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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3일 주일말씀>
역사와 심판
베드로후서 3장 6-13절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할렐루야! 여러분들 또 기다리던 주일이 돌아왔습니다. 말씀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주일 또 어떤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실지 하나님이 시대에 주는 말씀을 먼저 성경본문부터 읽어보고 찬양 드리고 말씀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주의 본문말씀은 어디일까 아무도 알 수 없는데 베드로후서 3장 6절부터 13절까지입니다. 자, 폈지요? 그러면 직접 봉독하겠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때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아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려 하심이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3절까지 봉독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순서에 의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모두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일어나서 자리정돈도 하시고, 그리고 각종 악기들을 가지고 왔지요? 악기는 모두 동원해서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곧 지휘하러 나오겠습니다.
노래는 금주에 여러분들에게 조사했습니다. 찬송을 어디를 부를까 했더니“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해. 나도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해달라”고 하는 찬송이 있지요? 358장입니다. 그리고 섭리나라의 새노래는 “나라마다 섭리 촛대를 복음을 전하며 꽂자. 복음의 섭리촛대를 꽂자” 이 노래가 지정되었습니다. 두 노래를 지휘해주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은가 하고 물어봐서 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볼 때는 본문말씀을 모르고 여러분이 정하니까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정한 대로, 요즘에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니까 그 같은 찬양이 부딪힐 것입니다. 그러면 곧 나와서 지휘하겠습니다.
♪ 전체찬양- 찬송가 358장 “아침해가 돋을 때”
♪ “나라마다 섭리촛대를 꽂아보자”
먼저 우리 온 지구상에 있는 여러분들, 한 주일동안 섭리에 바끄고 인생살이에 모두 바빴지요? 인사하고 이제하늘의 말씀을 서로 전하고 듣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정말로 귀하게 여기고 정말로 생명같이, 안 지키면 내가 죽는다는 그런 말씀을 인식하고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 각 나라, 오늘 처음 오신 여러분들, 처음 교회에 친구를 통해서, 인도자를 통해서, 자기 스스로 하늘의 감명과 감동을 받고 교회에 오신 여러분들, 각종 각색으로 오셨지요? 오늘 신입생들, 처음 오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환영하고 여러분과 함께 악수 나누고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면 모두 악수할까요? 반갑습니다. 여러분들, 오느라고 얼마나 수고했습니까?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육신은 뭔가 부딪혀야 느낌이 오지 않습니까. 나와 부딪히고 영으로는 하나님과 같이 악수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악수하면서 좋아하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항상 하늘을 대하는 마음으로 하면 더 좋겠습니다. 느끼고 더 크게 충격이 받아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처음으로 교회에 오신 여러분들과 와서 하늘의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이제 초보자들로서 한 달, 두 달, 혹은 석 달 다닌 여러분들, 그리고 오래된 여러분들 오늘 말씀을 자세하게 잘 전할 테니까 하나하나 잘 들어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깨닫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단상에서 나타나셔서 설교를 하지 않고 하나님이 세운 자들로, 사역자들로 말씀을 깨우쳐줘서 하게 하고, 그리고 스스로 열심히 하나님께 무슨 말씀을 전해야 되냐고 기도해서 깨달아진 말씀을 전하기도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또 들어볼까요? 지난주 말씀은 꼭 판단할 때 지혜로 판단하고서 행하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판단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이제는 또 말씀의 방향이 바뀌어서 오늘 말씀은 말씀을 들으면서 죽 들어보겠습니다. 오늘은 역사에 대해서 말씀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와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화시면 그 주일은 그를 중심해서 그렇게 해나갑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그러하고 믿지 않는 세계도 하나님께서 그 선포한 말씀을 중심해서 하는 것을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씀을 선포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뉴스를 보면 세계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뉴스를 보고 여러분 자신을 보고 또 사회를 잘 보십시오. 정말로 하나님이 말씀을 선포하면 그렇게 하시는가 보십시오.
일기예보로 날씨를 앞날을 내다보면서, 하루 이틀을 내다보면서, 한 주간을 내다보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내일은 날씨가 흐리겠다. 금주에는 보편적 주말쯤에는 날씨가 점점 추워져서 영하의 날씨로 모두 움츠리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하지요? 또는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겨울날씨가 되어 강추위가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하듯이 그것도 하면 맞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그 말씀에 따라 하나님이 하시겠습니까, 안 하시겠습니까. 하시겠지요? 그러니까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여기에서 나로 말씀을 선포하면 그 말씀이 그렇게 되어지는 것을 여러분, 믿습니까? 한번 두고 봐야 되겠습니까? ‘오늘 처음 왔으니까 한번 어떻게 되나 보고 싶습니다.’ 각각일 것입니다. 아무튼 오늘 처음 온 여러분들과 신입생들, 이분들을 위해서 말씀을 천천히 정말 알아듣기 쉽게 전하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을 통해서 곧 시작할 것입니다. 말씀할 때 어떻게 하는가를 이야기해주겠습니다. 우리가 보면 드라마를 제작할 때 어떻게 제작하는가를 더러 보여주지요? 말씀할 때 어떻게 하는가 하면, 미리 새벽부터 말씀을 줘서 나로 먼저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고 내 육성에 의해서 깨달아지는가, 대개 이렇게 말씀을 할 것인가를 확실히 하늘과 같이 기도하면서 깨닫고 의논이 됩니다. 오늘 확실하게 이런 말씀으로, 역사와 심판의 말씀으로 말씀이 흘러간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심판한다고 해서 여러분을 심판하러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것을 이야기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심판을 하실 것은 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심판 이야기하니까 무섭습니까? 왜 무섭습니까? 잘못 때문에 무섭습니까? 축구할 때 심판이 들어가지 않으면 축구경기가 엉망진창이 됩니다. 서로 과격한 게임이 일어나고 그리고 법칙을 벗어나서 승부에만 치우쳐서 상대를 관중이 보기에 너무 울분이 터질 정도로 하는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심판이 딱 들어가 있어야 됩니다. 심판이 꼭 필요합니다. “온 지구촌의 온 인류의 심판자는 하나님이시다. 또 그가 보내는 시대마다 선지자나 메시아가 심판의 시중을 들며 같이 장단 맞춰 하나님에 맞춰서 한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하러 나올 때 그렇게 해서 충분히 준비해서, 밥 준비를 하고 음식을 준비해서 나오듯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할 때 평소에 준비할 때 예상치 못한 말씀이 죽죽 나갑니다. 영감으로 오고 깨달아집니다. 대개 흔히 그것을 말씀할 때 그 말씀이 잊어버린 물건이 척척 생각나듯이 생각이 버뜩버뜩 납니다. 그 말씀을 바로바로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할 때는 거기에 빠져서 청중이 있어도 안 보일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무엇을 하다 보면, 일에 깊이 빠지면 옆에 누가 와도 안 보이고 물건도 안 보이지요? 그런 입장과 똑같습니다. 말씀에 빠져서 그 말씀의 중계에 빠져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중계해주는 것입니다.
오늘도 시대의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자, 준비되었습니까? 그러면 선생님도 준비되었으니까 시작하겠습니다. 편히 앉아서 적고 귀한 말씀을 자문하신 말씀을 적어야 됩니다.
다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은데 어느 말씀은 그 말이 본인 개인에게 탁탁 해주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자기가 철학으로 삼고 묵시의 말씀으로 생각하고 들어야 됩니다. ‘어떻게 살까?’ 고민하고 있는데, ‘나는 문제가 있는데...’ 이것도 말씀할 때 거반 풀어집니다.
말씀할 때 아픈 곳도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십니다.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하나님, 나 몸이 아픈데 말씀 들을 때 낫게 해주세요.” 그렇게 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이야기를 하십시오. 다 들으신 바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 마음으로 한번 이야기해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나 안 이루어지나 보십시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집에서 돼지에게 속으로 “나, 고민하고 있다. 이것 좀 해결해달라”고 해보세요. 그리고 해결해주나 보십시오. 못 듣고 능력이 없어서 해결 못해주는 것입니다. 또 부모에게 어떤 문제를 두고 속으로 이야기를 해보십시오. 못 들어서 못 해줍니다. 영의 능력이 없으니까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속으로 이야기해도 알아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사람들은 누가 앞에서 속으로 이야기해도 마음으로 읽고 압니다. “너, 이런 이야기했지? 이런 마음 먹고 있지?”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기 때문에 더 천 배 만 배 수십억만 배 신령하시고, 영이기 때문에 알아듣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을 통해서 크게 외쳐 말씀하니까 잘 듣고 맞으면 “아멘.” 하는 것입니다. “아멘.” 너무 크게 하면 안 됩니다. 옆의 사람이 귀가 거슬리니까 “아멘! 아멘!” 하면 안 됩니다. 지금은 독단적인 자기 시간이 아닙니다. 내 앞에 혼자 있으면 아멘을 귀청이 떨어지게 하든 말든 상관없는데 여러 사람이 들으니까 듣기 싫게 “아멘! 아멘!”하면 그것을 쫓아가서 이야기할 수도 없으니 그러면 안 됩니다.
나는 교회 다니면서 여러 가지를 연구하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싫은 것은 옆이 사람도 싫더라.’ 은혜 받을 때는 당연히 해야 되는데 옆의 사람도 생각해줘야 됩니다. 은혜 못 받은 사람들이 심통도 날 것이고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뭘 그렇게 아멘 거리고 중얼거리냐?” 합니다. 열 사람이 같이 은혜를 받고 똑같이 할 때는 해야 됩니다. 그러나 조용하게 “아멘. 아멘” 하면서 옆 사람이 조금 듣게, ‘아, 저 사람은 뭔가 알아듣는가 보다.’ 할 정도로 “아멘. 아멘.” 이렇게 해야 됩니다.
