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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敎化할 바를 따른 說法
菩薩이 得是十種藏已에 福德具足하고 智慧淸淨하야 於諸衆生에 隨其所應하야 而爲說法이니라 佛子야 菩薩이 云何於諸衆生에 隨其所應하야 而爲說法고
所謂知其所作하며 知其因緣하며 知其心行하며 知其欲樂하야 貪欲多者란 爲說不淨하고 瞋恚多者란 爲說大慈하고 愚癡多者란 敎勤觀察하고 三毒等者란 爲說成就勝智法門하고 樂生死者란 爲說三苦하고 若着處所어든 說處空寂하고 心懈怠者는 說大精進하고 懷我慢者는 說法平等하고 多諂誑者는 爲說菩薩의 其心質直하고 樂寂靜者는 廣爲說法하야 令其成就니 菩薩이 如是隨其所應하야 而爲說法이니라 爲說法時에 文相連屬하고 義無舛謬하며 觀法先後하야 以智分別하며 是非審定하야 不違法印하며 次第建立無邊行門하야 令諸衆生으로 斷一切疑하며 善知諸根하야 入如來敎하며 證眞實際하야 知法平等하며 斷諸法愛하야 除一切執하며 常念諸佛하야 心無暫捨하고 了知音聲의 體性平等하며 於諸言說에 心無所着호대 巧說譬喩하야 無相違反하며 悉令得悟一切諸佛의 隨應普現平等智身하나니라
"보살이 열 가지 무진장(無盡藏)을 얻고는 복덕이 구족하고 지혜가 청정하여 모든 중생에게 적당한 대로 법을 연설 하였느니라. 불자여, 보살이 어떻게 하면 모든 중생에게 적당한 대로 법을 연설하는가. 이른바 그 짓는 것을 알고 그 인연을 알고 그 마음대로 행함을 알고
그 욕망을 알아야 하나니, 탐욕이 많은 이에게는 부정함을 말하고 성내는 마음이 많은 이에게는 대자(大慈)를 말하고 어리석음이 많은 이에게는 부지런히 관찰함을 가르치고 삼독(三毒)이 비슷한 이에게는 수승한 지혜를 성취할 법문을 말하고 생사(生死)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세 가지 괴로움을 말하고 처소에 애착하는 이에게는 처소가 공적함을 말하고 게으른 이에게는 크게 정진함을 말하고 교만한 마음을 가진 이에게는 법이 평등함을 말하고 아첨하고 거짓이 많은 이에게는 보살의 마음이 정직함을 말하고 고요함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널리 법을 말하여 성취케 할 것이니, 보살이 이와 같이 적당한 대로 법을 말할 것이니라.
법을 연설할 때에 글이 서로 연속하고 뜻에 잘못이 없으며 법의 앞과 뒤를 관찰하여 지혜로 분별하며 옳고 그름을 잘 살펴서 법인(法印)에 어기지 말게 하며 끝없는 수행의 문을 차례차례 건립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온갖 의심을 끊게 하며 모든 근성을 잘 알아서 여래의 교법에 들게 하며 진실한 경계를 증득하여 법의 평등함을 알게 하며 모든 법의 애착(愛着)을 끊어 온갖 고집을 덜게 하며 부처님을 항상 생각하고 잠깐도 버리지 말아서 음성의 성품이 평등함을 알며 모든 말에 대하여 집착하지 말고 교묘하게 비유를 말하여 서로 어기지 말며
모든 부처님이 적당하게 나타내는 평등한 지혜의 몸을 깨닫게 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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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敎化)할 바를 따른 설법(說法): 교화할 바를 따라서 법을 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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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이
득시십종장이(得是十種藏已)에 : 이러한 무진장을 얻고 나서
복덕구족(福德具足)하고: 복덕이 구족하고
지혜청정(智慧淸淨)하야: 지혜가 청정해서
어제중생(於諸衆生)에: 모든 중생에게
수기소응(隨其所應)하야: 그 응하는 바를 따라서
이위설법(而爲說法)이니라 : 법을 설하나니라.
소응(所應)은 마땅한 바, 거기 알맞은 바, 응(應)자가 참 많이 나온다. 부처님의 법문은 대중설법이 거의 없었다. 대개 일대일 맞춤 설법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에게 딱 맞는 법을 설할 수 있었다. 수기소응이라는 것이 그 사람에게 응하는 바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대중 설법을 하다보면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안 맞는데 또 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딱 들어맞기도 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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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보살(菩薩)이
운하어제중생(云何於諸衆生)에: 어떻게 하면 모든 중생에게
수기소응(隨其所應)하야 : 그 응하는 바, 알맞은 바를 따라서
이위설법(而爲說法)고: 설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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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지기소작(所謂知其所作)하며: 소위 그 짓는 바를 알며.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를 안다. 한마디로 직업이 뭔지 알아서 설법해주고
지기인연(知其因緣)하며 : 그 사람 인연은 어떤 인연이 있는지 잘 알아서 설법한다. 지기인연이면 설법하기가 쉽다.
