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2년이란 시간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 이제 남은 건 고작 한 달 남짓. 꿈만 같던 나의 ‘제주 2년 살이’는 내게 무엇을 남겼을까.
나는 이곳이 왜 이리도 좋을까? 아름다운 풍광, 자연 등 이유야 많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온갖 고민과 걱정 다 뒤로하고 온전히 내가 원하던 것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저지름은 다름 아닌 내게 시간을 주는 일이었다. 인디언들이 말을 타고 급히 가다가도 어느 순간 서서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영혼이 쫓아올 시간을 주듯이, 내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누구나 저마다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 즈음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2년 전 즈음 나는 ‘정말 힘들었다’. 직장 연차가 쌓여갈수록, 아이가 하나, 둘, 셋 늘어갈수록 어깨는 무거워만 갔다. 허점투성이지만 늘 성실한 맏며느리가, 셋 중 어느 아이에게도 소홀하지 않는 다정한 엄마가, 육아로 업무 공백에도 뒤처지지 않고 인정받는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꼭 해야 하는 일’만 해도 시간은 왜 그리 부족한지, 결국 내가 먹고, 자고, 쉬는 시간을 계속 더 내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 너무 소진된 나머지 곧 바스러질 것만 같았다. 정신력은 체력에 비례한다고 했던가, 바닥난 체력만큼 정신은 피폐해졌고, 종종 우울감에 빠졌다. 며칠에 한 번꼴로 체하고 온몸이 쑤셨다.
그렇게 저지르듯 온 이곳에서 나는 이전과 달리 살고 싶었다. 마치 새 삶을 사는 듯. 그래서 예전처럼 ‘꼭 해야 하는 일’보다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려 노력했다. 먼저, 두려워서 혹은 관심 없어서 안 해본, 못해본 것부터 해봤다. (장농 면허 탈출, 요린이 탈출, 안 먹던 요리 먹어보기, 윗니 교정, 피부과 시술, 낮술하며 드라마 정주행, 소설책보다 잠들기, 예정 없이 아이들과 여행 떠나기, 애완 햄스터 기르기, 대학원 진학 고민하기, 내일배움카드 신청하기, 사걱세 기자단 활동, 준비 없이 대필 작가 되기, 독립 서점 사장과 책방 운영 고민하기, 옛 친구들 초대해 잠자리 내어주고 따뜻한 밥 차려주기 등) 앉아서 일하는 것 원 없이 했으니, 운동도 하고 많이 돌아다니고 싶었다. (계절별 꽃구경 다니기, 올레길 걷기, 오름/한라산 등반, 카페/맛집 투어, 요가/명상 배우기) 또, 회사에서 만나던 나와 비슷한 부류가 말고 낯선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실은 아이 친구 부모들만 사귀어도 직업군이 무척 다양했다 – 복어식당/붕어빵/부동산 가게 사장, 수필 작가, 사진 작가, 체육관 관장, 마사지숍 원장 등, 오픈 채팅방으로 만난 제주 각지 아줌마들과의 교류, 그중 사걱세 기자단 샘들과 지역 모임은 단연 최고였지만 말이다) 대신 그동안 애써, 형식적으로 관계를 유지해 오던 이들과는 거리를 두었다. (지인들을 떠올리며 먼저 안부를 묻던 일을 그만두었고, 어쩔 수 없이 카톡 리스트에 둔 이들을 ‘숨김’ 처리했다. 몇몇을 제외하곤 회사 동료와는 거의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하고 싶었으나 여유 없어 못 했던 일, 잘하고 싶었지만 용기 없어 시도조차 못 했던 일을 하나씩 해내고 나니 기분도 좋고 자신감이 생겼다. 하기 싫었지만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을 끊어내고 나니 홀가분하니 날아갈 것 같았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욕심쟁이인데다가 하기 싫은 건 죽어도 하기 싫은 고집쟁인데, 본의 아니게 사회생활 하면서 다른 이의 눈칫밥을 많이 먹었구나 싶어 스스로 짠하기도 했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살다 보니 어느새 여유가 생겼다. 온통 회색빛이었던 내 삶에 하나둘 색깔이 입혀지는 듯했다. 