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철학과 명상을 지도하는 김재성 교수
재가선 수행처를 찾아/ 관악 캠퍼스 선원
모든 존재가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우리 아들이 불교철학 수업을 듣고 불교가 정말 좋아졌다고 하더라. 교수님이 만드신 명상센터(명상의 집 자애)에도 다녀온 것 같아. 불교 공부를 하고 명상을 해서인지 우리 아들이 예전보다 더 편안해 진 것 같아.”
공부뿐만 아니라 인성 교육도 잘 시켜서 동기들로부터 ‘신사임당’이라는 별호로 불리는 친구의 말에 환희 용약했다. 어찌나 기쁜지 길거리에서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평소 남다른 능력이 있는 사람들일수록 도덕지수가 높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불교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친구 아들 이야기에 가슴이 뛸 정도로 기뻤던 것이다.
한편 또래에 비해 말할 수 없이 진중하고 반듯한 친구 아들의 마음을 움직인 그 교수님이 궁금해졌다. 불교가 아무리 수승한 가르침이라 해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면 종교에 관심 없는 요즘 학생들, 특히 눈높이가 매우 높은 명문대생의 마음을 사로잡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찾는 것보다 힘들기 때문이다. 불교철학과 아울러 명상을 가르친다는 그 교수님을 뵙고 싶었는데, 한동안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다 인연법이다. 시절인연이 무르익어야 한다는 말을 절감하게 된다. 얼마 전 민족사에서 출간 준비 중인 『죽음을 명상하다(조안 할리팩스 지음), 가제』를 공역한 김정숙 선생을 만났는데, 대화 도중 눈빛을 반짝이며 신이 나서 서울대학교의 철학 수업 풍경을 전한다. 김 선생의 말을 듣다 보니 내 친구 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스승이 바로 김재성 교수님(능인 대학원대학교 명상심리학과 교수, 10년 전부터 서울대 철학과 출강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현듯 지난겨울부터 연재하고 있는 계간 禪지의 ‘재가선 수행처를 찾아서’가 떠올랐다. 바야흐로 신자유주의 시대, 스펙 쌓느라 종교는 물론이고 다른 동아리 활동에도 눈길을 주지 않는 대학생들이 태반인데, 학생들 스스로 선택한 수업시간에 불교철학과 명상을 지도하는 곳, 이보다 더 좋은 재가선 수행처가 어디 있겠는가 싶어 목적이 있으니 주저하지 않고 찾아뵈었다.
관찰하면 고통이 사라지고 궁극의 행복이 열린다(소제목)
때마침, 외부에서 실시하는 명상수업 시간이 잡혀져 있어 서울대생들의 수업을 참관할 수 있었다. 관악산 산책로 입구에서 만나 성주암에 이르는 동안 걷기 명상, 자애 명상 등을 실습하고, 성주암 대웅전에서 주지스님께 주옥같은 말씀을 듣고 나서 본 수업에 들어갔다.
“자, 올라오면서 걷기 명상, 자애명상을 했습니다. 이젠 편안하게 자리에 누워 보세요. 자, 편누워서 그대로 느껴봅니다. 내 몸의 감각, 바람의 시원한 감각을 있는 그대로, 일어나는 그대로 느껴보세요.
누운 채로 코끝에 주의를 보냅니다. 들이마시는 들숨, 내쉬는 날숨, 호흡을 놓치지 말고 집중해서 알아차려 봅니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공기가 코 주위에 부딪치는 피부의 감각에 주의를 모아봅니다. 호흡에 따라서 공기가 부딪치는 피부의 감각을 관찰해 봅니다.
좀 더 집중해 봅니다. 코끝에 모아진 집중 영역을 500원짜리 동전 크기로 동그랗게 관찰해 봅니다. 빛을 비춘다는 느낌으로 코 주위 감각을 그대로 느껴봅니다. 주위를 동그라미 크기만큼 그 영역을 정수리로 옮겨갑니다. 피부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여 집중합니다. 주의를 잘 기울여야 관찰이 됩니다. 머리 위 감각을 관찰하고, 이마의 감각을 관찰합니다. 주의를 기울이면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입술, 턱의 영역을 어떤 감각이 있는지 지켜봅니다. 정수리로 와서 뒷머리의 감각을 관찰해 봅니다.
