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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갑의 지리산 여행기131편 부처님 오신날 특집
佛 손자상좌 명천 스님이 들려주는 이 시대 마지막 禪僧
성수 큰스님께서 함양서 보낸 한 철… 그 발자취를 찾아서
스님은 종단 최고 품계인 대종사(大宗師) 법계를 받았으며, 조계종 소속으로 새로 출가하는 스님들에게 계를 주는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을 역임했던 우리나라 불교계의 큰 어른이시다. 지난 4월15일 오전 경남 양산 통도사 관음암에서 입적했다. 법랍 69세, 세수(歲壽) 89세. 성수 큰스님은 함양서 사바세계 불자들에게 어떤 법어를 했나.
명천스님… 성수 큰스님 시봉하면서 노장어른한테서 뭘 배웠습니까? #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는 오탁(五濁)의 더러움으로 가득한 세계다. 오탁을 오재(五滓), 오혼(五渾)이라고도 한다. 오탁이란 겁탁, 번뇌탁, 중생탁, 견탁, 명탁을 말하는데 그 중 둘만 소개하면, 겁탁은 기근과 질병 전쟁이 그칠 사이가 없어 편안하게 살수 없는 재난의 시대를 말한다. 번뇌탁은 사람의 마음이 탐진치 등 번뇌로 가득하여 편안히 살 수 없는 현실을 말한다. 오탁이 없는 곳, 그곳은 어디일까? 부처님과 보살이 머무는 청정한 세계 정토(淨土)다. 그 세계는 더러움이 없고 미(迷)의 상(相)과 악행악상(惡行惡想)이 없고 일체의 모든 것이 청정으로 더없이 아름답고 깨끗한 영역이다.
<무량수경>에 따르면 ‘정토. 그곳 대지는 금·은·유리·호박·수정·진주·노 등 7보로 되어 있다. 나무도 칠보로 되어 있다. 이 나무들 사이에 바람이 불면 기묘한 음악이 울려 퍼진다. 못에는 청·홍·황·백색의 연화가 피어있고 못에는 팔공덕수(八功德水)가 가득하다. 못의 언덕에는 비단향목이 있다’
# 어느 날 한 불자가 필자에게 말한다. “함양에도 <무량수경>에서 말하는 정토가 있는데 그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글쎄요…” “성수(性壽) 큰스님을 아시나요?” “이 시대 마지막 선승으로 이름 높은?” “그렇지요, 그분이 주석했던 작은 암자가 바로 정토입니다. 왜 정토인지 한번 취재해보시구려”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오토민박촌을 지나 산길을 오르면 산자명수자심(山自明水自深)한 풍광이 펼쳐진 곳에 향운암(香雲庵)이 있다. 언뜻 보기에, 절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냥 칠선계곡 두지터 화전민촌처럼 생겼다. 외양은 허름한 민가처럼 생겼지만 이곳이야말로 불심 가득한 기도터로 이름 높다. 30여년전 한 노스님이 이 허름한 화전민촌 집에 들어앉아 단칸 선방 좌복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여여부동(如如不動) 참선을 하셨다. 바로 그 스님이 우리시대 마지막 선승 성수노장어른이시다. 스님은 종단 최고 품계인 대종사(大宗師) 법계를 받았으며, 조계종 소속으로 새로 출가하는 스님들에게 계를 주는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을 역임했던 우리나라 불교계의 큰 어른이시다. 지난 4월15일 오전 경남 양산 통도사 관음암에서 입적했다. 법랍 69세, 세수(歲壽) 89세. 본지는 부처님 오신날 특집으로 최근 열반한 성수 큰스님이 함양에서 행한 불심을 추억하기 위해 향운암을 찾았다.
팔품행 할머니 보살 왜 이 암자를 떠나지 않았나?
