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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동행 길, 자비(慈悲)
금상첨화(錦上添花) 그러나 최악(最惡) 교도소 수용자들을 위한 기톨릭교회의 활동을 교정사목이라고 한다. 신자들을 위한 미사전례와 교화를 목적으로 한 인성교육을 담고 있다. 나는 대학생 때였던 1975년부터 시작했으니 40년 이상 해온 일이다. 처음에는 빈첸시오회라는 봉사단체에서 방문차 갔었고, 대학가요제 입상 이후는 가수로서 초청공연을 하러 갔으며, 중년 이후는 인성교육이나 교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가톨릭 종교행사의 강사로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전국 대부분의 교도소와 구치소를 갔고 여자교도소에도 갔으며,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주기적으로 가기도 한다. 비교적 자주 가는 곳 중에 서울 남부교도소(구로구 천왕동에 있는)가 있다. 지난 3월에 갔을 때 마침 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겪으신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기 위하여 부활절 전 40일간을 경건하게 지내는 사순절 기간이었다. 또한 올해는 가톨릭교회가 정한 ‘자비의 특별희년’이다. ‘희년’이란 신자들이 하느님 사랑을 깨닫고 잘못을 뉘우치며, 하느님께 돌아가겠다는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마련된 해인데 25년 마다 돌아오는 정기 희년과 특별한 이유로 선포하는 특별 희년이 있다. 그러므로 ‘자비의 특별희년’이란 말 그대로 ‘사랑과 용서를 베풀기 위한 기간’이다.
사순절의 의미를 새기면서 특별희년의 키워드인 ‘자비’를 나누느라고 그 말에 대한 신학적인 접근을 하게 되었다. 하느님은 이 세상 끝날 때 까지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인데 그 사랑의 방식이 군림하거나 주도적 처리방식이 아니라 ‘함께 하심(동행)’이라는 것이다. 성서적 용어로 ‘임마누엘(Immanuel,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 : 마태오복음 1장 23절)’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행복, 불행, 기쁨, 슬픔, 아픔, 분노, 고통 등 우리 삶의 모든 상황에 함께 해 주시는 분인데 특별히 ‘고통 중에 함께 해 주시는 하느님’을 ‘자비의 하느님’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느님을 닮아 자비로워지고 싶다면 ‘다른 이의 고통에 함께 해야’ 한다. 바꾸어 말해서 고통 받는 사람에게서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그 고통을 함께 겪어내는 것이다. 이토록 말도 안 되는 방식의 사랑 때문에 사람으로 오셨다는 하느님 즉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동족 유대인들은 이방인 통치자의 손을 빌려 예수를 죽여 버렸다. 성서신학적으로 볼 때 수 천 년 동안 섬기며 기다렸던 야훼 하느님을 죽여 버린 셈이다. 그리고는 아직까지도 오지 않은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 것은 이쯤에서였다.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셔서 죽기 까지 함께 해 주신 하느님을 성경이 아니라 인문학으로 접근하기 위해서 선택한 텍스트가 이렇다.
198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미국(루마니아 태생)의 유대계 작가 엘리 위젤 (Eliezer Wiesel)은 자신의 체험을 적은 자서전 같은 책 “흑야(黑夜/Night)”에서 죽음의 수용소 아우쉬비츠의 일화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어린 소년이 사소한 수용소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모든 수용자들 앞에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그의 몸이 밧줄에 매달려 몸부림치고 있을 때 위젤은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느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때 위젤의 마음속에는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디에 계시냐고? 바로 여기에, 지금 이 교수대에 하느님은 저 소년과 함께 매달려 계신다.’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그분은 ‘고통당하는 당신 자녀들과 함께 고통당하고 계신다’는 영감의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비의 특별희년’을 맞은 우리도 고통 중에 함께 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닮아 가까운 이웃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겪어냄으로써 자비로워지자고 했다. 너무나 탄탄한 논리와 플롯(plot/구성) 그리고 금상첨화(錦上添花)격인 예화(例話)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결론으로 갈수록 점점 내 목소리는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청취 대상을 고려치 못한 최악의 예화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 강의를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는 말은 그럴 때 쓰라고 있었나보다. 세상에~ 교도소 수용자들에게 하필 교수형에 관한 예화를 들다니~.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피해갔어야 하는데... 아뿔싸! 이발지시(已發之矢/쏘아놓은 화살)요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엎질러진 물)이로다. 그러나 자비를 실천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듣고 있던 수용자들이었다. 아무도 졸지 않고 진지하게 잘 들어주었고 마친 후에는 몇 사람이 다가와서 참으로 감동을 주는 강의였다고 말해주었는데 이 따뜻한 위로가 오히려 실패한 나를 회복시켜 주었다.