어깨를 관찰하고, 어깨의 감각을 관찰하고...”
누워서 편안한 자세로 교수님의 잔잔한 말씀에 따라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찰하는 명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 모습 자체가 너무나도 평온해 보여 바라보는 내 마음도 고요해졌다. 학생들은 김재성 교수님의 지도로 부처님께서 수행하신 위빠사나를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꿰뚫어 본다’는 뜻을 가진 ‘위빠사나’, 관찰하고 집중하면 고통이 사라지고 궁극의 행복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애잔한 생각이 들까? 저 학생들이 지금의 저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숨 가쁘게 학업에 매진해 왔는지, 이제야 비로소 편안하게 숨 쉬는 것 같아서... 명상 수업 후 5~6명이 모여 얘기를 나누는 모둠 수업이 이어졌다.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수강 신청을 했는데, 불교 철학 수업은 너무 어려워서 머리에서 쥐가 날 것 같아요. 명상 수업은 그냥 편안해서 좋아요. 명상을 제대로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식품공학과 4학년 학생)
“저는 불교집안이라서 가끔 절에 가긴 했어도 불교를 잘 몰라서 수강 신청을 했어요. 어렵긴 해도 하나 둘 배우면서 정말 행복해 졌어요.”(식품영양학과 1학년 학생)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명상을 배우고 싶어서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불교 철학도 어렵긴 하지만 도움이 많이 됩니다.”(식품영양학과 2학년 학생)
몇몇 학생들의 말을 들으면서 불교철학을 바탕으로 한 명상은 개개인의 번뇌를 사라지게 하고 행복을 열어줄 뿐만 아니라 종교 간의 평화와 우리 사회의 온갖 갈등을 해소하는 데도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평소 신념이 확신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방황을 줄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후배들에게 불교철학과 명상을 지도하는 김재성 교수(소제목)
불교철학 수업을 신청하게 된 계기는 저마다 달랐지만 이구동성으로 불교철학은 어렵지만 명상을 통해 편안해 졌다고 한다. 교수님께 학생들의 의견을 전하면서 “똘똘한 후배들이라고 너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욕심을 부리시는 것 같습니다. 좀 쉽게 조금만 가르쳐 주세요.”라고 운을 뗐다.
“다 알아들으면서 학생들이 엄살 피우는 겁니다. 사실 다른 대학에서 같은 주제로 강의했는데 한 학기 만에 신청자가 없어서 폐강되었는데, 서울대에서는 10년째 하고 있습니다.”
김재성 교수님의 불교철학 수업 커리큘럼을 보면 초기불교부터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몇 년을 지도해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방대하다. 그 깊이는 또 얼마나 깊은가? 그 넓고도 높 깊은 불교철학을 1년 동안 집중적으로 혼신을 다해 지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명상지도까지 해 주니 큰 원력과 깊은 수행력이 아니고는 정말 해내기 힘든 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 서울대 조은수, 안성두 선생님의 요청을 받고 딱 1년만 하자는 생각으로 했는데 벌써 10년이 되었네요. 부처님 가르침을 명상과 함께 가르쳐 줘서 그런지 편안하게 받아들이더군요. 처음에 학점을 잘 줄 때는 2~300명이 몰렸습니다. 학점 인플레이션 때문에 상대평가를 하기 시작하자 6-70명, 적게는 4-50명이 수강하고 있습니다.”
김재성 교수님의 불교철학 수업은 조금 특별해 보인다. 정규 수업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시작한다. 수업 시간마다 질문을 이메일로 받아서 수업하기 전에 답변을 해 준다. 다른 친구들은 뭘 궁금해 하는지 질문을 공유하고 답변을 해 준다. 또한 수업의 전 과정을 녹화해서 유튜브에 올려준다. 바빠서 일찍 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시작한 작업이 이제는 불교를 공부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학생들은 무엇을 궁금해 할까? 학생들의 궁금증이 곧 젊은이들의 궁금증일 것이고, 불교 인구의 노령화를 걱정하는 불교계에서 꼭 짚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1. 불교의 무아윤회가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개체성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나요?
