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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고 연락을 받은 건 우석이 노무감독으로 일하고 있던 인천의 공사 현장에서였다.
한 통, 두 통, 세 통, 거듭 전화가 걸려왔지만, 우석은 계속해서 울리는 벨소리를 듣지 못했다. 비계 철거 작업이 한창인 아파트 공사 현장은 바로 옆에서 소리쳐도 듣기 힘들 정도로 소음의 도가니였다.
소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현장, 잠시의 휴식 시간이 시작될 때에야 우석은 쇳가루가 잔뜩 묻은 작업복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현장 컨테이너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며 확인해 보니 스무 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발신자는 모두 아내, 희은이었다.
컨테이너 안에는 현장 근로자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사무실 상부에 붙박인 티브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 아이구, 저걸 어쩐대.
― 아니 왜 저렇게 내버려 두냐고!
사람들이 크게 떠들어댔지만, 우석의 관심은 오로지 부재중 전화에 쏠려 있었다.
희은은 우석이 현장에서 작업 중일 때는 전화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근무 중인 시간을 피해 점심시간과 오후 휴식 시간에 전화를 걸곤 했다. 그런 그녀가 한창 근무 중인 시간에 스무 통이 넘는 전화를 걸어왔다?
무슨 일일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에 땀구멍이 다 막히고 머리털이 쭈뼛 서는 불길한 기분이 그를 덮쳤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흠칫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 순간 정체 모를 불안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결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 무슨 일이야!
― 여보, 어떻게 해…. 어떻게….
― 뭐가 어떻다는 거야. 제대로 말을 해야….
― 지은이 … 우리 지은이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석과 희은 사이에서 십 년 만에 태어난 무남독녀 외동딸 지은이.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고스란히 풀어놓으며 두 사람을 웃게 하는 밝고 명랑한 딸 지은이.
우석의 눈이 TV에 닿았다. 여객선 한 척이 비참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여자 아나운서가 격앙된 목소리로 지은이가 다니는 학교 이름을 반복했다. 안산 단원고. 이어지는 말들이 귀를 울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수학여행, 침몰, 비현실적으로 증가되는 미확인 생존자들….
우석은 휴대폰을 쥔 손의 힘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희은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격렬한 흐느낌과 절박한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우석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 지은이 … 우리 지은이는 아니지? 지은이는 괜찮은 거지? 그렇지?
알고 싶은 건은 오직 그것 하나였다. 딸이 살아있길 바랐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 처음엔 다 살아 있다고, 살아 있다고 했어. 그런데 … 그런데 아닌가 봐. 지은아빠 어떡해, 어떡해….
― 지은이는! 지은이 어떻게 됐냐고?
그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인부들이 TV에서 시선을 떼고 안타까운 눈으로 우석을 돌아봤지만, 그 시선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환하게 웃는 지은이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제 엄마보다 키가 커졌는데도 새끼 참새처럼 재재거리며 수다 떨던 지은이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아빠, 선물 뭐 사올까?’
‘수학여행 가면서 선물은 무슨 선물.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위험한데는 가지 말고. 알았지?’
‘아빠도 참. 아빠 딸이 얼마나 착한지 몰라서 그래? 걱정 붙들어 매시라고요!’
수학여행 전날 나눈 대화가 설마 마지막은 아니겠지.
오늘 새벽, 단 한마디라도 나눴어야 했는데…. 밀려오는 후회조차 불길하게 느껴져 우석은 두 눈을 꽉 감았다.
오늘 새벽, 현장에 출근하며 작업화 끈을 묶을 때였다. 고개를 돌리자 바로 정면에 딸 지은의 방이 보였다. 스무 평이 채 되지 않는 오래되고 작은 빌라지만 우석과 아내, 그리고 딸, 이렇게 셋이 살아가는 공간으로는 아쉬울 게 없는 한 가족의 보금자리였다. 그 보금자리에서 가장 따뜻한 방에 살고 있는 지은의 방 틈새가 아주 조금 열려 있는 게 보였다. 열린 문틈으로 스탠드 형광불빛이 아른거리고, 그 앞에 앉아 있는 지은의 뒷모습이 우석의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용돈은 넉넉히 챙겨줬을까. 또 돈 아낀다고 비상금도 얼마 주지 않은 건 아닐까.
지은이를 부를까 하다가 그만뒀다. 출근 시간이 늦은 터라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현관문을 열다가 문득 뒤돌아섰다. 빼꼼히 열린 방문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지은아…. 지은아….’
부를 수 있을 때 왜 부르지 않았을까. 다시 딸 아이 이름을 불러볼 수 있을까.
컨테이너 사무실 TV에서 실종자 명단이 열거되기 시작했다. 화면 속의 배는 점점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3
2014년 4월 16일. 우석이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 시간이었고, 사고가 난 현장 근처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우석을 비롯한 실종자 가족들은 체육관에 모였다. 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체육관은 시끄러웠다. 확성기에서 핏대 올리며 떠들어대는 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안심하라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확성기의 주인공은 체육관 안에서 자신이 가장 억울하다는 듯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의 오른 팔엔 노란색 완장이 채워져 있었다.