숨통이 조금 틔기 시작했고 그렇게 내 얼굴에도 조금씩 웃음이 찾아왔다. 그러고 나니 웃프게도 현실 자각도 되었다. ‘참, 내겐 아이가 셋이나 있지. 딱히 부모님께 물려받을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진 땅도 없고, 사는 집도 겨우 전세. 당장 회사를 때려 쳐도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근자감도 어느새 사라졌네? 그럼 아이들은 어찌 키우지?’ 싶다. 연초 MBC 다큐 ‘어른 김장하’를 보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해 오던 일을 꾸준히 계속해나가는 것도 중요하겠단 생각도 떠올랐다. 비겁하지만 이게 현실타협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말이 육아 휴직이지 퇴사를 염두에 두고 다 싸 들고 내려왔는데 내가 다시 돌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3월이면 복직하려 한다. 휴직 직전 만신창이인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멘티에게 그 얘길 전했더니 첫마디가 ‘휴식이 좋긴 하네요. 책임님이 다시 올 줄이야. 환영해요. 어서 오세요’ 한다. 또 다른 후배 역시, 자기도 아껴 읽는 중이라며 류시화 님의 신간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을 복귀 선물로 보내왔다. 참 고마운 후배들이다.
우여곡절 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생각한 대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내 인생 역시 ‘내가 생각한 인생’ 그림에 어긋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래도 다시 웃으며 살아가 보련다. 살다가 지치면 또 쉬어가지 뭐. 그리고 그 길이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길 용기도 생겼다.
제주살이가 내게 준 선물은? 내 몸과 영혼이 다시 만나며 생긴, ‘단단한 마음’ 같다.
결국 화요일 합평회엔 참석을 못하고...그 시간에 열심히 글 마무리 해 보았어요. 죄송해요 송아샘~ ㅠㅠ
목요일에 지인 방문 일정으로 조금 일찍 빠질게요~ ^^;;
첫댓글 감동이다요!!
어제 저녁 같이 읽었으면 더더 좋았겠지만.. 저자의 목소리로 듣는 글.. 아쉬움이 더해지네요~
유미쌤의 제주살이 2년이 선생님에게 준 선물이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느껴지곤 했나 봅니다. 다나의 이야기 못지않게 빨려들어 읽어봅니다😊
단단한 마음과 여유, 쉼, 웃음, 하기 싫은 거 안 하고 못했던 거 해보고..
생각만 해도 배부르고 미소짓게 되는 일상입니다. 그 도전을 용기 있게 해낸, 그리고 한걸음 다시 내딛는 유미쌤을 응원합니다!!!
그동안의 감상이 고스란히 잘 전달되는 글이예요. 2년이면 긴 시간이지만 선생님에겐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을거리 생각해요. 복귀 히시더라도 선생님의 느긋하고 행복한 미소는 계속 간직하시리라 믿어요.
누가 선생님께 비겁하다 현실타협했다 하겠어요, 엄청난 용기를 가진분이시고만요! 2년의 제주 생활을 이렇게 생생히 녹여내시다니 대단쓰! 선생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겠습니다! (아주 나중에 제주에 우리 공동 책방 내볼까요?ㅋㅋㅋ신영샘도 책방 관심많으시더라고요!)
처음 유미쌤이 아이들 데리고 제주살이, 그것도 무려 2년이나 한다는 소개에 부러움맘 뿐이었습니다. 누구나 다른이의 삶은 평이하고 쉬워보이니까. 회색빛이었던 마음에 알록달록 색이 입혀졌다는 글에 그간의 고단하고 분주했을 쌤을 생각하니 동질감과 짠함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2년여의 제주에서의 생활은 쌤을 성장시켰을 것이고 또한 앞으로 살아가는데 정말 큰 힘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3월부터 시작하는 회사생활도 활기차게 도전하시고 (한 3-4개월 지나면 또 힘들고 재미없겠지만 ㅋ 경험상) 또 한 걸음 나아가시길 응원합니다. (제주살이를 실행한 그 용기는 진짜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