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다 마취도 없이 관을 꿰뚫어 놓더니 심장에까지 연결해 핏물을 펌프질 해대는 고통을 45분간 버텨야 했다. 차라리 죽여 달라는 자의 심정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내 누운 곳에 함께한 자들은 전부 죽음의 가능성을 끌어안고 있었는데, 사실 그건 나도 예외라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기도 차지 않는다.
재발은 곧 끝이다. 치료법도 비상구도 없다. 죽음을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하나.
너무도 예민해져 미운 것들은 전부 저주하고 싶었다. 증오였다. 슬픔과 고통을 증오로 화하는 그것.
지금부터 전 여러분께 무서운 이야기를 꺼낼 겁니다. 무서운 이야기란 게 본디 '실화입니다'란 말을 덧붙이면 한층 더 무서워지죠?
괜히 없는 이야기 지어내 겁줄 생각은 없습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경고’지요. 당신에게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불행에 조심하라는 경고입니다.
‘그것’은 너무도 무서운 것이지만, 그에 비해 사람들이 너무도 느끼지 못하는 ‘공포’입니다. 겪은 사람은 압니다. 겪지 않은 사람은 믿기 어려울 만큼의 고통임을. 그래서 그것은 실존하지만 쉽게 믿겨지지 않는 현대사회의 괴물입니다.
밝히건대 그 이름은 ‘결핵’입니다.
순간 코웃음 치진 않았나요? 암도 에이즈도 백혈병도 아닌 고작 결핵을 가지고 잔뜩 겁주려 하느냐고. 겪지 않으면 감도 잡지 못할 그 공포는 하필 왜 내게 찾아왔을까요.
2006년 11월 XX일.
2주째 감기가 낫질 않는다. 일주일째 먹는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음용약도, 독감약도 소용없다. 아스피린을 먹을까. 자고 일어나면 자리가 식은땀으로 흥건하다. 병원에 갈까. 병원도 일과시간 외엔 문을 닫는데 직장엔 뭐라고 하지.
※ 주의 - 혹시 1주 이상 감기몸살기운이 낫지 않거나 자고 난 자리가 식은땀으로 젖어있다면 만사 제쳐두고 반드시 병원 진단을 받으세요. 가급적이면 순환기와 호흡기를 모두 진단할 수 있는 큰 병원으로.
2006년 11월 XX일.
퇴근길 지하철 계단을 오르다 순간 멈춰 섰다. 1000미터 달리기라도 한듯 숨이 가빠왔다. 걷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아스피린이 잘 듣는 것 같았는데 완치는 안 된다. 지독한 감기라 부르기에도 너무 지독하다.
어느샌가 코 안에서 물냄새가 차오른다. 미약하나마 약품처리가 된 듯한 그런 물 냄새. 대체 이건 뭐지? 몸 안에서 물이 차오르는 건가. 그건 모르겠지만 스트레스가 계속 차오르는 건 확실하다.
2006년 11월 XX일.
엑스레이를 봤을 때 기도 안 찼다. 저게 내 심장이라고?
“간뎅이가 부었다”란 말은 들어봤는데, 심장이 2배로 커지는 건 처음 봤다. 게다가 폐... 폐의 모양새가 이상했다. 역시나 커져 있었다.
건강한 어느 여성의 심장과 내 심장을 비교해 보여주던 의사의 말이 지금도 귓전을 울린다.
“정상인 크기의 2배예요. 안에 물이 차올랐어요. 심장도 폐도 모두 차올랐어요.”
아하 물. 물이라. 몸 안에서 나던 물 냄새는 심장의 것이었던가. 아니 폐의 것인가. 하하. 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간호사는 걱정된다는 듯 바라보았다.
헌데 집에는 어떻게 말을 꺼내지? 그게 가장 걱정이다.
2006년 12월 XX일.
간호사가 몇 번이고 내 이름을 외쳤다고 하는데 난 들은 기억이 없다.
의사는 입원해야 한다며 혀를 찼다. 간호한다고 집에서 어머니가 달려왔고 그렇게 당장 내가 입원한 곳은 중환자실에 준하는 곳, 이른 바 '준중환자실'이었다. 체중계에 오르는데 몸무게가 또 줄었다. 하루새 1.6kg이 줄었다.