그의 말은 미덥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석은 그를 믿고 싶었다. 완장의 힘이 지은이를 눈앞에 데려올 수만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우석이 바라는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지금 느끼는 꿈같은 이 순간이 정말 꿈이기를 바라는 그것, 그것만이 그가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이 꿈에서 깨어나 지은이가 눈앞에서 웃고 있기를 바랐다. 아빠, 악몽 꿨어? 아이가 그렇게 말하며 이마에 고인 땀을 닦아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꿈은 영원처럼 이어졌다. 체육관 안에서 오가는 아이들, 지은이와 또래로 보이는 교복 차림의 학생들 사이에 지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심하라고 떠들어대는 확성기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믿을 수 없는, 하지만 그래도 믿고 싶은 절규였다.
체육관 입구에서 아내를 만났다. 단원고에서 학부형들과 전세버스로 현장에 도착한 희은은 우석을 발견하자마자 그의 손을 으스러질 듯 강하게 붙잡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남편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손은 차가운 물에 잠긴 듯 차가워서 누구에게도 체온을 나눠줄 수 없었다.
그래도 우석과 희은은 악착같이 차가운 손을 붙잡고 현장으로 나갔다. 몇 대의 수색보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살을 가로지르는 4월의 진도 바다는 차갑고 매서운 바람으로 가득했다. 집어등처럼 마냥 밝기만 한 불빛들이 시커먼 어둠 속 바다를 헤집고 다녔다. 수십 대의 앰뷸런스와 경찰차량들이 항구 앞을 버티고 서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들, 어둠의 바다 앞에서 울리는 울음과 초조한 발걸음과 이곳저곳에서 터지는 긴박한 명령과 그에 따른 움직임은 거짓말처럼 정지된 것처럼 보였다. 사람과 사람이 내뱉는 입김만이 잘못 녹화된 필름처럼 되풀이되며 주변을 맴돌았다.
늦은 저녁의 바닷바람이 점점 더 가혹한 기세로 거세어졌다. 팽목항 바로 너머로 좌초되어 가라앉는 세월호가 보였다. 거대한 배의 침몰, 그 현장 앞에 선 우석의 눈에는 다른 어떤 사물도 들어오지 않았다. 벌떼처럼 모여든 취재차량도, 무례할 정도로 빠르게 터지는 플래시 세례도, 사고 현장을 가로막은 검은색 세단과 세단에서 내리는 오만한 구둣굽 소리도, 요란하게 설치고 다니지만 정작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관계자들도, 우석의 눈엔 희미한 무생물처럼 어른거릴 뿐이었다.
희은의 손을 잡은 우석은 앰뷸런스 이곳저곳을 바라보거나 항구로 돌아오는 구명보트, 어선들을 살폈다. 이곳저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그때마다 우석은 비명 같은 울음을 외면했다. 다행이다. 이번 사망자는 지은이가 아니야. 그는 눈의 혈관이 터질 것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사람들 사이를 누볐다.
‘우리 지은이만 살아 있으면 돼. 지은이 … 우리 지은이만 …’
그때였다. 희은이 우석의 손을 뿌리치고 갑자기 달려갔다. 희은이 달려간 곳은 항구 구석에 정차된 앰뷸런스였다. 희은을 따라 달려가던 우석은 앰뷸런스 안에 담요를 두르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한 아이가 지은이의 단짝 친구 영미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녁 늦게까지 집에서 함께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아이돌 그룹 동영상을 보던 친구였다. 아내가 비명을 지르듯 영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 지은이는? 우리 지은이는?
영미는 멍한 표정으로 희은을 바라보았다. 파랗게 질린 아이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는가 싶더니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 왜? 왜 울어? 지은이는? 지은이는 왜 안 보여! 왜 안 보이냐고!
― 몰라요. 전 정말….
― 왜 몰라. 너 지은이 친구잖아. 단짝이잖아!
―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지은이는….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희은 또래의 여자가 앞을 가로막았다.
― 이러지 말아요. 영미한테 이러지 말라고요!
여자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누가 봐도 모녀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영미와 꼭 닮은 여자였다.
― 살아남은 게 잘못이 아니잖아요. 이러지 말라고요!
여자의 어깨 뒤에서 영미가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숨조차 쉴 수 없는 서러운 흐느낌이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희은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우석의 눈앞이 뿌예졌다. 사람의 말들, 아우성, 파도소리, 확성기 소리, 앰뷸런스 소리 등 모든 소리들이 지은을 발견하지 못한 우석에겐 소음으로만 들렸다. 차가운 팽목항의 바다 속으로 모든 것이 휩쓸린 기분이었다.
4
벽시계의 시침이 12시를 가리켰을 때 희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이 빠진 그녀의 몸뚱이가 안방에서 거실을 거쳐 반쯤 열어둔 지은의 방으로 들어섰다. 책상 앞에 앉은 희은은 멍한 눈으로 지은이 손댄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지난 1년간 반복된 행동이었다.
오늘도 역시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책꽂이에 꽂힌 고등학교 2학년 교과서, 참고서, 문제집, 파일 철. 평소 가지런히 정돈해 놓는 딸의 정리 습관이 그대로 묻어 있는 책꽂이였다. 그녀는 스탠드 주위 책꽂이에 붙여 놓은 여러 장의 포스트잇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하는 다짐의 말, 꿈이나 목표, 친구들과 주고받은 농담 비슷한 말들이 담긴 색색의 메모였다.
