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은 흐른다.
박외도
대대로 이어온 유구한 역사 속에 유유히 흐르는 가야 신라의 문화가 찬란히 빛나는 유서 깊은 낙동강, 그 강이 낳은 김해평야에서 그 강물을 먹고 마시며 자랐다. 낙동강은 나의 어릴 때의 어머니 젖줄 같은 고향이었다. 나의 고향은 북쪽으로 1km쯤 떨어진 곳에 낙동강이 흐르고 지류인 샛강이 마을 앞으로 흘러 일찍이 강물을 접하였고 헤엄을 배우기 전에 물에 빠져 죽을 고비도 넘겼다 덕분에 헤엄을 빨리 배워 물과 순응하며 자랐다. 우리는 이곳에서 멱을 감으며 대칭이 조개들을 잡고 잉어 붕어 가물치들을 잡기도 하였다. 일본강점기에 곡물을 수탈해 가기 위하여 강둑을 만들었다고 하며, 강둑을 만들기 전에는 처녀가 태어나서 시집가기까지 쌀 두 말을 못 먹고 시집갔다는 설이 있었다, 때로는 홍수로 물난리를 겪어야 했고 가뭄에는 모천인 낙동강의 수위가 낮아 농민들이 삽으로 샛강 바닥에 고랑을 파고 물을 퍼 올리기도 하였던 파란만장한 삶을 보듬어 안고 대대로 이물로 농사를 짓고 마셔야 했다. 나는 손자의 손을 잡고 만덕 뒷산에 올라 모래퇴적으로 만들어진 삼각주를 빙 돌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우리네 인생살이도 저 강물과 같이 파란만장한 삶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였다. 강물이 끝없이 흘러오고 흘러가듯 우리네 인생도 생로병사의 법칙을 따라 끊임없이 순환하여 태어났다가 사라지고 또다시 후손들이 태어나 대를 이어 가는가 보다.
낙동강의 최종 발원지는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못’이라 하며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강이다. 남한 지역에서 가장 긴 강이고 한반도에서는 압록강 다음으로 길다. 발원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강 유역이 영남 지방에 있어 영남의 젖줄이라고 부른다. 태백시에서 발원하여 최상류 지역은 경사가 가파르지만, 하류 지역인 밀양시 삼랑진읍 양산시 물금읍 사이 구간은 강물이 잘 흐르지 않아 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홍수가 자주 났고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오는 현상도 심했다. 예로부터 육로 교통이 발달하지 못하고 교각이 발달 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나룻배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강을 건너 장 보러 가는 사람들, 특히 농민들은 집에서 기른 소와 돼지도 싣고 강을 건넜고. 상급 학교에 가는 학생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김해 하구에서는 소금이나 해산물을 싣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해산물을 팔았고 인근에서 생산되는 삼과 곡물을 사서 되돌아갔다. 그러나 급격한 경제발전으로 육로 교통망이 발달하자 나룻배와 뱃사공은 흔적도 없이 살아졌다.
봄이면 낙동강 뚝 에 노란 민들레꽃이 지천으로 피었고 나비가 한가롭게 날아서 꽃을 희롱하고 날이 따뜻해지면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피어오르고. 그 강 언덕길을 따라 우리는 소를 먹이며 소꼴을 베기도 하였다. 이 낙동강 둑이야말로 어린 시절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푸른 융단 같은 잔디는 우리의 초록 꿈을 키워주었던 유일한 놀이터였다.
홍수가 나면 황토색 강물이 범람하였으며 우리 마을에서도 낙동강의 돛단배의 돛이 보이기도 하였다. 낙동강 주변의 샛강이 있는 밭에는 보리, 무, 배추, 참외, 수박, 삼, 농사를 많이 지었다. 홍수가 나면 낮은 지대의 곡식들은 다 물에 잠겼다. 홍수로 인해서 초가 집채가 떠내려오면 지붕 위에는 소가 올라가 있기도 하였고 돼지가 올라가 떠내려 오기도 하였다.
나무토막들이 떠내려오면 그것들을 건져서 땔감으로 사용하기도 하였고 수박이며 사과가 떠내려오면 그것들을 주워 먹기도 하였다. 홍수로 더 넓어진 물길이 범람하면 확 트인 강물 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또 낙동강 변에는 삼밭이 많았고 큰 가마솥이나 드럼통을 길게 반으로 잘라 걸어놓고 삼대를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말리는 작업을 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가을이면 바다에 사는 연어 떼가 알을 낳으러 올라오면 우리는 발가벗은 맨몸으로 고기를 몰아가서 앞으로 엎어지면서 두 손으로 움켜쥐면 고기가 간혹 잡히기도 하였다. 그만큼 물도 맑고 깨끗하였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낙동강 금빛 모래밭을 한없이 걷고 싶다.
그 당시에는 부산 외갓집에 일 년에 두세 번씩 놀러 가면 새벽마다 큰 양철 동이에 재첩국을 이고 다니면서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싱싱한 재첩국 사이소.” 하는 아줌마들의 외침이 골목마다 누비며 다녔고, 바닷물과 강물이 썪여 만나는 맑은 물에서만 사는 재첩과 다슬기는 지금은 한 마리도 없다. 하동에서나 조금 잡히고 대부분 중국산이다. 하구언 둑이 막혀 바닷물과 강물이 썩히지 않으니 지천으로 잡히던 재첩은 한 마리도 잡히지 않고 고기들의 수량도 종류도 줄어들었고 이제는 철새들마저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다.
청둥오리 떼가 와글 그리는, 주말이면 미군들이 놀러 와 총으로 쏴 잡기도 하였다. 특히 저녁 해 질 무렵에는 기러기 떼가 ㅅ자를 그리며 날아가는 서쪽 하늘엔 주황빛 저녁노을이 환상적이었다.
날씨가 상당히 추운 날에는 수산 나루터에 얼음이 두껍게 얼어 나룻배가 얼음을 깨며 운행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각종 농약과 공장 폐수와 대대적인 축산폐수로 낙동강 지류인 샛강에도 조개 대칭이 한 마리 찾아볼 수 없고 물고기알과 고기떼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제는 멱도 감을 수 없다. 세월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강물은 오늘도 유유히 흐르건만 당시에 살아계시던 동네 어른들은 다 돌아가시고 친구들도 그이다 도회지로 떠나가 버렸지만, 장래에는 우리의 자손들이 강물을 잘 다스려 홍수를 통제하고 각종 오염으로부터 보호하여 다시 재첩과 다슬기가 잡히고 샛강에는 대칭이 조개가 자라고 가물치 잉어가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며 철새들이 즐겨 찾는 낙동강의 진정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염원해본다.
2020년 7월 1일.
첫댓글 낙동강의 발원지와 여러가지 사연을 게시해주셔서
낙동강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네요
낙동강도 울산 태화강처럼 맑고 오염이 되지 않게 만들어
자자손손 이어가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낙동강에 관한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봄을 타는지 요즘 많이 피곤하네요
늦은 댓글 드리며 행복한 한 주 되십시오^^
이 글을 읽으면서 느낍니다
사람은 대립해도 자연은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 . . .
강원도에서 발원한 물이 경상도를 살리는데 있어서
자연은 그 어떤 분쟁도 없음이 놀랍습니다
사람은 그렇지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