지기심행(知其心行)하며 : 그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심행이다. 그 심행을 알며
지기욕락(知其欲樂)하야: 그 사람이 뭘 좋아하고 지금 뭘 하고자 하는지를 안다.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지 돈을 벌고 싶은지 그런 것을 또 알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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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다자(貪欲多者)란: 탐욕이 많은 사람에게는
위설부정(爲說不淨)하고: 부정을 설해준다. 여기서 탐욕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물질적인 탐욕보다는 이성에 대한 탐욕을 말한다. 그런 탐욕을 가진 사람에게는 ‘사람은 부정한 존재다’ 하는 것을 이야기 해준다. 부정관에는 백골관도 있고, 창농관이라고 해서 송장이 썩어서 부풀고 구더기가 끼는 것을 관하는관법도 있다.
진에다자(瞋恚多者)란: 성을 잘내는 사람들에게는
위설대자(爲說大慈)하고: 큰 사랑을 설해준다.
우치다자(愚癡多者)란 :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교근관찰(敎勤觀察)하고 :부지런히 관찰하게 한다. 무엇을 관찰하는가 하면 존재의 공성을 관찰하게 하는 것이다.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관찰하게 한다.
관자재보살은 무안이비설신의 라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하였다. 그것이 지혜인데 그렇게 보지 못하고 있다고만 보는 것은 우리들의 어리석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차적으로 우리는 어리석다.
원래는 없는 것인데, 있다고만 보니까, 그 있다고 하는 것에 걸려서 욕심을 내고, 뿐만아니라 싫어하는 것을 배타하면서 물리치기도 한다. 또 좋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주지자리가 좋다, 명예가 좋다, 돈이 좋다, 뭐가 좋다, 뭐가 좋다고 하면 그것을 꼭 갖고 싶은 것이다. 갖고 싶다고 해도 뜻대로 다 가질 수가 없으니 화가 나고 방해요인을 미워하면서 원한을 갖게 된다. 이런식으로 얼키고 설키면서 중생살이가 복잡해진다.
모두가 무아, 무상, 공, 연기를 모르기 때문이다.
인연도리 하나만 제대로 관찰해도 그렇게 욕심을 내지 않을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대박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는데 그 말을 쓰는 데는 정당하지 않은 재산을 한꺼번에 얻으려고 하는 횡재심리가 있다. 시류에 편승해서 대통령까지 그런 말을 쓰는 것은 대국민을 들뜨게 만들고 횡재를 기대하게 하므로 맞지 않는 말이다.
만원을 투자했다면 천원쯤 이익을 내려는 것이 옳다. 그런데 너도 나도 만원을 투자해서 빠른 시간안에 이만원 삼만원을 벌고자 한다.세상 사람들이 전부 그런 식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 것은 잘못된 것인데 대박이라는 말이 뭐가 잘못된 말인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들 때문에 온갖 온갖 부정부패 사기 협잡이 난무하고 여러 가지 문제들이 곳곳에 생긴다.
뉴스를 들을 수 없을 만큼 늘 그런 소식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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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독등자(三毒等者)란: 앞에서 탐진치를 낱낱이 설명했다. 여기는 탐진치 삼독을 평등하게 골고루 다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위설성취승지법문(爲說成就勝智法門)하고 : 수승한 지혜를 성취하는 법문을 설한다고 하였다.
수승한 지혜는 그 모든 것을 다 다스릴 수 있는 지혜다.
‘삼독등자란’ 이라고 하면서 ‘-란’이라는 토를 썼는데 옛날식 토다.
‘탐욕이 많고 진에가 많은 사람에게는’ 이런 뜻이다.
읽을 때는 ‘-란’ 이라고 읽는 것이 부드럽게 잘 먹히므로 그런 토를 썼다.
낙생사자(樂生死者)란 : 생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뜻이다. 생사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위설삼고(爲說三苦)하고: 삼고를 위하야 설해준다.
고고(苦苦) 행고(行苦) 괴고(壞苦) 라고 하는 세 가지 고통을 이야기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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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착처소(若着處所)어든: 만약에 처소에 집착하거든
설처공적(說處空寂)하고 : 처소가 공적한 것을 설해줘야 된다.
주지자리, 총무자리, 원장자리, 대통령 자리, 장관자리, 국회의원자리, 무슨 자리, 무슨 자리하는 그 모든 자리가 전부 처소다. 조그만 떼어놓고 생각해 보면 그와 같이 허망한 것도 없는데, 그 자리에 연연해서 정신없이 설치는 모습들이 가소롭다.
심해태자(心懈怠者)는: 마음이 해태한 사람에게는
설대정진(說大精進)하고 : 대정진을 설하고
회아만자(懷我慢者)는 : 아만을 품은 사람, 잘난 체 하는 사람에게는
설법평등(說法平等)하고: 법이 평등함을 설한다.
