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 8월21일
성 비오 10세 교황
ST.POPE PIUS X
St.Pius the Tenth
San Pio X (Giuseppe Sarto) Papa
(Riese, Treviso, 2 giugno 1835 - Roma, 20 agosto 1914 )
Born :1835 as Giuseppe Sarto at Riese, Treviso, Venice, Austria (now Italy)
Papal Ascension :1903 (Papa dal 09/08/1903 al 20/08/1914)
Died :20 August 1914; natural causes aggravated by worries over the beginning of World War I
Canonized :1954 by Pope Pius XII
Pio = devoto, religioso, pietoso (signif. Intuitivo)
한 가난한 이탈리아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사제가 되신 요셉 사르토는
신학교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베네치아와 만투아의 주교로서
그 명성을 널리 떨치셨습니다.
그리고 후일 비오 10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으로 피선되셨습니다.
그의 좌우명인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십시오."는
교회 갱신과 변혁의 이정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교황선출시 모든 정치적 개입을 배제한 그는 교회 행정과
주교 지명 방법을 개선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롭고 보편적인 교회 법전을 편찬하였습니다.
특히 성가와 성무 일과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어린이들의 첫 영성체,
매일 영성체와 끊임없는 성서 공부를 권고하였고
사제들의 목자적 임무 수행을 적극 지원하였으며,
그들의 학문 수준을 향상 시켰습니다.
인간적 재능과 조직 능력이 풍부하게 첨부된 그의 깊은 종교적 정신은
교회의 전반적 삶의 양상과 선교사업에 집중되었습니다.
모든 타협을 거부함으로써 여러 나라의 정부들과
약간의 충돌을 빚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914년 8월21일 그의 정신과 신앙을 흠모하던 많은 시민들의 애도 속에
제 1차 세계 대전의 발발을 슬퍼하면서 눈을 감았습니다.
His will read: "I was born poor;
I lived poor; I wish to die poor."
그는 자신이 소박한 신분의 출신임을 잊지 않고 항상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으며 가난하게 살았고
가난하게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Pio(pius)는 경건한 사람이란 뜻이다.
성 비오 10세 교황은 1835년 이탈리아 트레비스 교외 리에제에서 태어났다.
구두 수선 및 우체부의 10남매 중 하나로
이름은 쥬세뻬 멜치오르 사르또였다.
1850년에 파두아 신학교에 들어갔다.
1858년에 사제가 된 그는 향후 17년 동안의 본당 사목자 생활은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 수행에서 탁월했다.
1884년에 만투아의 주교가 되었으며,
베니스의 추기경과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레오 13세를 계승하여 1903년 교황이 되었다.
특히 그는 성체를 자주 영하도록 권장하였다.
그는 교회법 개정을 착수했고,
불가타 성서 개역 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시편과 성무일도서 개정을 명하였다.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어지러운 세상에 많은 회칙을 반포하면서
진리를 선포하는데 힘썼다.
1910년에는 프랑스 사회 운동인 "실롱"을 단죄했다.
만사를 그리스도 안에서 정립하는 것을
자신의 교황직의 목표로 삼아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단순성과 가난과 강인함으로 신자들 가운데
참된 그리스도인 생활을 발전시키고
그 당시 교회를 휩쓸던 오류들에 대항하여
굳건히 싸우며 교회를 보호하고 지키는 데 뛰어났다.
1914년 8월 20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54년에 비오 12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는데,
이는 1712년 비오 5세가 시성된 후
역대 교황들 중에 두번째로 시성된 교황이다.
성 비오 10세는 영성체를 자주 하도록 권장하고
첫 영성체 시기를 낮추었으며
날마다 규칙적으로 성서를 읽도록 권장한 성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라는
그의 모토가 말해 주듯이 그는 말씀으로
하루하루를 새롭게 살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규칙적으로 성서를 읽게 하기 위해서
위원회를 조직하여 성서 개정 작업을 했으며,
나아가 성서 공부를 위한 교육 기관을 세우기도 했다.
