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다움을 지우는 재개발
2007년 5월,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 모임’이 출범했다. 세칭 ‘배다리’라고 말하는 동구 송림동과 금창동 일원의 주민과 문화운동에 나서는 시민단체가 모여 신흥동 삼익아파트에서 동국제강 사이를 연결하려는 산업도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대책을 세우려고 ‘중구 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 주민 대책위원회’와 힘을 모아 행동에 나선 것이다.
‘배다리’는 인천 토박이 민중의 정서가 아련하게 깃든 곳이다. 1990년대 이전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한 세대 전부터 죽 늘어선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참고서와 사전을 구입했고, 당시 어른들은 1920년에 문을 연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기울이던 골목이었다. 배다리에는 인천의 근대 역사와 문화유적도 적잖게 보전되어 있다. 인천 최초의 근대 학교인 현 창영초등학교는 3ㆍ1운동이 인천에서 시작된 곳답게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건물이 남아 있고, 1892년 한국 최초의 사립학교인 동명학교와 영화학교가 자리 잡은 터에는 현재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으로 사용하는 당시의 여선교사 합숙소가 보전되고 있다. 1905년 지은 여선교사 합숙소는 르네상스 양식으로, 인천 기독교의 오랜 산실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도원고개라고 말하는 배다리 인근의 우각현(쇠뿔고개)은 1897년 3월 27일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를 최초로 연 역사의 현장이 아닌가. 제물포에서 노량진까지 이어주던 그 철도가 부설되기 전, 제물포에 도착한 외국인이 한양에 가려면 노량진까지 작은 배를 타거나 조랑말 잔등에 올라 뒤뚱거리며 진창길을 감내해야 했다고,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전한다.
헌책 골목에서 문학서적을 뒤적였을 인천의 전 문인협회장인 김학균 시인은 “배다리는 ‘베니스의 상인’과 같은 이야기 속에 빠지고 영국의 한적한 시골이 세계인의 머릿속에 살아있는 랜드마크 같은 ‘아이온 헤일리’ 촌”과 같은 골목이라면서, 헌 책방거리로 보전되지 못하는데 안타까워한다. “쓰레기를 시래기로 만들어먹고 조각 천을 모아 조각보를 만드는 민족”이 자신의 오랜 문화를 동강낸다는데 기막혀하는 그는 “배다리 문화를 헌책방과 더불어 인천인의 마음속에 남을 랜드마크로 만들어야 할 때”라고 시민에게 촉구하면서 “후손에게 보일 수 있는 것이라면 적어도 없어지지는 않게 해야 할” 선조의 역사적 책임을 되뇐다. 주민의 걱정도 산적하다. 폭이 50미터가 넘으니 공동체가 단절될 것이다. 통학로를 우회하려면 불편할 뿐 아니라 위험할 것이다. 설사, 고가도로로 계획이 바뀔지라도 문제는 남을 것이다. 보기에도 흉하지만 소음과 대기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게 아닌가.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으며 도로 개설에 대한 보상과 실시설계가 이미 완료되고 70퍼센트 이상 공사가 진행돼 계획 변경이 어렵다.”고 인천시 관계자가 주장했다지만, 산업도로 개설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누구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했는지 납득할 수 있게 밝히지 않을 뿐 아니라 논의를 회피하며 대안을 마련할 수 없다고 버티는 시당국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납세자인 인천시민의 처지에서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반문화적이요 몰역사적 오만이라고 본다. 시당국은 인천발전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도로 개설의 당위성을 주장하지만 주민들은 인천시를 신뢰할 수 없다. 연구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는 태도가 더욱 의심스럽게 만들지 않던가. 경찰력에 의지해 공사를 강행하겠다며 주민들을 몰아붙이는 시당국에 대해 주민들은 도로 무효를 포함해, 백지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지방행정 책임자의 문화 인식을 주문한다.
10년이 되었다는 산업도로의 개설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던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알토란 같이 남은 인천 민중의 근대유산을 지금이라도 지키려고 작은 힘을 모으고 있다. ‘배다리-우각로, 금창동 문화마을 구성안’을 구상하고 나선 것이다. 그 목록은 길다. 헌책방 거리에서 이어지는 구성안은 배다리 생활사 박물관으로 이어지며 의상과 재활용 수선 의류공방, 도시농업 지원센터, 친환경 생활용품점, 공동체 예술센터, 어린이 전용 소극장, 우리 소리 교육관과 야외 공연장, 고물품 거리, 목공학교, 공예방 거리, 재활용 가구점, 주택건설과 인테리어용품점, 주거문화 체험 공원, 친환경 먹을거리 체험 식당, 참교육과 민족의식의 역사교육관(창영학교), 여성교육 역사교육관(영화학교), 기독교 역사 자료관(창영교회), 자연과 노인의 거리, 재활용품 수집ㆍ수리ㆍ교환점에서 도원역과 철도역사 박물관까지 계속된다.