커튼이 걷힌 창에서 강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희은은 손을 들어 뻑뻑한 눈을 가렸다. 그녀가 손을 내렸을 때, 노란색 종이가 팔랑팔랑 나비처럼 떨어져내렸다. 접착력을 잃고 떨어진 노란색 포스트잇이었다.
2014년 4월 16일. 드디어 수학여행. 엄마, 아빠 잘 다녀올게^^
지은의 메모를 확인한 희은의 눈에 점점 습기가 차올랐다. 언제부터 눈물조차 흘리지 않게 됐을까. 가슴으로는 백만 번도 더 통곡하는데 막상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마치 온몸의 수분이 죄다 빠져나가 더는 흘릴 눈물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지난 1년 동안 희은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2014년 4월 16일에서 정지된 딸의 방처럼, 그녀의 시간도 못 박혀 있었다.
희은은 눈물을 잃고, 시간을 잃었다. 그리고 또 하나, 말을 잃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도 그녀는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렸다. 딸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면 저 물밑에서 엄마 목소리를 듣고 힘내지 않을까. 그녀는 목이 갈라져 피를 토하면서도 딸의 이름을 불렀다.
지은이는 침몰 이후 거의 한 달이 다 지나서야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아무리 불러도 딸이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마침내 인정한 순간, 희은에게 말은 불필요한 것이 됐다.
한참 동안 지은의 책상에 앉아 있던 희은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방을 나왔다. 거실로 나온 그녀의 눈에 손바닥만 한 수건과 양말 한 켤레가 들어왔다. 우석이 챙겼다가 두고 간 물건들이었다. 그녀는 눈을 끔뻑였다. 고였던 습기는 눈물이 되지 못하고 눈가에 머물러 있었다.
지금쯤 우석은 걷고 있겠지. 다시 팽목항으로 가기 위해, 안산 분향소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걷고 또 걷고 있겠지. 그렇게 해서라도 잔인한 무관심 속에 파묻혀버린 그날의 비극과 아픔을 떠올리기 위해 우석과 피해자 부모들이 선택한 길이었다.
희은은 손수건과 양말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닦고, 베란다를 청소하고 화분에 물을 줬다. 그녀의 행동은 여느 주부와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결벽증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더 부지런했다. 정오에 침대에서 나와 지은의 방에 머무른 이후의 시간은 노동의 시간이었다. 그녀는 몸뚱이를 혹사시켰다. 쓸고 닦고, 또 쓸고 닦았다.
걸레로 베란다 바닥을 문질렀다. 간간이 들려오는 차 소리와 어린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를 제외하고는 빌라 주위는 조용했다.
구석구석까지 청소를 마친 희은은 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았다. 냉장고에서 마른반찬 몇 개를 꺼내고 플러그를 빼놓은 전기밥솥에 남아 있는 식은 밥을 담은 그릇 위에 물을 부었다. 숟가락으로 밥알을 으깨어 입 안으로 빠르게 밀어 넣었다.
딱딱한 밥알을 씹으며 희은은 지은의 방을 응시했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그녀의 시야에 어김없이 지은의 모습이 들어왔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부터 희은의 눈엔 책상 앞에 앉아있는 지은의 뒷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정신없이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방 안에 들어가면 지은의 뒷모습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지난 1년 동안 딸 지은은 뒷모습으로만 존재했다. 오직 뒷모습으로만.
희은은 남편이 어쩌면 사라진 지은의 뒷모습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뒷모습으로만 존재하는 딸을 견딜 수가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도 찾지 않을 것 같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아득히 잊혀져가는 그곳에 다시 가려는 건지도 모른다.
‘걸어야 해. 걷고 싶어. 그러지 않음 … 죽고 싶으니까.’
눈물이 툭 떨어졌다. 식은 밥알을 한 가득 입에 문 희은의 눈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남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왜 사는지 알 수 없었다. 왜 사는 거지? 왜 죽지 않고 사는 거지? 지은이가 남긴 마지막 카톡 메시지가 떠오르자 희은의 목에서 통곡이 터졌다. 오랫동안 소리를 내지 않았던 목소리가 쇳소리를 내며 울음을 뱉었다.
엄마. 기억해줘.
내 얼굴을, 내 얼굴을 봐줘.
나 돌아가면 공부 열심히 할게.
책상에 앉아 공부 열심히 할게.
엄마 무서워.
나 무서워.
5
단지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잊히지 않기 위해서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날의 재앙, 그 고통의 기억 따윈 송두리째 지워버리고 싶었다.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우석은 어디로도 되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석은 길 위에 서야 했다. 팽목항으로 가는 길 위에 서야만 했다.
안산 분향소를 떠나 경기도를 벗어나는 위였다. 우석은, 함께 하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이었다. 그들에게는 분명한 공통분모가 있었다. 다시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집념, 그 집념이 그들을 삭은 육신을 끌고 길 위에 서게 만들었다.
대부분 평소 많이 걸어야 하루에 만보에서 만 오천보정도 걷는 게 고작인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안산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400여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걷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결코 쉽게 생각하고 선택할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동참했다. 이들은 1년 전, 그때를 잊지 않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한 걸음씩 천천히, 하지만 쉬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우석의 옆에서 현철이 걷고 있었다. 현철은 우석과 동갑내기로 안산 반월동에서 밀링 일을 하고 있었다.