성서를 비롯하여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는
’준비’와 ’훈련’과 ’규칙’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우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준비해야 하고
두 번째는 그것을 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것을 규칙적으로 실행해서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성장을 원한다면
’지겹도록’ 반복하여 ’습관’이 되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홈에서www.ofmconv.or.kr)
성 비오 10세 교황의 [성무일도에 관한 교황령]에서
(AAS 3[1911], 633-635)
주님께 찬미 노래를 바치는 교회
성서에 수집되어 있는 시편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쓰여진 것이다.
교회는초기부터 신자들의 신심을 기르는 데
시편을 사용하여 놀라운 효과를 거두었다.
이 시편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고
하느님의 이름을 자기 입으로 찬양했다."
더욱이 시편은 옛 법의 관습을 따라
거룩한 전례와 성무일도에서 주요한 부분을 담당해 왔다.
성 바실리오는 시편을 "교회의 소리"라 하고
우리 선대 교황 우르바노 8세는
"하느님과 어린양의 옥좌 앞에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거룩한 찬미가의 메아리"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성 아타나시오의 말에 의하면,
시편은 특히 자신의 주요 직분이 하느님을 예배하는 데에 있는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느님을 찬미하고
무슨 말로 합당하게 찬미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따라서 성아우구스띠노는 아름다운 말로 이렇게 표현한다.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사람들이 당신을 합당하게
찬양할 수 있는지 보여 주시고자
먼저 당신 스스로를 찬양하셨고,
이렇게 하심으로 사람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법을 배웠다."
시편은 또 우리 영혼 안에 모든 덕행을 얻고자 하는
열의를 불붙일 힘을 지니고 있다.
"사도 바울로가 말하듯
’성경은 신구약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는 데 유익한 책’이지만
시편집은 성경의 다른 모든 책들의 열매를 담고 있는
정원처럼 찬미가를 부르고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열매와 다른 책들의 열매를 모두 보여준다."고
아타나시오는 말한다.
그는 계속하여 이렇게 덧붙인다.
"시편은 그것을 부르는 사람에게 거울과도 같아
그안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정감을
볼 수 있으므로 그 정감의 생생한 표현이 된다."
성 아우구스띠노는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여, 나는 당신 교회가 부르는 감미로운 노랫소리에
가슴 뭉클하여 당신을 노래하는
찬미가와 찬가의 아름다움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나이다.
이 노랫소리는 내 귀에 흘러 들어가
진리가 내 마음을 축축히 적셔 주게 하고
내 신심의 정이 불타오르게 하여 눈물이 쏟아지게 했나이다.
이때 내 마음은 그 찬미 노래로 얼마나 행복에 넘쳤는지 모르나이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엄위와 그분의 전능하심과 표현할 수 없는 정의,
그분의 선과 자비 그리고 그분의 다른 무한한 속성을
그렇게도 숭고하게 전하는 시편의 많은 부분들을 들을 때
감동받지 않을 이 누가 있겠는가?
이와 마찬기지로 시편에 나오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에 대한 감사의 노래,
소망하는 은총에 대한 겸손하고 신뢰에 찬 기도,
그리고 죄를 뉘우치는 영혼의 외침에 감동받지 않을 이 어디 있겠는가?
성 아우구스띠노
"모든 시편 속에서 노래하시고 애통하시며
희망에 부풀어 즐거워 하시고 고뇌에 차 탄식하시는"
구속주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불타오르지 않을 이 누가 있겠는가?
교황이 되기 위해서는 가문이나 재산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신학적 학식이 충문하며 경험과 덕행이 겸비한 이라면
누구나 다 될 수 있는 것이다.
교회의 뜻이 그렇고, 교황 비오 10세는 그 좋은 한 예이다.
