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헌집 제9권 / 묘갈명(墓碣銘)
현수 여공 묘갈명 병서(玄叟呂公墓碣銘 並序)
현수(玄叟) 여공(呂公)의 휘는 욱(煜)이고 자는 희원(熙遠)이며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아버지는 휘가 윤충(允忠)으로 공조 참의에 증직되었다. 아버지 이전의 세계(世系)에 대하여는 모두 남계공(南溪公)의 묘갈명에 실려 있다. 어머니는 증 숙부인(贈淑夫人) 전주 이씨(全州李氏)로 양녕대군(讓寧大君) 제(褆)의 후손인 양(讓)의 따님이다. 공은 만력(萬曆) 병술년(1586, 선조 19)에 수촌(樹村)의 선친의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것을 애통하게 여기면서 두 형을 대신하여 섬김에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하였다. 한강(寒岡) 정 선생(鄭先生)과 나의 선조 여헌(旅軒) 선생의 문하에 유학하여 ‘섬기기를 한결같이 하는 도〔事一之道〕’를 극진히 하였다.
그리하여 정 선생이 무고를 당하였을 때 대궐 앞에 가서 부르짖어 억울함을 씻었고, 나의 선조 여헌께서 정묘년(1627, 인조 5)에 의병을 모을 때와 나의 선조께서 돌아가신 뒤 고향으로 반장할 때에 공이 좌우로 돕고 관장하였다. 만년에는 등당리(登堂里)에 우거하여 책을 읽는 것으로 스스로 즐기며 여생을 마쳤으니 곧 효종 계사(1653, 효종 4) 3월이며, 운곡(雲谷) 숙석령(熟石嶺) 선영의 임좌(壬坐) 언덕에 장례를 지냈다.
아, 공에 대한 문헌의 기록은 다 잃어버려 나머지에 대하여는 징험할만 한 것이 없다. 오직 이완석(李浣石)의 《사우록(師友錄)》에 “뜻은 높고 행실은 우뚝하여 천인절벽의 기상이 있다.”라고 하였고, 이심원(李心遠)의 월평(月評)에 “가르침을 받음에 여러 제자와는 달랐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들에서 공의 면목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부인은 인천 이씨(仁川李氏)로 자헌대부(資憲大夫) 배근(培根)의 따님이니, 묘소는 등당리 뒤 산기슭에 있다. 3남 2녀를 두었으니, 장남은 효원(孝源)이니 호는 월봉(月峯)으로 문장과 행실이 뛰어났다. 둘째는 효장(孝章)이며 셋째는 효성(孝誠)이다. 딸은 윤완(尹琬)과 정시주(鄭始周)에게 각각 시집을 갔다.
효원의 아들은 명화(命和)와 효성에게 양자를 간 인화(仁和)이며, 딸은 박신방(朴藎邦),이봉지(李鳳至),김지(金至)에게 각각 시집을 갔다. 효장의 아들은 백화(伯和),영화(永和),미화(美和)이고 딸은 최환(崔瓛),황후상(黃后相),노진서(盧振瑞)에게 각각 시집을 갔다.
효성의 딸은 곽희원(郭喜遠)과 전경기(全慶基)에게 각각 시집을 갔다. 증손자와 현손자는 많아서 기록하지 않는다. 공의 8대손 혁규(赫奎)가 바야흐로 비석을 세울 것을 도모하면서 나에게 묘지명을 지어주기를 부탁하였다.
명은 다음과 같다.
도가 있는 분에게 나아가 바로잡으니 / 正有道
도움을 받은 것이 깊고 / 所資者深
불우해도 변하지 않으니 / 塞不變
지키는 것이 돈독하였네 / 所守者篤
온축함이 있으면 반드시 발현되나니 / 有蘊必發
마땅히 그의 후손들은 번성하고 복록을 받으리 / 宜其後之熾且穀兮
<끝>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 송희준 (역)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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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玄叟呂公墓碣銘 並序 。
玄叟呂公諱煜。字煕遠。星山人。考諱允忠。贈工議。已上世系。俱載南溪公碣。妣贈淑夫人全州李氏。讓寧大君褆之後。讓女。萬曆丙戌。公生樹村先人之第。痛早孤。替事二兄。莫愆。遊寒岡鄭先生,吾先祖旅軒先生門。克盡事一之道。以鄭先生被誣事。叫閽昭雪。吾先祖之丁卯召募。及易簀後返襯也。公左右之句管之。晩寓登堂里。圖書自娛。以終餘年。卽孝廟癸巳三月也。葬雲谷熟石嶺先壠負壬原。於乎。公文蹟盡逸。餘無可徵。惟李浣石師友錄。有曰。志高行雋。有壁立底氣。李心遠月評。有曰。薰炙異於諸子。此可以影想矣。配仁川李氏。資憲培根女。墓在登堂後麓。生三男二女。男長孝源。號月峯。有文行。次孝章孝誠。女尹琬,鄭始周。孝源男命和,仁和。出爲孝誠后。女朴藎邦,李鳳至,金至。孝章男伯和,永和,美和。女崔瓛,黃后相,盧振瑞 。孝誠女郭喜遠,全慶基。曾玄蕃不錄。公八代孫赫奎。方謀樹碣。責銘於福樞。銘曰。
正有道。所資者深。塞不變。所守者篤。有蘊必發。宜其後之熾且穀兮。<끝>
ⓒ한국문집총간 |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