오랜 친구인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고, 10년 전부터 안산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다. 둘 다 부모로부터 변변히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고, 풍족한 월급을 받는 입장도 아니었다. 전세살이를 벗어나보려고 발버둥치지만 아이 키우고 생활비 조달하느라 자기 명의의 집을 갖는 게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처지였다. 현철은 아들과 딸을, 우석은 딸 지은을 키웠다. 지은과 현철의 아들은 동갑이었고, 단원고에 다녔다. 그리고 둘 모두 2014년 4월 16일 이후, 가족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거의 반년 만에 다시 본 현철은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다. 평소 술을 즐겨 마시는 편이 아니었지만, 아들을 잃은 뒤 식음을 전폐하고 오직 술만 마셨다. 피해자 가족들이 함께 행동하기를 원했지만, 현철은 거기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자신의 집, 자신의 방 안에 틀어박혀 술로 시간을 보냈다. 직장도, 가족도, 현철에게 이제 남아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현철의 아내는 세월호 사건을 겪은 뒤 반 년 만에 딸을 데리고 안산을 떠났다. 친정인 천안으로 내려가겠다는 말 한 마디 남기고 떠난 것이다. 현철은 그렇게 홀연히 떠나는 아내와 딸을 막지 못했다. 어떤 말이 필요하고 어떤 위로로 아내를 막을 수 있을까. 현철은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떠나보낸 채 아들의 방 안에 웅크리고 앉아 술을 마시며 시간을 죽였다.
한동안 우석은 이웃에 사는 현철의 집에 찾아가도 보고 전화 연락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난 반년 동안은 우석 역시 정신적 공황을 겪는 통에 전혀 연락하지 못했다.
대열은 처음 출발 때와 다르게 길고 느슨하게 이어졌다. 자원봉사자들은 길 위를 걷는 이들과 가급적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눈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아서였다. 그만두라고. 이쯤해서 그만두라고 말할 것 같아서였다. 그만큼 팽목항으로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멈추겠다는 말, 돌아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늦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가슴 속까지 시리게 파고들었다.
천안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던 현철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현철과 보폭을 같이하던 우석도 따라 앉았다. 우석이 물통을 건네자 현철은 두 모금을 게워낸 후 간신히 한 모금 삼킬 수 있었다. 자신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우석에게 현철이 말했다.
― 뭐라도 마시면 꼭 술 생각이 나서.
― 금주 중이야?
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현철은 밭은기침을 내뱉으며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상기된 얼굴과 거친 숨소리가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했다.
―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어때?
우석의 말에 현철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 상현이가 날 불렀어.
― 뭐?
― 네가 나한테 남긴 문자 메시지, 팽목항까지 걷는 데 동참하겠냐고 물었던 바로 그날 밤이었어.
참았던 기침을 한 번 크게 내뱉은 뒤 현철은 희뿌연 안개가 자욱한 국도 위 하늘을 올려다봤다. 우석의 시선도 그와 함께했다.
― 상현이 방 구석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데 … 그런데 그때, 상현이가 나를 부르는 거야. 아빠. 여기라고. 나 여기 있다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현철의 고귀한 핏줄 상현은 이미 진도 바다 속 깊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우석이 다시 현철을 바라봤다. 몰라보게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검은 눈동자만큼은 그 어느 순간보다 청명해 보였다. 현철이 말을 이었다.
― 그리고 말하는 거야. 날 잊지 말라고. 그래서 내가 대답했지. 어떻게 널 잊을 수 있냐고. 그렇게 답은 했는데 … 씨발, 말은 그렇게 했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난 술로 상현이를 지워버렸고, 이 빌어먹을 나라는 망각이란 이름으로 상현이를 지워버리고 있었어. 잊지 말라고 애원하는 아이를 애써 지워버리고 있던 거라고.
순간, 우석은 아내 희은을 떠올렸다. 그녀도 지은의 방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두커니 지은의 책상 의자에 앉아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늦은 오후의 붉은 빛살을 바라보곤 했다.
현철은 참고 또 참았던 말을 게워내려 했다. 1년 만에 다시 돌아온 현실이고, 절망이었다.
― 상현이는 여전히 차가운 바다 속에 있어. 그런데 어떻게 잊으라는 거지? 너도 알잖아. 우리가 자식 목숨 값 받아 한 몫 챙기려 한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 말 들었지? 우리를 괴물 쳐다보듯 바라보며 그만 잊으라고, 그런다고 죽은 아들 살아 돌아 오냐고 빈정거리던 사람들 말, 똑똑히 들었잖아! 그런데 나보고 여기서 그만두라고? 다시 잊으라고. 술로? 눈물로? 술주정으로? 난 그럴 수 없어. 절대 그럴 수 … 없어.
현철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그의 다리는 심하게 부어 있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현철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들이 결국 암묵적인 합의를 깨고 현철을 부축하려 했다. 하지만 현철은 단호히 그들의 호의를 거절했다.
― 혼자, 나 혼자 걷겠어요. 괜찮아요. 나 혼자….
우석은 현철의 비틀거리는 걸음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것이 지옥이지만 그래도 걸어 나가려 하는 그 집념이 우석의 눈에 아프게 들어와 박혔다.
