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9-12절,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인친 표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저가 할례의 표를 받는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자의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무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4:9-12).
사도는 칭의교리에 대한 원리를 3장에서 이미 말씀하였습니다. 4장에서는 이 진리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다윗을 들어서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논증은 아브라함과 다윗도 의롭다함을 얻은 것은 행위(行爲)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1-8절까지의 요지입니다. 두 번째 논증(論證)은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얻은 것은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하는 문제입니다.
①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9) 합니다.
㉠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은 시점(時點)은 창세기 15장에서이고, 할례를 행한 것은 17장에서입니다. 두 사이에는 14년(창 16:16, 17:1) 이상의 세월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② 그래서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10) 하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할례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됩니다.
③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印)친 것이니”(11상) 하고 대답합니다.
㉠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그에 대한 표를 받은 것입니까? 유대인들은 이것을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고 의롭다함을 얻은 메시아언약보다는, 아브라함이 행한 할례를 더 중요시했던 것입니다. 내용물보다는 포장을 더 중히 여김과 같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언약”은 눈으로 볼 수가 없는데, 할례는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례를 행한 것을 특권으로 자랑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④ 사도의 논증은,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고로, 할례 받지 않고 믿는 모든 자의 조상(祖上)이 될 뿐만 아니라, 그 후에 “할례”를 받았으니 또한 할례 받고 믿는 자의 조상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할례자의 조상도 되고, 무할례자의 조상도 된다는 것입니다.
㉠ 사도는 지금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다 함께 믿음 안으로 끌어들이고 포용(包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는 모든 자의 조상”(11)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는 의도는 할례자와, 무할례자를 구별함이 없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11)는데 있습니다. 사도는 갈라디아서 5:6절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하고, “오직 믿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 형제여,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할례”는 무엇입니까? 사람 앞에서 은근히 자랑하고 특권인양 내세우는 당신에게 있는 “할례”는 무엇입니까? 나는 세례를 받지 않고 “침례”를 받았다고 내세우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어떤 학위를 자랑하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장로, 권사라는 직분이 아닙니까? 은사가 아닙니까? 재물이 아닙니까? 사회적인 지위는 아닙니까?
㉢ 바울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義)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7-9) 하고 말씀합니다. 형제도 그러합니까? 저도 그러합니다.
중국 사역 잘 감당하고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성원에 고마움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