아만은 저 혼자 잘났다고 하는 것이다. 혼자만 잘난 사람이 누가 있는가? 누구든지 다 잘났고 다 평등하다. 어린아이들과 놀면서 장난으로라도 어린아이를 무시해보라.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절대 무시당하지 않는다. 사람의 본질이 다 평등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잘난 체 할 것이 없다.
아만을 품은 사람은 자기가 혼자 잘났다고 하는 것이 큰 문제라서 그런 사람들을 두고 ‘아만이 탱천하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아만이 탱천하여서 하늘을 떠받칠 정도인 사람들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다첨광자(多諂誑者)는: 거짓이 많은 사람을
위설보살(爲說菩薩)의 : 위하야 보살의
기심질직(其心質直)하고: 그 마음의 질직함을 설해준다. 순박하고 곧고 정직한 것을 설해준다.
지금 세상에는 첨광자가 너무 많이 들끓고 있다.
정직을 다 잃어버리고 뉴스를 들어보면 일체가 속이는 일들이다.
근래에 내가 제일 실망한 일은 KBS에서 방영한 친환경 유기농의 진실이다. 그 프로그램을 보니 자기가 키우기 전에는 판매하는 유기농이 100퍼센트 다 믿을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농약 비료를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제초제까지 쓴다.
딱지만 유기농이라고 붙이면서 “으레 그러는데요.” 하고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유기농을 먹으려면 절대 사먹을 것이 아니다. 아예 “유기농 아닌 것을 주세요.”라고 하는 편이 낫다. 여기 계신 입승스님처럼 자기 밭에서 자기가 키우고 관리를 하지 않는한 유기농을 먹는 일이 어렵다.
사실 유기농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생산을 많이 하려고 그렇게 농약을 쓰면서 속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값은 비싸게 받고 국가로부터도 상당한 지원을 받는다.
면사무소 동장이 동네 사람들 개개인의 도장을 꾸러미 꾸러미 갖고 있으면서 생산자란에 그 도장을 찍는 것도 보여주었는데 도장을 찍다가 헷갈려서 다른 사람의 도장을 찍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다 첨광이다. 곧고 순박한 마음, 정직한 마음이 하나도 없다.
낙적정자(樂寂靜者)는: 적정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광위설법(廣爲說法)하야: 널리 설법을 해서
영기성취(令其成就)니 : 그 적정을 성취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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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이
여시수기소응(如是隨其所應)하야: 그 마땅한 바를 따라서
이위설법(而爲說法)이니라 : 위하야 설법하나니라
다음부터는 과목을 달리 달아야 되는데 내가 하나로 붙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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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설법시(爲說法時)에 : 위하여 설법할 때
문상연속(文相連屬)하고 : 글이 서로 연속해야 된다.
이런 구절을 보면 화엄경이 문자가 생기고 나서, 법문을 기록하고 저술하는 일이 성행할 때 결집되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글이 없고 말로만 법문을 했던 때라면 ‘글은 서로 연속해야 된다’는 말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그런데 말도 역시 연속해야 한다.
한참 이야기 하다보면 ‘내가 어디까지 했지? 무슨 이야기 하다가 이렇게 딴 이야기로 나갔지?’ 하는 경우가 흔하다. TV에서 법문을 할 때도 법사가 한참 법문을 하다가 곁가지로 흘러가서 ‘어디까지 했죠?’ 하고 묻는 경우도 더러 보인다.
의무천류(義無舛謬)하며 : 뜻에는 어기거나 그릇됨이 없어야 된다. 이것은 내가 늘 조심하는 일이다. 나도 아는 것에 한계가 있고 알고도 착각하는 수가 있고 몰라서 오류를 많이 설하기도 한다. 의무천류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관법선후(觀法先後)하야 : 법의 선후를 잘 관찰해서
이지분별(以智分別)하며 : 지혜로써 분별하고
시비심정(是非審定)하야 : 옳고 그른 것을 살펴서 정해서
불위법인(不違法印)하며: 법인을 어기지 않는다. 이치나 진리를 어기지 않는다.
불교에도 삼법인(三法印)이 있다. 틀림없는 진리를 말한다. 인(印)은 도장인데 도장은 틀림이 없다고 인정을 할 때 찍는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동장이 혼자서 동네사람들의 도장을 가지고 함부로 찍을 일이 아니다.
본인에게 허가도 받지 않고, 남의 도장을 어떻게 찍을 수 있으며 어찌 그렇게 도장을 함부로 맡기는가? 말인즉슨 소소한 것에 도장을 찍으려고 먼거리를 찾아가서 일일이 도장을 받으려면 번거롭고 사람도 없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동네사람이 밭에 나가고 없으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찾아가서 도장을 받는 일이 동장이 할 일인데도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하는 세상이다.