비오 10세는 북 이탈리아의 트레비스 교외 리에세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 및 우편 배달부로
후에 우체국 국장이 된 사르토였다.
비오 10세는 10남매 중 장남으로 그의 이름은
조세페(요셉) 멜키오레 사르토였다.
어려서부터 영혼 구원을 위해 일하고자
카스테르프란코에 있는 어떤 중학교에 다녔으나,
이것도 가정 형편으로 인해 어떤 때는
맨발로써 통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부모에세는 아직 교육시켜야 할 자녀가
수명이나 있었으므로,
요셉이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교에서의 장학생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고
마침 그의 성적이 우수했기 때문에
그는 1850년 파두아 신학교에 들어가 학업을 마틸 수가 있었다.
그의 본당 신부는 이미 연로하고 병약한 분이었으나,
그는 9년간 그의 밑에서 보좌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리하여 자연히 그의 위대한 능력은 인정되어
살차노 본당의 주임 사제가 되었다.
살차노 본당 교우들은 그가 별로 이렇다 할 가문의 출신이
아니라 하여 신통히 대접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재능 및 그가 모든 사람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사랑과 희생과 협조는
곧 지방민의 인심을 사게 되어,
9년 후 그가 트레비소 대신학교에 고문 겸 교수로 임명되었을 때는
애석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그는 1875년 11월에 트레비소 대신학교의 영성 지도 신부와
교구의 성서국장을 지냈다.
그가 대신학교에서 교수로 9년간을 지내고
레오 13세는 그를 1884년에 만토바의 주교로 임명했다.
그리하여 그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 교구를 활성화시켰고,
그로부터 9년 후인 1893년에는 베네치아의 총주교 겸 추기경이 되었다.
그때 그는 이러한 직을 사양하려 했으나,
란포라의 추기경에게 “이미 그러한 직을 사양한 사람이
한 분 있으므로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교황께서는 크게 마음 상할 것” 이라는
주의를 받고 온순히 교황의 뜻을 따랐다.
그는 그때부터 대교구중의 하나인 자기 교구의
개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였으며,
인심 수습을 위해 노력했고,
과거에 반목되어 있던 정부와도 타협을 하게되었다.
그가 가장 중요시 한 것은 빈민들이었다.
그는 자기 필수품까지 전부 빈민에게 나누어 주었으므로
어떤 때는 생활에 곤란을 느낄 때가 많았다.
1903년 레오 13세의 서거로 사르토 추기경도 교황
선거를 하기 위해 로마로 상경하게 되었다.
그는 선거 후 곧 돌아갈 줄 알고 왕복차표를 마련했다.
그러나 돌아갈 차표는 필요치 않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압도적 다수표로 새로운 교황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교황으로서의 이름은 그 전대의 교황 비오의 이름을 따서
그는 비오 10세가 되었다.
4억 인의 세계 신자들을 인솔하여 과학의 진보와 더불어
유물론이며 기타 불신, 부도덕적인 세상에 대처해 나아감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비오 10세의 특기할 만한 사적 중에는 신앙을 견고히 하기 위한 운동과
신자의 영신적 양식이 되는 성체를 자주 또한
정당히 영하기 위한 회칙을 반포한 것이다.
이러한 법칙 변경으로 인해 수백 만 명의 신자들이
세상에서 혹은 천국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할 것이다.
비오 10세는 전임 교황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다.
교황좌에 오른 후 발표한 첫 번째 칙서
“E Supremi Apostolatus"(10월 4일)는
추기경단에 한 훈시와 더불어 비오 10세의
사목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느님으로부터의 이탈과 배교가 어느 시대보다도
심하게 일어나는 시대임을 강조한 교황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 회복시켜
그리스도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게 하자고 호소했다.
그는 교회법 개정을 착수했고,
불가타 성서 개역 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시편과 성무 일도서 개정을 명했다.
특히 그는 성체를 자주 영하도록 권장했다.