전혀 그런 것을 안 하고 멀뚱멀뚱 하게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했는데 “예. 예.” 해야 되지 않습니까. 부모님이 말씀했는데 “예. 예.” 하고, 선생님이 말씀했는데 “예. 예.”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말에 응답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을 꼭 하시면서 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적어야 됩니다. 제가 교회 다닐 때 그렇게 많이 적었습니다. 설교 끝날 때까지 그렇게 열심히 적었습니다. 그랬더니만 나를 닮아서 나를 따르는 모든 이 시대의 사람들도 내가 가르치는 것을 열심히 적습니다. 여기 우리 교회에 오면 첫 번째 놀라는 것이 적는 것에 놀란다고 합니다. ‘무엇을 그렇게 적나?’ 기성교회에서나 다른 데에 있을 때는 그렇게 적지 않았는데 여기에서는 굳이 적는다는 것입니다. 왜 적을까요? 적을 것이 많아서입니다. 적을 것이 많으니까 적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줘보십시오. 그러면 막 적을 것입니다. “아이고, 어디에다 적어야 되는데...” 합니다. 그러나 아는 것을 가르칠 때는 별로 적고 싶지 않습니다. 자기가 머리속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신기하고 깊은 말을 할 때는 적고 싶습니다. 입에서 “네.” 소리가 나와지고 “아멘.” 소리가 나와지고 고개가 끄덕끄덕 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미리 우리 교회 목사님들이 설교하기 전에 한 5분씩 해줘야 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들어야 됩니다. 일반 사람들이 말씀하는 것과 다릅니다.” 하고 반드시 전초를 하고 내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약하면 내가 이렇게 전초를 또 해야 됩니다. 지금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여러분들 자세, 그리고 마음 자세, 정신자세를 바로 해야 됩니다.
내가 이 말씀을 깨달을 때, 무조건 시간이 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무릎 꿇고 정성을 다해서 기도하고 준비하고 내가 나를 볼 때 이상이 있는가 보면서 말씀을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지금부터 말씀을 하는데, 아주 어려운 이야기지만 쉽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나와 거리가 조금 멉니까? 어떤 교회는 더 바짝 잡아당겨서 얼굴이 보름달같이 크게 확 잡아당겨달라고 하는데 너무 잡아당기면 얼굴이 너무 크게 보이지 않습니까? 너무 멀리 있어도 거리감이 있어서 말부터도 멀리 들립니다. 요즘은 적당한지 궁금합니다. 이런 것도 편지에 써줘야 됩니다. “거리가 적당합니다. 조금 더 당겨보면 어떻습니까?” 하고. 그러면 지금 볼까요? 더 당겨볼까요? 이만하면 되겠어요?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가까우면 뒤로 한번 밀어붙여 볼까요? 이것은 세 번째입니다. 너무 안 되겠어요? 너무 멀어요? 사실상 멀리에서 잡으면 이런 환경도 많이 보입니다. 그러면 다시금 첫 번째 한 것으로 보겠습니다. 이 화면이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람이 대화할 때 너무 멀리에서 대화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 가까이해야 됩니다.
이것은 어떻습니까? 두 번째입니다. 교단에서나 대표로 편지를 써서 보내보십시오. 이것은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조금 더 얼굴을 잡아당겼던 것, 그리고 세 번째는 멀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말씀하기 전에 10분이 갔는데 상관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10분을 더 들으면 됩니다. 자, 그러면 베드로후서 3장 6절부터 있는 본문말씀을 전해주겠습니다.
아까 고기가 왔다갔다했지 않습니까? 내가 어항통을 갖고 놓고 고기가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요새 전도하는데 이런 고기들을 잡으라는 의미에서 했는데, 여러분 알았지요? 예쁜 고기들입니다. 전도하기가 어항통의 고기 잡을 정도로 쉽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어항통의 고기 잡으라고 하면 힘들다고 “으앙” 울다 말 어린아이도 있겠지만 끝까지 계속 잡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항통에 있는 고기 잡듯이 잡는 것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바다에 나가서 고기 잡기도 쉬운데 어항통의 고기 잡듯이 잡을 수 있습니다. 각종 고기들을 잡아서 멋있게 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항통의 고기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후서 3장 6절,
“이로 말미암아 그때에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앞에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그 시대는 물로 인해서 심판을 받았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 앞에 3장 1절부터 죽 읽어보면 “이렇게 정욕과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중심만 하고 살고, 천주를 지으신 하나님을 기억도 않고 자기 주관에 빠져서 살고 그랬다. 그래서 그 시대에 물로 심판을 받았다.”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세상이 물의 넘침으로 심판을 받았느니라.”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설교하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 때가 언제인가 하면 옛날 예수님이 오시기 전, 지금으로부터 4300년 전에 물의 심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섬기지 못하고 자기중심으로 살고 서로 미움과 이성으로 빠지고 좋은 세상을 좋지 못하게 살고 다 나무목상도 섬기고 오히려 사람도 섬겨 좋아하고 신격화하며 살면서도 이를 지으신 하나님을 섬겨 살지 못하고 타락으로 살고 멸망으로 살아서 하나님이 그 시대에 한 사람 노아를 불렀습니다. 제일 의롭게 산다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 노아에게,
“노아야, 너는 이 시대 당세의 의인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세상을 이렇게 사느냐. 내가 더 이상 못 보겠다. 이들의 죄악이 관영되어서 심판을 스스로 받게 되었어. 이 세상을 쓸어버려야겠어. 자꾸 좋은 세상이 다 썩어가니 쓰겠느냐. 자꾸 썩어 들어간다. 너는 방주를 만들어서, 배를 만들어서 내가 심판을 할 테니까, 앞으로 이들의 심판의 날을 만들어서 심판할 것이다. 그전에 어서 방주를 만들어서 너와 너의 가족을 구원하라. 너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하시고 심판한다고 그 말을 외쳐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배를 만들 때 나무는 잣나무로 만들어야 돼.” 하셨습니다.
노아가 그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말씀을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도 “너희들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하늘의 음성이 들렸다. 이 지구상, 우리가 사는 지역에 심판한다고 한다. 물로 심판한다고 하는데 배를 만들어 살라고 해서 나는 배를 만든다. 너희도 배를 만들어라. 언제 심판하는지 아느냐?”
노아에게 말하기를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그들의 사는 기간이 120년밖에 안 되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120년을 4300년 전에 계산했는데, 4300년 전에 120년씩 산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더 살지 않겠습니까. 심판받을 때 노아도 나이가 500세나 가까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120년을 더하면 엄청나지 않습니까. 그때 따지는 연도로 120년입니다.
그 120년을 모두 성경을 푸는 사람들은 120년으로 봅니다. 사람이 지구상에서 살 때 미래도 그렇게 보고 과거를 볼 때도 지금 사는 사람을 중심해서 따지는 것입니다. 옛날이라고 더 의학도 발달되지 않고 자기관리도 발달되지 않았는데 그렇게 오래 살았겠습니까? 공기가 좋아서 오래 산다 해도 그렇게 5배, 6배, 7배, 8배 살지를 못합니다. 앞으로도 아무리 의학이 발달되어도 10배, 20배, 30배 오래 살겠습니까? 조금 더 살 것입니다. 발달 되면 길어봤자 몇 십 년, 10년, 20년 그 정도일 것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20대 때에도 50살까지 살다가 많이 죽었습니다. 60살까지 사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의학이 발달되니까 20년씩 더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80살, 90살까지 삽니다. 이와 같은 입장과 똑같습니다. 옛날에 따지는 연도로 볼 때 120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보는가 하면, “120년은 120살이다.” 영계에 깊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이것을 따졌습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말씀하신 것, 그리고 어떠한가 하고 보니까 이 세상에서 120년 소리가 나왔으니까 세상에서 풀어야 될 말씀이었습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따졌습니다. 옛날에는 한 달을 1년씩 따졌습니다. 달력이 안 나왔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한 달을 어떻게 쳤는가 하면, 달이 한번 컸다가 또 작아지고 만월에서 월삭까지, 월삭에서 만월까지 한 번 뒤집었다 엎었다 30일이지 않습니까. 30일을 1년으로 친 것입니다. 그래서 120년은 120달로, 10년입니다. 12달이 1년이지요? 120달은 10년입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말씀하시고 10년 만에 심판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봉을 떼고 깨닫고 예수님께, 하나님께 맞냐고 물었습니다. 제일 처음에는 대답은 안 하셨습니다. 너무 엄청난 것을, 역사의 비밀을 풀어내니까. 기독교 2천년사까지 “노아에게 말씀하시고 120년 만에 심판했다”고 그렇게 풀었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하기 전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내가 다 돌아다녀봤습니다. 81개 교파를 한국을 중심해서 돌아다녔더니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내가 말씀하기 전까지 그랬습니다. 요즘은 10년으로 가르치는 곳도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가르쳐서 그렇습니다. 다른 교단도 여기에 오지 않고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배운 것을 다른 데서 가르친다 하면 그것은 나한테 배워간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 교회에는 안 나옵니다. 자기들도 무엇을 가르쳐서 교인들을 모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구원은 못 받습니다. 말씀을 가르쳐도 이 시대의 구원은 못 받습니다. 왜? 구원은 구원자로 말미암아서만 이루어집니다. 알겠지요? 여기에서 가르치는 것을 다른 데서도 가르치는 것은 다 나한테 배워간 것입니다.
내가 이 말씀을 선포한 지가 28년이 되었는데 왔다 간 사람이 수십만 명이 왔다 갔습니다. 왔다 가고 왔다 가고 했습니다. 남아진 사람은 열 명에 하나씩 남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구원받기가 어렵습니다. 시대의 말씀을 따르기가 어렵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거의 옵니다. 머리가 그만큼 발달되어서 그렇고 또 그만큼 시대가 좋아지고 그만큼 내가 잘 지도를 해줍니다. 그전에는 내가 배고팠고 옷도 제대로 못 입고 돌보지를 못했습니다. 어떻게 돌볼 줄을 몰랐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와서, 말씀은 좋다 했는데 관리를 못했습니다. 지금은 여러분들, 수만의 지구촌에 있는 사람들을 관리합니다. 수만 명씩 관리자가 생겨서 관리하지 않습니까. 그전에는 나 혼자 관리하니까 관리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간 것입니다. 그들이 말씀은 들었으니까 노트를 가지고 나가서 전해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는 말씀을 가르쳐도 하나님께서 역사를 안 하십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론적인 것은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고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 시대의 한 사람에게만 역사하십니다. 그 주관권만 축복해 주시고 그 주관권만 심판을 면하게 해주시며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렇게 하는 수도 있지만 모르지만 여기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회사에서 일하다가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나가서 다른 데에 차리면 또 크지요? 여기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여기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오늘 심판 말씀이 있다고 했지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 이렇게 내가 몇 수십 년 동안 뼈저리게 받은 말씀을 내가 전하는데 공부 많이 한 사람이 배우고 가서 다른 데에 전하면 어떻게 되냐”고 하니까 “그것은 네가 없애달라고 하기 전에 다 없앤다.” 했습니다.