차제건립무변행문(次第建立無邊行門)하야: 차제로 무변행문을 건립해서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단일체의(斷一切疑)하며 : 일체 의혹을 다 끊게하며
선지제근(善知諸根)하야 : 모든 근기를 잘 알아서
입여래교(入如來敎)하며 : 여래의 가르침에 들어가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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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진실제(證眞實際)하야 : 진실한 이치, 진리를 증득해서
지법평등(知法平等)하며 : 법의 평등함을 알게 하며
단제법애(斷諸法愛)하야 : 모든 법의 애착을 끊는다. 나에게 가장 많은 것이 법애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일단 법에 대한 애착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또 집착으로 변질되면 그건 또 하나의 큰 번뇌가 되고 장애가 된다. 모든 법에 대한 애착을 끊어서
제일체집(除一切執)하며: 그것도 집착이니까 일체 집착을 제거하며
상념제불(常念諸佛)하야 : 항상 모든 부처님을 생각해서
심무잠사(心無暫捨)하고 : 마음에 잠깐도 버리지 말고
요지음성(了知音聲)의: 음성의
체성평등(體性平等)하며 : 체성이 평등함을 깨달아 알며
어제언설(於諸言說)에 : 모든 언설에
심무소착(心無所着)호대 : 마음에 집착이 없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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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설비유(巧說譬喩)하야: 적당한 비유, 그 법에 딱 알맞은 비유를 교설해서
무상위반(無相違反)하며 : 서로 위반함이 없게 하며
실령득오일체제불(悉令得悟一切諸佛)의: 일체 모든 부처님의
수응보현평등지신(隨應普現平等智身)하나니라: 응함을 따라서 널리 나타나는 평등한 지혜의 몸을 깨닫게 한다. 이 중생에게는 이렇게 나타나고 저 중생에게는 저렇게 나타나는 것이 수응보현이다.
11, 說法과 波羅蜜莊嚴
菩薩이 如是爲諸衆生하야 而演說法하고 則自修習하야 增長義利호대 不捨諸度하야 具足莊嚴波羅蜜道니라
"보살이 이렇게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면 스스로 닦아서 이치를 증장하면서도, 모든 바라밀다를 버리지 아니하여 바라밀다의 도를 구족하게 장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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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說法)과 바라밀장엄(波羅蜜莊嚴): 모든 바라밀을 장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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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이
여시위제중생(如是爲諸衆生)하야 : 이와같이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
이연설법(而演說法)하고: 법을 연설하고
즉자수습(則自修習)하야:스스로 수습해서. 여기서 수습이란 곧 수행을 말한다.
설법이 수행이고 포교가 수행이다. 이런 신념이 있어야 한다. 내가 정확하게 그 이론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것을 전법을 잘 해서 남에게 가르치는 것이 큰 수행이다.
증장의리(增長義利)호대: 이치에 밝음을 자꾸 증장시키고 그러면서
불사제도(不捨諸度)하야: 육바라밀 내지 십바라밀을 버리지 않는다. 경을 보고 참선하고 하는 것에만 편중해버리면 다른 바라밀을 닦는 것을 소홀히 하고 우습게 알기 쉽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법을 연설하고 그 이치를 증장시키는 노력을 하더라도 다른 바라밀 육바라밀 닦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해서
구족장엄바라밀도(具足莊嚴波羅蜜道)니라: 구족히 바라밀도를 장엄한다.
(1) 布施波羅蜜
是時에 菩薩이 爲令衆生으로 心滿足故로 內外悉捨호대 而無所着하나니 是則能淨檀波羅蜜이니라
"이 때 보살이 중생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기 위하여 안의 재물과 밖의 재물을 모두 버리면서도 집착하지 아니하면, 이것은 보시바라밀다를 청정케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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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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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是時)에
보살(菩薩)이
위령중생(爲令衆生)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심만족고(心滿足故)로 : 마음이 만족하게 하기 위해서
내외실사(內外悉捨)호대: 안 보시도 하고 바깥 보시도 한다. 안 보시는 법이고 바깥 보시는 재물이다. 그것을 다 보시하되
이무소착(而無所着)하나니 : 집착하는 바가 없게 하나니
시즉능정단바라밀(是則能淨檀波羅蜜)이니라: 이것이 곧 능히 단바라밀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법보시 재보시 무애시 그리고 무재칠시 등등 보시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말한다. 여기 내외실사라고 하는 말은 우리가 보시를 할 때 진리로써 하는 것도 해야 하고 재물로써 해야 할 것도 해야된다는 말이다.
(2) 持戒波羅蜜
具持衆戒호대 而無所着하야 永離我慢하나니 是則能淨尸波羅蜜이니라
"여러 가지 계율을 갖추어 가지면서도 집착하지 아니하고 아만(我慢)을 영원히 여의면, 이것은 지계바라밀다를 청정케 함이니라."
*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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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중계(具持衆戒)호대 : 여러 가지 계율을 갖추어서 가지되
이무소착(而無所着)하야: 집착하는 바가 없어서
영리아만(永離我慢)하나니 : 영원히 아만을 여위어서
시즉능정시바라밀(是則能淨尸波羅蜜)이니라: 지계바라밀을 청정하게 한다. 시바라밀은 시라바라밀 지계바라밀이다.