그의 재임 기간은 “모던니즘”과의 투쟁이 많았고,
1910년에는 프랑스사회 운동인 “실롱”을 단죄했다.
그의 만년인 1914년 8월 2일에 돌연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그는 평화의 회복을 위해 전력했으나 결국 허사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3주일이 지난 1924년 8월 20일을 일기로
그는 영원히 세상을 하직했다.
교황이 서거하자 전세계는 겸손하고 열심한 교황의 죽음을 애도했다.
추기경단의 요청으로 엄격한 시복 시성 조사를 한 후
그분으로부터 3대의 후계자인 비오 12세에 의해
1951년 6월 3일 베드로 대성전에서 시복되었고,
1954년 5월 29일에는 역시 같은 장소에서 시성되었는데,
이는 1712년 비오 5세가 시성된 후 처음으로 시성된 교황이다.
The Coronation of the Virgin-ANGELICO, Fra.
1440-41.Fresco, 184 x 167 cm.Convento di San Marco, Florence
축일:8월22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여왕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Beata Vergine Maria Regina
The Queenship of the Blessed Virgin Mary
1954년, 비오 12세는 "여왕이신 동정 성 마리아"축일을 제정하시고
교서를 반포하셨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의 아들이 왕이 되어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된다."고 했던 천사의 말씀과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 로 부른
성서 구절을 기초로 할 때,
이 두가지 성서는 "당신 아들의 왕권 때문에,
마리아 역시 그에 상응하는 위대성과 탁월성을
갖고 계심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교부들의 증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마리아를 여왕으로 섬깁니다.
1. 마리아는 메시아적 왕이신 천주 성자의 어머니이시다.
2. 마리아는 구세주의 동반자이시다.
3.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자이시다.
4. 마리아는 교회의 가장 뛰어난 지체이시다.
(오늘의 말씀에서)
1900년부터 마리아에게 왕권적 권위의 영예가
주어져야 한다는 요청이 로마에 쇄도하였다.
그리스도왕 축일이 제정된(1925) 다음,
이러한 요청은 더욱 증가하였다.
1933년 포르토 사이드(Proto Said)의 대성당이
세상의 여왕이신 마리아에게 봉헌되었다.
비오 12세는 회칙 "Ad coeli Reginam(하늘의 여왕께)"을 통하여
마리아께서 여왕이심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5월 31일을 축일로 지내도록 하였다.
로마 전례적 개정에 따라
성모 승천 대축일 제 8부인 8월 22일을
축일로 지내는 기념일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왕이신 만큼,
마리아는 어머니이시며 또한 여왕이시다.
그분은 하늘의 임금님이신 하느님께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시는 분이다.
성모 승천의 충만한 영광을 재확인하고 강조하는
축일(마리아 공경, 6항)이 되었다.
성모 승천의 재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내 티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으며
지상 생활을 마치신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으시어,
주님으로부터 천지의 모후로 추대받으셨다.
이로써 마리아는 다스리는 자들의 주님이시며(묵시 19,16)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을
더욱 완전히 닮게 되셨다." (교회헌장 8장)
"성모 승천 대축일의 기쁨은 7일 후
'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에서 계속됩니다.
이 축일에는 영원하신 왕곁에 좌정하신 엄위로운 여왕 마리아께서
어머니로서의 전구도 계속하심을 기념합니다."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
"성모기사회의 지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모를 통해 모든 사람을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님의 성심께로 인도함'입니다.
참으로 성모께서 모든 영혼의 여왕이 되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모기사회의 계획은
온 세상의 모든 영혼을 하늘과 땅의 여왕이신
성모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친구든 적이든
모든 영혼의 여왕이 되신다는 사실에 대해
되도록 빨리 확신을 가집시다."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원죄 없으신 성모기사회 홈에서-
Coronation of Mary - MASTER of the Housebook.
