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 한가위가 시작되었습니다. 벌써 도로는 귀향 행렬로 가득차고 곳곳이 극심한 정체로 혼란을 빚고 있습니다. 이번 명절에도 3,200만명의 사람이 고향을 찾아 이동한다고 하니 정말 대간한 민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3대 명절하면 설, 단오, 한가위를 꼽습니다. 그 중 가장 큰 명절로 일컬어지는 한가위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라는 우리 민족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나라 안이 시끄러움은 물론 미국에서의 테러사건으로 인해 세상이 온통 뒤숭숭한데 보름달만큼 환하고 둥그런 삶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가위는 음력 팔월 보름날(15일)로 추석, 가배절, 중추절, 가위, 가윗날 등으로 불려지는 추수감사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한가위'라는 말은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8월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또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베짜기)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죠.
"신라 유리왕 9년에 국내 6부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갈라 두 왕녀로 하여금 그들을 이끌어 7월 기망(旣望:음력 열 엿새 날)부터 길쌈을 해서 8월 보름까지 짜게 하였다. 그리곤 짠 베의 품질과 양을 가늠하여 승부를 결정하고,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 이긴 편을 대접하게 하였다. 이 날 달 밝은 밤에 임금과 백관 대신을 비롯해 수십만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녀와 부녀자들이 밤새도록 `강강술래'와 `회소곡(會蘇曲)'을 부르고 춤을 추며 질탕하고 흥겹게 놀았다. 이것을 그 때 말로 `가배→가위라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해 한가위에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맞는 행운이 있을 것이라고 기상청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릴적 보름달 속에는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매우 어려웠던 시절을 겪으며 살아야 했던 민초들의 바램이 이 속에 담겨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네들은 보름달을 보며 방아를 찧는 상상을 하며 마음의 풍요를 만끽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인도, 중앙아메리카에서도 달에서 토끼를 보았고, 유럽에서는 보석 목걸이를 한 여인의 옆얼굴, 책 또는 거울을 들고 있은 여인을 상상했다고 합니다. 두꺼비나 당나귀, 사자의 모습을 생각한 나라도 있다고 하지요. 이 모두가 그 나라의 처지와 생활 속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우리나라에선 보름달이 뜨는 날은 정월대보름, 한가위 등 풍요로운 명절이지만 서양에서 는 주로 마귀할멈이나 늑대인간 등 무시무시한 악령과 연관되어있는 귀신의 날이 되니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추석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는 벌초(伐草), 성묘(省墓), 차례(茶禮), 소놀이, 거북놀이, 강강수월래, 원놀이(모의재판), 가마싸움, 씨름, 반보기(중간 상봉), 올게심니(풍년기원제), 밭고랑 기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설에는 옷을 얻어 입고 한가위에는 먹을 것을 얻어 먹는다'라는 우리나라의 옛 속담이 있습니다. 이렇듯 한가위는 시기적으로 곡식과 과일 등이 풍성한 때이므로 여러 가지 시절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풍습이 발달하였습니다.
추석의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송편을 빼놓을 수가 없죠. 솔잎향기가 입맛을 돋울 뿐 아니라 솔잎 자국이 자연스럽게 얽혀 생긴 무늬가 송편의 맛을 더해 줍니다. 송편은 소에 따라 팥송편, 깨송편, 송편, 대추송편, 밤송편 등이 있다. 솔잎에는 살균물질인 피톤치드(phytoncide)가 다른 식물보다 10배정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 유해성분의 섭취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위장병, 고혈압, 중풍, 신경통, 천식 등에 좋다고 합니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모시 잎을 삶아 넣어 빛깔을 낸 모시잎 송편, 강원도 지방에서는 감자를 갈아 녹말가루를 내어서 끓는 물로 익반죽한 다음 치대어 송편 빚듯이 소를 넣어 쪄낸 감자송편이 있다. 이 외에 쑥송편, 치자송편, 호박송편, 사과송편 등도 별미이다.
가정에서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며 송편을 빚는 정경은 한가위에 볼 수 있는 아름답고 정겨운 장면입니다. 송편을 잘 만들어야 예쁜 아기를 낳는다는 말에 서로 은근히 솜씨 경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배우자가 예쁘고, 볼품 없이 빚으면 신랑신부 될 사람의 미모도 볼품이 없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또 임신한 부인들은 송편에 솔잎 한 가닥을 가로로 넣어 쪘는데 찐 송편을 한쪽으로 베어 물어서 문 부분이 솔잎의 끝 쪽이면 아들이고, 잎 꼭지 쪽이면 딸이라는 풍설도 있지요.
한가위의 차례 상에서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술입니다. 한가위 때 마시는 술은 백주(白酒)라고 하는 데, 햅쌀로 빚었기 때문에 신도주(新稻酒)라고도 한다. 추석 때는 추수를 앞 둔 시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풍족해져 서로 술대접을 하는 수가 흔했습니다. 녹두 나물과 토란국도 추석의 절식이지요.