3. 상윳다 니까야에서는 붓다의 침묵을 자아에 대한 그릇된 가정 위에 놓여진 질문들을 배척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사람들, 특히 거의 모든 재가자들은 자아를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붓다는 사람들의 이러한 관점을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이러한 관점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을 배척한 것인가요?
3. ‘불교는 염세주의적이다’라는 비판에 대해 불교계에선 고통을 해결할 수 있기에 낙관주의라는 반론을 제기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회의 불합리함이라 볼 수 있는 문제를 전생의 업과 연결 짓고, 해탈을 바라며 속세와 최대한 분리되어 수행한다는 점에서 염세주의적이라고 볼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비판을 피하기 위해선 불교가 현실 세계의 문제에 대해서 좀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윤회의 업에서 벗어나 불사가 된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아라한들이나 석가모니가 반열반에 든 이후 어디로 가고 어떻게 되나요?
위와 같은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대해 김재성 교수님은 경전을 토대로 일일이 자상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명상에 대한 질문도 많은데, 교수님이 선과 교를 넘나들면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교수님의 남다른 불연, 원력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0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단지 반장이라는 죄(?)로 불교학생회로 차출된 소년 김재성은 평택 명법사에서 불법을 만났다. 열심히 활동한 덕분에 회장이 되고, 여름수련회를 통해 마음에 깊은 감명을 받아 1980년 고3 학력고사를 한 달 남기고 첫 번째 가출이자 출가를 단행했다. 승보종찰 송광사에서 행자생활을 달포 반 정도 했을 때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전단지가 도착했고, 할 수 없이 귀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이듬해 부처님 오신 날 송광사 서울포교당인 법련사로 재출가를 했다. 행자생활을 하면서 수험 준비를 했고, 서울대에 합격, 사미 신분으로 학부 생활과 서울대 총불교학생회 활동을 했다. 서울대에서 동서양 철학을 두루 배우고, 대학원에서는 초기불교를 중심으로 공부하였다. 산스크리트어와 빨리어를 독학하면서 유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유학 가기 전 수행을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미얀마와 인연이 되어 미얀마에서 우 빤디따 사야도의 지도하에 위빠사나 수행을 하게 되었다.
“위빠사나를 한 지 보름에서 20일쯤 지났는데 몸에서 마음에서 굉장히 강렬한 기쁨이 느껴졌습니다. 한 달쯤 지나니까 기쁨은 가라앉고 행복감으로 바뀌더라고요. 또 한 달 보름쯤 지나니까 행복이 가라앉으면서 평온해지더군요. 수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통역을 해 주신 분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다’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초발심시변성정각이라는 말처럼 그때 그 수행 체험이 평생의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김재성 교수는 40여 년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며 공부하고 수행하였다. 초기불교부터 대승불교까지, 간화선부터 위빠사나에 이르기까지 두루 망라하며 공부하고 수행하였기에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을까 싶었다.
“사회에 이익이 되는 관점을 갖게 해 줄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도구를 좋은 마음으로 써라. 직업에 목숨을 걸지 말고, 부와 명예도 좋지만 영혼의 고귀함을 알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라. 성공도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능력이나 노력도 중요하지만 바른 가치관을 갖지 않으면 독이 될 수 있다. 동기가 중요하다. 동기를 잘 가져야 한다.’고 수시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김재성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 깊은 곳에 맺혀 있었던 답답한 기운이 풀어지고 새로운 희망이 샘솟았다. 바른 가치관과 동기를 일깨워주는 것, 불교와 명상이 답이고 희망이다. 불교란 무엇인가? 일곱 부처님은 공통적으로 말씀하셨다.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뜻을 맑히면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선사가 말씀하셨다. “내려놓아라.”
요즘 학생들, 현대인들 모두 불교를 알고 싶어 하고 삶에 도움을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신앙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싶어 하진 않는단다. 그렇다면 불교 공부와 명상으로 인식의 전환을 이루면 어느새 불교적인 삶과 가까워질 듯하다. 부처님께서도 불교적인 삶을 바라시지 않았던가.
“맑게 깨어 있으면서도 심리적으로는 안정되고 고요한 ‘성성적적’의 상태를 생활 속에서 이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싶다”는 김재성 교수, 캠퍼스를 누비는 우리 시대의 수행자, 부처님의 바른 법을 올곧게 이은 여래사에게 찬탄의 박수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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