계를 잘 지키는데 왜 아만이 없다고 하는가? 자신이 계를 특별히 잘 지킨다고 하면서 지키는 사람들 치고 아만이 없는 사람들이 없다. 그런 것도 참 신기하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율을 철저히 지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기 계율을 지키는데 너무 집착하면 아만이 생긴다. 영리아만이라는 말이 왜 왔나 생각해 보니 집착이 있기 때문에 아만이 있는 것이다.
(3) 忍辱波羅蜜
悉能忍受一切諸惡호대 於諸衆生에 其心平等하야 無有動搖가 譬如大地가 能持一切하나니 是則能淨忍波羅蜜이니라
"온갖 나쁜 것을 모두 참으면서 여러 중생에게 마음이 평등하여 흔들리지 않기를 마치 땅이 모든 것을 능히 지니는 것과 같이 하면, 이것은 인욕바라밀다를 청정케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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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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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능인수일체제악(悉能忍受一切諸惡)호대: 일체 모든 어려운 일, 힘든 일 나쁜 일 이런 것들을 전부 참고 받아들인다. 이것이 인욕이다. 일체 제악을 참고 받아들이되
어제중생(於諸衆生)에 : 모든 중생에게서
기심평등(其心平等)하야 : 그 마음이 평등해서
무유동요?(無有動搖)가 : 동요함이 없는 것이
비여대지(譬如大地)가 : 마치 대지와 같아서
능지일체(能持一切)하나니 : 일체를 능히 가진다.
땅은 그 위에 아무리 빌딩을 높이 세워도 끄떡도 안한다. 비가 와서 쓸려나가도 큰 대지는 끄떡도 하지 않고 능히 일체를 가지는 것과 같나니
시즉능정인바라밀(是則能淨忍波羅蜜)이니라:인욕바라밀을 능히 청정하게 하는 것이니라.
(4) 精進波羅蜜
普發衆業하야 常修靡懈하며 諸有所作에 恒不退轉하며 勇猛勢力을 無能制伏하며 於諸功德에 不取不捨하야 而能滿足一切智門하나니 是則能淨精進波羅蜜이니라
"모든 업을 두루 지으며 항상 닦아서 게으르지 아니하고 여러 가지 짓는 일에 퇴전하지 아니하며, 용맹한 세력을 제어할 이 없고 모든 공덕에 취하지도 버리지도 아니하면서도 능히 온갖 지혜의 문을 만족하면, 이것은 정진바라밀다를 청정케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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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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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발중업(普發衆業)하야 : 널리 여러가지 업을 발해서, 일체 선업이라고 하는 것은 다 닦는 것이다.
상수미해(常修靡懈)하며 : 항상 닦아서 게으르지 아니하며
제유소작(諸有所作)에 : 모든 하는 일에 있어서
항불퇴전(恒不退轉)하며: 항상 퇴전하지 아니하며
용맹세력(勇猛勢力)을 : 용맹스러운 세력을
무능제복(無能制伏)하며 : 능히 누구도 꺾을 이가 없다.
대중생활을 하면 이런 경우를 본다.
어떤 사람이 비록 고집스럽고 편협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내가 그사람의 정진을 못따라가니까 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가 없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못 말린다.
어제공덕(於諸功德)에 : 공덕에 대해서
불취불사(不取不捨)하야 : 취하지도 버리지도 아니해서
이능만족일체지문(而能滿足一切智門)하나니 : 능히 일체 지혜의 문을 만족하나니
시즉능정정진바라밀(是則能淨精進波羅蜜)이니라: 정진 바라밀을 능히 청정하게 하는 것이니라.
(5) 禪定波羅蜜
於五欲境에 無所貪着하며 諸次第定을 悉能成就하며 常正思惟하야 不住不出하며 而能銷滅一切煩惱하며 出生無量諸三昧門하며 成就無邊大神通力하며 逆順次第로 入諸三昧하며 於一三昧門에 入無邊三昧門하며 悉知一切三昧境界하며 與一切三昧와 三摩鉢底智印으로 不相違背하며 能速入於一切智地하나니 是則能淨禪波羅蜜이니라
"다섯 욕심 경계에 탐하지 아니하며, 차례로 닦는 선정을 모두 성취하며, 항상 바르게 생각하여 머물지도 않고 나오지도 아니하며, 온갖 번뇌를 능히 소멸하며 한량없는 삼매문을 내며 끝없는 큰 신통을 성취하며 거슬리고 순하게 차례차례 모든 삼매에 들며 한 삼매문에서 그지없는 삼매문(三昧門)에 들어가며 온갖 삼매의 경계를 다 알며 온갖 삼매와 삼마발저와 지혜인(人)과 더불어 서로 어기지 아니하여 온갖 지혜의 지위에 빨리 들어가나니, 이것이 선정바라밀다를 능히 청정케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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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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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오욕경(於五欲境)에 : 이 오욕은 ‘안이비설신’까지를 말한다. 안이비설신이 하고자 하는 좋은 것만을 다 하려고 하는 경계에
무소탐착(無所貪着)하며 : 탐착하는 바가 없다.
