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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죄
없음 | 1-2 1 ①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2 ②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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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을
자복하리라 | 3-7 3 ③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5 ④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6 ⑤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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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리침 | 8-11 8 ⑥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9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 하리로다 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11 ⑦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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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의 복
요절 : 1절,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32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라는, 표제가 있는 51편과 같은 배경에서 지은 시일 것입니다. 그런데 32편은 “죄와, 허물”(1)로 시작하여 “너희 의인들아”(11) 하고 마치는 구조임을 주목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32편을 통해서 말씀하려는 핵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추방을 당한 죄인이 어떻게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구원계획에 있어서 해결하여야할 가장 큰 난제(難題)인 것입니다. 이 문제만 해결이 되면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가 있고, “함께 거하고, 함께 사는”(계 21:3) 것이 가능하여지기 때문입니다. 이 해답을 깨달았기에 다윗은 “내가 너희 갈 길을 가르쳐 보이겠다”(8), 즉 전도(傳道)하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첫째 단원(1-2) 정죄를 당치 않는 자의 복
둘째 단원(3-7) 내 허물을 자복하리라
셋째 단원(8-11) 너희에게 길을 가르치리라
첫째 단원(1-2) 정죄를 당치 않는 자의 복
첫째 단원은 명제(命題)와 같은 말씀입니다. 나머지는 이에 대한 해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에 확고해야만 합니다.
①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1) 합니다.
㉠ 이 문제는 다윗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다윗은 51편에서 어쩌다가 죄를 범한 양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죄악 중에 출생(出生)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악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1:5) 하고, 원죄(原罪) 하에 태어났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한 “모든 사람”, 즉 나 자신의 문제(問題)인 것입니다. 첫 절은 두 마디로 되어 있는데,
㉮ 첫째는 “허물의 사함을 얻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지는가? 이 진술 속에는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교리가 함의(含意)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 값은 사망이요, 그래서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하고 말씀하고, 그리고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히 10:4) 하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음이란 “허물의 사함”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 그러므로 둘째는 “죄의 가리움을 받았다” 하고 말씀합니다. 이는 즉각적으로 아담이 죄를 범한 후에, “내가 벗었음으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 한 말을 상기케 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합니다. “가죽옷”이라는 특정적인 표현 속에 “피 흘림”이라는 구속교리가 함의되어 되어 있고, “그 죄의 가림을 받은 자”라는 “의롭다”고 여겨주심이 있는 것입니다.
㉡ “허물과, 죄”는 인간이 범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 죄와 허물을 “사하시고, 덮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행해주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허물을 사하시고, 죄를 가려주시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지는가 하는 문제가 구원계획에 있어서 최대의 난제(難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수박겉핥기 식으로 볼 것이 아니라, 밝히 드러난 신약의 빛을 받아서 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② 이어서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2) 합니다.
㉠ “마음에 간사가 없다”는 말은 주님께서 나다나엘을 가리켜,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함이 없도다”(요 1:47) 하신 진실성을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진실한 자인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 하고 자백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 그렇게 하노라면 “여호와께 정죄(定罪)를 당하지 않게”(2)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신 정죄를 받아 피 흘림, 즉 죽어주신 분이 계시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4:6-8절에서 본문 1-2절을 인용하여 해설하기를,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합니다. 그러니까 죄는 인정(認定)치 아니하시고, 의롭다고 인정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 이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하여지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합니다. 이렇게 하시고 의롭다고 인정을 해주신 자들을, “누가 능히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롬 8:33-34), 누가 정죄할 수가 있단 말이냐 하고 묻고 있습니다.
이는 신약성경만이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 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 먹히리라”(사 50:8-9) 하고 도전적으로 말씀합니다.
만일 다윗이,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1) 한 진술을 다른 뜻인 양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께서 헛된 죽음”(갈 2:21)을 죽으신 것으로 만드는 자인 것입니다. 이처럼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둘째 단원(3-7) 내 허물을 자복하리라
③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3) 한, 회개(悔改)입니다.
㉠ 회개(悔改)란 잘못 먹어 체했을 때에 토해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사건을 1년간이나 숨기고 토설치를 아니하였던(삼하 12:14)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서 토해내라고 1년 동안,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4) 합니다. “여름 가물에 마름 같다”는 말은 영적인 고갈(枯渴)상태를 나타냅니다.
