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의 미래를 보다 최 건 차
오늘은 장항성일교회 황형식 목사님으로부터 1박2일 동안 예우초청을 받았다. 늦가을로 접어든 날씨가 잔득 흐려 저녁 때 쯤에는 비가 내릴 것 같다는 예보인데 칠순을 넘긴 은퇴목사님들 70여 명이 용산역에서 익산 행 무궁화호열차를 탔다. 내가 소속한 장로교 대신교단 목사들로 72명이 타는 한 칸이 만석이다. 매월 한 번씩 예우초청을 한 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공궤를 받으면서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이다. 서울을 기점으로 지방에서 모일 때는 버스를 이용하는데 이번에는 장항역까지 열차로 가게 되어 수학여행을 가는 기분이다.
장항에는 오래된 제련소가 랜드마크다. 우리를 초청해준 황 목사님이 목회를 잘하면서 수반되는 대단한 일을 하고 있어 이번 기회에 두루 알게 될 것 같다. 황 목사님은 90년대 말 일본으로 선교여행을 같이 했던 이후로는 특별히 만날 기회가 없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목회는 물론 서천군과 장항에서만 아니라 전국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낙후 된 장항을 발전시키는데 일조를 하고 있어 부럽고 존경스럽다. 다양하게 운영되는 복지사업에는 130여명의 유급직원이 있으므로 지역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을이 짙어가는 들녘을 지나면서 텅텅 비어가는 들판을 바라본다. 예전 같은 볏단들은 보이지 않고 하얗게 뭉쳐져 있는 커다란 비닐두루마리가 조형물처럼 이채롭다. 빨갛게 익은 감을 줄렁줄렁 매달고 있는 감나무들이 농촌풍경의 지킴이들로 보이는 게 우리농촌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커피를 마실 겸해서 무궁화호에는 있게 마련인 카페 칸을 찾아갔다. 경부선이나 중앙선에서는 운영되고 있는 카페 칸이 을씨년스럽게 비어있다. 도시락과 커피, 기타 음료수며 과자나 간식거리를 파는 진열대가 비어있고 자동안마실과 미니노래방도 잠겨있다.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물었더니 머지않아 이런 열차는 운영을 하지 않을 거라는 답변이다. 이유인즉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대다수의 무궁화호 객차가 사용기한을 훨씬 넘긴 것들이어서 새로운 객차로 교체가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아직도 무궁화호는 서민들의 사랑받는 열차라는 점에서 교체가 될 때까지는 계속 애용해서 타야겠다는 생각이다. 열차는 어느덧 장항역이 가까워지고 있다며 내릴 손님들에게 준비를 하라는 멘트를 내보내고 있다.
장항은 1936년에 비철제련소가 세워지면서 발전을 거듭하여 1960년대는 국제무역항으로 승격되었었다. 현재도 고로만 전기로 바뀌고 축소되었을 뿐 아직도 300여명의 종업들이 스테인레스관과 동관을 생산하고 있다. 1980년도 안팎으로는 1,200여명의 직원들이 일을 했을 때는 장항의 인구가 3만이 넘었고 활기찼었으나 지금은 1만 명 내외가 거주하는 소읍단위로 작아진 상태다. 하지만 서천군이 야심차게 일궈 논 자연생태계보존사업으로 100만평 대지에 조성된 국립생태원이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고 해서 내일 중으로 관람을 할 계획이다.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은 후에 서천군 마량리 바닷가로 향했다. 우리나라에 성경이 최초로 전래된 곳에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는 것이어서 관심 있게 살펴봐야 될 것 같다. 마량리는 서천군 서면에 있는 서해안 포구로서 오래전 영국의 함선이 항해를 하다가 인근에서 좌초되어 선장일행이 상륙하여 지방 관리에게 킹 제임스 버전 성경책을 전해주었다는 각종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다. 역사적으로 뒷받침이 되는 책자들을 비치하고 있어 내가 아는 바도 그렇거니와 기존의 기독교 100년사와 어떻게 대비해 봐야 할지 조심스러워진 면도 있다.
바닷가에 위치한 쾌적한 유스호텔에서 일박을 하면서 밤바다를 구경했다. 마주보는 바다건너가 군산이다. 밤인데도 불을 밝히고 거대한 기계 소리가 조용한 장항을 압도해 오는 것 같다. 바야흐로 서해안시대를 맞은 군산이 비약하는 소리로 들린다. 장항에는 개발되지 않고 그대로였던 해안가 사구와 80년 전에 방풍림으로 조림됐다는 해송이 울창하고 길게 뻗혀 있다. 다음날 아침 다시나가 부슬비가 내리는 송림과 해변 모래밭을 한 시간 여나 걸었다. 내 눈으로 보고 지금까지 밟아본 해변의 송림 중에 이만 한데가 없었던 것 같다.
이전에 국가발전을 위해 열심히 가동되었던 제련소에 대한 애증을 생각해 본다. 공해문제가 야기되었지만 그때의 시대상황을 감안해서 지나친 비판과 과대한 평가를 자제하고 장항을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 유일의 대규모 국립생태원이 장항역과 연계되어 조성되어 잘 운영되고 있고, 해송이 울창한 바닷가의 레저시설과 숙박시설이 이상적이어서 다음에 꼭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이다.
더욱이 이번에 예우초청을 해준 황목사님의 지역사랑 활동이 대단하다. 그냥 봐 넘길 수 없겠다 싶은 게 목회의 영력은 물론 무언가 장항을 꿈틀거리게 하는 힘이 그에게서 발산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됐다. 사람이 때를 만나면 무어가 움직이게 되는 게 역사의 인생사인 것을 체험했었기에 장항에서 1박2일을 보낸 것을 무척 행복하게 간직하고서 상행열차에 올랐다. 2016년 10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