“계속 가르치는 곳도 있는데요.” 했더니
“그것은 구원이 없지. 시대의 구원이.” 그랬습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아니, 내가 너로 말미암아 말씀을 전하고 너로 말미암아 나와 같이 구원에 이르게 했는데 그것이 아무나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여. 지식은 있겠지. 이렇게 된다는 지식은 있겠지.” 그랬습니다.
그래서 노아 때 심판을 했는데 노아 여덟 식구만 남고 나머지는 다 물로 심판을 받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고 10년 만에 심판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120년 만에 심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나무도 그렇게 안 썩고 오래 삽니까?‘노아가 만든 배가 나무인데 그것도 안 썩고 사람 따라서 그렇게 오래 사냐?’ 그런 이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세밀하게 배워야 됩니다. 나무가 120년 동안 물에 담가 놓았으면 썩지 않습니까? 120년 가는 나무가 어디 있습니까. 아마 철도 녹아서 녹슬어서 없어질 것입니다. 난간에 철로 만들어 놓은 것이 30년, 40년 되면 다 녹슬어서 없어지지 않습니까. 철도 녹는데 아니, 나무가 안 녹겠습니까? 100년 되면 돌도 많이 닳습니다. 나무야 그까짓 것 바로 썩어버립니다. 배 만들었는데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 바로 썩어버릴 것 아닙니까. 그런 이론이 나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생 100년에 왔다갔다하게 살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오래 사는 사람들은 120살도 삽니다. 지금도 120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125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고 아무래도 젊었을 시기와는 다릅니다.
300년, 400년은 살았다고 하던 때는 언제인가 하면, 달력이 이집트문명에 의해서 지금으로부터 3500년, 3000년 전경에 나왔습니다. 그때는 달 계산을 정확히 해서 인간의 나이가 70살, 80살 먹었다, 85살 먹었다 하고 확실히 나왔습니다. 시계가 안 나왔을 때는 대개 배꼽시계로 사용했습니다. ‘배고프니까 점심 때 되었네. 배고프니까 해 넘어갔다.’ 이것이 배꼽시계입니다. 여러분도 배꼽시계가 전부 다 있지요? 그리고 시계가 안 나왔을 때는 태양시계를 사용했습니다. 최고 발달되었을 때 태양시계를 사용했습니다.
그와 같이 발달되지 않았을 때는 부분적으로 한 것입니다. 발달되었을 때는 정확한 시계를 가지고 계산을 합니다. 발달되었을 때는 발달된 대로 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930살 살았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해서 1000살을 못 살았다. 꼭 1000살 살 것인데.” 그렇게 따지면서 “믿습니까?” 하면 “아멘~!” 그럽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주일학교 다닐 때도 “아담이 하나님이 선악과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따먹고서, 그놈 먹고 너무 맛있으니까 따먹고서 하나님께서 저주해서 쫓겨나서 930살밖에 못 살았대. 그래도 살았으면 1000살을 살았을 건데...” 그랬을 때,
“아멘! 아, 그랬구나. 타락이 뭐예요?”
“이 과일을 따먹고서 그렇게 타락됐대.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무슨 과일을 그렇게 따먹었어요? 지금도 그런 과일이 있어요.”
“지금은 없어. 그때 에덴동산에 있었대.”
“내가 가만히 들어보니까 전설 같은 옛날이야기 하는 것 같애요. 세밀하게 좀 가르쳐줘요.” 그러면 주일학교 반사님이
“너무 성경을 꼬치꼬치 물으면 안 돼.”
“과일을 얼마만한 것을 따먹은 것 같애요?”
“이만한 것을 따먹었대. 바로 사과 같이.”
그렇게 하면서 듣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담은 타락해서 930살 밖에 안 살았다고 합니다. 물론 타락함으로 범죄함으로 인해서 일찍 죽기도 하고 늦게 죽기도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고생을 줍니다. 하나님은 범죄하면 더 오래 살면서 고통하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일찍 죽게 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 가지고 조종하지 않고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하면 형벌로 운명이 좌우됩니다. 여러분, 사회에서 누가 범죄했다고 해서 일찍 죽여 버립니까? 가끔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했다고 해서 그런 것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범죄했으면 형벌로 좌우됩니다. 고통으로 좌우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930살만 살았다.” 그것이 아니고 범죄하였으므로 고통을 받은 것입니다. 범죄자는 고통을 줌으로 고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맞지 않습니까? 나는 하늘의 천법을 지구촌에 선포하고 가르쳐주러 왔습니다. 다른 사람이 몰랐던 것을 이제 가르치고 하나님께서 선포한 말씀을 전해줄 때 ‘아, 그렇다.’ 하는 것입니다.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처음 온 분들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면 930살을 따져보세요. 930달을 연수로 따져 보십시오. 930달을 12달로 나누면 얼마가 나오지요? 12번씩 930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6천 년 전이니까 달력이 안 나왔을 때입니다. 930살 살고 죽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930달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930달을 따져보면 12달씩 몇 번입니까? 지금 빨리 따져 보십시오. 그렇게 따지면서 나도 공부했습니다. 못 따지니까 머리 아프지요? 여러분은 원래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수학을 싫어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77번이 나옵니다. 복잡한 것을 떼버리면 77번이 나옵니다. “77세 살다 죽다.” 그러면 이치가 맞지 않습니까. 옛날 사람들도 오래 산 사람들은 77세, 80세 살았습니다. 다윗이 그 후에 역사를 말하기를 “인생의 연수가 길면 팔십이요, 짧으면 칠십에 인생의 종지부를 찍더라.” 하고 시를 썼습니다(시90:10). 옛날 시인들의 시는 지식의 시, 역사의 시를 많이 썼습니다. 다윗 왕이 그랬습니다. 그 다윗 왕은 그 후에 살았는데 그렇게 말했습니다. 성경말씀에 누가 970살 살았다, 누가 930살 살았다 하는 것은 달수로 계산해야 됩니다. 그러면 딱 맞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오면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기가 이단소리는 듣는데 성경말씀은 지구상에서 제일 잘 전한대.”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단 소리를 듣습니다. “왜 930살 살았는데 왜 77세 살았다고 하느냐? 왜 1년을 한 달로 계산하느냐?” 합니다.
옛날사람은 1년을 한 달로 계산했습니다. 옛날에 1년을 한 달로 계산했다는 것이 역사에 나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성경만 가지고 계속 연구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회책도 보면서 연구해야 됩니다. 역사도 보면서 해야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보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를 창조한 것이 6천 년 전에 창조했대. 6천 년 전에 처음으로 아담이라는 남자와 하와라는 여자를 흙으로 창조했다.”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인류의 역사를 딱 6천년으로 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는 믿음의 역사의 조상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니까 신앙으로 따질 때 6천년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지구상에 신앙의 씨를 뿌린 지가 6천년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 수만 년 전에, 수십만 년 전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사회의 학자라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다 그것을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공부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학교 공부도 하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수학도 수학의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고, 과학의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고, 물리의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고, 그리고 사회의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고, 역사의 하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역사는 영어로 히스토리입니다. 도토리가 아니고 히스토리입니다. 내가 역사를 배울 때 “야, 역사가 영어로 뭐냐?”고 했더니 히스토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냐? 어, 히스토리? 도토리란 말이냐, 도토리?” 그래서 도토리 하면서 히스토리를 외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역사를 오늘 배우기 바랍니다. 그래서 역사를 계산하는 것도 배우고 해야 되겠습니다. 그전에 300년 살았다, 400년 살았다, 500년 살았다 이것은 전부 다 달수로 계산해야 됩니다. 300달 살았다, 400달 살았다 그런 이야기나 똑같습니다. 그 후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 한 1000년 전부터는 정확하게 80세 살았다, 85세 살았다, 72세 살았다 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 더 발달되었는데 옛날보다 왜 그렇게 더 못 살았을까? 그것은 왜 그런가 하면, 달력이 나와서 달력에 의해서 계산하면서 성서이 역사가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가지요?
“노아 때는 물로 심판했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외쳤습니다.
“노아 때는 너희들이 하나님께 물로 심판을 받았다. 자연을 통해서 심판을 받았다.”
물 심판은 양심심판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양심심판을 할 때는 자연 재해를 통해서 심판하십니다. 정말이냐구요? 정확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렇게 전해주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양심심판은 자연의 재해를 가지고 쓰시면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노아 때는 노아만 빼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심판은 양심이 있나 없나 똑같이 심판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믿었는데 같이 물심판 속에 들어갔습니다 양심으로 인해서 살아났습니다. 양심으로 인해서 배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양심 아닙니까. 불순종은 양심이 아닙니다. 그래서 불순종한 양심으로 그대로 행한 대로 받은 것입니다. 노아는 양심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양심 있는 사람은 순종해야 됩니다. 양심이 심판받을 정도 되면 순종치 않습니다. 그러면 노아 때 홍수 심판받듯이 받는 것입니다. 재해를 받게 되고 어려움을 받게 되고 죽음까지 초래하게 되고 지금도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심판의 말씀을 가르친다고 했지요? 아까 여러분들을 오늘 심판한다는 줄 알고 “어?” 했을 것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노아는 빼놓고 여러분들만 배 만들고 심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노아도 같은 시대에 사니 같이 거기에서 양심심판을 받는데 노아는 양심생활을 해서 거기에서 죽지 않고 나왔습니다. 왜? 배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양심이 있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양심생활만 해도 양심심판에서는 살아나옵니다.
