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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하면 외모, 혹은 모성과 연결짓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외모를 가꾸고 결혼해 아이를 낳을 것을 종용받는다. 그러나 반대로 장애여성은 오히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을 주변에서 말리고 장애여성이 과연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장애여성 역시 자신의 임신과 출산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고 아기를 가졌다는 기쁨보다는 건강한 아기를 출산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더 많아지기도 한다. 장애여성은 여성으로서의 기본적 모성권조차 보호받지 못한 채 차별받고 있다. 장애가 심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상관없이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욕구는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장애여성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한 비장애여성들과 동일한 건강권, 양육의 사회적 역할 분담 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로그아웃 인터뷰에서는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박선희(가명·39·뇌병변장애 1급) 씨의 모습을 담았다.
“어서 오세요. 방금 전쟁을 막 치르고 난 뒤에요”
성북구의 한 국민임대아파트. 오전 10시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박선희 씨는 7살 큰아들을 막 유치원으로 보내고 한숨 돌리는 중이었다. 방에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던 둘째 아이(5살)는 엄마 뒤로 숨으며 낯을 가렸다. 아이 키우는 집이 으레 그러하듯 한쪽 벽면이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가구에는 크레파스로 낙서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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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희씨는 현재 7살, 5살 두 아이를 키우며 성북구 국민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비마이너
“아이가 있어서 뜨거운 차 종류는 드릴 수가 없네요.”
기자를 방으로 안내하고 나서 선희 씨는 마실 것을 내왔다. 보통 무엇을 드시겠느냐고 묻는데 선희 씨는 그냥 주스를 내왔다. 아이 때문에 뜨거운 차 종류는 드릴 수가 없다는 말을 듣자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기자는 ‘아이를 키운다는 건 신경 쓸 게 참 많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아침마다 전쟁이죠. 남편이 회사가 멀어서 아침 7시 정도에 집에서 나가거든요. 그럼 남편 아침 챙겨주고 나서 큰아이 깨워서 밥 먹이랴, 둘째 아이 깨워서 씻기랴 정신이 없어요. 게다가 큰아이가 밥을 잘 안 먹으려고 해서 승강이를 벌이느라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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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씨는 남편 출근시키랴 두 아이 깨워서 씻겨 유치원 보내랴 아침이면 매일 전쟁을 치른다. ⓒ비마이너
아들은 차를 태워 보내는 유치원에 보내지만, 둘째인 딸은 아직 어려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집 근처 유치원에 보낸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비가 와서 딸은 좀 늦게 보내기로 한 듯 선희 씨는 방에서 아이와 함께 놀아주었다.
선희 씨가 남편을 만난 것은 200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무던히도 애썼지만, 매번 면접에서 떨어졌다. 선희 씨는 뇌병변장애 1급인데 휠체어를 타지 않고 걷는다. 문제는 언어장애. 기자가 듣기에는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었으나 회사에서는 번번이 언어장애를 이유로 탈락시켰다. 선희 씨는 자신이 배운 게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해 각종 자격증에 도전하고 강의를 들었다. 2002년 서울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웹디자인 과정을 수강했다. 거기서 남편을 만나 2003년에 결혼했다. 남편은 지체 4급 장애인이다. 신접살림은 도봉동에서 시작해 방이 두 개인 상계동 반지하로 옮겼다. 길옆이라 흙먼지가 다 들어오는 등 주거 환경이 좋지 않았다. 그때 임신을 했다.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아이가 혹시 장애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제일 컸어요. 물론 제가 휠체어를 탈 정도는 아니어서 다른 장애여성과 달리 병원에 대한 접근성도 좋았고 출산도 별 어려움이 없다는 이야기를 의사선생님에게 듣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그게 제일 걱정이었죠.”