※ 주의 - 죽도록 다이어트 해도 줄지 않던 몸무게가 이해 못할 정도로 확 줄어든다면 그건 기뻐할 일이 아닙니다. 그 기묘한 체험이 입원으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하루마다 1kg 안팎으로 줄어든다면 의심하셔도 좋습니다.
2006년 12월 XX일.
의사는 확실한 병명을 알려주지 않고 대신 '셋 중에 하나'라고 말하더라.
첫째는 암일 가능성. 그런데 이건 아직 나이가 20대니 무시하자고 한다.
둘째는 급성 바이러스 질병의 일종. 그런데 이건 검증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셋째가... 결핵이었다.
그러고 보니 난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가 심했다. 죽을 뻔한 적 있었다고도 했다. 법력 높은 어느 스님이 '안 좋은 고비는 어릴 적 다 넘겼다'고 했다는데 삶이란 게 부처님도 다 알 수 없는 건가. 학교에서 결핵환자를 위한 크리스마스씰을 판매하면 난 어디에 쓰이는 지도 모른 채 엄마가 손에 쥐어준 돈으로 400원, 혹은 600원어치인가 샀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내가 그 당사자일 수 있다는 건가. 후진국병이라고만 들었던 그것이 내게 찾아왔다고?
2006년 12월 XX일
순환기내과에선 심장을, 호흡기내과에선 폐를 본다. 의사도 다른데 진단 결과를 결정짓는 건 순환기내과의였다. 오늘 그는 사실상의 확진을 가져왔다. 셋 중 결핵일 가능성이 90퍼센트란다. 그렇게 해서 이 모든 것의 원인은 결핵이 됐다.
사실 결핵이란 이름만 알 뿐 증상은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폐를 앓는 병이란 정도. 혹시 입에서 피를 막 토하는 그거? 생각해보니 너무 무지하게 살았구나 했다.
그럼 지금 이 증상이 결핵인가. 폐는 그렇다 치고 심장은 또 뭔가. 의사는 결핵균이 심장과 폐 모두에 서로 영향을 끼쳐 지금 같은 일이 벌어졌단다. 폐에 물이 차는 것은 늑막염인데 이게 결핵균으로 발생한 거라나. 그게 심장까지 물을 먹였거나 아님 순서가 뒤바뀌었거나 둘 중 하나란다. 여하튼 근원은 결핵이란다.
결핵치료가 시작되면 약을 6개월 먹어야 한단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은 사회생활을 그만두는 게 좋다고 했다...
※ 주의 - 결핵판정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약 복용이 시작됩니다. 결핵균을 죽이는 그 독한 약을 절대 걸러서는 안 됩니다. 틈을 주면 그새 균이 면역을 가지게 되니까요. 약은 6개월을 먹을 수도 9개월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 동안 의사는 일을 쉬고 요양할 것을 권고합니다. 자기 일에 바쁜 사람에겐 고민거리죠. 물론 중한 것은 인생입니다. 결핵은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게 하는 병이니까요
2006년 12월 XX일.
결핵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가져오는 지 실감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껏 태어나서 가장 힘들었을 시기가 언제였던가. 아마 신병교육대에서 혹한기 훈련을 나가 영하 27도의 철원 땅에서 잠을 청했을 때가 아닌가 싶다. 코와 입의 숨결조차 얼어붙어버린다는 거기서 제대로 잠을 잤을 리가 없지.
오늘부로 그보다 더한 것을 기록한다.
저녁에 심장에서 물을 뺀단다. 심장의 물이 너무 많아 약물만으로는 어렵다나. 호스를 통해 직접 물을 빼어내야 한다는 거다. 끔찍했다. 마취 같은 것도 없이 가슴팍에 전선인지 관인지 모를 뭔가를 대고 생살을 꿰뚫더니 심장까지 연결한다. 그리고 펌프질을 한다.
쇼크사라는 것은 이럴 때 벌어지는 건가 생각했다. 신체의 가장 중한 곳에다 금속인지 플라스틱인지 모를 걸 꿰고선 고인 물을 뽑아낸다. 지독하다고 부르기도 뭣한 고통. 호스로 핏물이 쏟아져 내리는 걸 보고 있자니 공포영화를 보는 것 같다. 더 끔찍한 건 그 과정이 무려 45분가량 지속된 거였다.