④ 다윗은 견디다 못하여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自服)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5상) 합니다.
㉠ 이점에서 진정한 회개가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 애통해하는 것입니다.
㉰ 끊어버리는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점을 다윗은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痛悔)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51:17) 하고 진술합니다. 회개가 철저해야만 개가 토하였던 것을 다시 먹듯 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백이 간절하면 사죄도 신속한 것입니다.
㉡ 그래서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5하) 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셔서, “당신이 그 사람이라” 하고 말하자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노라” 하고 자백하자 즉각적으로,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이다”(삼하 12:7, 13-14) 하였던 것입니다. 이로써 사건은 완결(完決)이 된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이 토해낸 죄 짐을 들고서, “길이 참으시다가, 곧 이 때에”(롬 3:24, 26), 즉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셨을 때에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신약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15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 때에 범한 죄만이 아니라 “첫 언약 때(구약시대)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셨다” 하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속죄제로 드려진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하기”(히 10:4) 때문입니다.
㉣ 구약시대 “속죄제”란 그리스도께서 대속제물이 되어주실 것에 대한 예표로써 죄를 보류해 두시는 장치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 범한 모든 죄는 속죄제를 드림으로 완결(完決)이 된 것이 아니라 마치 저수지에 물이 고이듯이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기를 구약시대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지 못한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6) 하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1) 하고 고백했다는 것은 칭의교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⑤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6상),
㉠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6하) 하고 선언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홍수”란 죄에 대한 상징인데 어떻게 “저에게 미치지 목하리라” 말씀하는가? 죄악은 마치 “홍수가 범람함”과 같이 온 세상을 휩쓸고 있습니다. 이를 인간의 자력으로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성경은 “그러나 죄(罪)가 더한 곳에 은혜(恩惠)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막아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 이 은혜를 아는 자는,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셀라)”(7), 하고 찬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단원(8-11) 너희에게 길을 가르치리라
셋째 단원은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 즉 구속교리와, 칭의교리를 깨달은 자가 이 기쁜 소식을 전파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다윗은 51편에서도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讚頌)하여 전파(傳播)하리이다”(51:15) 합니다.
⑥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8) 합니다. 참으로 회개한 자는 전도자가 된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깨닫고, 받은 은혜를 전해주겠다는 것입니다.
㉠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 하리로다”(9) 합니다. 이런 뜻입니다. 쇠고집이라는 말이 있는데,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지 말라”(롬 2:5), 즉 복음을 거절치 말라, 발로 차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 이점이,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10) 한 말씀에도 나타납니다. “악인과,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가 대조되어 있는데,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란 하나님을 믿는 자요, 악인은 이를 배척하는 자입니다.
⑦ 그리하여 “허물의 사함을 얻고”(1)로 시작이 된 32편은,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 지어다”(11상), 즉 “허물과, 죄”(1)로 시작하여 “의인”(11)으로 마치는 구조(構造)입니다.
㉠ 10절에서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라 한 것을 결론에서는 “의인들아” 하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행위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한,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서만이 가능하여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 지어다”(11하) 하는 것입니다.
㉮ “기뻐하며, 즐거워할 지어다” 하는 것은, “허물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 자신이 먼저 기뻐하라는 말씀이요,
㉯ 즐거히 외칠 지어다“ 하는 말은 이 기쁜 소식을 자랑하라, 전파(傳播)하라는 뜻입니다.
자신 속에 기쁨이 있는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51편에서도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51:12-13) 하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허물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의 복입니다.
적용 : 먼저 나 자신의 허물이 어떻게 해서 사함을 얻고, 나의 죄가 어떻게 해서 가림을 받게 되었는가에 확고해야만 합니다. 이처럼 칭의의 복을 확신하는 자라면 1편에서 말씀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 한다”(1:1) 한, 성화도 이루기를 사모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 갈 길을 가르쳐 보이리라”(8) 하고, 구원의 길을 전파하는 자입니다.
묵상
㉠ 진정한 회개의 요소에 대해서,
㉡ 두 번 강조되어 있는 복 있는 자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 은혜를 입은 자의 사명과 결단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