아이 씻기기 힘들어 물수건으로… 아이 안고 병원 다닐 때 넘어질까봐 조마조마아이를 낳자 임신 때의 걱정과는 또 다른 육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석 달 동안 산후조리서비스를 해줬고 일주일에 세 번 홈헬퍼가 와주긴 했으나, 그것만으로 육아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3개월여의 산후조리서비스가 끝나고 찾아온 홈헬퍼는 오전 10시에서 정오까지 하루 두 시간뿐이었다. 그 외 시간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온전히 선희 씨의 몫이었다. 친정이 멀어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제가 몸이 불편하니 아이를 씻기기가 힘들더라구요. 목욕탕이 좁고 미끄러워요. 제가 미끄러운 곳에서는 잘 넘어지거든요. 그래서 홈헬퍼가 오지 못할 때는 수건에 물을 묻혀서 몸을 닦아주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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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씨는 인터뷰 내내 드문드문 가사일을 해가며 응답했다. ⓒ비마이너
더구나 큰아이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고 예민했다. 분유도 다른 또래보다 3분의 1밖에 먹지 않고 잠도 잘 자지 않았다.
“큰아이가 몸이 약해서 잠도 오래 자질 않고 분유도 거의 먹질 않았어요. 다른 아이들은 한번 자면 한두 시간은 낮잠을 자는데 우리 애는 15분도 채 잠들지 못했죠. 외출은커녕 집안에서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이는 것도 포기했다. 아이가 잠든 동안 이유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전화벨 소리만 나도, 약간의 인기척만 들려도 아이는 깨서 울어댔다. 선희 씨는 즉석 이유식으로 대신해야 했다.
원래 아이를 키울 때는 부모가 잠이 모자라기 마련이지만, 유독 잠을 못 자는 큰아이 덕에 잠이 더 부족했다. 오전에 홈헬퍼가 오는 두 시간만이 아이를 맡기고 맘 편히 잘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외출이 힘드니 친구들과의 연락도 다 끊어졌다.
큰아이는 자라면서 천식과 잦은 병치레로 자주 입원했다. 일주일에 세 번 오는 홈헬퍼에게 두 번은 병원으로 오라고 요청했을 정도다. 집안 살림은 돌볼 여력이 없었다. 선희 씨는 그때가 제일 힘든 시기였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워낙에 잘 넘어지는데 아이를 안으면 시야가 가려 넘어질 위험이 더 커지거든요. 아이를 안고 병원에 갈 때마다 아이가 넘어질까봐 조마조마했어요”
집과 병원을 오가는 세월이었다. 큰아이는 지금도 천식 때문에 병원에 자주 간다. 선희 씨네는 의료급여 2종이긴 하지만, 많을 때는 한 달에 약값이 10만 원이 넘어 부담이 크다. 아이가 입원이라도 하면 한 번에 30~40만 원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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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씨가 아이에게 점퍼를 입히고 있다. 아이는 점퍼를 입지않겠다고 엄마와 실갱이를 벌였다. ⓒ비마이너
아이와 함께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면서 선희씨는 인터뷰를 드문드문 이어나갔다. 아이는 그림을 그리다말고 갑자기 의약품상자를 꺼내 밴드를 손에 붙이겠다고 떼를 썼다. 선희 씨는 아이를 놀이방에 데려다 주어야겠다며 일어섰다. 비가 오고 날이 쌀쌀해서 아이에게 점퍼를 입히려고 했지만 아이는 안 입는다며 고집을 부렸다.
우산을 들고 나선 길. 선희 씨는 걷기에 문제가 없지만, 넘어지기가 쉬워 장애인경사로를 이용했다. 찻길을 건널 때는 아이가 엄마의 손을 빼려고 하자 선희 씨는 손목을 빼지 못하게 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아이가 위험한 길로 달려가면 아이를 붙잡을 만큼 빨리 달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육아에 큰 난관, 그러나 더 큰 어려움은 사람들의 시선선희 씨는 아이를 놀이방에 데려다 주고 돌아와서 아이가 어지럽힌 방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기자에게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라고 한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란다.
박 씨 부부는 결혼 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 국가에서 지급되는 돈은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을 합쳐 월 110여만 원 정도다. 얼마 전부터 그나마 남편이 일을 시작해서 재정적인 여유가 조금 생기긴 했다. 하지만 국민임대아파트 관리비 등으로 30만 원, 큰아이 약값과 부대비용으로 한 달에 십여만 원, 보험료와 큰아이 태권도 학원비까지 내고 나면 매달 마이너스 재정이다.
남편이 4대 보험이 되는 안정된 직장으로 옮겼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기초수급자에서 탈락될까봐 감히 꿈도 꾸지 못한다. 많은 기초생활수급자가 일을 하고 싶지만, 이런 제도상의 문제로 일도 못하고 한 달에 40만 원(1인 기준)으로 근근이 먹고 사는 형편이다.