일반적으로 재색신명수(財色身名壽)를 오욕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유교식의 오욕락이다.
불교의 오욕락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다.
몸은 늘 부드러운 것을 좋아한다. 몸이 좀 덥다고 하면 에어컨을 틀고 춥다고 하면 히타를 튼다. 이런 것이 몸이 하고자 하는 욕심이다. 눈, 귀, 코는 말할 것도 없고 다 좋은 것만 하고자 한다.
제차제정(諸次第定)을 :제차제정을
실능성취(悉能成就)하며:능히 성취한다. 거기에 흔들리지 아니해야 되는 것이다. 선정 바라밀을 말하고 있다.
상정사유(常正思惟)하야 : 항상 바르게 사유해서
부주불출(不住不出)하며: 머물지도 말고, 벗어나지도 않는다.
선정은 우두커니 멍청히 아무 생각없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바르게 생각할 줄 아는 것이다. 정사유다. 팔정도에도 정사유가 들어있다.
바르게 볼 줄 알고 바르게 생각할 줄 아는 것 바르게 생각해내는 것이 진짜 선정이다.
이능소멸일체번뇌(而能銷滅一切煩惱)하며: 일체 번뇌를 능히 소멸하며
출생무량제삼매문(出生無量諸三昧門)하며 : 그것을 통해서 한량없는 모든 삼매문을 출생하며
성취무변대신통력(成就無邊大神通力)하며 : 무변대신통력을 성취하며
역순차제(逆順次第)로 : 역과 순을 차제로
입제삼매(入諸三昧)하며: 입제삼매한다.
12인연법을 관하는 것도 역으로 관하고 순으로 관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계획 세워도 역과 순을 차례로 살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사찰에 행사를 한다고 하면 그 행사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종이에도 적어보고 미리 마음에도 그려본다. 순서대로 그려보고 또 뒤에서부터 다시 거슬러서도 생각해보면서 빠진 것이 없는가 일일이 살핀다. 그렇게 살필 줄 아는 것이 선정이고 삼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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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일삼매문(於一三昧門)에 : 한 삼매를 통해서
입무변삼매문(入無邊三昧門)하며: 무변삼매문에 들어간다. 한 삼매를 통해서 무변삼매를 다 안다.
실지일체삼매경계(悉知一切三昧境界)하며: 그래서 일체삼매 경계를 다 알며
여일체삼매(與一切三昧)와 : 일체 삼매와
삼마발저지인(三摩鉢底智印)으로 : 삼마발저는 정(定)이다. 삼매도 선정이다. 비발사나는 비파사나 요즘 말하는 위빠사나인데 관(觀)이다.
삼마발저의 지혜의 인, 이것은 혜(慧)다.
그래서 정혜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또 지관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그것이
불상위배(不相違背)하며 : 서로 위배하지 아니하며
능속입어일체지지(能速入於一切智地)하나니 : 능히 일체지혜의 지위에 빨리 들어가나니
시즉능정선바라밀(是則能淨禪波羅蜜)이니라: 이것이 곧 선정 바라밀을 능히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6) 般若波羅蜜
於諸佛所에 聞法受持하며 近善知識하야 承事不倦하며 常樂聞法하야 心無厭足하며 隨所聽受하야 如理思惟하며 入眞三昧하야 離諸僻見하며 善觀諸法하야 得實相印하며 了知如來의 無功用道하며 乘普門慧하고 入於一切智智之門하야 永得休息하나니 是則能淨般若波羅蜜이니라
"여러 부처님께 법을 듣고 받아 지니며 선지식을 친근하여 섬기고 게으르지 아니하며 항상 법문듣기를 좋아하여 마음에 만족함이 없고 들음에 따라 이치답게 생각하며 참된 삼매에 들어 모든 사특한 소견을 여의며 모든 법을 잘 관찰하여 실상(實相)의 인(印)을 얻으며 여래의 공용(功用)없는 도(道)를 분명히 알며 넓은 문의 지혜를 타고 온갖 지혜의 문에 들어가서 영원히 휴식함을 얻으면, 이것이 반야바라밀다를 청정케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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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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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불소(於諸佛所)에 :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문법수지(聞法受持)하며 : 우리가 지금 화엄경을 공부하는데 그 공부하는 법을 잘 듣고 잘 가져서
근선지식(近善知識)하야 : 선지식을 친근해서
승사불권(承事不倦)하며: 받들어 섬겨서 게으르지 않으며, 이 선지식도 화엄경이라고 보면 된다.