노아는 같이 심판 받고 순종했는데 죽지는 않았지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150일 동안 물이 빠지지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다 거기에서 있고 150일 동안 배 안에서만 사니까 너무 답답한 것입니다. 농사짓고 포도원 농사짓고 그랬던 사람이 배 안에서만 있으니까, 안 죽은 것은 다행이지만 너무너무 답답했지 않겠습니까? 나는 방안에 있을 때도 집 안에만 있을 때도 답답한데... 물론 푸른 바다를 쳐다보고 하듯이 푸른 물을 쳐다봤을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은 지구상 전체를 심판했다고 기독교는 가르쳤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따져봤습니다. 요리로 따져보고 조리로 따져봤습니다. 사람이 누구를 사진을 찍어놓고 못생겼다 했습니다. 보니까 웃기는 센터를 찍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못생기게 보인 것입니다. 여기도 찍어보고 저기도 찍어보고 전면 찍어보고 옆에도 찍어보고 뒤쪽도 찍어보고 다 찍어봐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렇게 평가를 안 합니다.
노아 시대를 전체를 심판했나 보니, 4300년 전에 전체 심판 했으면 4300년 후부터 지구촌의 인구가 이렇게 불어날 수가 없습니다. 다 죽고 노아 8식구만 살았으면 인구 밀도가 그렇게 불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따져보니까 그때 당시 노아 8식구만 살았으면 그 때 8식구가 다 여자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중에 노아 부인은 나이 먹어서 그렇게 아기를 못 낳습니다. 그러면 자부들이 있는데 그 여자들 세 명이 낳았다고 칩시다. 그렇게 3명이 낳았을 때는 약 88명 정도 낳아야 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따져봤습니다. 몇 달 동안 따져봤습니다. 역사를 따지면서 머리 아프게 따져봤습니다.
그런 것을 따지고 확실히 준비하다 보니까 약 20년이 넘어 27년, 28년 만에 이 모든 말씀을 다 깨닫고 산에서 나온 것입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깨닫고 보니까 30대 넘고 40대 가까이 되어서 나오게 되어 그때는 ‘아, 내가 이제 무슨 말씀을 전하랴.’ 했습니다. 그래도 확실히 깨닫고 와서 전해야 됩니다.
그 며느리 세 명이 어떻게 1인당 88명씩 낳습니까? 못 낳습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해서 낳아와야 지구촌에 이 많은 사람들이 불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이 낳다보면 여자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일납니다. 내가 한창 강의할 때 그랬습니다. 내가 강의할 때 되게 재미있습니다. 노아에 대한 강의를 할 때 “그렇게 되면 남산 터널만했겠다.” 했습니다. 계속 낳으면 아물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궁이 아물 시간이 없습니다. 하도 벌어져서 남산 터널만 할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가르치면 킥킥킥킥 하고 애들이 웃어가면서 들었습니다.
이 30개론 가르칠 때 재미있게 가르쳐야 하는데 재미없이 가르치면 애들이 졸고 “아, 재미없다.” 그럽니다. 재미있게 가르치는 말씀이 있습니다. 현실을 들어가면서. 한 론을 가르칠 때에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나는 한 론을 배울 때 얼마나 오래 배웠는지 압니까? 한 1년씩 걸리다시피 했습니다.
노아 홍수심판 때 전체심판이라면 그 물이, 150일 만에 하늘까지 닿은 물이 다 없어집니까? 바람 불어서 없어졌습니까? 그것은 이유가 안 됩니다. 그러니까 그 지역만 심판했습니다. 왜? 그 지역에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믿으라고 하나님의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복음이 들어간 지역만 심판합니다. 죄형 법정 주의라고, 법이 있는 곳에 죄를 분별하고서 역시 심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법정심판은 죄형 법정주의입니다. 법을 안 정했는데 무엇을 법으로 인정합니까? 하나님을 믿으라는 법을 줬는데 안 믿으니까 그 법을 갖고 거기만 심판하신 것입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 노아가 사는 지역, 그때 4300년 전에 지구촌에 있는 모든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까? 그때도 노아 때 한 지역만, 이스라엘 나라에 가까운 그 지역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수천 년 되니까 이렇게 세계적으로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4300년 전에 있었던 동물들이 싹 죽었으면 그런 희귀 동물들이 있겠습니까? 다 멸망해서 없을 것입니다. 그때에 희귀 동물들이 다 죽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모르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많이 알아야 됩니다.
노아 홍수심판 때와 같은 양심 심판은 의인과 악평하는 사람과 같이 받습니다. 그러나 죽기는 악인들만 죽고 살아남는 사람들은 의인입니다. 의인도 악인 때문에 심판 받게 됐는데 고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배 안에서 살듯이, 시대가 우리를 이단시하면 정말로 어느 때는 내가 방안에서만 있고 집 안에서만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세상을 바다로 보고 “아, 노아 때와 같이 비슷하네.” 하고 생각을 그렇게 했습니다. 잘 들리지요? 잘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이 심판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심판하는 것을 모르면 심판 받습니다.
“노아 때는 물로 심판을 했다. 양심 심판을 했다. 양심 없는 짓들을 하기 때문에 양심심판하지 않느냐. 양심이 있지, 세상에.”
선생님께서 1999년도에 나와서 여러 사람들로 나를 괴롭히고, 정말로 도와준 사람도 많지만 또 나쁜 사람들은 나를 괴롭히고 ‘세계적인 총재다. 거기에 돈 많다.’ 하고 돈 뜯어 가려고 별짓들을 다 하고 완전히 반 강금시키다시피 하고 별짓들을 다 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나 아니까. 하나님이 나 사랑하니까 뭐. 월남에서 그 전쟁터에서도 살려주시고 나뿐만 아니라 죄인들까지, 내가 기도한 사람까지 살려줬는데 나야 까짓거 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는데.” 하고서 담대하게, 걱정은 되지만 염려는 되지만 열심히 날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왔습니다. 그때도 양심심판을 받겠다고 내가 신청했습니다.
“하나님, 나 양심심판 받겠습니다.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양심 심판 나도 받고 다 같이 받도록 양심심판을 신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 양심심판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물의 넘침으로 양심의 심판을 받고, 나는 고통을 그 나름대로 받고 그리고서 결국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모든 사람에게 양심의 심판을 지역별로, 모든 개인별로 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잊는다고 해서 안 받는 것도 아니고, 될 수 있으면 아는 것이 더 큰 힘이 되고 안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알고 행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심판한다고 했는데 여러분들이 그 말씀대로 안하겠습니까? 얼른 해야 될 것입니다.
그때는 그렇게 물로 심판했지만, 양심심판 할 때가 많습니다. 지구상을 보십시오. 전체가 같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죽고 의로운 사람은 삽니다.
또 하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동일한 말씀으로 이제는 하늘과 땅은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었다. 경건치 못한 자들과 악한 자들을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 아니냐.”
말씀으로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와서 말씀으로 심판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왔을 때는 홍수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으로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이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이 심판 하신다.” 말씀으로 심판하신 것을 제자들이 예수님께 듣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제는 말씀으로 심판한다. 동일한 말씀으로 심판한다.”
‘동일한 말씀’을 알지요? “동일한 말씀으로 심판 한다.” 지금은 심판해도 말씀을 딱 선포하면 그가 말씀으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동일한 말씀으로 심판을 받는다.” 온전한 말씀을 들으면 온전한 말씀으로 가기 때문에 심판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하늘의 말씀을 자꾸 들으십시오. 그 살려고만 발버둥 치지 말고 그 무엇만 공부해서 출세만 하려고 하지 말고, 심판 받으면 끝나지 않습니까. 그 돈만 벌어서 따려고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을 누가 벌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 받지 않게 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나서 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얼마나 축복이 많습니까. 그래서 그것만 신경 쓰지 말고, 무엇만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심판하면 끝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판 받지 말고 사는 것이 더 이상적이지 않습니까.
바다에 굴을 따러 간 사람이 물이 밀려오는 것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잔뜩 다른 사람보다 두 보따리 세 보따리 더 땄습니다. 물이 넘쳐서 바닷물이 막 밀려들어오니까 빠져죽었습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이 말씀, 7절을 깨닫고 이 지구상에 앞으로 말씀으로 심판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메시아가 오면 불로 심판한다고 합니다. 딱 하나 이 말씀 가지고 여기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심판한다. 세상을 하나님이 말씀으로 심판한다.’
8절부터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아라 주의 약속이 어떤 이는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다. 오직 너희를 위해서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케 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오래 있다가 하는 것인데 더딘 것은 아니다. 왜 이렇게 더디다고 하는지.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 그 날에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것들이 모두 드러난다. 이렇게 모든 것이 되리니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녹아지리라.”
이런 말씀이었습니다. 8절에서부터 죽 읽어 들어가니까 세상을 불로 막 심판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체질이 녹아지고 지구가 풀어져버리고 하늘도 막 녹아져버리고, 이 이야기를 듣고서 누구든지 하나님이 불로 심판한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산에 가서 깊은 경지에 들어가서 읽을 때에, 늘 내가 교회에서 불로 심판한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목회하시는 큰형님이 나를 가르칠 때도 불로 이렇게 심판한다고 하고, 설교할 때도 들었습니다. “아멘, 아멘 하라” 고 해서 “아멘.” 했습니다. 불로 심판한다고 들었습니다. 여기를 읽고 또 산에서 읽고서도 불로 심판한다는 말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깊은 경지에 들어가서 “정확하게 이것이 불로 심판하는 것입니까? 본문에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 불로 심판한다는 말씀이 불로 심판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오셨을 때 왜 구약에서 불로 심판한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불로 심판 안 했습니까?” 그러면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산에서 깊은 경지에서 기도할 때 예수님이 나타났을 때 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씀으로 심판했다.”