1475-90. Wood, 39 x 25 cm .Alte Pinakothek, Munich
로잔느의 성 아메데우스 주교의 강론에서
(Hom. 7: SCh 72,188,190,192,200)
세상과 평화의 여왕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하늘 높이 영광스러운 올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고귀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도
그분의 놀라운 이름은 온 세상에 빛나고
그분의 지극히 뛰어난 명성은 곳곳에 퍼졌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천주의 모친 동정녀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영광을 위해
마침내 자신도 하늘의 영광을 받을 수 있도록
먼저 지상에서 다스리셔야 마땅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거룩함과 위대함은 최고의 완성에 이르러
하늘에 들어가시기 전에 점차로 자라나
성령의 힘으로 덕행에서 덕행으로
광채에서 광채로 거쳐 나가셔야 마땅했습니다.
따라서 동정녀께서는 아직 육신으로 계실 때
어떤 때는 극단의 승화를 통하여 하느님에게까지 올라가심으로
또 어떤 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을 통하여
이웃에게까지 봉사하심으로
후세 하늘 나라의 첫 열매들을 미리 맛보셨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그분을 자주 찾아 주고
사람들도 그분을 섬겨 드렸습니다.
천사들을 대신하여 가브리엘이 그분을 찾아 주고,
사도들을 대신하여 동정인 성 요한은
주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동정 모친을 기꺼이 섬겼습니다.
천사들은 자신의 여왕을 보고 기뻐하고
사도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보고 기뻐하여
천사와 사도들은 모두 신심에 찬 경건한 애정으로 그분을 섬겼습니다.
성모님은 덕행으로 지은 지극히 고귀한 왕궁에
거하시면서 하느님 은총으로 충만하시어
그 넘치는 은총을 목말라 하는
모든 믿는 백성들에게 풍부히 부어 주셨습니다.
육신에 건강을 주시고 영혼을 치유하시며
육신도 영혼도 죽음에서 구하실 능력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성모님께로부터 천상 신비의 빛을 받지 못하고
질병과 슬픔을 지닌 채 되돌아 온 사람이 있습니까?
또는 천주의 모친이신 마리아께 필요한 것을 간청하여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되돌아온 사람이 있습니까?
성모님은 우아하시고 지극히 아름다우시며
온갖 영적 보화를 지니신 신부이시요
유일한 정배의 어머니이십니다.
비옥한 정원의 샘이시고 거룩한 레바논에서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살아 있고 생명을 주는 물이시며
시온산에서 주위에 있는 모든 이방인들까지
평화와 은총의 강물을 흘러내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동정녀 중의 동정녀이신 마리아께서
천사와 대천사들이 환호하고 천상 무리가 소리 높여
부르짖는 노래 가운데 하느님과 왕 중의 왕이신
당신 아드님의 힘으로 승천하실 때
시편 작가의 다음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오필의 금으로 단장한 왕후는 당시 우편에 서 있나이다."
Coronation of the Virgin - CATARINO
1375, Tempera on panel, 89 x 58 cm.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여왕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하늘의 여왕이라고 칭한다.
혹은 모후이신 마리아를 이름한다.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들 위에 들어 높임을 받으신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는 지극히 거룩한 천주의 모친으로서
교회의 특별한 예식으로 공경 받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리아는 초세기부터 ’천주의 모친’ 이란 칭호로 공경 받아왔으며,
신자들은 온갖 위험과 아쉬움 중에 그의 보호 밑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한다.
성모의 대관 -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
1420년경, 패널. 88 x 64cm 말리부. J.폴 캐티미술관
루가복음 1장 48절에 ’이제로부터 과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
능하신 분이 내게 큰 일을 하셨음이로다’ 하신
마리아의 예언대로 에페소 공의회가
431년 ’천주의 모친’이라고 선포한 후
신자들의 마리아 공경은 존경과 사랑과 기도와
모방에 있어서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였다.