한가위는 모든 배달겨레의 큰 명절입니다. 이 큰 명절을 단순히 연휴라는 개념으로 보내지 말고, 우리 조상들이 새겼던 정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2. 이사야의 꿈
우리 조상님들이 꿈꾸었던 한가위는 이사야의 새 하늘 새 땅에 대한 꿈과 통하는 것 같군요.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이미 나라는 반으로 쪼개지고 북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남 유다의 운명도 경각에 달린 시점에서 이사야는 참으로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날, 야훼께서 승리하시는 날이 되면 정말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모든 반목은 사라지고, 전쟁도, 싸움도 없으며, 심지어 경쟁까지 사라진, 그래서 원수된 것들이 서로 사이좋게 뛰노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는 거죠.
“늑대와 어린양이 함께 풀을 뜯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뺌이 흙을 먹고 살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나 서로 헤치고 죽이는 일이 없으리라.(사 65: 25)”
“늑대와 새끼양이 어울리고 표범이 수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은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과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젖먹이가 살모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 뗀 어린 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넣으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야훼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사 11:6-9)”
약육강식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고 제 이기심에 물들지 않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랑하며 사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이 함께 어울리고 생물과 무생물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은 야훼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칠 때 가능해 집니다. 이것이 이사야의 주장이요, 꿈인 거죠.
야훼를 아는 지식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한마디로 자연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제 욕심을 모두 끊어 내고 모두가 한 형제요 자매인 것을 나는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같은 뿌리를 가진 것처럼 미국과 이슬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은 다르지만 같은 종으로 지구라는 하나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반목하며 헤치는 단한가지 이유는 욕심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제물로 삼는 것이죠.
욕심껏 사는 사람은 증오와 복수심을 키우게 됩니다. 종교마저도 제 욕심을 감추기 위한 도구가 되죠. 남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종교의 이름으로 지금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칼한 일입니다.
증오와 복수심에 가득 차 결국 제 욕심을 차린 구천(句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마지막 패권을 잡은 월나라의 왕입니다.
초나라를 빼앗아 강성한 나라를 만든 오나라 왕 합려(闔閭, 496-465BC)는 생전에 칼을 좋아해 어장검(魚腸劍)을 비롯하여 명검 삼천자루를 무덤에 같이 가져갔다는 왕입니다. 합려의 묘지는 소주성에 호구검지라는 유적지가 되어있습니다. 이 합려가 월나라 왕 구천(句踐)에게 패하여 죽었습니다.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가 궐기하여 아비의 원수를 갚고 월왕 구천을 사로잡아 오나라로 끌고 갔습니다. 구천은 포로로 잡혀가 삼년간이나 모진 고초와 수모를 겪습니다. 월나라로 돌아온 후 구천은 그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하여 밤마다 건초더미 위에서 잠을 자고 방안에는 쓰디 쓴 쓸개를 달아 놓고 식사 때마다 이를 핥으며 복수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월왕 구천은 오나라왕 부차의 마음을 사기 위하여 많은 재물을 바치고 오나라가 궁궐을 지을 때에는 일부러 길고 두꺼운 훌륭한 목재를 선물하였습니다. 부차는 그 목재가 너무 아까워 그 목재에 맞춰 다시 궁궐을 설계하고 고쳤다 하니 엄청난 물자와 노동력을 허비할 수 밖에요. 백성들의 고초가 말이 아니었겠습니다.
또 구천은 월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웠다고 하는 애비 서시(西施)를 부차에게 바쳤습니다. 부차는 서시의 미색에 빠져 국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드디어 오나라는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월왕구천은 복수심을 불태우며 22년을 노력한 끝에 결국 제욕심을 달성하게 되어 춘추전국시대의 마지막 패자가 되었습니다. 월왕 구천이 22년간 건초더미에서 잠을 자고, 쓴 쓸개를 핥았다하여 복수를 위해 옛 고난을 잊지 않는다는 고사성어 와신상담(臥薪嘗膽)이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와신상담이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한나라를 취했다하여 그 영화가 오래가지도 못합니다. 제 욕심을 채운 결과는 오왕 부차의 멸망이나 후일의 월나라의 명망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사야가 꿈꾸던 태평성대나 우리 조상들이 꿈꾸던 한가위의 평화는 제 욕심을 버리고 세상 만물이 한 뿌리에서 남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두가 형제자매요, 아비에미인데 어디에 총부리를 겨눌 수 있겠습니까?
지금 아프칸에서 들려오는 총성은 인류를 평화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또 다른 반목과 복수를 불러 와 결국 세계의 위기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한가위 명절을 맞으며 새삼스럽게 우리 조상이 꿈꾸던 세상을 그려보게 됩니다. 고향 다녀오는 길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