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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지음|지식산업사 |
2001.2.15|ISBN 8942310591|368쪽|A5 |
평점
책을 내면서
오늘날 우리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이른바 '제2의 개방'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는 100년 전에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 강요 당했던 '제1의 개방'과 맥을 같이 한다.
물론 100년 전의 역사가 오늘날 그대로 되풀이 될 수 는 없다.
역사에서 같은 사건의 반복은 있을 수 없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내외 여건 또한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형이 비슷한 사건마저 되풀이되지 않는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열강의 침략은 오늘날 그 방법이 달라졌을 뿐 본질까지 달라 진것은 아니다. 냉전체계의 붕괴 이후 민족간 대결에 여념이 없는 동구권의 경우와는 달리, 서구권에서는 이념의 대립이 아닌 경제대결 내지 경제전쟁의 물결이 거세어졌다. 그 결과 우리도 그 여파와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제국주의시대처럼 국토까지 유린당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칫 열강의 경제 식민지 내지 기술 식민지로 전락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
거의 모든 분야가 사실상 무한 경쟁에 돌입하게 되고,
특히 IMF 관리시대를 겪고 있는 오늘날에는 이런 우려가 피부로 느껴지는 터이다.
'제2의 개방'에 직면한 오늘의 긴박한 상황에서 '제1의 개방기'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이 절실하다는 저자의 판단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제2의 개방'을 강요당하고 있는 우리 현실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으려면 우리 역사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실책과 시행착오로 점철되었던 100년 전의 역사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다시는 그러한 불행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거기서 역교훈(逆敎訓)을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전제되어야 함은 재언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30여 년간 이 분야를 공부해온 저자의 지론이다.
우리 땅에 들어온 제국주의 열강의 본질과 행태를 이해함이 없이는 개방기의 우리 역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이 책은 세계를 향해 문호를 개방한 우리 선조가 제국주의의 본질과 국제 정황에 어두워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지난날의 역사를 되짚어 보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여기에는 '세계화'라는 표방 하에 이미 그 일원이 된 오늘날의 우리만은 100년 전과 유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저자의 애절한 소원이 함께 담겨 있다.
오늘날에도 남북 정상의 만남을 시화로 4강은 100년 전과 다름없이 저마다 자국의 권익을 챙기기 위한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00년 전에도 그들은 저마다 '한국의 독립'을 빙자하며 자국의 권익을 챙겼다.
그러나 그들 열강이 주장했던 '한국의 독립'이라는 구호는 나라에 따라 그리고 시기에 따라 그 뜻이 전혀 달랐다.
그것은 자기들이 힘을 갖출 때까지 상대를 묶어두기 위한 명분이었을 뿐 진정으로 우리를 독립시키자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중국과 러시아가 내세운 '한국은 주권국가'라는 말도 100년 전에 그들이 내세웠던 '한국의 독립'을 연상하게 할 뿐이다.
100년 전의 우리는 '거중조정'과 '개입'이라는 외교용어도 구별하지 못했다.
약자의 입장에서 무턱대고 강자를 이용하려다 거꾸로 역이용당하는 수모만을겪었다.
그리고 <조선책략(朝鮮策略)>에 따라 미. 영 일변도 외교를 해오던 우리는 불과 2년 만에 돌연 그 노선을 정반대 방향으로 바꾸어 러시아를 끌어들였고, 그것도 모자라 그 뒤 2개월 만에 저들과 '밀약' 체결설까지 나돌게 했다.
이는 오늘날에 와서도 되풀이되어, 한소수교와 한중수교를 맺는 과정에서 그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이제 연구 생활을 일단 정리해야 할 시점을 맞이하여, 저자는 문득 자신의 학문적인 편력을 잠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근대화' 연구에 집중되었던 6~70년대 우리 학계의 분위기에 발맞추어 저자도 처음에는 서양의 근대화를 선도했던 영국, 특히 그들의 '초기산업혁명'을 중심으로 한 경제사 공부부터 시작했다.