자가당착(自家撞著) 경기도 양평의 어느 성당 초청특강 행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전해 들었다. 경춘 고속도로 개통 직후니 2009년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특강을 하러 오시는 수녀님께 인근에 음성 나환자 정착촌이 있기에 그분들이 주일 미사에 상당수 오시게 되니 참고하시라고 미리 도움말을 드렸다고 한다. 일이 꼬이느라고 개통 직후임을 감안 못한 채 고속도로로 들어섰는데 그야말로 장사진이었고 미사를 마친 시간에야 겨우 도착을 하셨다. 한 숨 돌릴 여유도 없이 부랴부랴 강단 앞에 선 수녀께서 그리 된 연유를 인사삼아 풀어놓으셨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도움말도 다 까먹고 이렇게 말했다.
“길 닦아 놓으면 문둥이가 먼저 지나간다더니, 경춘 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고 울둥이, 잡둥이, 너나 할 것 없이 다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길이 막혀서 겨우 이제야 도착할 수 있었네요.”
특별한 강의를 들으려고 평소보다 더 많이 모인 청중들이 일순간 숨도 멈춘 채 모두 박제(剝製)처럼 한꺼번에 얼어붙었다. 아무리 적절한 비유라고 해도 결코 해서는 안 될 곳이 있는데 바로 그날 그 자리였던 것이다. 순간 무거운 정적(靜寂)에 당사자들도 모두 스스로 놀랐고, 본당 측에서 대표가 나와 ‘그냥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비유를 말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었다’고 해명을 했지만 정착촌 사람들은 이미 빠져나간 후였다. 어떤 표현도 하지 않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조용히 돌아갔다. 말한 사람과 그 말을 들은 사람 모두가 민망함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그날의 강의는 속된 말로 죽을 쑨 형국이었다고 한다. 달변(達辯)도 높은 인지도도 속수무책이었음은 물론이다. 더구나 그날의 강의 내용은 ‘성서 속에 등장하는 비천한 사람들의 해방과 구원을 통해 본 하느님의 자비‘였으니 자가당착(自家撞著)이 아닐 수 없다. 말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고 삶을 이끄는 것이다. 그러니 닦아 놓은 길을 문둥이가 먼저 지나가면 안 되는 것이고 새로 뚫어 놓은 경춘 고속도로는 훌륭한 명강의를 하러 다니는 수도자를 위한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어쩔 수 없다. ’자발적 선택의 가난‘에 매료되어 모든 것을 버리거나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에게도 함께 가는 자비의 동행 길은 여전히 좁고 험하고 멀기만 한 길인가 보다. 주객전도(主客顚倒) 화창한 오월의 어느 날이었다. 노인대학을 새로 시작하는 안산의 어느 성당에 초대되어 개강 기념 특강을 하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더 이상 아무 할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어르신들과 함께 복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나보다 앞서 인생길을 걸어가신 분들을 위로하려는 마음을 간직한다면 얼마든지 기쁘고 행복할 수 있다. 그날도 그랬다. 평화와 이웃사랑에 관한 노래와 복음이야기를 듣고서 모두들 어린아이들처럼 기뻐했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생산성 없는 잉여세대라는 이름을 벗고, 마음만 먹으면 일상의 곳곳에서 기쁨을 일구는 파수꾼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간직할 수 있었다.
강의 후 어르신들과 점심을 먹는다고 하여 기쁜 마음으로 함께 했다. 동석하신 본당신부께서 식사기도를 하기 전, 노인대학 학장님께서 한 말씀 하셨다.
“오늘 점심은 신부님께서 베풀어 주신 겁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먹읍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거지만, 그날은 너무 심하다고 느껴졌다. 연로하신 분들에게 베푼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촐했기 때문이다. 큰 그릇에 담긴 쌀밥을 먹을 만큼 옮겨 담고 시래기 국을 받은 다음 반찬은 김치와 잡채 두 가지였다. 이런 차림으로도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기에 차린 음식이 보잘 것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과연 이것이 베풀어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어르신들은 여러 가지 반찬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오셨다. 지난 해 돌아가신 우리 아버님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동네 곳곳에서 어르신들께 베푸는 식사에 다녀오셨다. 무얼 드셨는지 말씀하실 때 보면 집에서 자식에게 효도 받는 것은 결코 아닌 성 싶다. 얼마나 다양한 차림인지 가끔씩 따라가 보고 싶을 정도이다. 물론 그 음식이 ‘좋은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혹은 정성이 깃들었는지?‘를 따진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아버님은 그저 맛있고 고마울 따름이라고 하셨다.
