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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이 되면서 동해에는 양미리가 풍어를 이룬다. |
ⓒ 최백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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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처음 잡은 양미리는 소매를 하지 않고 트럭에 담아 수산시장으로 반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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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의 겨울은 바다로부터 온다. 대관령의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면 동해바다에는 양미리가 난다. 겨울농사가 시작된 것이다.
조그마한 배에 하얀 그물을 가득 싣고 포구를 떠난 배는 푸른 바다에 한 없이 실타래를 풀어놓고 아침을 기다린다. 사천항의 아침은 밭두둑처럼 그물을 늘어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배를 따라 들어오는 갈매기가 하늘을 가득 메울 즈음에 선장과 힘센 아낙은 양미리가 빼곡하게 걸린 그물을 끌어내린다.한줄 두줄 두둑이 만들어지면 김을 매듯 양미리를 하나하나 그물에서 떼내기 시작한다.
하루 품삯은 플라스틱 대야수로 정해진다. 누가 몇 대야의 양미리를 벗겼느냐가 하루 벌이의 많고 적음을 가른다.
옆 사람에게 말을 건넬 틈도 없이 한 손으로는 그물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몸뚱이를 잡고 잡아당기면 그만이다.
첫 출어로 잡은 양미리는 소매를 안 한다. 용달 트럭으로 한 차씩 실어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보낸다. 차로 실어낼 만큼 많이 잡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양미리는 강릉에서 고성군 앞바다에서까지 잡힌다. 굵은 모래 속에 몸을 감추고 있다가 동트기 전에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 한 번씩 수중으로 튀어오른다. 어부들은 그 모래 위에 이불처럼 그물을 깔아놓아 양미리를 잡는다. 바다에 봄이 오는 3월까지 한철 농사인 것이다.
아구도 회 뜬다고? 쫄깃쫄깃 맛있구나
양미리는 뼈째 먹는 생선으로 소금구이·볶음·조림·찌개 등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속초 등의 산지에서는 회로 먹기도 한다. 지방에서는 '야미리' '앵미리'라고도 부른다. 겨울철 집집마다 추녀 끝에 양미리를 엮어 매달아 놓은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천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별미는 자연산 회. 번듯하게 생긴 횟집들도 많지만 내가 즐겨 찾는 곳은 선장들이 운영하는 조그만 횟집. 사실 횟집이라 할만한 규모도 없는, 어부들의 식사 공간 정도되는 곳이다. 별미는 이런 곳에 있다. 어부의 아낙이 끓여내는 매운탕 맛은 횟집에 비교할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손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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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물에 걸린 꽃게는 갈고리를 이용해서 조심스럽게 벗겨야 한다. 살아있어야 제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 최백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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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항 오른쪽에 길다란 가건물이 늘어서 있다. 용광호 선장 박복천(75)씨 부부는 그물에 걸린 게를 벗겨내고 있다. 가을 광어철을 따라 나는 동해안 참게다. 오늘은 파도가 심해 해조류가 그물에 가득하다. 할 일이 그만큼 늘었다.
"구경하는 것도 힘드니 아예 저쪽으로 비켜서시오. 세상 편하게 살려면 바다 근처에는 오지 말아요."
아침부터 시작한 일이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박 선장 부인의 말이다. 먹을 만한 횟거리 하나 일러 달라는 말에 "아구 잡숴보셨소?"한다. "아귀도 회를 먹습니까?" 되물으니, 정말 맛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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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약스럽게 생긴 아귀. 날것으로 먹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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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커서 심술궂게 생긴 아귀. 배를 가르니 위속에서 손바닥만한 새끼 아귀가 나왔다. 살점을 발라서 접시에 담고 나머지는 매운탕 거리다. 쫄깃쫄깃한 맛이 다른 회에 비교할 데가 없다. 얼큰한 매운탕은 덤이다. 3만원으로 이처럼 푸짐하고 맛난 회를 먹을 수 있을까?
이곳에서 먹을거리에 대한 의심은 필요없다. 모두 어부들이 직접 잡은 자연산이다. 양식고기를 팔다가는 이 곳을 떠나야 한다. 전문횟집처럼 상차림은 없지만 양과 맛은 최고다.
좀더 추워지면 어부들이 드럼통에 불을 피워 놓는다. 그 때는 지나가던 사람도 양미리 구이를 맛볼 수 있다. 이글거리는 숯불 위에 굵은 소금이 뿌려진 양미리.
소금기 밴 겨울바람이 불어도 삶은 멈춤이 없다. 바다를 터전으로 겨울철 농사를 짓는 사람들. 이제 곧 사천항에는 심퉁이(도치)·양미리가 풍어를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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