6
모든 것이 뒤틀리고 휘청거렸다. 단순한 착시가 아니었다. 서로가 붙잡은 손을 놓지 않는 희은과 우석은 똑똑히 실감했다. 체육관, 그리고 팽목항 앞 바다, 그 어디에서든 비틀리지 않는 곳이 없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만 것이다.
비틀리고 일그러진 땅 위, 이 절박한 시간을 갉아먹는 절망을 막아내기 위해 둘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체육관 안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쏟아지는 목소리가 둘의 귀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단 하나의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이백 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여전히 침몰한 세월호 안에 남아 있다는 것, 생존 가능성이 있다는 것, 하지만 그 생존의 시간들이 모래시계의 모래가 쏟아지듯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는 것.
절망이 고통스럽게 밀려들수록 희은은 우석의 손을 더 힘껏 잡았다. 하지만 우석에게도 고통스런 시간의 흐름을 막을 여력은 없었다. 막막함이 더해만 갔다.
비틀린 인간들의 비틀린 말들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믿고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한 지 여섯, 일곱, 여덟 시간을 훌쩍 넘겨 버렸다. 하지만 침몰한 배의 생존 시간이 줄어드는 이 끔찍한 절박함 속에서 체육관, 항구, 진도 앞바다 위에서는 그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수색을 하는 것도, 구조 작업을 실행에 옮길 만 한 별다른 의지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하룻밤이 또 지나갈 것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희은과 우석의 절망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갔다.
지옥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지은의 싸늘한 주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짓뭉개진 몸을 붙잡았을 때에도 계속되었다.
그 후, 아무 것도 달라진 건 없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했고, 대표로 하나만 잡아넣으면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대통령, 정부, 관계자들, 어느 누구도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다. 언론은 슬금슬금 시민들이 지루하고 불안해 한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종북 세력이 세월호 유가족 중에 숨어 있다는 루머, 동생, 형, 누나들의 대학특례입학을 시켜줬다는 말, 아이들의 목숨 값으로 안산에 살던 부모가 강남으로 이사했다는 근거 없는 비아냥거림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점차 세월호를 잊으려 했다.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 불쾌하고 우울한 과거는 그만 잊어야 한다는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여전히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쯤 하면 되었다는 말들을 쏟아냈다.
우석과 희은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싸워야 했다. 주위의 무관심과 냉대, 조소, 조롱, 심지어 어떤 이들은 가난한 자들이 받을 수밖에 없는 형벌이란 말까지 들먹거렸다.
우석은 알고 싶었다. 처음부터 저 푸르고 차가운 바다 속에 빠진 우리 아이들을 살릴 의지가 있었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사고 발생 직후 9시간 동안, 이 비틀린 공간과 시간을 지탱하고 있던, 믿으라고, 무조건 믿으라고,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믿으라고 말하던 일그러진 영혼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변명이라도 좋고 핑계라도 좋으니 듣고 싶었다.
우석과 희은은 손을 붙잡고 질문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청와대로 가야 했다. 대통령을 만나야 했다. 이 나라의 가장 높은 분의 말을 듣고 싶었다. 어떤 말이라도 들으려 했다. 하지만 길이 막혔다.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저들의 금기와 위엄은 하나뿐인 딸을 잃은, 자신을 잃어버린 같은 동족의 말에 귀를 닫았다. 수많은 전투 경찰들이 유가족들 앞을 버티고 섰다. 굳게 닫힌 저 너머의 권력은 오만한 눈길로 피해자 유가족들을 굽어 살폈다.
우석은 그 높은 장벽 앞에서 눈이 먼 이들의 야만을 보았다. 높은 장벽은 최소한의 감정, 연민, 동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석은 저 높은 곳에 있는 이들의 눈이 멀어버렸다는 끔찍한 공통분모를 발견하곤 치를 떨었다. 굳게 닫혀 있는 철문, 만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들, 미동도 않고 유가족들을 막아선 전투경찰들의 챙 깊은 모자 속으로 감춰진 얼굴들, 그 모든 눈 먼 자들을 지켜보던 우석의 몸이 전율했다.
그 눈멂은 철저한 절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서로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상태 외에 그 어떤 절망이 있을 수 있을까. 우석은 대화의 벽을 아예 막아 놓은 눈먼 자들의 높고 높은 성벽 앞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때였다. 희은의 손이 스르륵 우석의 손에서 벗어났다. 우석이 놀라 희은의 손을 다시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우석에게서 벗어난 그녀는 홀로 걷기 시작했다.
유가족들과 전투 경찰, 정부 관계자가 대치하고 있는 살벌한 공간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희은이 지친 걸음을 이끌었다. 순간 쉼 없이 오가던 말들이 멈춰 버렸다. 모인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희은에게 향했다. 희은이 주위 사람들을 돌아봤다. 절망과 체념의 기운으로 뒤덮여버린 유가족들을 어떻게 해서든 막으라는 상부 지시를 받은 전투경찰들, 지금만 어떻게 대충 넘기면,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이전처럼 잊힐 거라고 믿는 정부 관계자들까지. 그들 모두 희은을 지켜보았다.
우석이 희은에게 다가갔다. 희은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다. 소리는 없었다. 그저 입술이 소리가 되지 못하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희은의 몸을 끌어안았다. 차가웠다. 사람의 몸이 이처럼 차가울 수 있을까. 만약, 물속에 빠져 있던 지은의 몸을 끌어안았다면 느낌이 이랬을까. 우석의 몸은 더 한층 깊고 큰 전율에 사로잡혔다.