“말씀으로 심판한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하니까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베드로 후서 3장 8절서부터 죽 읽으면서 계시록 읽고 다시 창세기에서부터 또 읽어 들어갔습니다. 계속 읽어 들어오다 보니까 일주일 이상이 걸렸습니다. 아까 읽은 것 3장 7절까지 일주일 만에 읽어 들어왔습니다. 여기에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른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한 바퀴 돌아서 왔습니다. 일부러 예수님은 공적을 들여서 깊이 성경을 보고서 깨달으라고 한 것 같습니다. 이미 그때는 수십 번씩 성경을 읽었고 수백 번씩 읽었을 때입니다. 그랬어도 못 깨달았습니다.
또 한 절 한 절 원어에 의해서 읽어봐야 됩니다. 그런데 나는 원어를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나신 이스라엘 나라의 원어를 몰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어대로 기록을 안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빵 갖고 이야기했으면 우리는 떡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원어 성경을 보면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원어 성경이 없으니까 하늘나라의 깊은 경지의 영계에 들어가서 원어의 세계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결국적으로서 “말씀으로 불사른다.” 여기 ‘불로 심판한다’는 말은 ‘말씀으로 이렇게 뜨겁게 녹아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말씀을 할 때 녹아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내가 말씀을 풀어 전하니까 녹아졌지요? 의문이 녹아졌지요? 문제가 녹아졌지요? 답답한 문제가 녹아졌지요? 풀어졌지요? “온전한 말씀을 들으니까 풀어진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자, 또 잘 들어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이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마라.”‘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다. 너희들 날 천 년이 하루 같다. 너희들 날로서 천 년이 하나님이 따질 때는 하루 같다.’ 그 말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루가 천년 같다. 천년이 하루 같다. 이것을 잊지 말라. 주가 오는 것을 더디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것을 따져봐라.”
메시아 강림을 이렇게 따져서 풀라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강림을 ‘하루가 천년 같다. 천년이 하루 같다.’ 이렇게 따지면서 메시아 강림을 따져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메시아의 강림을 어떻게 따져야 됩니까?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왔지 않습니까? 그러면 천년을 하루 같이 따지면서 온 것입니다.
천년이 하루 같다 이것은 무엇인가 하면, 이것은 꼭 알아야 됩니다. 너무 쉬운 것입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해서 일주일이지요? 이것은 하루를 천년으로 보는 것입니다. 월요일 하루가 천년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내가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 일곱째 날 천지를 다 창조하고 끝났다.” 했습니다. 그런 말이 있지요?
그러면 구약이 얼마인가 하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구약이 4천년입니다. 구약 역사 시작하고, 아담 하와의 역사를 시작하고 4천년이 끝나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월, 화, 수, 목 끝나고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날로서 금요일 날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금요일 날, 토요일 날은 하루가 천년씩 하면 2천년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신약 역사가 2천년으로, 토요일까지입니다.
“그리고 또 이것을 따져라. 천년이 하루 같은 것을.” 2천년이 끝나면 또 재림주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 기간을 “1999년도에 메시아가 온다. 재림주가 온다. 다시 하나님이 보낸다는 메시아가 온다. 구원주가 온다.” 그렇게 했습니다. 모두 예수님이 다시 온다 예수님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2천년 동안 온다고 했는데 안 왔지 않습니까. 왜 안 올까? 생각을 잘못 생각하고 계산하고, 예수님을 믿으니까 예수님이 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구약 시대 때도 하나님을 믿으니까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낸 자가 왔습니다. 구약 4천년이 끝나고 하나님이 온다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에, “내가 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올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이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안 오시고 하나님이 보낸 자 예수님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른 것입니다. 메시아가 왔는데.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말씀 하시고 가르치시고 말하게 하고 심판도 하시고 축복도 해주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은 땅에서 나고 사람의 아들이다. 여인이 낳은 아들이다. 무슨 여자가 낳은 똑같은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천국으로 구원 시킬 수 있냐.”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하늘나라로 구원시켜 주냐? 하나님이 직접 와서 우리를 구원해야지.”
말씀으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안 와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줘서 그대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말해야 알아들을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깨우쳐주고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면 믿고 따라가면 되지 않습니까. 그것을 못한 것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오신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안 오셨지 않습니까. 그 보낸 자가, 그 하나님이 보낸 자, 그 시대의 사람이 나타나서 하나님이 주는 말씀을 전해서 그 말씀을 믿고 따라감으로 그 시대의 구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봤는가 하면, 하나님이 꼭 온다고 봤습니다. 신이 하늘에서 온다고 봤습니다. 역사를 어떻게 봤는가 하면 자기들이 기다리는 자가 자기 시대에 온다고 맨날 기다렸습니다. 안 오면 “우리가 죽은 다음에 온다. 너희들 시대에 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와서 그 하나님을 맞고 천국을 이룰 것이다. 기다려라. 우리가 죽어도 그때 또 살아난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죽어도 다시금 하나님이 보낸 자가 왔을 때 같이 그가 우리를 살린다. 살려서 새로운 시대에 살아나서 새로운 역사를 같이 펼 것이다. 울지 마라.” 그랬습니다. 그런 관념으로 역사가 흘러 왔습니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은 그 시대 사람은 그 시대에 살다가 죽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육신은 끝납니다. 그 시대에서 이미 다 누리고 끝난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면 어떻게 합니까?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사람이 맞이합니다.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맞고 그 시대에 누리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 아닙니까? 맞지요? 아멘입니까? 시대가 지금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천번 만번 시대를 보고 역사를 봐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은 그때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어. 살아나서 하늘나라로 가서 살다가 재림 때 와서 우리가 맞게 되어있어.”합니다.
하늘나라는 육신 갖고 올라가는 나라가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고전15:50). 예수님은 육신입니다. 분명히 마리아가 낳았습니다. 분명히 우리 같은 육체덩어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이 먹으면 늙는 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33살 때 늙었습니다. 33살 때 죽기 전까지 봤습니까? 어렸을 때는 조그마했는데 컸을 때는 이렇게 컸습니다. 예수님은 늙고 있었습니다. 그때 많이 살아봤자 60, 70살 살았을 것입니다. 늙는 몸이었습니다. 나도 늙고 여러분도 늙지요? 예수님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늙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은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못 받는다. 영은 받는다. 그러므로 신령한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살아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지금 영으로 말한다.” 그랬습니다. 영이 무엇입니까? 영은 자기 육신을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섬기고 해야 그 영이 자꾸 성장되고 좋은 착한 영이 됩니다. 육신도 착한 사람이 되듯이. 그렇게 확실히 알려줘야 됩니다.
일요일 날 짤막한 설교 시간에 많이 배우지요? 배워야 됩니다. 오늘 가르쳐주라고 했습니다. 일찍 돌아가서 뭐하려고 그렇게 시계를 봅니까? 누구는 시계 없습니까? 나도 시계 좋은 것 있습니다. 내가 언제 맨날 이렇게 시계를 봅니까? 얼른 끝나려고? 한번은 시계 보다가 내가 혼났습니다. “뭔 시계를 그렇게 보냐!”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화가 나시니까 한마디 한 것입니다. “무슨 시계를 그렇게 보고 있어!” 그때 이렇게 시계 보다가 그랬습니다. 청중들이 시계를 자꾸 보니까 ‘내가 너무 오래 했나?’ 하고 나도 시계를 봤더니 “시계 끌러!” 해서 그때부터 시계 끌르고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너로 지금 말씀하고 있는데 그런 것을 의식하느냐. 한 나라의 임금의 말을 신하가 전해줄 때에 백성들이 뭐한다고 거기에 흔들리느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시간에.”
여러분들도 시간에 빠지지 마십시오. 바쁜 사람은 가십시오. 바쁘니까 가야지요. 어서 가봐요. 애인이나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습니까? 사업하는 사람과 만나게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하나님 앞에 잘 통하고 잘 귀엽게 보여야 나처럼 잘 되는 것입니다. 어떤 환란과 핍박이 있어도 잘 됩니다. 알겠습니까? 믿습니까? 그래야 고생도 천 개 할 것 두 개만 하고 한 개만 합니다. 전혀 안 하면 고생에 대해 모르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침착하게 말씀을 들어요.
항상 사람들은 누가 온다고 하면 옛날 사람들이 다시금 살아난다고 합니다. 옛날 사람들이 죽었다가 새로운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서 “살아나라.” 하면 또 살아난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나도 배웠습니다. 나도 기독교 오리지널은 아니니까. 성경을 자세히 다시 보고 수십 년 동안 다시 보고 산에 입산해서 보니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나와 같이 컸던 친구들이나 목사와 이 섭리에 오지 못한 형제들은 지금도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속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천년 기다려도 안 온다. 너희들이 기다리는 예수는 안 온다. 육신을 가지고 안 온다. 오면 영으로 온다. 하나님이 지금 너희들의 마음을 감동 시켜서,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을 안 믿으니까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렇지 않다 영으로 온다 깨닫게 하고 있지 않느냐. 우리는 분명히 알고 수십 년 전부터 이 말씀을 전해왔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게 망하면 너무 안타까우니까 깨우쳐 달라고 했습니다. 여기는 안 와도 깨우쳐 주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너무 안 오니까 실망하고 ‘이게 뭐야.’ 그럽니다. “영으로 와서 역사하니까 열심히 예수님 믿고 하나님 섬겨라. 새로운 시대가 왔으니까.”
그래서 “구약의 4천년은 마치 월, 화, 수, 목 같은 시간이고, 신약의 2천년 금, 토 같은 시간이고, 성약의 1천년은 일요일 같은 역사다.”