교리 안에서 시대와 장소의 조건이나 신자들의 기질과 품성에 따라
교회가 인준한 성모 신심의 여러 형태는
성모가 공경을 받으심으로써 성자가 옳게 이해되시고
사랑과 영광을 받으시며 성자의 계명이 준수되도록 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하느님 백성의 표상으로,
하느님의 신부로 선택된 애초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던 유일한 인간이다.
여러 날에 성모공경 축일을 지내고 있으며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을 재현해 놓은 성모상도 많다.
◆ 성모축일 ◆ 한자 聖母祝日
라틴어 Festa B. Mariae Virginis 영어 Marian Feasts
하느님의 모친이신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사건들을 특별히 기념하는 날.
가톨릭 교회는 "구원 업적과 끊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
하느님의 모친 복되신 마리아를
특별한 애정으로 공경한다"(전례헌장 103).
즉 성모 공경은 '하느님의 모친'이라는 점에 근거한다.
마리아의 자유로운 동의(루가 1:38)로 구세주가 이 세상에 왔으며
마리아는 참 천주이며 참 인간이신 예수를 낳음으로써
예수의 어머니요 동시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4세기에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과 공경이 심화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논쟁에서 연유되었다.
당시 교회 내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반대하는
이단이 생겨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변호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人性)을 엄격히 구별하여
마리아는 '하느님의 모친'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모친'이라고 주장하는
이단도 생겨나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임을 신조로 정의하고 공포함으로써
이단을 쫓아냈던 것이다.
이러한 이단과의 논쟁을 통하여,
성모 마리아의 신비를 기념하기 위해서,
가톨릭 교의를 확립하기 위해서,
성모 축일들은 4-5세기경에 동방교회에서 먼저 시작되어
7세기 이후에 서방교회에 전파되었다.
성모 축일은, 부활사상에 기인하여 장례일,
즉 천상탄일을 축하하는 순교자 및 성인들의 축일과는 달리,
성탄사상에 기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降生)의 신비와
깊이 연관된 축제이다.
그러므로 최초의 전례적인 성모 축일도 예수 성탄에 동반된 것이다.
즉 동방교회에서는 예수성탄 축일 다음날인 12월 26일에
천주의 모친 마리아의 축일을 지내 왔던 것이다.
서방교회도 8세기경부터 예수성탄 팔부인 1월 1일을
'성모의 축일'로 지내 왔으며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로 명칭을 바꾸어 지내게 하였다.
또한 예수성탄 후 40일째 되는 날도 주님의 축일이며
동시에 성모 축일로 지냈다.
즉 동방교회는 5세기경부터 2월 2일을 '주의 봉헌 축일'이라 부르며
주님의 축일로 강조해 왔고,
7세기에 서방교회에 전해져 10세기경에는
구약의 율법(레위 12:2-4)에 근거하여
'성모 취결례'로 불러 왔다
(이 축일은 1960년 전례 쇄신 규정에 의해 초대 교회의 전통을 따라
주의 봉헌 축일로 환원되었다).
또한 동방교회에서 먼저 시행되어 7세기에 서방교회로 전해진
'성모영보 대축일'도 예수성탄과 관계가 있으니,
이 축일은 예수성탄 대축일을 기축으로 하여
그대로 역산하여 3월 25일로 정해진 것이다.
그러나 성모 축일 중 가장 중요한 축일인 '성모승천 대축일'은
앞에 언급한 축일들과 달리, 성인들의 축일을
그들의 사망일에 기념하는 사상에 기인한 것이다.
이 축일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4세기 중엽에
'복되신 동정녀 기념일'이 성모의 죽음과 승천의 축일로 받아들여진 듯하며
그 명칭이 6세기에 '마리아 귀향 축일'로 불려지고
날짜도 8월 15일로 된 듯하다.