희은의 중얼거림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우석은 절망의 눈빛으로 청와대를 바라봤다. 깊은 밤, 불이 꺼져 있는, 짙푸른 녹음과 단단한 권위의 껍데기에 사로잡힌 푸른 지붕의 그곳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의 이름은 침묵이었다는 느낌이 우석의 몸 속 깊이 파고들었다. 희은의 몸이 더욱 차가워졌다. 물 속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우석은 아내를 안고 있었다. 우석은 딸을 안고 있었다. 소리 되지 못하는 중얼거림이 아내의 입에서, 딸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석은 절박함을 담아 희은을 더 힘껏 끌어안았다. 희은의 중얼거림은 가라앉지 않았다. 중얼거림은 물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간절함으로 계속되었다. 희은은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 물 속 깊은 절망이란 이름으로만 기억될지도 모를 딸 지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이런 어른들이 있어서 미안하다고, 이런 무능력한 인간이 너희들의 엄마 아빠라는 게 너무 싫고 부끄럽다고. 그녀의 차가운 몸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7
‘포기하면 안 돼. 갇혀 있으면 안 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을 거야.’
온몸을 떨며 통곡하던 희은은 우석의 말을 기억했다.
말을 못해도, 아무 것도 못해도, 기억 속에서 지은을 잊어선 안 된다고, 지은이는 아직도 살아 있다고,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무정한 세상 한 복판에 살아 있다고, 지은이가 살아 있는 거, 그거 그냥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차갑고 시린 서글픔으로 살아 있는 거라고, 우석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우석은 팽목항으로 가겠다고 했다. 팽목항을 향해 걷겠다고 했다. 1년 전, 끔찍한 공포와 슬픔을 안겨준 팽목항으로 또 다시 가겠다고 한 것이다.
우석은 희은에게 같이 걷자고 했다. 희은은 벽을 돌아보고 누운 채 침묵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우석은 강요하지 않았다. 희은은 차갑게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포기하면 안 된다는, 갇혀 있으면 안 된다는 그 말이 희은의 머릿속에서 내내 맴돌았다. 결국 그 말이 그녀를 일어서게 했다. 움직이게 했다.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을 신고 문을 열고 복도 밖으로의 한 걸음 내딛게 했다. 나가야 한다.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희은이 밖으로 나가려던 그 순간이었다.
그녀를 멈춰 세운 것은 열린 문 틈, 그 틈새였다. 시선이 지은의 방에 멈춰버렸고, 몸은 굳었다. 반쯤 열린 현관 앞에서 한 발은 복도에, 다른 한 발은 집 안에 걸쳐 선 채였다. 현관 손잡이를 잡은 손의 힘도 다시금 약해졌다.
열린 틈새에서 냉기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침대 위에 수초가 자라고 책상은 녹이 슬었다. 창문은 깨지고 뿌연 부유물이 방안 공기 중에 떠다녔다. 그곳은 호흡할 수 없는 곳, 체온을 유지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 한때 지은이가 있었다.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딸이 느꼈을 고통을 자신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딸과 함께 죽고 싶었다.
‘그럼 누가 우리 지은이를 기억해 주지?’
우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은은 문고리를 붙잡은 채로 미끄러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빌라 복도 창문으로 세찬 바람이 한차례 희은의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희은이 고개를 들었다. 지은의 방문 틈새로 붉은 빛을 머금은 늦은 오후의 빛살이 새어 나왔다. 더없이 강렬한 빛의 침투가 희은의 눈을 사로잡았다.
빛은 더없이 강렬한 열기로 현관 입구에 주저앉은 희은의 머리 위로 세례의 물방울처럼 쏟아져 내렸다. 빛의 따스함이 위로의 속삭임으로 돌변해 그녀의 몸 속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희은의 몸은 자신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전율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희은은 문고리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빛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지은의 방문 틈을 타고 쏟아져 나오는 빛이었다.
어느덧 수초는 사라지고 사방에 켜켜이 쌓인 시뻘건 녹이 사라졌다. 공기 중에 부유하던 탁한 침전물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밝은 빛이 있었고, 그 안에 딸 지은이가 있었다. 지은이는 책상 앞에 앉아 뭔가 끼적이고 있었다.
‘지은아.’
희은이 입술을 움직였다.
― 지은아!
희은이 크게 딸의 이름을 불렀다.
지은이 고개를 돌렸다. 건강하게 발그스레한 두 뺨으로 지은이 웃었다.
그와 함께 소리가 들렸다. 열린 현관 밖, 2층 빌라 건물 앞 거리에서 들려오는 여고생들의 말소리, 웃음소리였다. 쉼 없이 이어지는 여고생들의 생기 넘치는 웃음소리가 희은의 귀에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희은은 두 귀를 열고 여고생들의 말을 들었다. 진짜 살아있는 아이들의 말소리였다.
지은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은이의 얼굴에 여고생들의 목소리가 겹쳤다. 지은이가 눈으로 말했다.