인천시 젊은 작가들의 요람인 ‘스페이스 빔’을 금창동의 인천양조장 건물로 옮긴 민운기 대표는 우각로 일대를 탐사하는 ‘인천 도시문화 탐사대’를 이끌며 ‘도시문화포럼’을 연다. 문화운동단체인 ‘퍼포먼스 반지하’는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으로 이름을 바꿔 우각로에 새롭게 터를 잡았으며 ‘1인 잡지’를 펴내는 최종규 작가는 배다리에서 ‘함께 살기’라는 간판을 단 도서관을 열었다. 인천의 내일을 이끌 청소년을 대상으로 배다리의 역사와 문화를 답사하는 인천의 젊은 문화인들은 헌책방 전시회, 영화제와 거리축제 같은 문화 행사를 기획한다. 민운기 대표는 “복합문화단지 추진 같은 시당국의 일방적인 사업 방식이 아니라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연대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소회를 밝혔다.
주민대책위원회가 제시한 대안을 놓고 지난 3월 10일 인천종합건설본부와 가진 협의가 다시 무산된 가운데, 임시의회를 연 동구의회는 3월 14일, ‘배다리산업도로 공사 재개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동구의회는 결의문을 통해 “배다리 산업도로 공사 즉각 철회와 인천시장이 공사 철회 이후의 복안을 주민 앞에 제시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배다리 문화 복원을 위한 인천시민 대토론회’의 조속한 개최를 촉구했으나 그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기술상 어려움을 핑계로 삼는 인천종합건설본부는 경찰의 지원을 받더라도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여전히 천명하기 때문이다.
천년고도에 핵폐기장을 만들려하고 백두대간을 넘는 경부운하도 가능하다는 세상이다. 기술적 가능성이 없다고 어찌 주장할 수 있을까. 주민들은 대안의 실현 가능성을 놓고 다시 협의하자며, 그때까지 공사를 중단해달라고 요구했건만, 인천종합건설본부는 안하무인이다. 경찰과 주민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불상사가 우려되는데 현장은 공사 재개를 거듭 시도한다. 시당국은 이미 9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고 주장하지만 문화와 역사 앞에 돈을 앞세울 수 있을까. 주민의 생명을 지키는 환경, 시민의 정주의식을 고취시키는 문화와 역사를 단지 돈과 속도를 위해 내주어야 할까. 대안을 반드시 찾아야 옳다. 젊어서부터 헌책방 아벨서점을 지키고 있는 57세의 곽현숙 씨는 외친다. “거두어 외곽으로 돌리시오! 엄청난 자산을 파괴 마시오! 백지로 하시오! 후대에 잘했다 하리오!”
인천시처럼 구도시에 근대문화유산을 남기고 있는 일본 요코하마 시는 외세의 요구로 개항한 흔적이라도 알뜰하게 보전한다. 옛 건물은 물론이고, 그 시절의 정취를 간직하려 애를 쓴다. 페리 제독이 차를 마시던 공간의 분위기도 재현해낼 정도다. 일본 최초의 근대 시가지와 상하수도는 물론이고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도 복원해 보전하려 노력하는데, 우리는 어떤가. 주민들을 경찰력으로 밀어내면서 간직된 역사유물까지 헐어내려 고집부리지 않은가. 몰려드는 관광객을 감탄하게 만드는 유럽의 도시들은 외곽에 시가지를 새로 조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유서 깊은 구도시의 역사와 문화는 반드시 보전한다. 남의 일일 따름인가. 지역의 문화와 역사는 시민의 정주의식을 돈독하게 만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지구온난화 시대를 앞둔 현재, 고민해야 하는 내일의 도시개발은 경제 우선이 아니어야 한다.
첫댓글 인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600년 고도의 역사와 문화도 개발의 삽날 아래 사라진 곳이 대단히 많습니다. 우리 전역이 그렇고 경부운하가 지날 예정이라는 곳이 그럴 겁니다. 전부 돈, 돈 때문입니다. 돈 앞에 조상도 후손도 없는 거지요. 돈으로 메마를 우리 가슴에 시적 감성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감히 생각합니다.
한 때 인천이 제 삶의 터전이었던 때가 있었지요. 그 계양산으로, 배다리로 참 많이 오르내리고 지나면서도 인천의 역사와 풍물을 몰랐군요. 푸르름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으려도 찾을 수 없는 공단에서 계곡하나 변변히 없는 그 산을 그나마 오를 수 있어서 위안이 되었고, 잘 알지는 못하지만 배다리 근처를 지날 때면 어쩐지 아련한 옛 거리로 접어든 것 같은 기분에 젖어들곤 했었는데... 인천이 더 푸르러지고 많은 생명들이 함께 사는 마을이 될 수 있기를 마음으로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