또한 본당 공동체에서 베푼 것이라면 몰라도 본당 신부께서 베푸셨다는 말이 어불성설이다. 본당신부께서 베푸신 것이라면 자신의 돈을 털어야하는데 그런 일은 거의 없고 본당공동체에서 계획을 세우고 예산지출을 했을 것이며 본당신부께서는 단지 사목회 총재라는 자격으로 그것을 허락한다는 결재를 했을 따름이다. 실제로 본당신부께서 본당 신자들께 직접 베풀었던 사례가 없지 않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나와 형제처럼 지내는 부산교구의 석찬귀 신부께서 본당사목시절 자신의 영명축일에 아주 깜찍한(?) 이벤트를 했다. 늘 신자들에게 얻어먹기만 했으니 일 년에 한 번 쯤은 신자들에게 밥을 사드리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돈 400만원을 들여 전 신자에게 점심을 낸 것이다. 한 그릇에 오천 원인 이 밥을 먹고 많은 신자들이 감동으로 눈을 적셨다고 하니 미루어 짐작할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톨릭신자들 사이에는 심심찮게 나도는 우스개 얘기가 있다. 신부와 조폭과 같은 점 다섯 가지가 있는데 아래와 같다. 1) 검은 옷을 입고 다닌다. 2) 늘 똘마니들을 몰고 다닌다. 3) 직위고하 연령무시하고 반말을 해댄다. 4) 자신의 구역이 있다. 5) 대중음식점에서 일체 밥값을 내지 않는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이런 얘기도 있다. 신부와 스님과 목사가 함께 식사를 했는데 누가 밥값을 냈을까? 정답은 식당 주인이라고 한다. 서로 내지 않으려고 눈짓으로 싱갱이를 하는 걸 곁에서 보고 있던 주인이 피곤해서 그냥 자기가 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물론 나는 가까이 지내는 신부들로부터 자주 식사 대접을 받고 살아왔으니 저런 얘기에 다 동의할 수 없다. 그런 신부들 중에서도 가장 감동을 주었던 분은 단연 호인수 신부(전 우리신학연구소 이사장/ 현 인천교구 부개동 성당 주임신부)이다. 조폭과의 차별성을 의식하시는지 검은 옷은 거의 안 입고 다니며, 인심 좋은 시골 아저씨 같은 소박한 차림이고,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는 것은 봤어도 한 번도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밥값과 술값을 먼저 내셨으며, 옆 테이블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계산은 기본이셨다. 또한 나와 만났다 헤어질 때는 집에 있는 내 가족들을 위해 가까운 제과점으로 가서 빵과 과자를 사주셨다. 한 두 번이 아니라면 ‘베풀며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분’이라고 생각하여 무방하다. 언젠가 지인들과 함께 내 차로 어딘가 다녀오신 적이 있다. 좁은 시장 골목을 지나는데 노상 해물철판구이집(길거리 붕어빵 포장마차)이 있었다. 누군가 먹고 싶다고 하자 호신부께서 바로 차에서 내려 사오셨다. 차안에 더 젊은 사람도 둘이나 있었고 차가운 날씨인데도 회갑이 지난 분이 차에서 내려 붕어빵틀 앞에서 기다렸다가 사오는 모습은 감동이었다. 도착지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자재들로 출입문을 열기가 쉽지 않자 호신부는 지체하지 않고 내려서 자재들을 치우고 문을 연 다음, 차가 지나가고 나자 다시 원위치 해 놓고 인부들께 ‘일하시는데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말하며 꾸뻑 절을 했다. 막일하는 분들에게 보인 이 존중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있을 것 같다.
그러나 호신부께는 매우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이런 삶의 모습이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이지는 않다. 주어진 자격이나 권력으로 군림하지 않고 동행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군주에게나 성직자에게나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인가보다. 그렇기에 플라톤과 함께 소크라테스의 직제자였고, ‘활동하는 삶(Vita Activa)’을 역설했던 크세노폰(Xenophon/기원전 430년경~354년경)은 페르시아의 대왕에게 참다운 군주(혹은 지도자)의 길을 제시한 『키루스의 교육』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버지가 말했다. “사랑받기를 원한다면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 그러나 원한다고 해서 항상 은혜를 베풀 수는 없다. 대신 너는 그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기뻐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함께 슬퍼해라. 그들이 고통 받고 있으면 도우려고 노력하고, 그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닥치지는 않을지 항상 염려해야 하며 실제로 닥치지 않도록 노력도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너는 그들과 동행(同行)해야 한다.