향운암 주지 명천스님(성수 큰스님 불법 손주상좌)이 영정그림을 가리키며 “아직 미완성 그림입니다. 큰스님 높으신 불심 생각하며 시간 나는 대로 그리는 중입니다”
“향운암에서 오랜 간 불심을 닦으신 팔품행 노보살이시죠, 반야행. 몇 해 전 이 향운암에서 임종하셨습니다. 열반하면서 이곳이 참 좋아… 다시 돌아오쿠마 하셨습니다. 살아생전 이 암자에서 오랜 간 공양주보살 소임을 맡았던 분이시죠. 두 어른을 기리기 위해 단을 만들어 모시고 있습니다”
“노장어른께서는 소승에게 늘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말과 행동과 마음이 항상 부처를 닮아야 한다. 사람을 만날 땐 하심(下心)하면서 좋은 말로 복을 짓고, 하루에 한번이라도 부처님처럼 당당하게 허리를 세우고 앉아 집중해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보는 시간을 갖게, 노장께서는 생전, 불자들에게 ‘만족심이 시복(是福)’ 이라는 말씀을 하셨답니다. 3일에 식은 죽 한 홉도 감지덕지 하다는 마음만 가지면 더 이상 좋은 복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음 속에 부족감을 내면 낼수록 마음이 흔들려 방황하다가 쌓아 놓은 물질에 휘말려 정신까지 잊어버리게 된다 하셨지요. 스님을 따르는 많은 불자들이 향운암 불사를 건의할 때마다 늘 3일에 식은 죽 한 홉 말씀을 하셨답니다. 불심 닦는데 구중궁궐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 명천스님과 함께 향운암 뜨락 연못을 향했다. 작은 연못 사이로 구름다리가 놓여져 있다. 연못 위에 수십 개 연등이 걸려져 있어 물 속으로 연등이 보인다. 연화부수혈(蓮華浮水穴)이 바로 이런 건가? 물 속 연꽃이 두둥실 오색찬란하다.
-성수 큰스님께서는 살아생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해, 불자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죠? “싯다르타 태자(석가모니)가 주행칠보(走行七步)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이 말은 결코 아만(我慢)이 아니라 했습니다. 도도한 아상(我相)도 아니라 했습니다. 자아발견이라고 했습니다. 밝은 빛이라고 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불자들은, 부디 유아독존 그 깊은 의미를 깨달아 그 말속에서 자유자재한 뜻을 맛보고, 마침내 산 불자(佛子)가 되라! 그런 법어를 하셨습니다”
-성수 큰스님께서는 부처님 오신날, 이런 법어도 하셨죠? 석가탄신일 때 축하에만 현혹되지 말고 만분의 일이라도 자기 일 잘하고 남에게 칭송받는 일을 하기를 두 손 모아 다같이 발원(發願)하라! “허허 그렇습니다”
-발원을 설명해 주시죠. “발원은 문자 그대로 소원이나 서원을 일으키는 걸 말합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나 정토를 완성하고 사람들을 구제하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죠”
대저, 산 불자가 되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절에는 왜 가는가? 성수 큰스님의 육성을 들어보자.
하루 5분만 정신 차려 자신을 알고 살면 “아침에 뜨는 해는 똑 같은데 사람은 조석으로 변합니다. 그 변동은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 끌리는 분별망상입니다. 탐욕심이 끊어져 변동이 없는 그것을 만나야 하는데 그것을 만나려면 첫째, 몸이 건강해야 하고 둘째, 정신이 분명해야 하고 셋째, 생각이 확실해야 합니다. 불자라면 사는 것이 무엇인지 하루 한 번씩 묻고 절에 뭐 하러 가는지 생각해 보세요. 불자라면 부처님 흉내를 내야 합니다. 하루 5분만 정신 차려 자신을 알고 살면 흰 피 검은 피 독한 피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 수 있어요. 부처님을 부르는 목적이 분명히 있어야 ‘자아(自我)’를 발견하는 계기가 됩니다.”
성수 큰스님 열반 하기 전, 몇 차례 인터뷰를 했던 김석종 경향신문 불교담당 기자에 따르면 “큰스님께서는 독특한 태교론을 펼치기도 했다”고 한다. 김석종 기자의 말이다. “임신 중에는 남(南)쪽을 향해 앉으라고 권유했지. 그래야 따뜻한 기운과 부드러운 덕이 승화되어 온유한 덕이 품어진다며. 또 임신 중 거짓이 있거나 허점이 많으면 완전치 못한 저능아 기형아를 낳는다며 임신 중에는 언행과 마음가짐 정신상태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 항상 밝고 건전한 정신을 가지라고 독려했다네”
벼슬은 높을수록 마음을 낮게 쓰고 #성수 큰스님께서는 살아생전 법어집 <불문보감(佛門寶鑑>을 펴냈다. 이 책을 펼치면 첫 장에 큼직하고 투박한 글씨가 나온다.