그리하여 애슐리(William Ashley)나 립슨(E. Lipson) 등의 고전을 탐독하고 '초기산업혁명'을 주창한 네프(John U. Nef)의 연구 업적에 심취했다.
그러나 이를 토대로 산업혁명을 성취한 영국이 재국주의 국가로 탈바꿈하여
아시아 침략을 선도하고 다시 러시아가 뒤따라 침략의 방향을 아시아로 정함으로써
이 양대 강국이 아시아를 무대로 패권 경쟁을 벌인 사실을 접하게 되자,
저자의 관심은 점차 제국주의시대로 옮겨갔다.
역사를 통한 현실인식의 필요성을 통감해서였다.
이 분야 연구를 진전시키는 가운데 저자는 마침내 우리 역사에 대한 재평가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침략이 우리에게 주는 역사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두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하게 되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 같은 저자의 소박한 뜻은 지난 1993년 이후 7년에 걸쳐 국방대학원의 진급장군반(進級將軍班)을 비롯한 각 대학 대학원의 최고경영자과정에서 '19세기 말 한반도 국제 정황과 역사인식'이라는 특강을 통해 이미 그 골격의 일단을 밝힌 바 있다.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보완과 재해석이 가해져야 할 문제점에 대한 하나의 윤곽 제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부족하지만 이 저작이 우리 역사를 세계사적 시각에서 재평가한 우리 학계 최초의 연구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는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느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제국주의 열강의 아시아 및 한국 침략에 대해 연구하려는 전공 학도는 물론 개방기의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진 학생과 일반 지식인의 교양에도 도움이 되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저자는 한국사의 좁은 지평을 뛰어넘어 세계사적 시야에서
재평가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역사는 물론 우리의 현실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강조하는 데 특히 역점을 두었다.
물론 전문 지식을 추구하려는 후학들을 위한 길잡이의 구실을 하는 데 소홀하지는 않았다. 이 책은 이 분야의 연구를 위한 전문서임이 분명하지만,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제 관계를 되도록 평하게 설명함으로써 일반 독자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신경을 쏟았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각주를 달고 참고문헌을 수록해 관심이 가는 부분을 더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연표에서는 독자의 편의를 고려하여 관계되는 사건에 대해 연도뿐만 아니라 날짜까지도 밝혔다.
특히 맺음말에서는 '세계사적 관점에서의 문제 제기'라는 부제를 붙여 이 분야의 전공 학도를 위해 우리 한국사에서 사건의 내용과 의미가 사실과 어긋나 있거나 설명이 소략한 10가지의 문제를 골라 재해석을 가했다.
'집필후기'에서는 일반 독자를 위해 '100년 전과 오늘'의 상황을
비교함으로써 미흡하나마 우리가 역사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 무엇인가를 정리해보았다.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저자는 후배 교수들과 이 분야를 전공하는 많은 제자들로부터 아낌없는 도움을 받았다.
내용의 타당성을 둘러싸고 격의 없이 토론을 벌이기도 했고 원고 교정에도 폐를 끼쳤다. 특히 전공자의 입장에서 내용의 타당성과 교정 등 번거로운 잡무를 맡아준 제자 석화정(石和靜) 박사와, 비전공자의 입장에서 숙독한 뒤 머리말과 서론의 분리 등 체재상의 의견을 제기해준 후배 교수 임지현(林志弦)박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리고 참고문헌의 정리를 맡아준 김현식(金賢植) 박사와 연표의 정리와 타자를 맡아준 김도환(金都煥)박사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에게 고마운 뜻을 전한다.
아울러 이 책의 출판을 기꺼이 맡아준 지식산업사의 김경희 사장과 이경희 씨를 비롯한 직원 여러분의 수고에도 감사드린다.
출간을 앞둔 이 순간에도 저자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혹 있을지도 모를 체재와 내용에서의 미흡 때문이다. 동학 및 독자 여러분의 질정을 바란다.
2001년 1월
최문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