상락문법(常樂聞法)하야 : 항상 즐겨 법을 들어서
심무염족(心無厭足)하며 : 마음에 싫어하는 바도 없고. 만족하다고 하면 싫어하게 되고 싫어하면 ‘아 이만하면 됐다’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염족이라는 말이 붙어다닌다.
마음에 염족하는 바가 없으며
수소청수(隨所聽受)하야 :들어서 받아들이는 바에 따라서
여리사유(如理思惟)하며 :이치와 같이 사유한다. 예를 들어서 반야심경에서 무안이비설신의다 라고 법문했다면 ‘안이비설신의가 진짜 없는가? 어째서 없다고 하는가?’ 하고 사유하는 것이다. 우리가 부처님이나 보살들의 안목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사유가 제일 중요하다.
이치와 같이 사유를 잘하면 안이비설신의가 없다고 하는 그 사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가 있다. 물론 이해의 차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리사유하며
입진삼매(入眞三昧)하야: 참다운 삼매에 들어가서
이제벽견(離諸僻見)하며 : 편벽한 소견 치우친 소견을 다 떠난다. 공부하는 사람이 치우친 소견을 갖게 되는 것이 아주 큰 문제다.
선관제법(善觀諸法)하야 :모든 법을 잘 관찰해서
득실상인(得實相印)하며: 실상의 도장, 진리의 도장. 모든 것이 진실한 모양을 얻는다.
우리 몸이 무안이비설신의라고 했는데 무안이비설신의가 진실한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진실이라고 금세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사유를 통해서 이것을 분석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늙고 죽으면 무(無)로 돌아간다. 무안이비설신의가 진실한 모양이 아니라면 무로 안돌아가야 된다. 조금 늙더라도 이 모습 이대로 그대로 있어야 된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생기면 우리의 몸은 금방 무로 돌아간다. 또 우리 육신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이 합해서 존재한다. 색수상행식이라고 하여 물질[색(色)]과 마음[수상행식(受想行識)]이 합해서 완전한 사람으로 구성된다. 죽어서 이것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공(空)이다 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분석해서 이해하는 공을 분석공(分析空)이라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 그래서 무안이비설신의라고 했구나’ 하고 아는 것은 우리처럼 상당히 둔한 사람들의 사유다. 이것은 세속적으로 공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보살은 곧바로 ‘무안이비설신의가 맞아. 안이비설신의 없는 거야.’하고 안다. 깊이 생각을 안하고, 무상이나 연기를 생각하지 않아도 공을 바로 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다. 즉공(卽空)이다.
바로 눈앞에 그대로 두고 공한 줄로 보는 것이다.
일분 일초, 촌분도 움직이지 아니한 상태로 그대로 보는 관점이 보살의 즉공관이다.
그 중간에 성문과 연각이 아는 공은 연기공(緣起空)이다. 모든 것이 인연애 의해서 만들어진 합성품이고 그 인연이 다하면 없어지기 때문에 공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인연소치로써 공을 아는 것은 연기공이고 성문 연각 소승의 견해다.
경전에는 이렇게 공이나 무상을 보는 것도 분석공, 연기공, 즉공의 세 가지 단계로 이야기 해 놓았다.
요즘은 공(空) 이야기 할 때 반야심경 공은 즉공인데도 인연공으로 설명을 한다. 공을 평생 연구한 사람도 인연이기 때문에 공이라고 인연공으로 반야심경을 설명한다.
이것은 큰 차이다.
반야심경은 즉공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했지 인연때문에 공하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해가 안된다면 안되는 대로 놔두면 된다.
억지로 ‘인연으로써 공을 설명하면 이해가 쉽다’고 해서 반야심경의 지혜를 인연을 가져다가 설명해서는 안된다.
즉공은 보살의 차원이므로 그대로 놔둬야지 인연공으로 설명해서 이해시키려 한다면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도 공부하는 우리가 잘 알아야 된다.
관자재보살은 관이 자재하므로 직관(直觀)으로 공을 본다. 있는 것을 그냥 그대로 두고, 머리털 하나도 뽑지 아니한 상태로 보면서도 그것을 공으로 보는 것이다. 그것이 즉공이다.
우리에게 즉공이 잘 이해 되지 않는 것이 맞다. 관세음보살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것도 이해가 될 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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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여래(了知如來)의 : 여래의
무공용도(無功用道)하며 : 공용이 없는 도. 이것은 하되 함이 없는 이치다. 우리는 뭘 해도 다 함이 있는데 여래는 무공용도다. 뭘 해도 함이 없다. 태양이 하루종일 비추지만 태양이 비춘다고 생색을 내지 않고 상을 내지도 않고 자랑하지도 않는 것과 같다.
여래나 보살은 중생을 제도하되 중생을 제도 했다고 하는 생색을 내지 않는다. 절대 무공용이다.