누워서 맛보는 그 지옥은 불 꺼진 어두운 수술실 안에서 진행됐다. 그런데 저 위층에선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젊은 레지던트들인가 보다. 담당의는 그들에게 “이게 무엇이다 잘 봐라”하고 사람들은 탄성인지 뭔지를 내지른다.
주체 못할 분노가 일었다. 누구는 여기서 고통으로 지옥 속을 열어다 보는데 저자들은 구경하듯 와아 하는 소리를 내나? 증오처럼 변하는 잔인한 마이너스 감정. 그건 이 극한의 고통을 그런 감정으로라도 뒤바꿔 경감시키려는 몸부림이었다.
※ 주의 - 결핵환자라고 모두 이 같은 과정을 거치진 않을 거라 믿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핵은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병이네요. 저처럼 코끼리 것 마냥 비대해진 심장에서 펌프질하는 일은 제발 없길 바랍니다. 고통에 죽을지도 모를 가능성을 부정 못하겠습니다.
2006년 12월 XX일.
김연아라는 어린 스케이팅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혹시 저 선수가 세계적 스타로 화려하게 발돋움하는 것을 난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허무함과 공포감이 찾아왔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은근한 괴로움이다.
병실 창가는 눈으로 새하앴다. 깊은 밤에도 편히 자질 못한다. 한 시간만이라도 쭉 잘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안 된다. 심장과 폐의 물이 역류하지 못하도록 침대의 상반부를 위로 굽혀놨는데 이 때문에 접혀진 부분에 닿는 척추의 끝, 즉 꼬리뼈가 아파 통증을 내내 호소해야 했다.
어머니는 담당의가 아닌 레지던트 의사가 찾아오면 못미더워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폐의 물을 빼내는 건 심장과 달리 등 뒤에서 주사바늘을 꽂고 그걸로 해결하는 거였는데 그는 당최 감을 잡지 못해 결국 주사자국만 내고 돌아갔다. 그는 내년에 군의관으로 입대할 거라 했다. 아마 나이가 나랑 비슷할 것이리라.
2006년 12월 XX일.
홀로 병실 밖을 목발내지 휠체어로 다닐 수 있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나처럼 결핵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대개 홀쭉했다. 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병치레 중이었고. "덕분에 그래도 다이어트는 되겠다"고 농을 던졌더니 어머니는 그게 말이냐고 흘깃한다.
샤워는 각 층에 구비된 샤워실이 문을 열면 가능한데 사람들이 붐빌까 아침 기상시간 이전에 움직여 재빨리 머리를 감고 몸을 씻었다. 물론 물을 빼내느라 구멍을 냈던 심장 쪽 가슴이나 폐 쪽의 등은 물이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고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다.
2006년 12월 XX일.
참 독특한 병이라서 말이다. 성인병 환자들은 아무거나 먹지 못하고 식이요법에 따른 식사를 하는데 비해 내 식사엔 스파게티도 나왔다. 결핵이란 무엇이든 잘 먹어야 하는 병이었다. 자꾸 몸의 영양소가 결핵균에 잡아먹히고 그렇게 체중이 줄어드는 병. 식사시간만큼은 그래도 다른 병에 비해 '양반'이라 생각해버렸다. 물론 먹을 것 없어 굶어죽는 사지에 있었다면 이 병은 무엇보다 무서운 병이었으리라.
※ 주의 - 결핵환자에게 딱히 가려먹거나 골라먹어야 하는 음식은 없었습니다. 그저 무엇이든 잘 먹으라는 처방이 나왔어요. 에너지를 소모하는 병이기에 약과 함께 식사를 꼬박꼬박 하는 것이 미덕이죠. 부족했던 영양소가 있다면 꼭 보충하기 바랍니다.
2006년 12월 XX일.
옆의 환자를 만나러 온 어느 방문객이 자꾸 반말을 하며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그 쪽이 내 아버지뻘이든 누구든 간에 그건 아무 상관없다. 심기가 칼날 같은 지금의 내겐 증오의 대상이다. 이 병은 자꾸만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차라리 폭발해버리면 조금은 병 치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치료비는 많이도 든다. CT촬영이던가. 사진 한 장 찍는데 30만원이다. 초음파촬영도 거의 버금간다. 의료보험으로 상쇄된다 해도 이래저래 들어가는 계산서를 보니 실소가 터졌다. 끼니 거르지 않고 좀 더 잘 먹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식비 지출에 연연해하며 작성하던 가계부와 치료비계산서가 오버랩되며 공허한 웃음이 새어나온다.