그래서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은 일하고 일요일 날은 가서 사우나도 가고 애인도 만나고 맛있는 음식집 찾아가서 먹고 큰 친구들과 어울리고 하듯이 천년왕국시대는 바로 일요일 날 같은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이 세상 와서 천년 왕국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내가 합니까? 여러분들이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와서 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하나님의 이 시대의 역사를 참여하자는 것입니다. 나는 이 시대의 역사에 참여해서 그전보다 천 배, 만 배 잘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역사를 참여해서 가고, 가치성을 깨달아야 됩니다. 가치를 모르면 안 됩니다. 값어치를 알아야 됩니다. 깨달아야 됩니다. 깨닫지 못한 자는 짐승과 같다 했습니다. 짐승들은 못 깨닫지 않습니까? 짐승들이 물가가 올라가는 것을 깨닫습니까? 내려가는 것을 깨닫습니까? 아파트값이 막 올라가도 깨닫습니까? 서울은 아파트가 한창 올라챌 때는 1년에 1억씩 올라갔다고 합니다. 압구정동, 신사동, 강남 쪽은 10억 짜리가 그냥 7~8년 만에 30억, 40억까지 갔다고 합니다. 1억씩도 더 올라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물가가 엉망진장 미쳤습니다. 여러분들 오늘 이 시대와 같이 이런 것을 모르면 안 되지 않습니까. 이제 물가도 알고 시대도 알고 하나님 역사도 알라는 것입니다. 거기만 빠져서 살다가 죽지 말아야 됩니다.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아라. 너희들은 하나님이 늦게 온다고 하고 메시아가 늦게 온다고 하고 더디게 온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 하지 말아라. 너희를 위해서 다 오래 참는 기간에 불과한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에 불과하고, 오래 참는 시간에 불과한 것이다. 너희 회개할 수 있는 기간 준 것에 불과한 것이다. 더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 때문에 더 역사가 늦게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너희들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열심히 가서 전도하고 돌아다녀봐라. 더디다고 생각되나. 가만히 있어서 더디다고 하는 것이다.”
자기 복장 준비 다 하고서 “아, 왜 이렇게 차가 안 오지? 아, 왜 이렇게 차가 안 오지?” 하는데 그 사람들만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차는 똑같은 시간에 옵니다. 그 사람만 더디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안 오지?”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더디다고 안 합니다. “우리 친구들이 오늘 왜 이렇게 안 오지? 지금 열차 시간 다 되어 가는데, 비행기 시간 다 되어 가는데 왜 안 오지?” 하고 있는데 멀리서 “어이, 친구!” 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거기에 빠지니까 더딘 것에 시간이 안 빠집니다.
여러분들, 나를 왜 이렇게 안 오나 더디다고 생각합니까? 왜 이렇게 선생이 안 오나 더디다고 생각합니까? 전도 안하고 충성치 않기 때문에 그런 것만 계산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안 오지?’ 그런다고 해서 일찍 가는 것도 아니고 더딘 것도 아닙니다. 똑같은 시간에, 정해진 하나님의 역사의 시간에 나는 여러분에게 나타나고 또 여러분도 내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괜히 필요 없는 시간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꼭 그렇게 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에 빠져 살면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 모릅니다. 일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빠져야 됩니다. 괜히 왔다갔다하면 안 됩니다.
목욕탕에 가면 물에 빠져서 때를 팅팅 불리고 부지런히 때를 밀고 시간 되어서 탁탁탁탁 1시간 만에 나오고 바쁘면 30분에 나와야 되는데 왔다갔다하면서 때를 팅팅 불렸다가 또 나와서 돌아다니면서 때를 바싹 말렸다가 또 왔다갔다 이사람 저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또 목욕탕에 들어가서 때를 팅팅 불렸다가 또 나와서 왔다갔다하다가 “목욕탕이 크구먼. 되게 크다. 나도 돈 벌면 목욕탕이나 해볼까.”하고 왔다갔다하다가 때를 바짝 말렸다가 그러면 안 됩니다. 확실히 알지요? 경험 많은 사람이 말하는 것 같지요? 모두 하는 일들이 아닙니까? 왔다갔다하는 사람들. 그래서 여러분들 섭리사에서 왔다갔다하지 말고 부지런히 전도할 때 전도하고, 가르칠 때 가르치고, 교회 갈 때 교회 가고, 기도할 때 기도하고 파딱파딱 멋있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를 따라서 하라고 늘 외치는 것입니다.
“선생님, 설교하는 것 말고 다른 때 하는 일 좀 보여달라”고 하는데 그것 보여봤자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말씀 받고 그리고 여기 단상에서 이런 시간을 많이 보냅니다. 세계 각 나라로 계속 주일 말씀 말고 집회 말씀을 보냅니다. 여러분에게도 가끔 한 번씩 가지 않습니까. 캠퍼스 모임 말씀, 사진부 모임 말씀, 청년부 모임 말씀, 그리고 나아가서 중고등부 모임 말씀, 장년부 모임 말씀, 이런 말씀을 세계 각 나라에다 줍니다. 그러니까 단상에서 많이 삽니다. 계속 그런 것을 찍어서 보내줄까요? 그것 다 보려면 바빠서 전도 못할 것입니다. 내 시간도 여기에서 밥 먹는 시간 말고는 특별히 어디에 나가는 시간이 없습니다. 내가 있는 곳은 하나님만 아십니다. 방안에서만 있으니 잘 모릅니다. 거기에 있으면서 열심히 충성을 다하면서 열심히 합니다. “에이, 그래도.” 그러면 화장실 가는 것 찍어서 보내줄까요? 목욕하는 것, “때밀이 때 좀 밀어!”하고서 이런 것들도 보여줄까요? 그런데 그런 것이 없습니다. 때 밀러 다닐 시간도 없고 나 혼자 밀면서 물 퍼붓고, 매일 새벽마다 물 붓고 매일 합니다. 내가 이야기 할 때 연상하라는 것입니다. 찬물로 머리 감고 씻고 닦고 퍼붓고 나오고 드라이 혼자 하면서 합니다. 내가 배고플 때 밥도 먹습니다. 그런데 밥을 먹을 때도 바쁘니까 밥 먹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 교회 목사님들은 한 교회 맡았는데도 바쁜데 나는 지구상에 있는 교회들을 맡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한 교회를 하나씩 보는 것입니다. 한 교회를 한 교인으로 보고서 다스립니다. 그리고 한 나라를 한 구역으로 봅니다. 부산지역회, 그리고 서울지역회, 강원지역회 하듯이 한 나라를 한 지역회로 보는 것입니다.
역사! 마지막 5분 하이라이트의 말씀을 하겠습니다. 역사에 대한 말씀입니다. 역사를 알지요? 오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심판과 역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역사와 심판”이라는 주제로 해야겠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할까? 두 개다 좋은데...’ 그래서 예수님께 어떤 것이 오늘 주제냐고, 주제만 물어보면 대개 아는데 하고 물었습니다. ‘심판하는 말씀을 할까? 역사라는 말씀을 할까?’ 하고 이 시간 두 개를 계속 같이 해오다가 못 잡았는데 지금 이 시간에 생각나서 “역사와 심판, 심판과 역사” 이렇게 잡았습니다. 주제는 하나입니다. “역사와 심판”
역사라는 것을 말씀하면서 여러분들에게 보여주겠습니다. 역사. 역사를 세월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 고등학교 때 배운 것이 기억나지요? 나는 초등학교 때 배운 것이 기억납니다. 역사라는 것은 어떤 지나간 과거에 있던 것을 모두 써서 기록한 것이라고 합니다. 역사책에 나오지요? “기록한 것이다. 그게 역사다.” 고등학교 역사책 앞에 나오지 않습니까. 시험 끝났다고 또 잊어버렸습니까? 내가 시험을 또 볼 것입니다. 역사라는 것이 역사책에는 ‘과거의 역사에 모든 되어진 일을 문서로 행정으로 기록해 놓은 것을 역사라고 한다.’ 그렇게 봅니다.
역사를 보는 것을 세 가지로 봅니다. 역사를 우리가 다른 말로 본다면 나는 ‘세월이다.’ 합니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때다 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시기, 때입니다. 물론 학교에서 공부한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확실성있게 표현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역사가 부른다” 하면 “행정이 부른다” 그런 말이 되겠습니까? “역사가 부른다. 숨쉬는 역사가.” 그러면 “행정이 부른다. 행정이 부른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기록이 부른다. 기록이 부른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약간 야시꼬리한 표현들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기야 모닥불도 몰라서 장작불로 표현합니다. 이 전과지도서, 낱말 지도서가 제대로 다는 아니지 않습니까. 왜곡되게 표현한 것도 있고 잘못 표현한 것도 있습니다. 언어상 표현력이 약하니까 그렇습니다. 역사에 대해서 잘 들어보세요. 마지막 5분 하이라이트입니다.
그것 하기 전에 한 마디가 빠졌습니다. 빠졌으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심판, 양심 심판, 말씀 심판. 연말 때는 말씀 심판, 양심 심판을 또 한다고 하셨습니다. 연말 심판이라고 그것을 보고 보너스 심판이라고 합니까? 하루 심판은 해 넘어갈 때 계산하고 하는 것입니다. 하루 심판이 있고, 주말 심판이 있습니다.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가.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도 안 찾고 보내는가? 정말로 다른 마음으로 보내는가?’ 그런 주말 심판이 있고, 그리고 연말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금년도 연말 심판 받지 않도록 잘 하기 바랍니다. 양심 심판 받지 않도록, 말씀 심판 받지 않도록! 알겠습니까?
오늘 “말씀의 심판은 이렇게 하신다. 물심판, 양심심판은 이렇게 하신다.” 했지 “심판한다!” 안 했지요? 이제 끝났으니까 하나님이 안한 것입니다. 심판 이야기가 나오니까 오늘 “회개하라! 심판하신다!” 했으면 무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 이렇게 말할 때 언제 나갈지 모르니까 죄들을 회개해야 됩니다. 이성의 범죄, 그리고 나아가서 형제 미워한 범죄, 서로 하나 되지 않은 범죄, 나에게 보고하지 않은 죄, 자기중심 한 것, 잘못 가르친 것, 이런 것들이 다 죄입니다. 잘못 가르치면 나한테 보고가 다 들어옵니다. 이것저것 잘 생각하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역사. 역사라는 것은 정말 빠른 것입니다. 역사에 대해서 시를 내가 하나 써놨는데 한번 읊어줄까요? 지금 정리가 덜 됐는데 정리하면서 해주겠습니다. 이것이 정리가 덜 되었으니까 정리를 앞으로 한 다음에 써먹기 바랍니다. 오늘은 설교 가운데 써먹습니다.
