라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태고·나옹·백운 등은 희세의 거승이었으나, 국운은 이미 기울어지고 정치와 사회가 어지러워 그들의 법화로도 고려의 멸망을 어쩌지 못했다. < 불교사 100장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