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효의 야생초 산행-천황산
바람은 바다를 건너고 겨울열매는 붉다
두미도 천황산
2010년 12월 한해를 마감하는 야생초 산행을 남해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섬, 통영시 두미도 천황산(天皇山·468m)을 찾았다. 두미도는 통영시 욕지면에 속하는 작은 섬이다. 작은 섬이지만 두미도 천황산은 욕지도의 천황산(392m)이나 사량도의 불모산(399m), 케이블카가 설치된 미륵산(461m)보다도 높아 통영시 도서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두미도(頭尾島)라는 섬 이름은 전체 모양이 꼬리가 달린 동물의 머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두미도를 천황산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섬 전체가 산이다.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시기는 100여 년 전이라고 한다. 남구 선착장 기슭에는 1996년도에 세운 ‘두미 100년’이라는 기념비가 있다. 척박한 섬을 개척하여 여기저기 흩어져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으나 지금은 남구와 북구 선착장 주변으로만 사람이 산다.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쓰러진 폐가와 잡풀이 우거진 유자나무에 매달린 임자 잃은 유자가 유령처럼 사람이 살았던 흔적으로 남아 있다.
팔손이나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식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두미도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고 한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샘이 남구의 꿀밭기미(구전)와 북구의 절개(학리)쪽에 각각 한 곳씩 있다. 꿀밭기미(굴 껍데기가 산재했던 포구에서 유래)의 샘은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로 샘터 아래 옛 절터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편 절개(절이 있었던 포구)의 샘은 장군수라 부르는데 통영지역에서 전하는 전설속의 설영장군이 마시던 물이라고 전한다.
새벽에 통영여객선터미널을 출발한 배가 두미도 북구에서 사람을 내리고 남구로 향한다. 남구로 향하는 뱃길을 따라 주말을 맞아 해안절벽 갯바위마다 낚시꾼들로 벌써 붐빈다. 우리가 탄 여객선에도 낚시채비를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두미도는 등산보다는 낚시터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남구선착장에 발을 내리자 성벽처럼 늘어선 돌담이 이채롭다. 지붕의 처마 높이에 맞춰 쌓은 돌담이 둥그렇게 집을 감싸고 있다. 등고선을 따라 높이를 달리한 집이라 바닷가에서 올려다보면 돌담에 가려 지붕은 보이지 않고 담만 보일 정도다. 이곳 주민들의 말로는 태풍 뿐만 아니라 계절이 바뀌면 바다를 건너오는 계절풍이 지붕을 날려버릴 정도로 강하게 분다고 한다.
산행은 마을 위쪽을 지나가는 임도를 따라 남쪽으로 돌아가면 목제로 만들어 놓은 남쪽전망대가 나타나고 등산로는 맞은편 능선으로 나 있다. 등산로는 입구부터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이다. 길을 정비하면서 베어낸 동백그루터기가 남아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등산로를 조금만 돌아가도록 내었으면 나무를 훼손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나서다.
멀꿀
동백나무 숲 바닥에는 역시 상록덩굴식물인 마삭줄과 키 작은 상록수인 자금우가 채우고 있다. 해송 줄기를 감고 올라간 늘푸른 덩굴식물인 송악과 어우러진 숲은 계절을 잊은 듯 늘푸른식물로 가득하다. 고도를 높이자 동백은 사라지고 가지마다 까만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스래피나무와 식나무가 숲을 지키고 있다. 으름덩굴보다 잎이 넓고 늘푸른식물인 멀꿀도 남쪽 섬에서나 볼 수 있는 식물이다. 가을에 익는 열매는 으름보다도 더 맛있다고 하나 씨가 많아 먹을 것이 별로 없다고 한다.
능선을 따르는 등산로는 경사가 급하지 않고 정비가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중간 중간에는 너럭바위와 같은 전망대가 있어 끝없이 펼쳐진 시원한 바다풍경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두미도의 꼬리부분에 해당하는 용머리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 곳도 너럭바위를 넘어서고 부터다.
겨울 야생초산행에서 가장 힘든 것이 푸른 생명체를 찾는 일이다. 산행지를 한 걸음이라도 남쪽으로 잡는 것도 한 포기의 풀이라도 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두미도 천황산 기슭에는 초본 식물만 꼽아도 맥문동과 보춘화(춘란), 양치식물인 봉의꼬리와 도깨비쇠고비, 콩짜개덩굴과 일엽초, 꽃은 졌지만 해국과 털머위, 그리고 사초가 여러 종류 있다. 다만 방목하는 염소가 보춘화를 잘라 먹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그루는 드물다.
야생초를 쫓으며 여기저기 기웃 거리다 보니 어느 새 정상 바로 아래에 이르렀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급경사의 암벽에 걸어놓은 줄을 잡고 올라야 한다. 올라보면 남해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산이라 전망이 빼어나다. 욕지도와 사량도를 비롯한 원근의 섬과 서쪽의 남해 미조항은 물론이고 일망무제로 남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배풍등
하산은 올랐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 갈림길 이정표에서 동쪽전망대가 가르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올랐던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숲속 환경이지만 방향이 북동이라 상록활엽수 보다는 소나무가 울창하다. 숲속 그늘에는 남동사면보다는 보춘화의 개체수가 더 많다. 계속 내려서면 사스래피나무와 동백, 식나무와 가시나무 등 상록활엽수가 늘어나면서 숲속 환경도 바뀐다.
길이 갈리는 곳에서는 북서쪽으로 방향을 따른다. 산허리를 돌아가면 임도가 나타나고 계속 진행하면 북구로 간다. 임도변에는 경사면을 따라 빨간 열매가 달린 마른덩굴이 곳곳에 있다. 잎이 시든 가지과의 배풍등이다. 배풍등은 덩굴성 다년생 초본으로 겨울이 되어도 줄기 아랫부분은 살아남았다가 다시 봄이면 새싹이 돋는다.
북구와 남구, 청석골로 이어지는 임도지만 섬을 일주 하지는 않는다. 마을이 있었던 곳에는 계곡을 따라 팔손이나무가 하얀 꽃을 매달고 있다. 한 겨울에 피는 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팔손이나무는 따뜻한 남쪽 해안지방으로 자생하는 상록활엽수다. 최근에는 분재로 실내장식과 공기정화식물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임도를 따라가면 오래지 않아 북구에 도착한다. 사람이 사는 집보다는 빈집이 더 많은 북구의 학리마을이다. 경사는 덜하지만 마을 환경도 남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높은 돌담으로 둘러싼 집이 대부분이다. 송악과 마삭줄이 어우러진 밭둑에는 남오미자가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어 이채롭다. 남오미자는 제주도와 남해 도서지방에 자생한다고 하나 지금껏 보지 못했다. 오미자대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지만 효능은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마을을 통과하여 선착장이 있는 바닷가에 내려서면 산행도 끝난다. 두미도 천황산 산행은 5km 정도로 쉬엄쉬엄 걸어도 3~4시간이면 족하다.
/농협경남지역본부 부본부장
남오미자
※찾아가는 길
대진고속도로 통영 IC > 통영여객선터미널 > 두미도행 여객선(하루 2회 운행 통영발 06:50, 14:40)
Write : 2010-12-31 00: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