<非一二> ‘비일이’라? 이 세 글자 속에 무슨 화두가 남겨져 있을까? 성수 큰스님이 살아 계시면 여쭤볼 터인데 스님 이승에 존재치 않아 그 깊은 의미를 알 방도가 없다. ‘비일리’는 선기 넘치는 시로 유명한 소요태능(逍遙 太能. 1562?1649)의 시에 언급되는 바,
性海淵澄 浩浩來 (성해연징 호호래) 微風一擊 萬波來 (미풍일격 만파래) 波與水兮 非一二 (파여수혜 비일이) 碧天雲散 月初來 (벽천운산 월초래)
마음바다 고요하여 넓고 넓은데 바람이 문득 불어 일만 파도 일어나네 파도와 물은 하나도 둘도 아니니 푸른 하늘 구름 흩어지고 달이 떠오네
이 시를 통해 성수 큰스님께서 내던진 화두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성수 큰스님께서는 법어집 <불문보감>을 통해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나를 제시하고 있다. 성수 큰스님의 말씀이다. “남을 절대 업신여기지 마라. 어진 행을 닦는데는 겸양(謙讓)이 근본이다. 밖으로 나타난 위의(威儀)는 존귀한 듯 하나 속은 텅 빈 썩은 배(船)와 같다. 벼슬은 높을수록 마음을 낮게 쓰고 도가 익을 수록 뜻을 겸손히 하라”
명천 스님이 불단 옆 작은 방에서 두루마리 족자를 하나 들고 온다. “노장 어른께서 제게 준 글씨입니다”
산색수음도(山色水音道) 活山 性壽.
산에는 산색이 있고 물에는 물소리가 있다는 뜻인데 이건 또 뭘 의미하나. 출가승이 세속을 그리워하고 못잊어 하는 걸 도철이라 한다. 도 닦는 마음이 멀어지면 인정에 사로잡히니 출가한 뜻을 잊지 않으려면 명산을 찾아 깊은 뜻을 연구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성수 큰스님이 선지식으로 한국 불교에 큰 족적을 남겼다면 손자상좌 명천스님은 불화(佛畵)로 한국 불교에 큰 획을 그어 불교화단에서 화제다. 불화전문가인 명천스님은 연전, 동국대 선학과에 재학중인 설민스님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박물관’서 외국인에게 한국불화의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시연행사를 열어 화잔에 커다란 화제를 모았다. 설민스님이 2.8m 족자에 그린 ‘수월백의관음(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 탱화를 선 보였고 명천스님은 불법을 수호하는 장군 모습의 보살 그림인 ‘동진보살’ 탱화를 그렸다. 시연회에서 명천 스님과 설민스님은 수월백의관음도와 동진보살도 등 완성작 2점을 걸어 넣고 스님들이 직접 염불을 외우며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점안법회’도 봉행했다. 동진보살(童眞菩薩)이란 정법(正法)의 수호신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보살, 또는 초선천(初禪天)에 있는 범천왕(梵天王:梵王, 大梵天王)을 말한다.
“동진보살님을 탱화로 한번 그려봤습니다. 동진보살은 산스크리트 쿠마라부타의 한역이며, 구마라부다(究摩羅浮多) 등으로 음역하지요. 그 변상도(變相圖)에서 얼굴을 동그랗게 묘사, 동자(童子)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초선천의 주(主)로서 색계(色界) 대범천(大梵天)에 있는 높은 누각에 살며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죠. 밀교(密敎)의 세계를 그린 만타라(曼陀羅)에서는 대자재천(大自在天)의 아들로서 태장계(胎藏界)의 외금강부(外金剛部) 등에 그려지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제석천(帝釋天)과 더불어 불법의 수호신으로서, 부처가 세상에 나타날 때마다 먼저 설법(說法)을 청하여, 언제나 부처를 오른편에 모신다고 해요. 또 불경을 간행할 때 권두나 권말에 동진보살상을 판각, 경전 수호의 상징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진 보살에 대한 신앙은 한국 불교의 신중탱화(神衆幀畵)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주위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과 팔부신장(八部神將)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또, 명천 스님은 제 24대 대한민국 불교미술대전에 공예작품 ‘복전의(福田衣)’을 출품, 최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명천스님과 필자는 암자 비탈길 쪽에 있는 바위 위에 앉았다. 종달종달 새 울음소리 뿐 그저 적요하다.