‘엄마, 고마워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하나의 길이 희은 앞에 펼쳐졌다. 걷지 않으면 안 되는, 이렇게 살아있다고,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함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몇 개월만인지 모르겠다. 그녀가 집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 밖으로 나온 희은은 걸음을 옮겼다. 하교 시간과 맞물려서 교복 차림의 여고생들이 종종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희은은 여고생들의 틈에 섞여 함께 걸었다. 살아있는 아이들의 걸음걸이, 웃음소리, 재잘거리는 말소리들이 멀미가 나도록 생생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며 친구들과 대화하던 한 소녀와 가볍게 몸이 부딪혔다.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 어머, 죄송해요.
소녀가 수줍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소녀의 유난히 검게 빛나는 눈은 딸 지은의 눈이었다. 희은의 곁으로 아이들이 지나갔다. 희은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활기찬 아이들의 흥겨운 걸음을 기억했다. 그 걸음으로 그녀도 함께 걸었다.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빛이 가장 환하게 비추는 곳으로 걷기 시작한 것이다.
8
늦은 오후가 되면서부터 어둑해지는 날씨만큼이나 고통스럽게 내려앉은 건 두려움이었다. 현철의 점점 굳어져만 가는 얼굴을 보면 더욱 그랬다. 현철의 숨소리는 불안할 정도로 거칠었다. 현철과 보폭을 맞춰 걷는 우석의 속도도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무리였을까. 제대로 된 채비를 갖추지 못한 현철을 두고 우려의 시선이 많았었다. 누구 한사람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지만, 특히 현철은 서 있는 것조차 불안해 보이는 지경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의 눈빛에는 심각함과 진지함이 교차했다.
결국 현철은 오르막 경사가 시작되는 고속국도 갓길에서 주저앉았다. 보호난간을 붙잡은 현철이 고개를 숙이더니 곧 몸의 균형을 잃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은 것이다. 우석이 한 걸음에 현철에게 다가갔다. 잠시 기운을 잃었던 현철은 몇 번 숨을 고르더니 보호난간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우석이 현철을 부축하며 말했다.
― 괜찮겠어?
질문조차 사치였을까. 우석은 현철의 고통스런 밭은 기침소리를 들었다. 오랜 시간 술과 절망에 사로잡힌 현철의 몸 상태로 봐서는 천안을 넘어서는 이 길 위가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현철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축하는 우석의 손을 뿌리쳤다.
― 내가 가겠어. 내가.
오르막 경사의 길은 현철에게 끝도 없는 절망의 벼랑처럼 펼쳐지는 것 같았다. 현철은 고개를 휘저으며, 힘껏 심호흡을 하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었다.
9
현철과의 동행은 말 그대로 고행이었다. 우석은 할 수만 있다면 현철의 집념을 막고 싶었다. 낯빛이 창백하게 질리고, 한 걸음 떼는 것이 처형장으로 걸어가는 수인처럼 무거웠기 때문이다. 함께 한 일행들도 자신들의 고통을 뒤로 한 채 대열의 가장 뒷머리를 지키고 있는,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현철을 안타까움과 경이가 뒤섞인 눈길로 지켜보았다.
팽목항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 위에서였다. 현철은 자신의 초인적인 정신력, 의지로도 이겨낼 수 없는 몸의 한계를 맞이하고 말았다. 지친 건 우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우석의 눈에는 현철만이 보였다. 오르막 경사의 국도 갓길에서 현철이 고꾸라지듯 주저앉는 게 보였다. 무릎을 꿇은 현철은 한 동안 고개를 숙인 채 꼼짝하지 않았다. 습하고 강한 바람이 한 차례 땀에 젖은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늘했다.
― 괜찮아?
고개를 숙인 채 현철이 답했다.
― 괜찮아 … 괜찮다고.
―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아.
우석의 말은 고통을 느끼는 상대에게 건네는 상투적인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우석은 진심이었다. 여기까지 왔다. 팽목항의 코앞까지. 바다의 비린내가 풍기는 것 같았다.
― 이제 우리 마음 충분히 알았을 거야. 그러니까 봉고차에 타.
자원봉사자들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준비한 봉고차가 보였다. 현철이 지친 몸을 봉고차에 누인 채로 팽목항에 도착한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오랜 시간 술과 고통, 번민과 원치 않은 금식의 시간을 보낸 현철이 아닌가.
현철이 고개를 들었다. 이마에 맺힌 땀이 눈을 타고 흘러내렸다.
― 아니, 끝까지 내 발로 갈 거야.
― 여기까지도 괜찮아. 이제 그만둬. 그만두라고!
현철이 고통스럽게 숨을 내쉬며 우석의 말을 되받았다.
― 어떻게 그만둬? 어떻게!
현철이 보조난간 밖, 하늘을 바라봤다. 우석의 시선도 그의 흔들리는 시선을 따라 하늘로 옮겨갔다.
― 그거 알아? 여기서 멈추면 다신 물속에서 나오지 못할 것만 같아.
― …
― 그 기분 … 아느냐고!
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현철의 영혼은 그날 이후 물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차갑고 난폭한 물속 깊이, 선실에, 휴게실에 갇혀 있었다. 우석은 자신이 왜 걸으려 하는지, 1년이나 지난 지금 왜 팽목항으로 가려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물속에 빠져버린 영혼을 건져 올리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양심을, 살아 숨 쉬고 있는 영혼의 심장을 건져 올리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고선 여전히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지은을 마주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현철도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다. 그럴 것이다.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주위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앞이 캄캄해졌다. 그 느낌은 숨을 고르던 현철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리고 그런 현철을 바라보던 우석의 시선에서 공통적으로 체감된 경험이었다.