역사가 벌써 왔다 갔단 말이냐
언제 어느새 왔다 갔단 말이냐
엊그제 왔다갔단 말인가
벌써 잊었단 말이냐
야, 세월 빠르다
역사가 빠르다
빨라서 내가 잊었구나
미래에 있는 것이 역사 속에 오는데
금방 온다
백리에서 천리마가 달려오듯
내 일에 빠져 일하다 보면
금방 내게 달려온다.
칙칙폭폭폭폭폭폭 칙칙폭폭
벌써 들리는 기적 소리이다
지나간 역사는 다시 온다면 오래 걸리지만
우리 앞에 있는 역사는 곧 온다
이렇게 시를 읊었습니다. 역사 참 빠르지요? 세월이 빠르다 하지요?
잠언은 “한번 지나간 역사는 다시 오려면 개인으로는 수십 년, 민족으로는 수백 년, 세계적으로는 수천 년 후에 다시 오는 것도 있고 안 오는 것도 있다.” 했습니다. 동시성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아직 가지 않은 역사는 기다리면 오지만 지나간 역사는 참으로 기다려도 안 오는 역사가 있다.”
“역사를 타고 인생도, 새로운 사람도 오고 문화 예술도 온다. 역사는 마치 흐르는 물 같아서 강물 흐르는 물에 배를 놓은 것 같아서 물이 흘러올 때 같이 오듯이 온다. 역사와 같이 온다.”
역사와 같이 흐르는 물 위에 있는 배가 물 흐르면서 같이 따라오듯이 역사와 같이 역사의 인물도 온다는 것입니다. 역사와 같이 문화예술, 문명권도 같이 온다는 것입니다. 물은 흘러 내려오지만 역사는 흘러 올라갑니다. 차원 높게 올라갑니다. 잘 올라갑니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지만 역사는 낮은 데서 높은 데로 흘러 올라간다.”
한번은 산에 올라가서 죽 기도하면서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무엇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기도도 하고 노래도 불렀더니
“오늘 뭐 깨달은 것 있어?”
“예. 하도 많이 깨달아서...”
“그런데 보니까 내가 깨달으라고 한 것은 못 깨달았어. 아직도 못 깨달았어. 한 번 더 봐.” 그때 촥 깨달아지는데 영감으로 깨달았습니다.
“아, 물은 흘러서 내려가지만, 역사는 흘러서 낮은 데서 위로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그거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님과 같이 말씀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얼마나 박식한 이야기입니까? 빨리 적어요.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 내려가지만 역사는 낮은 데서 높은 데로 흘러 올라간다.”
“역사와 더불어 역사의 주인들이 나타난다.”
오늘 주제가 역사 이야기지요?
자, 그러면 역사 이야기가 마지막 하이라이트 5분 남았습니다. 조금 남았습니다. 그것을 이야기 해주겠습니다.
역사가 얼마나 빨리 가는지, 역사는 마치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쉬지 않고 가듯이 계속 돌듯이 꾸준히 돕니다. 밤낮주야로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역사는 우리가 볼 때에 굉장히 빨리 가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빠릅니다. 누구는 ‘세월이 쏜살같다. 세월이 유수 같다.’ 말하지요?
앞에 있는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역사를 기다립니다. 앞으로 10년 후, 5년 후, 3년 후, 2년 후를 기다리지요? 그 역사가 금방 온다는 것입니다. 아까 이야기했지요? 천리 밖에 있고 만리에 있는 그 천리마가 우리를 향해 칙칙칙칙칙 오는 것입니다. 마치 역사는 천리마, 기차로 비유했습니다. 기차 소리를 내 볼까요? 칙칙칙칙칙칙칙 뿌우~ 하고 열차가 오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역사도 이렇게 우리 앞에 오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오기 때문에 ‘언제 이것이 오지? 언제 온단 말이야?’ 하지만 금방 옵니다. ‘언제 두 시간 기다려?’ 했다가도 다른 것 이야기 하다보면 금방 오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앞에 있는 역사도 금방 온다. 역사와 더불어 온다. 역사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듯이 끊임없이 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앞에 있는 역사는 금방 온다.”
“그러나 지나간 역사는 다시 오기가 어렵다.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을 기다려도 안 오는 역사가 있고 동시성으로 다시 오기도 한다. 우리 앞에 있는 역사는 바로 온다. 낙심치 말고 기다려라.”
나도 앞에 있는 역사 가운데 역사를 타고 지금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앞에 오니까 ‘도대체 언제 오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 다시 온다고 하니까 “언제 오냐?” 하고서 언제 오냐고 기다렸지만 2000년이 벌써 지나가 버렸지 않았습니까. ‘그렇게도 기다렸던 2000년, 야!’ 했지만 그러나 이 2000년이라는 역사도 벌써 지나갔습니다. 2000년 역사가 벌써 지나갔습니다. 지금 2006년도입니다. 벌써 지나간 지가 6년 되었습니다. 그게 뭡니까? 2006년도 1월 1일이 엊그제 같은데 다 지나가고 이제 한 달 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렇게 역사는 빨리 지나가고 있다. 우리 빨리 뛰자.”
알겠습니까? 빨리 뛰자. 시계 보고 뛸 때 제일 많이 뜁니다. “야, 더 뛰자! 야, 더 뛰자!” 그러면서 시간 축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계 안 보고 그냥 뛰면 엄청난 시간을 잡아먹습니다. 그래서 시간 축지를 할 때는 시계를 반드시 봐야 됩니다. 보면서 ‘야, 이 초침 한 바퀴 돌 때 내가 어디까지 가야지.’ 그러면서 뛰면 상상도 못하게 시간 축지가 되는 것입니다.
“야, 내가 3분 만에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옛날에는 누구 말마따나 괴팍스럽다고 할까요? ‘진산에 있으면서 석막리까지 내가 몇 분에 갈 거야. 하나님, 내가 7분에 갈 것이니까 8분에 갈 테니까 그때까지 나의 안전을 지켜주세요. 호랑이 나타나지 않게 해주시고, 그리고 간첩들이 제일 무서우니 간첩 나타나지 않게 해주세요. 그 후로는 하나님, 나타나도 괜찮아요. 그 안에는 나타나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 알았지요? 예수님, 알았지요? 땅!” 하고서 막 뛰어서 정신없이 뛰어갔습니다. 시계 보면서, 후레쉬불 보면서 막 뛰어갔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서 보면 시간 안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것이 시간 축지입니다. 그렇게 하면 시간 축지는 다 할 수 있습니다.
신령한 축지가 또 있습니다. 시간을 초월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 단계까지 내가 해봤습니다. 시간을 초월하는 축지입니다. 감히 그 시간 안에 들어갈 수 없는데 가는 것입니다. 간첩들, 특별 훈련 받는 사람들은 산 하나를 금방 5분에 넘어가고 그럽니다. 시간 축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월명동에서 그렇게 해보십시오. 막 뛰고 해보십시오. 시간 축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신령한 축지가 되어서 선생 같이 상상도 못하는 시간에 가 있습니다. 거기까지 가 있습니다.
역사. 역사는 뭐라고 했지요? 그렇게 빨리 온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앞으로 몇 년 있다, 5년 있다 온다 하지만 금방 옵니다. 5년도 금방 지나갑니다. 내가 여러분을 떠난 지가 벌써, 1999년도에 떠났으니까 1년, 2년, 3년, 4년, 5년, 6년, 7년, 8년입니다. 8년이 금방 갔습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을 갖고 외친 지가 벌써 27년, 28년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일찍부터 만난 사람들은 벌써 나 만난 지가 20년이 넘었습니다. 23년씩, 24년씩 되었고 25년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빨리 흘러갔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흘러가면 금방 흘러갑니다.
그러니까 앞에 있는 역사를 너무 기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다리면서 지루하니까 부지런히 자기 일만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러면 그 날이 역사와 더불어 옵니다. 알겠습니까? 천리마 타고 온다는 것입니다. 촤악 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금방 옵니다. 그 쏜살같이 오는데 아무리 멀어도 금방 온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밤낮 주야로 촤악 달리기 때문입니다.
물을 보세요. 밤낮 주야로 흘러가니까 하루만 흘러가도 어마어마하게 멀리까지 흘러갑니다. 쉬고 가면 안 됩니다. 쉬면 그렇게 많이 못 갑니다. 그러니까 빠른 세월입니다. 초침을 보세요.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갑니다. 초침이 팍팍팍팍팍팍팍팍 넘어가지 않습니까?
나는 옛날에 시계를 보다가 시간이 너무너무 빨리 가는 것을 보고 ‘어, 내가 금방 곧 죽겠어. 저렇게 빨리 가는 시간을...’ 그래서 초침을 빼 없애버렸습니다. 전도하러 돌아다닐 때 누가 벽시계를 줬습니다. 빨간 초침이 탁탁 돌아가는데 그것을 쳐다보니까 곧 죽겠어서 “에라, 잡것.” 하고 뜯어서 초침을 빼놨습니다. 그랬더니 천천히 갔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역사가 안 가는 것이 아닙니다. 시계를 쳐다보니까 내가 곧 죽겠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시계도 이렇게 보면 초침을 쳐다보면 너무 급해서 막 뛰고 싶어집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급한 마음을 먹고 해야 됩니다. 24시간 뛰듯이 부지런히 뛰어야 됩니다. 1년이 버뜩 지나갑니다.
역사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합니다.
“역사와 더불어 인물도 오고, 역사와 더불어 여러분들이 기다리는 사람도 오고, 역사와 더불어 여러분들이 희망하는 것이 온다. 그것은 온다. 역사가 싣고 온다. 여러분들이 희망 하는 것이.” 여러분이 하나님께 어떻게 해줬냐에 따라서 그 희망하는 것이 실려 옵니다.