※ 주의 - 쉴 새 없이 이는 분노. 이 병은 사람의 마이너스 감정을 먹고 사람의 영양을 빼앗고 그렇게 크나 봅니다. 아픔을 차라리 화로 풀어내고 싶어서일까요. 조금 다른 성질의 것으로 바꿔서 말예요. 어쩌면 이 병에 걸린 환자들에 있어 가장 어려운 조언이겠지만, 제발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데 주의하세요. 자칫하면 너무 많은 이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자신을 볼지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가 소스라칠 만큼 무서울 거예요.
2006년 12월 XX일.
퇴원하게 됐다. 2주가 채 되지 않는 순간이었지만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다. 가뜩이나 길었던 올 한해의 마지막은 그렇게 또 한 번 길어졌다.
정말 그랬다. 사회초년생의 스물일곱 살은 길었다. 뭐가 문제일까. 햇빛 안 들던 집? 조만간 전세방을 다른 곳으로 얻어야겠다. 또 뭐지? 의사는 결핵의 원인 중 하나로 스트레스를 꼽았다. 스트레스라.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 1년은 스트레스의 나날이었으니까. 사회생활 초년은 스트레스로 시작해 결핵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가족이 있는 본가에서 요양하기로 했다. 몇 달간 놀아야 한다. 인생의 황금기에 장기휴가가 찾아온 것을 편하게도 받아들였다.
※ 주의 - 스트레스 받지 말고 즐겁게 살라는 당부는 덧없습니다만, 그래도 자신을 너무 혹사시키지는 마세요.
수개월 후 ‘싹 나았다’는 판정을 받았고 프리저널리스트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따져보니 결핵이 삶의 전환점이 됐네요. 낙천적으로 생각합니다. 그 몹쓸 병이 내게 준 선물 하나라고.
결핵의 그 해묵은 기억은 간간이 다시 돌아오더군요. 지난번 경기도내 사망률 조사 기사 기억하시나요?
암을 비롯해 다른 질병사망률은 나날이 줄어드는데 폐렴 사망률은 질병 중 유일하게 폭증 중입니다. 결핵과 폐렴은 뗄레야 뗄 수 없죠. 그리고 자살 사망률이 폭증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결핵이란 병은 우울증과 극도의 분노, 허무함 등으로 점철된 것이라 이 역시 주의를 요합니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았어요.
※ 주의 - 재발은 절대 막으세요. 현재 쓰이는 결핵 치료약은 1960~70년대에 개발된 약으로 이후엔 개발 및 연구가 중단된 상황입니다. 결핵 치료의 선진국인 미국 등은 이때를 기점으로 결핵환자의 수가 줄어들며 ‘후진국병’으로 인식해 더 이상의 연구를 하지 않았다더군요. 문제는 이렇다보니 결핵약으로 치료 후 다시 결핵이 찾아오면 그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이미 한번 사용한 약에 결핵균은 면역력을 갖고 있기에 다시 쓸 수가 없는데 이후의 개발약이 없으므로 쓸 약이 없어요. 이건 이거대로 결핵을 앓았던 사람들에 있어 공포입니다.
그리고 며칠 전, 3월 24일은 ‘결핵예방의 날’이었습니다.
2011년 3월 24일, '결핵의 날'
간만에 결핵을 다시 떠올렸다. 결핵예방의 날이 있었던가. 올해 첫 시행되는 결핵예방의 날은 매년 3월 24일로 지정됐다.
내겐 절대 잊을 수 없지만 우리 사회에선 ‘후진국병’으로 인식되면서 어느샌가 잊혀져간 병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째서? OECD국가 중 우리나라의 결핵발생률과 사망률이 1위다. 결국 이제는 사라진 질병이 아닌, 다시 경고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질병으로 인식이 전환되고 있는 시점이다.
경기도의 관심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기도에서만 지난 한해 5236명의 신규환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45퍼센트가 20대에서 40대까지의 젊은 층이었다.
결핵예방의 날을 맞아 수원역 앞에선 결핵검진과 건강검진이 실시됐다.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결핵협회와 수원의료원이 도움을 주고 나섰다.