주위 모든 사물의 움직임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무리 소리치고 발버둥 쳐도, 애원하고 절규하고 서러운 차가움에 몸서리쳐지는, 부동의 정지상태가 계속되었다.
우석이 안타깝게 현철을 바라봤다. 현철은 한 숨, 한 숨 힘겹게 쏟아내고 있었다. 낯빛은 새하얗게 질려 갔으며, 이마에는 땀이 한 가득이었고, 검은 동공이 초점을 잃고 간헐적으로 흔들렸다.
현철이 우석을 올려다보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우석도 따라서 고개를 가로 저었다. 고개를 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의 모든 것이 어느새 푸른 물빛에 동화되어 있었다. 하늘빛은 붉고 뜨거웠지만 우석과 현철을 사로잡은 주변의 모든 것은 온통 푸른 물빛이었다. 짙푸른 물빛을 머금은 주변 모든 것이 바다 속으로 깊게 가라앉았다. 그 절망적인 실감이 지친 현철에게 그대로 전달된 걸까. 절망적으로 우석을 올려다보던 현철이 더 간절히 우석을 바라봤다. 가라앉아버린 자신을 구원해달라는 눈빛이 우석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우석이 다가갔다. 현철을 향해 우석이 손을 내밀었다. 현철이 고개를 계속해서 가로 저었다. 안 된다는 말을 소리 없이 반복하며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우석은 현철의 가혹한 절망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주위 모든 것이 푸른 물빛 속으로 가라앉는 이 절망을 인정할 수 없었다.
우석이 으스러질 듯 강한 힘으로 현철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다시 주위를 바라봤다. 푸른 물빛이 너울 쳤다. 차갑게 몰아쳤다. 그래도 우석은 움켜쥔 현철의 손을 놓지 않았다.
10
10시간 후, 노란 깃발들이 우석의 가슴을 뿌리 깊은 먹먹함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진도 바다 앞 팽목항이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을 영원히 기억하고픈 열망이 가득담긴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흩트려진 꽃잎처럼 눈에 들어왔다.
우석의 부축을 받은 현철이 노란 리본 앞에 멈춰 선 순간 그 자리에 쓰러져 울기 시작했다. 지천명을 넘긴 남자가 무방비상태로 거리 한 복판에 쓰러져 통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도 현철의 울음을 막지 않았다. 한 남자의 울음이 이토록 처절하고 뜨거울 수 있을까. 함께 했던 도보 순례자들도 한두 명씩, 때론 소리 내거나 때론 소리를 삼키며 함께 울기 시작했다.
우석은 노란 리본이 바람에 흩날리는 팽목항 한 가운데에 멈춰 섰다. 주위를 둘러봤다. 바닷소리는 여전했다. 하늘 높이 치솟은 태양의 열기도 여전했다. 모든 것은 변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였다. 다만 하나, 지은의 부재만이 가슴 깊이 박힌 슬픔의 비수가 되어, 풀려나지 않은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울리지 않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석은 현철의 손을 잡은 채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희은이었다.
말을 잃은 이후 단 한 번도 전화 한 적이 없던 희은이었다. 우석이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당신이야?
― …
― 여보, 여기 … 여기 팽목항이야.
― …
― 들려? 들어 봐. 바닷소리, 파도소리, 새소리,
― …
― 들려? 응? 들려?
우석이 휴대폰 액정을 짙푸른 바다를 향해 뻗어보였다. 새소리, 파도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한참 동안 소리를 들려준 우석이 다시 전화를 귀에 갖다 댔다.
여전히 발신자는 침묵 중이었다. 아내의 이름, ‘희은’이란 발신자 명이 액정 위에서 깜빡이는 건 여전했다. 전화는 끊어지지 않았다. 우석도 어느 순간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귀를 기울였다. 그 침묵 속에서 희은의 숨소리가 들렸다. 옅고 희미한,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을 강렬함을 품은 숨소리가 들렸다.
휴대폰 너머로 여고생들의 쾌활하고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희은의 한없이 낮은 숨소리도 들렸다. 그녀의 숨결, 그녀의 살아있음이 느껴지자 순간 우석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팽목항 주변은 다시 붉은 노을을 머금은 하늘로 되돌아왔다.
뜨거웠다. 모든 것이, 아들을 잊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걷던 친구 현철의 손도, 휴대폰 너머로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 살아 있다고. 앞으로도 살아 있을 거라고’ 그렇게 소리치고 있는 아내의 숨소리도, 그 너머로 재잘거리는 우리의 딸들, 우리들의 소중한 생명의 고동침, 그 모든 것이 붉고 뜨겁게 타올랐다.
우석은 현철의 손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또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내의 숨소리를 느끼며 저 타오르는 붉은 태양을 정면에서 응시하며 팽목항, 결코 잊을 수 없는 희망과 절규의 근원을 향해 또 한 걸음 내딛었다.
■ 일러스트 : TIM 디자인
주원규
첫댓글 걸어야 해. 걷고 싶어. 그러디 않음...죽고 싶으니까..
눈물을 잃고 시간을 잃고 말을 잃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펑펑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