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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황진이가 없는 영화 <황진이>
놀란토끼/서울 추천 0 조회 12 07.06.19 13: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무언가 기존의 틀을 깨고자 하는 사람들이 흔히 즐겨 쓰는 말로 “고정관념의 틀에서 깨여나야 한다.” 는 말이 있다.

언뜻 듣기에는 정말 좋은 말이다. 한쪽 시각으로만 편향(偏向)되게 보지 말고 다른 시각으로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좋게만 해석하면 될 것을, 그들은 간혹 그 의미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고정관념의 틀에서 깨여나야 한다지만 술과 물이 같아 보인다고 해서 술을 물처럼 볼 수야 없지 않겠는가?.. 술은 술일뿐이지 결코 물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술을 전혀 마셔보지 못한 사람이나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술도 물이 될 수 있겠지만..

 

 

 

 

영화 <황진이>를 보면서 내내 느낀 것은, 왜 이 영화의 제목을 <황진이>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황진이!!... 하면 일반적으로 생각나는 이미지라면, 아름다운 미모를 겸비한 조선조 최고의 기생 중 한 사람이며, 박연폭포ㆍ서경덕과 함께 송도3절(松都三絶)이라 일컫을 정도로 시서화(詩書畵)에 뛰어난 여인이고, 또한 창(唱)ㆍ무(舞)ㆍ거문고에도 능했던 예인(藝人)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황진이에 대해 장윤현 감독은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한 남자를 사랑한 여인으로서의 그녀를 표현하였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억지스럽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조 여인 중에서 황진이만큼 소설이나 영화에서 많이 다뤄졌던 파란만장한 여인도 쉽지 않으므로, 그동안의 일반적 관점에서 벗어나 감독만의 또 다른 관점으로 재해석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오히려 황진이에 대한 편견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는 따라서, 황진이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황진이라는 이름만을 빌린 전혀 다른 내용의 영화를 보는 듯 하였다.

고려조 사노(私奴)의 신분으로 계급타파를 부르짖으며 천민해방을 꿈꾸었던 만적(萬積)이나 조선조의 의적(義賊) 임꺽정의 이야기랄까... 또는 집안이 몰락하자 어쩔 수 없이 기생이 된 별당아씨와 머슴의 사랑이랄까... 아님 그 시대를 한탄하며 안타까운 사랑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연인들의 슬픈 사랑이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영화 <황진이>에는 그녀만의 특유한 카리스마나 시서화(詩書畵)ㆍ무(舞) 등의 풍류(風流)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이야기의 주제 역시 황진이가 아니라 계급투쟁을 꿈꾸는 <놈이>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물론 이 영화가 우리의 정서와는 다소 맞지 않는 북한소설 원작에 충실하려 하였다는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100억여원에 가까운 막대한 제작비와 우리나라 최고의 명산(名山) 금강산을 배경으로 촬영하는 등 파격을 보인 장윤현 감독은 영화 <황진이>에서 꿈꾸고자 했던 의미가 무엇일까?..

계급 없는 사회에서 신분을 떠나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여인의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16세기에 살았던 21세기의 여인” 이라는 영화 포스터 문구처럼 양반규수 신분으로 사랑하면 16세기 여인이고 기생 신분으로 사랑하면 21세기 여인이 된다는 의미일까?..

 

 

 

 

 


이 영화는 한편, 자신의 출생비밀과 비참한 삶을 살다간 생모(生母)의 사망소식을 듣고, “난 이 여인네처럼 살지 않을 꺼다. 세상을 내 발밑에 두고 실컷 비웃으며 살 거야”, “나는 세상이 두렵지 않다” 며 기세등등하게 외쳤지만 그녀는 세상을 발밑에 두고 비웃지 못했으며, 권력에 굴복하여 고작 그녀의 몸종과 결혼하게 된 머슴 괴똥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사또에게 바쳤을 뿐이다.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이, 얼마 전 방영된 TV 드라마 <황진이>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필자 자신도 이미 편견이 개입된 것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TV 드라마로 황진이가 방영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역사보다 뜨거운 이야기..” 라는 영화 예고편에 고무되어 한편으론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TV드라마와는 한 차원 다른 황진이에 대한 무언가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우리나라 여배우의 정상에 있는 하지원과 송혜교의 비교도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영화를 보는 순간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정작 영화 <황진이>에는 황진이는 온데간데없고 의적 <놈이>에게만 포커스를 맞추고, 인간 <황진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놈이>의 계급타파에만 비중을 둠으로써 스스로 황진이의 캐릭터를 무너뜨리는 누(累)를 범하고 만 것이다.

 

 

 

 


영화는 공중파인 TV와 달라야 한다. TV드라마는 공중파라는 특성 때문에 표현의 한계가 있는 대신 스토리가 길어도 되지만, 영화는 공중파보다 표현의 자유가 많은 대신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함축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 <황진이>는 141분 동안, 예술가의 장인정신을 부각시켰던 TV 드라마보다 표현 면에서나 스토리의 함축 면에서 결코 앞서지를 못했다

고작 계급타파라든지, 기생과 천민의 순수한 사랑 운운하는 것만으로 고정관념의 틀을 깼다고 호언장담한다면 그건 감독의 오판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영화 <황진이>의 볼거리라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이 아름다운 금강산 설경 등 영상미와 영화의 어두운 주제에 맞게 도도하면서도 독특하게 표현한 황진이의 의상이 아닐까 한다.

기생이라면 으레 밝고 화려한 계통의 의상이 제격이겠지만, 주로 어두운 검정계통 의상이 주는 무게가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송혜교.. 그녀는 정말 이쁘다.. 그러나 그녀가 진정한 명배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쁜 얼굴로만 승부할 것이 아니라 아직도 억양 등의 대사에서는 매끄럽지 못함을 느껴야 할 것이다.

또한, 영화 <올드보이>에서 강한 인상을 주었던 유지태 역시 어두운 <놈이> 캐릭터 탓이기도 하겠지만 영화 내내 무거운 표정으로 일관되어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으며, 그나마 류승용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영화가 조금은 빛을 발하였다 할 수 있겠다.

 

 

 


<蛇足)

영화 <황진이>가 “위선과 억압의 시대” 에 맞서 신분을 뛰어넘는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이야기를 하려 했다면, 황진이가 괴똥이를 위해 사또에게 몸을 바칠 것이 아니라 놈이를 위해 몸을 바친다든지,

또한 “역적으로 태어난 영웅” 이라는 놈이는 괴똥이를 구하기 위해 자수하여 참수형을 당할 것이 아니라 사또의 수청을 거역한 황진이를 위해 기꺼이 참수형을 당하는 놈이로 그렸어야 하지 않을 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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