“역사는 그렇게 기다리지 마라. 지금 당한 현실의 역사를 부지런히 잘 써라. 앞에 있는 역사만 기다리지 말아라.” 역사와 더불어 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역사와 더불어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름 타고 오신다. 흰 구름 타고 오신다.” 해서 사람들이 흰 구름만 쳐다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실상은 사람 타고 왔지 않습니까. 자기의 새로운 말씀을 전한 것, 그 말씀을 따르는 사람을 타고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흰 구름입니다. 깨끗한 구름들입니다. 메시아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따라다니면 그것이 깨끗한 구름이라는 것입니다.
또 내가 오늘 표현할 때는 “역사 타고 주님이 오신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앞에 있는 역사를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지금 현실에 맞고서 열심히 누려라.”
여러분들은 새로운 역사를 맞았지요? 성약 역사를 맞고 지금 누리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잡고서 그 역사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약 역사를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신약 역사는 흘러 가버렸습니다. 신약 역사는 벌써 흘러갔습니다. 1999년, 2000년도까지가 신약 역사라고 보는 것입니다. 왜 그것을 따질 줄 모릅니까? 나에게 어느날 그랬습니다.
“야, 자가 왜 나왔냐? 재어보라고 만들었지. 정확하게 재라고. 과학자들이 킬로를 왜 만들었냐? 너 달아보라고, 얼마인가 이 물건 달아보라고...”
역사를 우리가 계산해 봐야 되지 않습니까. 구약은 예수님이 왔을 때까지가 구약, 다시금 2000년이 될 때까지가 신약, 2000년이 넘었을 때는 성약 역사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냥 대충 따져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보다 먼저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역사의 주인이 언제 왔느냐에 따라 그 역사는 정확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역사의 주인은 역사에 맞춰서 정확하게 보내줍니다. 우리도 1미리, 2미리 계산하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역사 안 계산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겠습니까?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 하나님이 보낸 중심인물을 역사에 맞춰서, 시간 날짜 맞춰서 보냅니다. 그래서 역사를 풀어보면 정확하게 맞는 것입니다.
금주에 수요일 때 나타나서 말씀을 또 할 것 같습니다. 역사. 오늘 “역사와 심판”입니다. 여기까지 말씀하고 여기에서 말씀을 줄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서 마쳐야 되겠습니다.
역사이야기는 참 재미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죽을 날의 날짜는 모르는데 ‘대충 나는 80세까지 살다 죽어.’ ‘나는 대충 90세까지는 살다 죽는다.’ 그렇게 계산했을 때에 어떤 분들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잠깐 지나갑니다. 30년이 잠깐 지나갑니다. 20년이 잠깐 지나갑니다. 10년이 잠깐 지나갑니다. 잠깐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오래 산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나도 젊었을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합니다.
“신약 역사는 지나갔다. 지금은 엄격히 성약 역사이다.”
노래에도 나왔지 않습니까?
♪
역사의 새노래 들려 오며는
신약도 저 멀리로 사라졌는데
새 시대 맞은 사람들
아롱 젖은 그 모습
잊어버리지 말라고 역사를 노래 속에 다 지어 놓았습니다. 역사는 흘러가고 가는 것을 전부 노래로 엮어서 엮었습니다. 그 노래를 예수님과 같이 엮었습니다. 시대에 곡에 맞춰서 역사 곡에 맞춰서 지었습니다.
♪
섭리 사람들 밀려오는데
어이해 내 청춘은 늙어만 가느냐
하늘의 뜻이라면 내 청춘도 드리고 아깝지 않으리
진리로 맺은 사랑 영원한 사랑
이렇게 노래를 불러 놨습니다. “역사와 같이 가고 있다. 우리는 늙어가고 있다.” 여러분들이 노래를 자꾸 부르고 또 부르기 바랍니다.
♪
2천년 원한 꿈은 성지 땅에 풀고
님 자취 완연하다 시대의 말씀
감람산 바람도 성지땅을 안으니
주 그리워하는 마음 섭리의 신부들
노래 부르면서 역사가 이미 갔다고 판을 박아 놨는데, 도장 박아놓듯이 해놨는데 역사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역사가 갔는데 기다리고 있습니다. 열차가 지나갔는데, 벌써 손님 내리고 맞을 사람 맞고 갔는데 그 열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야기 안 해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야기 안 해주면 양심 심판 받는데 이야기해줘야 됩니다.
“안녕하십니까? 아니, 저도 지금 여기 기다리고 있는데 뭘 기다립니까?”
“아, 지금 몇 시에 온다는 차가 지금 안 오고 있네요. 내가 시계가 없어서 지금 몇 시인지 모르겠는데요.”
“아, 그 차 벌써 지나갔지요. 아, 그 비둘기호 벌써 지나갔습니다. 구름이 껴서 그런데 지금 4시입니다.”
“아, 갔단 말이에요?”
“벌써 갔지요. 나는 지금 다른 열차 기다리고 있네요. 7시 열차를 기다리고 있네요. 아까 아들이 온다기에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갔단 말입니까?”
“갔단 말입니다.”
이와 같이 시대가 갔는데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예수님이 온다고 모두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시대는 이미 갔습니다. 신약 시대는 갔습니다. 지금 성약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결혼식 할 때, 앞에 했던 사람이 12시까지인데 이 사람들이, 이제 모두 밥 자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12시부터 2시까지 이미 했습니다. 우리가 쓰는 시간에 막 밀려닥쳐서 “밥은 어떻게 먹습니까?” 하니까 “이미 끝났습니다. 그 안에 다 해야지요. 12시 안에...사를 하든지.” 해서 쫓겨난 것이나 똑같습니다.
지금은 성약 역사의 판을 치는 때입니다. “그러면서 시대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역사는 부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역사는 부른다. 숨 쉬는 대 역사가.”
우리는 역사가 불러서 이 새 역사에 와서 이 새 역사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을 주는 것입니다. 오늘 이런 말씀들은 역사가 이제 지나갔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심판은 이렇게 하시면서 간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왜? 성경에 보면 새로운 역사가 오면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또 옳고 그른 것을 말씀으로 심판하며 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러하다.” 했습니다. 모든 악한 자나 모든 자는 하나님께 심판 안 하라고 해도 다 심판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나 심판 받지 않게 열심히 잘 해야겠습니다.
오늘 처음 온 여러분들 말씀, 듣느라고 수고들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시간에 헌금하고, 봉헌하고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모두 봉헌해 주세요.
말씀이 다 끝나니까 이제 영계에서 내려와 버렸습니다. 내려오니까 목에 가래가 느껴지고 물이 막 찾아집니다. 말씀이 끝나면 이렇게 타는 것입니다. 아까 영계에 들어 있었는데 이제는 나왔습니다. 말씀 다 전했으니 나와서 이제 여러분들 봉헌하는 시간 지켜보고, 봉헌 하시고 봉헌 끝나면 기도해 주겠습니다.
자, 그러면 봉헌 끝났으니까 말씀 들은 여러분들을 위해 축복 기도 해주고 같이 봉헌 기도해주고 봉헌 축복기도 해주고 마치겠습니다.
<봉헌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의 드린 보물, 하나님께 제물을 드립니다. 우리의 물질도 드리고 그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서 쓰고 하나님께 열의 하나, 또 백의 하나 갖다 드리고 감격하고 드렸습니다. 이 물질로 많은 생명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데 쓰여지게 해주시고 우리 생활에, 섭리의 생활에 풍부하게 쓰여지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 물질들이 다른 세계에 새어 나가지 않도록 꼭 축복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마음을 드리고 생명을 드리고 우리 젊음을 드리고 하나님께 드렸으니 이 드린 우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우리가 드린 모든 제물을 주의 이름으로 드리오니 만군의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우리를 또 축복해주신 것을 감사해서 드렸습니다. 앞으로도 또 하나님이 축복해주실 것을 우리는 생각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감사하며 봉헌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이제는 모두 다 일어나 주시기를 바랍니다. 축도하고 마치겠습니다.
<광고 및 권면의 말씀>
일어났습니까? 한 마디 광고를 해줄까요? 요즘에 편지가 오는데 너무 많이 씁니다. 쓰려면 두 줄, 꼭 필요한 것만 쓰라고 했습니다. 석 줄, 몇 줄만 쓰면 됩니다. 전보 치듯이 딱딱 끊어서 쓰기 바랍니다. 딱딱합니까? 눈이 아파서 못 봅니다. 보기는 보는데 눈물이 나서 어렵습니다. 지금 결제내리고 하는 것이 너무 바쁩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꼭꼭 잘 있는 것으로 알 테니까 여기서 안부 전하고, 여러분들 편지에 답장 못 해도 내가 읽어 봤다는 것을 전해줍니다. 일부만 읽어봤습니다. 일부는 못 읽어봤습니다. 읽어봤어도 편지에 답장 못 합니다. 모두 다 읽어보고 너무 열심히 한다는 소리 듣고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주일예배 잘 안 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좀 드리십시오. 그리고 나아가서 모임에, 너무 바쁘면 못하지만 꼭 참석할 지도자는 참석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각 분야, 각 교회들 모두 행정 다시 내가 잡느라고 굉장히 바쁩니다. 세밀한 보고를 육하원칙에 의해서 해주고 여러 번 보고하다보면 시간 다 지나갑니다. 한 번 편지 왔다 갈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게 해주고 중고등부, SS들 특별히 열심히 뛰고 잘 지방에서 잘 잡아주기를 바랍니다. 각 교회에서 교사들이 잘 잡아주기 바랍니다. 대학부도 열심히 뛰고 있고, 우리 청년부들도 열심히 뛰고 있는데 부지런히 해서 금년도 마지막 12월 달 멋있게 장식하자구요.
그러면 우리 축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축도>
지금은 우리 하나님, 넓고 큰 능력과 사랑의 하나님의 이름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과 내가 빈 평안이 이들 위에 함께하고 영원할지어다. 아멘.
지구촌에 있는 섭리의 나라 모두 부지런히 말씀 또 읽고 보고 열심히 해주시기를 바라고, 여기에서 주일 말씀 단상을 아쉽게 끝나겠습니다. 그러면 모두 안녕히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