-화제를 바꿔, 성수 큰스님과 명천 스님은 어떤 인연으로 알게 되었나요?
“제 고향은 경북 의성입니다. 제 속명은 김형동. 고향 뒷산에 고운사가 있는데 어릴 적부터 그 절을 자주 찾았습니다. 남들처럼 생의 고통, 생명에 대한 탐구 때문에 출가한 건 아니었고 그냥 스님들 생활하는 게 좋아 보여… 허허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제 은사스님은 지우 큰스님이신데 곧, 이분이 성수노장어른 불제자지요. 저는 통도사에서 계를 받고 이리저리 만행을 하다 20여년 향운암에 주석하고 계시던 성수 노장스님 부름을 받고 시봉하게 됩니다”
명천 스님은 노장큰스님 모실 때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 들려준다. "소승이 이상하게도 요리솜씨가 좀 있었습니다. 텃밭에서 거둔 것으로 맛 깊은 동치미도 잘 만들었어요. 모년모월 성수큰스님 찾아 혜암 종정과 일타 큰 스님이 향운암을 방문했어요. 성수노장스님께서 명천스님, 큰 어른 두 분 오셨네. 천하 별미를 한번 만들어 보시게 해서 칡 물김치를 만들어 국수를 해 드렸더니 어찌나 세 분 좋아하시는지. 그후 혜암 종정께서는 저만 보면 칡 물김치 국수를 해 달라고 농 하셨답니다"
노장 큰스님께서 손자상좌에게 어떤 당부를 했을 법한데?
“노장스님께서는 불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손자상좌 저에게 “불화 그리는 것도 부처님 공양하는데 필요하지만 선을 닦는 일이 더 우선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절히 도 닦기를 권하노니 어서어서 부처되어 중생을 건지라고 말씀하셨지요, 소승, 노장 스님 주신 말씀, 가슴에 담아두고 정진하고 있습니다”
# 향운암에는 성수 큰스님의 유품(서예 그리고 생전 필기도구 불경)이 여러 점 있다. 필자는 노장어른께서 기거했던 남루한 방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 방을 바라보면서 스님의 생전 불자에게 한 말씀 <만족심이 시복이니라>를 음미해보았다. 그렇다. 식은 죽 한 홉도 감지덕지, 이 남루한 방 한 칸에 정토 연화가 만발하네! 필자는 성수 스님께서 머문 방에 가만히 앉아 이승에 존재하지 않은 스님과 대화를 나눴다. 問=세상의 모든 일이 다 道라 하시니 세상의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이것이 세상사인데 이것도 도란 말입니까? 答=그렇지. 농부는 밭 갈아서 농사짓고 장가가서 아이 낳고 돈 벌어서 살림 꾸리니 이 사람아 이것이 다 도 아니고 무엇이 도란 말인가?
이놈아 해가 저문데 잠이나 자세 일방에 눈을 뜨고 보니 세상에 하는 일이 모두가 다 도 아닌게 없네(世上萬事無非道) 앞집의 닭이 울고 뒷집에 소가 뛴다 역대 성인은 다 속여도 자신은 못 속인다 도의 법칙은 한 치도 어긋나면 아니 되니 조심할지어다
어즈버, 성수 큰스님께서 용맹정진했던 향운암에 노을이 밀려오고 있다. 해서 저물녘, 기백산 하얀바위속살이 노을 구름 붉게 물들고 있다. 빛에도 향기가 있다. 도량(향운암)을 서성이며 기백산 바위를 보고 있자니, 그 빛이 마치 관세음보살님 장엄한 후광처럼 보인다.
#취재를 마치고 정토 향운암을 빠져나오며 스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명천 스님 향운암 이름 누가 지었나요?” “성수 노장어른과 제가 상의해 그렇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부처님을 시봉하는 걸 향각이라고 하지요 그 향자에 구름 운자인데 큰 의미는 없습니다” “저는 저 향기 나는 기백산 구름 빛 보면서 암자 주변 충광과 암자 이름이 참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구나…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좋은 시간 마련해 줘 감사합니다”
구본갑|본지칼럼니스트 busan7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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