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별곡] 임금님이 드셨다는 진상미 이천쌀과 선비 정신이 깃들어 있는 산수유마을
경기 이천으로 들어왔을 때 첫인상은 포근한 어머니의 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따뜻한 온기가 도시 전체에
가득 풍기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전체적으로 구릉지가 많고 넓게 펼쳐진 논이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무래도 쌀이 일 순위다. 특히 임금님이 이천 쌀을 먹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스토리텔링이 각인돼 쌀 생산량에서 호남을 능가하진 못해도 그 품질 하나만큼은 대한민국 으뜸으로 꼽힌다.
이미지뿐만 아니라 이천 지역 자체가 경기도 내륙에 있는 분지지형으로 일조량과 강우량이 충분하고, 밤낮의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벼농사로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밥맛을 결정짓는 요소인 찰기 및 질감에 영향을 줘 전국
평균보다 단백질은 0.8%, 당질은 1.7% 낮아 밥맛이 뛰어나다.
찰기 도는 밥맛이 일품인 이천쌀
이천쌀이 임금님에게 진상하게 된 이유는 여러 설이 있다.
양녕대군이 이천으로 귀양을 왔는데 그곳의 쌀이 정말 훌륭해서
세종에게 보내서 진상미로 자리 잡았다는 설이 있는 반면에, 성종이 세종 능에 성묘하고 환궁 시
이천에 머물던 중, 이천쌀로 밥을 지어 진상했는데 맛이 좋아 자주 진상미로 올리게 됐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이천을 땅이 넓고 기름진 곳으로 밥 맛 좋은 자채쌀을 생산해
임금님께 진상하는 쌀의 명산지로 기록돼 있다고 하니 근래에 이천쌀을 부각해서 유명해진 건 아닌 듯싶다.
이천에서 이천쌀을 즐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천의 곳곳마다 모여 있는 쌀밥집에 가서 이천쌀밥을 즐기는 것이다.
쌀밥집은 대부분 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가에 모여 있고, 넓은 주차장과 화려한 외관을 지니며 길가는 행락객들의
손길을 붙잡고 유혹한다.
이천 시내로 들어오는 초입 신둔면 지역에는 수많은 이천쌀밥집이 모여 있는 사음동 쌀밥거리가 있다.
이천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이천쌀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려볼 것이고, 이천을 나가는 사람들은 그 아쉬움으로
먹고 가자는 이유로 식당을 방문한다.
그래서 쌀밥거리는 주말마다 수많은 인파의 행렬로 붐비는 곳이다. 과연 이천쌀로 밥을 지은 정식은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를 갖고 쌀밥 거리에서도 가장 유명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넓은 실내만큼이나 깔끔해 보이는 첫인상을 주는 이 식당은,
주문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푸짐한 밑반찬과 돌솥에 가득 쌀밥이 담긴 정식을 내왔다.
돌솥에 담긴 밥을 퍼서 다른 그릇에 욺긴 후 숭늉 물을 붓고 구운 생선을 시작으로 이천 쌀밥 정식을 골고루 맛보게 됐다.
허기졌던 찰나라 확실히 밥맛이 좋았다. 그러나 풀어졌던 이성의 끈을 붙잡고 한입 두입 먹어볼수록 머릿속에 의문은 차츰
더해져 간다. 다른 데서 먹었던 한정식 집과 맛의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밥맛 자체는 찰기가 있고 훌륭했지만 여느
한정식 집에서 볼 수 있는 생선, 나물, 고기, 김 등 구성 자체가 특별하지 않다.
예전 강진, 해남에서 먹었던 한정식은 그 지역의 특성을 살린 밑반찬과 전체적으로 향토색이 느껴져서 두고두고 생각나는
맛이었다. 하지만 이천의 쌀밥 정식은 내륙지방의 특성을 살리지 않는 뜬금없는 생선은 물론 양념 맛이 강하게 드는
반찬으로 인해 정작 훌륭한 이천의 밥맛을 살리지도 못한다.
물론 대중들이 두루 좋아하는 구성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천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천쌀의 특성을 살린 쌀밥정식을 숙고해 개발해보는 것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 휑한 산수유마을에 가야 할 이유가 있다
여러 가지 과제만 남긴 채 쌀밥집을 나와 본격적으로 이천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먼저 가볼 곳은 이천 북쪽에 위치한 이천 산수유마을이다. 때는 막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라 노란 산수유꽃이
활짝 피는 봄철도 아니고, 빨간 산수유 열매가 사방을 수놓는 10월에도 살짝 못 미친다.
하지만 휑한 산수유마을을 굳이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곳에는 역사의 향기가 남아 있는 장소는 물론 여기서만 볼 수 있는 기이한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신둔면에서 동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길을 따라 이동해야 한다.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산인 원적산(563m) 자락에 있기에 너른 구릉지가 많은 이천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산지대이기도 하다. 가는 도중 '두산 베어스'의 2군 구장인 베어스파크를 지나게 된다.
서울을 대표하는 두 야구팀인 엘지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는 같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2군 구장과 숙소 시설을 둘 다 이천에 두고 있다. 공교롭게 이천구장을 육성시설로 적극 활용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끊임없이 유망주들을 배출하고 있다. 아마도 이천의 좋은 기운을 잔뜩 받아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넘자마자 너른 터가 나오고 입구에는 산수유 마을의 주차장 겸 홍보시설로 쓰이는 거대한 산수유 사랑채가
우리를 맞아준다. 산수유 열매가 아직 맺지 않아 썰렁한 분위기가 맴도는 이곳에서 사랑채 직원의 추천으로 육괴정이란
곳을 먼저 가보게 됐다.
원적산 자락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산수유마을은 산자락을 따라 둘레길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50분에서 길게는 두 시간까지 난이도에 따라 다양하게 있는데 오래 걷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직원이 언급한 육괴정에서 시작하는 연인의 길만 걸어도 충분할 듯싶다.
마을 깊숙한 곳에 자리한 육괴정은 57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거대한 느타니무가 그 곁을 지키고 있다.
사각형으로 조그마한 규모의 연못이 인상적인 기와집이다. 조선 중기 중종 임금이 다스릴 때, 기묘사화로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엄용순이라는 사람이 이곳으로 낙향을 와서 건립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초가집이었으나 기와를
얹으면서 지금의 사당의 형태로 변했다.
육괴정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당대 이곳의 여섯 선비가 사회와 학문을 논하며 우의를 기르고자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그 명칭이 지어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비록 산수유 열매가 맺지 않아 그 화려한 자태를 직접 보지 못하지만
푸르른 느티나무를 우러러보며 그 세월의 유구함을 더욱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다. 산수유 꽃이 환하게 필 때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하며 다음 장소로 가보기로 하자.
첫댓글
임금님표 이천쌀밥은
무엇으로 먹어도 맛이 좋지요.
산수유는 계절이 아닌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