“사실 저희 부부만 있다면 기초수급자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요. 저희 둘은 어떻게든 먹고 살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 교육 때문에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할까봐 조마조마해요.”
기초생활수급자는 교육급여가 나오기 때문에 고등학교까지 학비가 면제된다. 대학은 비율이 축소되긴 했지만 장학금이 지급된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손 씨는 자녀가 하고 싶은 공부를 경제적 이유로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다.
그래서 아이의 교육을 지원해주는 학습지원도우미 서비스가 반갑다. 가사와 육아를 돕는 홈헬퍼 서비스는 아이가 크면서 학습을 지도하는 학습지원도우미 서비스로 대체됐다.
“제가 말이 어눌해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한계를 느껴요.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 오는 학습지원도우미 서비스가 참 도움이 돼요.”
하지만 시간대가 다양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큰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5시. 학습지원도우미 선생님이 오실 수 있는 시간은 오전 11시 또는 오후 2시다. 학습지원도우미 선생님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오후 늦게 방문할 수가 없다. 결국 선희 씨는 오전 11시를 택했다. 대신 선생님이 오시는 수요일과 금요일은 큰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선희 씨가 온종일 돌본다.
“아이들 장난감도 좋은 것 사주고 싶고, 좀 더 다양한 교육을 받게 해주려면 저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해요. 장애 때문에 다른 곳은 취업이 안 되니 복지관 작업장에라도 일하고 싶은데 아이들 봐줄 사람이 없으니 그것도 맘처럼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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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씨는 장애여성이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비마이너
하지만 선희 씨가 아이 키울 때 가장 힘든 건 경제적 어려움이나 자신의 장애가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이다. 선희 씨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 등 공공장소에 갔을 때 사람들이 “장애인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또는 “엄마 잘못 만나서 아이가 고생하는구나”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힘들다.
“아이가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더라구요. 저한테 그런 얘기 듣기 싫다고 하더라구요.”
선희 씨는 아이가 받은 상처 얘기가 나오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눈물을 흘렸다. 그럴 때마다 “저 사람들이 엄마를 잘 몰라서 그래”라고 얘기해주는 게 전부다. 아이의 속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렇게만 얘기했는데도 엄마를 이해하는 것 같아 고맙다.
아직 엄마의 장애에 대해서 아이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대화를 시도한 적은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엄마의 장애를 받아들이도록 할 생각이다.
“장애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사람들의 선입견입니다. 물론 저보다 몸이 더 불편하신 분들은 더 어려움이 크겠지만 그렇다고 아이 키우기에 소홀한 건 아니거든요.”
인터뷰를 마치고 아이가 집에 오면 놀이터에 데려갈 계획을 세우며 선희 씨는 다시 주방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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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장애여성에 관한 출산지원 정책 어디까지 왔나?
지난해 12월 31일 한나라당 단독으로 국회에서 통과시킨 예산안에서 전체 장애인 관련 예산은 소폭 증액됐으나, 기초장애연금,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등 주요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그리고 이 중 중증장애여성 출산 지원을 위한 최소한의 예산 4억8000만 원은 아예 책정조차 되지 않았다. 더구나 중증장애여성이 출산할 경우 도우미로 활용할 수 있었던 활동보조서비스 증액분 335억 원 역시 삭감됐다.
그동안 장애여성 단체들은 중증장애여성의 출산 시 최소 100만 원 이상의 출산지원금을 줄 것과 일부 지자체의 서비스를 정부 차원에서 확대하라고 요구했으나, 국회에는 복지부의 20만 원 지원 안이 제출됐고, 예산안 의결에서 이마저도 무산된 상태다.
지자체 중 서울시의 경우를 보자면 12개 구의 장애인복지관에서 저소득 중증장애여성의 산후조리 서비스와 가사와 육아를 지원하는 홈헬퍼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예산축소로 하반기에는 이 서비스마저 축소될 예정이다. 서울시립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 여성지원팀의 송은아 팀장은 “예산이 올해부터 축소되어 하반기부터는 홈헬퍼 서비스 등을 몇 명에게나 지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