7세기에 서방교회로 전해지면서 8세기에 이 축일이 확립되었고,
명칭이 젤라시오 전례서와 그레고리오 전례서에서
처음으로 '마리아의 승천'으로 바뀌었다.
8세기에 이미 교회는 마리아 승천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였고,
1950년 교황 비오(Pius) 12세는
마리아의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는 것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여
(비오 12세의 사도 헌장, Munificentissimus Deus),
이 축일은 교회 전례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축일 중의 하나임이 명백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모탄일 축일은 5세기말부터 예루살렘에 있던
마리아 성당 축성일인 9월 8일에 지켜지고 있다.
또한 이 축일에서 역산하여 9개월 전인 12월 8일을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로
8세기경부터 동방교회에서 지켜 왔으며
9세기에 유럽으로 전해졌다.
이 축일은 1476년 교황 식스토(Sixtus) 4세에 의해
로마 전례력에 도입되어 전교회로 확장되었으며,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신앙 교의로서 성대히 공포되었다.
지금까지 언급한 마리아 5대 축일 외에도 교회력에는,
성모의 성녀 엘리사벳 방문 축일(5월 31일),
여왕이신 동정 성 마리아 기념(8월 22일),
성모 통고 기념(9월 15일), 로사리오 성모 기념(10월 7일),
성모 자헌 기념(11월 21일) 등이 있다.
또한 교회는 이러한 축일 외에도 매월 첫 토요일을
성모 마리아의 날로 봉헌하여 전례가 허락하면
성모 신심미사로 특별한 공경과 전구(轉求)를 드린다.
(가톨릭대사전에서)
The Coronation of the Virgin (San Marco Altarpiece)-BOTTICELLI, Sandro
1490.Tempera on wood, 378 x 258 cm.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성모님 축일*
1월1일: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Solemnity of Mary, Maria Santissima Madre di Dio. Mary, Mother of God
2월11일: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세계병자의 날)
Our Lady of Lourdes
3월25일: 주님 탄생 예고(성모 영보)대축일
The Annunciation, Annunciation by Saint Gabriel
5월13일: 파티마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
Our Lady of Fatima
5월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The Visitation, Vsitatio B. Mariae V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2003년6월28일,2004년6월19일(예수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 이동 축일)
Immaculate Heart of Mary, Cuore Immacolato della Beata Vergine Maria
7월16일: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Our Lady of Mount Carmel
8월2일: 포르치운쿨라의 천사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
Our Lady of the Angels, Perdono di Assisi (Indulgenza della Porziuncola)
8월5일: 성모 대성전.성모 설지전(聖母雪地殿) 봉헌 축일
Our Lady of the Snow, Dedication of Saint Mary Major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The Assumption, Assumption into Heaven,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8월22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The Queenship of Mary . Regina.
Beata Vergine Maria Regina, The Queenship of the Blessed Virgin Mary
9월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The Birth of Mary. Nativity of Mary, The Birth of the Blessed Virgin Mary
9월15일: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Our Lady of Sorrows, Feast of Our Lady of Sorrows
9월24일: 메르체데의 성모마리아 기념일
Feast of Our Lady of Mercy.
10월7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Our Lady of the Rosary, Our Lady of the Most Holy Rosary
11월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The Presentation of Mary, Presentation of Mary at the Temple
Presenta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12월8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The Immaculate Conception, Mary’s Immaculate Conception
12월12일: 과달루페의 성모마리아 기념일
Our Lady of Guadalupe
성모 발현과 교회의 가르침
과달루페,라살레트,루르드.바뇌...
* 5월 성모성월,유래와 의미,성모신심
*10월 묵주기도 성월(전교의 달)
* 성모 칠락 묵주기도
* 성모 칠고 묵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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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의 대관. 1493.판.255x225cm.브레라 미술관
(성지오르지오. 세례자 성요한. 알렉산드리아의성 카타리나.
성베난티우스. 성프란치스코 .성세바스티아누스와 奉樂의 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