승보문혜(乘普門慧)하고: 보문의 지혜를 타고 보문의 지혜에 올라서
입어일체지지지문(入於一切智智之門)하야 : 일체 지혜와 지혜의 문에 들어간다. 지혜와 지혜 이렇게 두 개가 따라다니는 것은 늘 평등지와 차별지를 말한다. 평등한 것을 이해하는 지혜. 차별한 것을 이해하는 지혜다.
평등만 이해해도 안되고 차별만 이해해도 안된다. 평등한 면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우리 눈앞에 보이는 대로 차별한 면이 있다. 그 두가지 문에 들어가서
영득휴식(永得休息)하나니 : 영원히 휴식을 얻는다.
시즉능정반야바라밀(是則能淨般若波羅蜜)이니라: 이것이 능히 반야바라밀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영득휴식이라고 했으니까 우리도 휴식을 하고 다음시간에 마저 하도록 하자.
다음에 한 번 더 하면 우리 교재인 화엄경 네 권 중에 한 권이 끝난다.
(박수소리)
하강례
사람의 능력은 한이 없다
“대만에서 불광대학 학생들이 졸업 여행을 나와가지고요. 스님께 인사드리고 범어사 참배간다고 함께 왔습니다.”
법회시작 전 입승스님이 불광대학에서 유학중인 비구니 스님과 여학생들을 소개하셨다.
“이 학생의 아버지가 공무원인데 손수 만들어서 25년 묵힌 우롱차를 26근 주면서 한국에 가면 참배하는 절마다 공양드리라고 했답니다. 참 거룩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승스님의 말씀을 듣고 큰스님은
“혼또니 쎄쎄”
하고 일본말과 중국말을 섞어서 인사하셔서 학생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템플스테이를 제대로 하네. 모처럼 한국에 와서 시골에 처박혀 있어서 어쩌나?” 하고도 물으셨는데 학생들은 비구니스님의 통역을 듣자마자
“좋아요.” 하고 한국말로 합창을 했다.
“어디 어디 갔다왔어?”큰스님이 물으시자
“불국사 석굴암 운문사 사리암” 하고 하나씩 기억나는 절들을 서로 대답했다.
“응 불국사 보고 운문사봤으면 다 본거지.”
“오후에 범어사 참배하고 암자투어하고 오늘 저녁에는 통도사에 가서 예불할 거예요.”
입승스님이 말씀하셨다.
“좋겠다. 나도 학생 됐으면 좋겠다.” 하고 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만 불광사는 학교 방침이 학교를 운영하는 바깥사람들을 안두고 부엌일이며 청소도 학생들이 다한다고 합니다. 평소에 그런 공덕무량을 얘기해서 학생들이 전인교육이 잘 되어 있습니다. 저희 절에 두달예정으로 묵고 있는데 자기들이 청소 다하고 부엌에서 자기 먹을 것을 다 해먹고 예불 철저히 잘합니다.” 하고 입승스님이 말씀하셨다.
“여긴 문수대학이야.”
하고 큰스님께서 합장하셨다.
단체사진을 찍고 나서 인사하는 학생들에게 “짜이찌엔” 하고 큰스님께서 말씀하시자 학생들이 “바이바이” 하고 커다랗게 웃었다.
*
“에헤 이것좀 봐봐.” 하고 법회가 끝나자 큰스님께서 감탄하시면서 주변 사람을 부르셨다.
“이렇게 공부를 잘하는 스님이 있다니....” 하고 큰스님께서 보여주신 화엄경책에는 검은 한문 글씨 아래 촘촘하게 한글 해석들이 가득차 있었다.
“이것 좀 봐봐 법문 사이사이에 낱낱이 해석 써놓고, 화엄경 잔글씨로 눈도 밝다....야아....놀라운 일이다. 정말 훌륭한 일입니다. 스님 생각해서라도 내가 열심히 공부해야지.”
하고 큰스님께서 감탄하셨다.
문수선원에서 공부하는 화엄경 교재는 민족사에서 발간한 총 4권의 한문화엄경인데 책을 가져오신 비구니 스님은 본문아래 낱낱이 한글해석을 연필로 써 놓고 계셨다.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하신 흔적도 빼곡했다.
올해 76세라고 하는 비구니 스님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의사이시고, 벌써 공부를 끝내셔서 중국에서도 박사학위가 나올 것이라고 하셨다. 늦은 나이에 서각을 시작하셨는데 공예대전에서 여러번 상을 받으시고 이제는 심사위원으로 부촉되었다고 하셨다.
“사람 능력에 한이 없다.”
하시면서 큰스님은 “스님 그저 건강하게 공부하는데 동참해서 같이 공부합시다.”하셨다.
그 큰 마음의 공덕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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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관제법(善觀諸法)하야 :모든 법을 잘 관찰해서 득실상인(得實相印). 실상의 도장, 진리의 도장. 모든 것이 진실한 모양을 얻는다...복숭아가 하나 같이 잘 생겼습니다.맛도 일품일듯... 고맙습니다_()()()_.
^^ 복숭아..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혜명화 님!!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常正思惟..고맙습니다._()()()_
혜명화님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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