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어머니가 곱게 말아놓으신 양말을 두 손에 들고 장롱 위로 던지던 시절부터 농구는 나에게 특별한 운동이었다. 농구 점보리그는 나에게 있어서 꿈의 향연이었다.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올리고 상의를 하의밖으로 빼낸 채 멋진 페이드 어웨이 슛을 날리던 이충희는 나에게 우상이었다. 지금은 작고한 김현준이 활약하던 삼성과의 라이벌전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TV앞에 앉아 그들의 멋진 경기를 관람했던 그 시절. 그것은 나에게 무엇보다 큰 행복이었다.
행여나 현대가 삼성에게 지면 TV앞에서 엉엉 울어대던. 그렇게 현대와 삼성의 라이벌이 평생을 갈 것 같던 시절. 한 까까머리 대학생이 코트를 휘젓고 다니면서 내 눈에 꽂혔다. 중앙대학교 가드 허재. 이충희의 현대가 경기에 지는 것을 두 눈뜨고 볼 수 없었던 나에게 그의 활약이 이뻐보일리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 턱이 만무하던 허재는 김유택, 한기범, 강정수, 정덕화 등과 함께 기아로 가더니 농구대잔치를 석권해댔고 당연히 내 눈엔 더 "밉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밉상"이 내 "마음"에 들어와버린 계기가 있었다. 바로 97~98 시즌 프로농구 챔피언전. "퇴물" 취급을 받으며, 시즌 내내, 구단과 감독한테 버림받은채 벤치신세를 면치 못하던 그가. 갑자기 화려하게 코트를 누비며 뛰어다니고 있었던 것이었다. 챔피언결정전 7경기동안 그의 기록은 다음과 같았다.
1차전 : 29득점, 6어시스트, 5리바운드
2차전 : 30득점, 11어시스트, 2리바운드
3차전 : 21득점, 5어시스트, 3리바운드
4차전 : 27득점, 1어시스트, 3리바운드
5차전 : 17득점, 3어시스트, 8리바운드
6차전 : 22득점, 6어시스트, 3리바운드
7차전 : 15득점, 13어시스트, 6리바운드
그냥 정규시즌도 아니고, 모두가 젖먹던 힘까지 다해 최선을 다해 뛰는 챔피언전. 옛날처럼 군계일학으로 혼자 코트를 누빌 수도 없는, 떡대같은 외국인 용병이 둘 씩이나 포진되어있는 상황에서 나이 서른넷의 그가 만들어낸 성적표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저 성적이 정상적인 몸으로 기록한 것도 아니고, 농구선수에게 "생명"이나 다름없는, 골절된 손가락을 붕대로 휭휭 치감은 오른손으로 만들어낸 기록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감동이었다. 그 때부터 그는, 이충희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나의 "농구 영웅"이 되었다.
그런 그가. 오늘 생애 마지막 경기를 가졌다. 그의 마지막 경기가 승리이자 팀의 우승이기를 바랐던 나를 포함한 그의 팬들의 바램과는 달리 TG삼보는 오늘 패했고, 챔피언전 트로피도 KCC에게 내주었다. 마지막 4쿼터. 벤치에 서서 팀의 패배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그의 눈은, 곧 이게 그의 마지막 경기임을 반증해주고 있었다.
사실 그는 지난 시즌에 은퇴하는게 옳았을지 모른다. 결국 그가 원하던 우승까지 이뤘으니. 하지만 그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 시즌만 더 뛰겠다고 선언했고, 또 그렇게 1년간을 코트를 누볐다.
올해로 나이 마흔. 2쿼터에 그가 선보인 멋진 비하인드 백패스는, 전성기의 허재를 기억하는 모든 팬들의 가슴속에 아마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언젠가 다가올 나의 "마흔"도 저렇게 멋있을 수 있길.
※ 통학생 블로그 : http://misoni.eglo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