크세노폰이 제시한 이 동행(同行) 길은 기원전 8세기경에 이사야가 예언했고 예수 시대의 복음사가 마태오가 예고했던 기독신앙의 핵심인 임마누엘 신앙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이 동행 길은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가 모두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할 원영성(元靈性)이건만 그럴만한 자격과 기회만 주어지면 동행하기보다 군림하려 한다면 하느님의 자비와는 거리가 멀다. 하느님께서도 피해 가셨던 길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한감우(久旱甘雨) 이제 이 아름다운 자비의 동행 길에 관한 희망을 나누고 싶다. 그 길은 누가 이끌어주는 것도 아니고 그 길로 가야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으며 그 길을 가면서 기쁘고 행복하지 않다면 언제든 그만 두거나 왔던 길로 돌아갈 수도 있는 그야말로 자발적 선택의 길이다.
평신도인 나와 친형제처럼 지내는 신부께서 회의 차 서울에 왔다. 회의를 마치고 식사가 계획되어 있다는데도 나는 전화를 걸어 내가 점심을 살 테니 나오라고 했다. 형의 고마운 초대를 거절 못하고 전철로 시내까지 나오느라 식사시간이 늦어져서 배가 많이 고팠을 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유기농 재료로만 조리를 한 음식은 깔끔하고 맛있었지만 값은 조금 높았다. 계산을 위해 건넨 내 신용카드에서 자꾸 에러메시지가 뜨자 곁에서 보고 있던 신부가 현금을 내어, 그날 식사는 내가 샀지만 돈은 손님이 냈다. 그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이런 사연을 듣게 되었다.
교포사목을 하던 중 한국에서 오신 선배신부를 모시고 외식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 온지 오래 되지 않았기에 아직 지리도 잘 모르고 현지문화에 적응이 안 되었기에 사목회 총무님께 전화를 하여 도움을 요청했다. 함께 식사를 잘 하고 계산을 하러 가니 벌써 계산이 되어 있었다. “에이~ 총무님. 바쁘신 시간에 나오셔서 도움을 주신 것도 고마운데 계산까지 하시면 제가 죄송해서 어떻게 해요?” 라고 말하자, 곁에 계신 선배신부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허허허, O신부. 괜찮아. 괜찮아. 신자 지갑은 다 신부 꺼야. 허허허.” 라고 하셔서 어찌나 낯이 뜨거운지 얼굴이 화끈거렸고, 나중에 당사자인 총무께서도 말씀하시길 듣는 사람마저 쑥스러워서 몹시 당황스럽고 민망했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습관의 동물이다’라고 말했다. 고마운 일을 자주 겪게 되면 고마움을 잊기 쉽고, 자주 베풂을 받다보면 베푸는 것을 잊기 쉽다. 더 나아가 베푸는 것인지 베풂을 받는 것이지 조차 잘 분간 못하기도 할 뿐 아니라, 베풂에 응하는 것 자체를 오히려 베푸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쯤 되면 주객전도(主客顚倒)라고 해야 하는데,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식별하게 된다. 그러니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늘 깨어 있으시오. 여러분께 하는 이 말은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마르꼬 13,35-37)’라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길 일이다. 프랑스의 비평가인 폴 부르제(Paul Bourget)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사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나중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게 된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잘 내려가고 있어요. 점심 잘 먹었습니다. 형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내가 초대해 놓고 밥값을 내게 해서 미안해. 신부님. 잘 내려가’라고 답을 했더니 이렇게 답신이 왔다. ‘신부 지갑은 신자 꺼’ 순간 울컥한 가슴에서 눈물이 솟아 나왔다. 참된 베풂에 대한 희망의 눈물이다. 구한감우(久旱甘雨 - 오랫동안 가뭄이 계속되다가 내리는 단비) 라고 했던가.
‘여러분 가운데 의인이 한 사람만 있어도 하느님께서는 멸하지 않으실 것입니다.’(로제복음 1장 4절)
김정식 곡 눈물2.44.mp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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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경춘고속도로 개통이야기 위로되네요 샘같이 센스있는 분도 이런 실수를 하시다니요..
말실수 잘하는 제게요 ㅋㅋ
제가 한 실수가 아니라 어느 수녀님이 그랬어여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