난 보건정책과에 당일의 검진 자료를 요청했다. 45명이 검진을 받았고 이 중 1명이 폐결핵 양성반응을 보여 입원하여 진료 받도록 했다. 환자가 발견되면 수원의료원과 국립 목포결핵병원으로 연결해 진료 및 입원으로 이어지도록 대책을 짰다.
결핵예방의 날 하루만의 행정으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지속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경기도는 결핵감염예방사업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고등학생 34만5000명과 노숙인, 외국인, 집단수용시설 수용자 등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엑스선 검진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결핵전담간호사 32명을 보건소와 민간의료기관 등에 확대배치하고, 결핵환자의 경제 부담을 완화하고자 입원비 본인부담금 전액과 부양가족 생계비 지원 등도 민간공공결핵관리 사업으로 진행한다.
관계자는 말합니다. “결핵은 조기 발견시 꾸준히 치료약을 복용하면 완치가 가능하다”고요. 그리고 2주 이상 기침 및 흉통, 체중감소 등의 증상이 있으면 결핵검사를 받으라고 권고합니다. 경기도의 이 같은 방침에 ‘유경험자’인 저로선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 필요성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꼭 필요한 복지정책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다만, 꼭 유효하고 실질적인 도움으로 시스템을 개선해나가길 바랍니다.
결핵을 앓았던 사람으로서 남의 일 같지 않은 마음에 장문의 글로 경고했습니다.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요? 천만에요. 오히려 턱없이 부족한 표현력을 절감할 따름입니다. 제발 이 맘이 가닿으면 좋으련만.
다시 말하지만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결핵의 공포가 가장 큰 나라입니다. 절대 간과하거나 가벼이 넘길 병이 아니란 말입니다.
도내에서만 작년 한해 5000명이 넘는 환자가 새로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내하고 극복하는 데는 수개월이 넘는 시간과 치료와 자신의 심신을 달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일 치료를 게을리 한다면, 완치될 수 있는 병이 죽음으로까지 치달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예방입니다. 한번 걸리면 크나큰 고통을 맛보게 되니까요. 심장에서 핏물을 뽑아낼 때 꿀렁꿀렁대며 내 몸의 무엇인가가 뽑혀나가는 그 고통을 수십 분간 느끼는 일은 더 이상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엑스레이 사진에서 폐와 더불어 심장까지 이상해진 것을 바라볼 때의 정신적 충격은 너무도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알게 모르게 괴롭힐 겁니다. 가족의 염려와 부담 역시 생각해야 합니다.
전 한 순간 묘한 빛의 나선을 봤습니다. 그건 생과 사의 기로 같기도 하고 내 지난날에 대한 부질없는 후회와 미련의 찰나 같기도 합니다. 좀 더 제대로 건강관리를 했다면 하고 말이죠. 한 순간은 너무도 괴로워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외칠 수도 있습니다. 주체 못할 분노가 나 자신도 놀랄 만큼 끓어오르고 한켠에선 모든 것이 허무하게 다가오죠.
몇 번이고 경고합니다. 이 자리를 통해 그것이 당신에게 언제 갑자기 엄습할지 모른다는 것을 알립니다. 모든 것이 잘 풀리던 지금의 당신에게서 소중한 몇 개월을 그냥 ‘시즌 아웃’ 시켜버릴 수도 있어요. 안타까운 것은 사회의 인식뿐 아니라 실제로 치료약의 개발 수준조차 결핵을 ‘사라져가는 병’으로 인지하며 수십 년 전에 머물러 있다는 겁니다. 다시 결핵에 걸리는 일은 절대로 막아야 합니다. 그것은 한번 걸린 사람들에게 있어 대단한 마음의 짐이자 족쇄입니다. 결핵이란 실존하는 공포이며 불행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커져가는 음지의 괴물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좀 더 즐겁게 인생을 느끼고 하루하루 보내길 바랍니다. 그것은 결핵이란 현존하는 공포에 대한 최선의 예방책이요, 또 그것을 겪었던 사람이 그 고통을 통해 깨달은 교훈입니다. 결핵이 던져준 몇 안 되는 긍정적 결과물 중 하나지요.
글 권근택 기자
사진 협조 및 문의 경기도청 보건정책과(031-8008-4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