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후 감 (춘희)
이 소설은 뒤마 피스가 한때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만난 파리의 고급 창녀였던 ‘마리 뒤플레시스’와의 체험담이다.
내용이 통속적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동백꽃을 사랑하기 때문에 ‘춘희’라 불리는 ‘마르그리트 고티에’라는 창녀는 몸을 판 대가로 귀부인 같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게 된다. 순진한 청년 ‘아르망 뒤발’은 첫눈에 마르그리트를 사랑하게 된다.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바치는 아르망에게 마르그리트도 사랑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의 부친이 그녀를 찾아와 가문의 명예와 평화를 위해 헤어질 것을 부탁한다. 그녀는 자신이 아르망과 헤어지는 것이 그를 위한 길임을 깨닫고, 조용히 떠나버린다. 그리고 예전의 환락 생활로 되돌아가 버린다. 아르망은 그녀의 마음이 변했다고 확신하고는 곧 절망하여 타국으로 여행을 떠나버린다. 마르그리트는 체념과 실의로 인해 폐병이 악화되어 결국 아르망이 도착하기전 세상을 떠난다. 그녀의 임종 후에야 도착한 아르망은 사과하지도 못한채 그녀가 죽은 것에 대하여 깊은 절망과 슬픔으로 오열한다. 결국 그녀를 편안한 무덤으로 이장을 시킨 후에야 아르망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버지와 여동생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아르망은 비로소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2000년 11월에 선물로 받은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뻔한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순수한 소설이라는 것을 읽고서 깨닫게 되었다. 오페라와 영화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이다. 비록 창녀이지만, 고상함과 순수함을 지니고 있던 마르그리트. 순진한 청년 아르망과의 만남. 첫만남에서는 아르망이 자신을 돈으로 사려고 했던 돈많은 남성들과 동일하게 생각했지만,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서는 희생을 결심하는 마르그리트. 자신을 호화롭게 치장해준 남성들의 유혹도 물리치고, 귀중품을 하나하나 팔아버리는 마르그리트. 이것을 알고 아르망은 어머니의 유산을 그녀에게 상속하려한다. 아르망의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고 아르망이 부재중일 때 그녀를 찾아와 헤어질 것을 설득한다. 부모 마음이라면 당연지사일 것이다. 누구나 마르그리트를 인간이 아닌-사랑해주어야 하는 가여운 여인이 아닌-창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창녀라고 해서 순수하지 못하다 생각하는가? 육체가 방탕한 생활을 한다고 해서 영혼까지 방탕으로 물든 것은 아니다. 뒤마 피스는 이 글로 말미암아 사회악. 인간악의 희생자로서 창녀를 동정하고 있다. 사생아로 태어난 저자는 친모와 헤어져 불우한 시절을 보내야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창녀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마르그리트는 아르망의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의 편견과 냉대가 이 순수한 사랑을 가로막아 마르그리트를 다시 오욕의 세계로 내몰았다. 작가는 이런 사회적 불합리와 도덕적 부조리에 대한 분노로 이 소설을 썼다. ‘과연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 주는 감동의 소설인 것이다.
여기서 창녀 마르그리트를 사랑한 아르망은 예수님을 생각나게 한다. 창녀였던 막달라 마리아를 사랑하사 정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용서하사 구원하신 분.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닦아드린 막달라 마리아의 행위는 천박하지 않고 고결하였다. 일곱 귀신이 들어갈 정도로 타락했던 영혼을 사랑으로 치유하신 예수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하는 영광스러운 여인이 되었다. 하지만 아르망은 마르그리트를 완전히 구원해주지는 못했다. 창녀라는 신분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했다. 아르망과 헤어져도 그녀는 새로운 삶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는 있었다. 비록 그 길이 험난해도 말이다. 아르망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선택했어야만 했다. 계속 방탕한 생활로 자신을 괴롭혔기 때문에 폐병으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도 예수님처럼, 아르망처럼 마르그리트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사랑은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희생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던 것처럼. 나도 예수님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내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오직 예수님과 연합이 되고, 예수님을 사랑함으로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길 원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찬란한 부활의 영광스런 모습으로 마리아를 만나셨듯이 나를 만나주시기를 바란다. 마리아처럼 되기 위해서 기도해야겠다.
‘내 삶의 순간순간마다 주님께서 역사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내 영혼의 주인으로 모시길 원합니다. 내가 마리아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나를 구원과 영생의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2011. 3. 6. 낭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