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대강좌 2강 - 3 - 1
드디어 법화경 本論에 들어갑니다.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迹門과 本門으로 나눈다고 했지요? 각 14품씩.
적문의 正宗分에 해당됩니다.
序分=서론. 正宗分=본론. 流通分=결론. ←이렇게 표현하지요.
正宗分=본론에 들어가는데, 이것의 이름이 方便品입니다.
아시는 대로 會三歸一. 三乘을 모두 모아서
一乘으로 귀결 시키는 것이 법화경의 宗旨지요.
법화경의 목적은 일승을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一佛乘. 사람이 모두가 부처님이다. 그러니 부처님으로 살라는 것을
법화경의 종지로 삼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방편품은 적문에 있어서의 안목이고,
저 뒤에 가면 如來壽量品이 있는데 그 여래수량품은 본문의 안목입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품이 방편품과 여래수량품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아시는 대로 “방편”하면 우리 느낌에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을 않는데, 법화경의 안목이라고 할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이름을 왜 “방편품” 이라고 했는가?
이것이 저도 평소에 조금 의문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방편을 제목으로 하면서,
그 제목 안에는 일승이 들어 있다.
이 방편에 대한 말을 너무 잘 쓰는데 정확하게 하면
方자는 바른, 우등상 같은 것을 타면 행동이 “방정하다.”그러지요?
方자는 바르다는 뜻입니다. 便자는 수단이라는 뜻이거든요.
정확하게 하면 바른 수단입니다.
바른 수단이 되어야 이것을 방편이라고 할 수 있지,
거짓 수단이나 아니면 어떤 저의가 숨어있는 수단이면
이것은 방편이 아니지요. 사실 방편은 엄격한 것입니다.
아무 것이나 방편이다 해서 막 써서 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방편은 반드시 實法. 진실을 목적으로 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지 방편이 방편에 그치면 그것은 사기가 됩니다.
거짓이 됩니다. 그래서 방편을 비유로 하면 건물을 짓는데
거푸집과 같습니다. 거푸집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시멘트를 채워서 나중에 거푸집을 뜯어버리면
건물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실제의 건물이 나타나는 겁니다.
방편의 용도는 그와 같은 겁니다. 또 방편은 그렇게 쓰였을 때
방편이라는 말을 쓸 수가 있습니다.
그 외에 우리가 함부로 방편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방편이라는 미명하에 별의별 비불교적인 요소.
무당적인 요소가 너무 많이 행해져서 참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이 법화경이 세상에 출현한 까닭도 그래서,
그래서 정법 불교를 선양하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 이 법화경이고,
부처님의 자비가 거기에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달과 손가락”그러지요? 손가락은 방편이지 않습니까?
달은 실법입니다. 실법을 우리가 터득하기 위해서 방편을 필요로 한 것이지요.
금강경에서 知我說法을 如筏喩者하라.
내 설법을 모두뗏목의 비유처럼 알라. 부처님이 그랬거든요.
방편을 뗏목으로 비유를 하지요. 그 뗏목은 뭡니까?
뗏목의 목표는 피안에 있습니다. 저 언덕에 이르는 것.
그것이 실법이거든요. 피안이 실법입니다. 뗏목은 방편이라고요.
방편과 실법을 정확하게 나눠놓고 그 다음에 필요에 따라서
약간 요령을 좀 부리든지 말든지 그것은 각자의 몫입니다만,
방편이라는 뜻이 그렇습니다.
말은 방편이라고 했지만,
방편을 통해서 실법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묘법연화경에서 정말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보여주고자 하는, 그리고 깨닫게 하고자 하는,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서 살게 하고자 하는
제법실상의 도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겉에서 보면 탑을 만드는데 아직은, 드러나지 아니 했으니까
그야말로 우리 눈에 가건물만 보이지요.
그래서 여기를 방편품 이라고 했습니다. 건사하지요?
제목을 이렇게 참 멋지게 달았잖아요.
사실은 “진실품”이라고 해야 옳지요.
방편품 보다는 진실품 이라고 했으면 더욱 좋지만,
그것은 뭔가 은근한 맛이 없잖아요.
슬쩍 감춘 듯, 하면서 생각하게 하고,
여운을 남기는 제목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해하기에 따라서요? 경전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그런 심오한 뜻은 참... 글쎄요. 저도 공부 하느라고 하지만,
100분의 1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정도로 이것이 참 심오하고 넓이가 있는 그런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참 천금과도 같은 이런 보물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으면서 깊이 공부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니까,
불자로서, 또는 승려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약한 것이지요.
제대로 알면 긍지와 자부심이 아주 하늘을 찌를 듯, 할 텐데
제대로 모르니까 자부심이 부족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