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사는 서울과 가까운 고령산(621m) 서쪽 자락에 아늑히 안긴 산사(山寺)로 절 이름인 보광( 普光)은 넓은 광명(光明)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게 좋은 뜻을 가지고 있으니 그 이름을 지닌 오 랜 절집만 서울 주변에 4곳(서울 우이동, 파주, 과천, 남양주)이나 된다. 그중에서도 이곳이 가 장 오래되고 제대로 남아있다.
보광사는 신라가 망해가던 894년(진성여왕 7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왕명에 따라 비보(裨補 ) 사찰로 창건했다고 전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창건 이후 1215년 원진국사(元眞國師)가 중창을 했다고 하며, 법민대사(法敏大師)가 불보살(佛菩薩) 5위를 봉안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1388년에 는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중창을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1622년에 설미(雪眉), 덕인(德仁)이 중건하고 1634년 범종을 만들었다. 그 범종이 보광사에서 가장 오래된 보물인 숭정7년명동종이다. 1667년에는 지간(智侃), 석련(石 蓮)이 대웅전과 관음전을 중수했다.
보광사가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누린 것은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시절이다. 영조는 무수리 출신인 숙빈최씨(淑嬪崔氏)의 소생으로 그녀의 무덤인 소녕원(昭寧園)이 보광사 서쪽 영장리에 있다. 그런 인연으로 영조는 보광사를 소녕원의 원찰(願刹)로 삼아 많은 지원을 내렸으며, 그때 대웅보전과 관음전을 중수하고 절에서 가장 큰 건물인 만세루를 세웠다. 또한 소녕원에 참배하 러 갈 때는 보광사에 꼭 들렸다. 이렇게 원찰로서의 지위와 번영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쭉 이어져 1863년에 왕실의 지원에 힘입 어 나한전, 큰방, 수구암을 짓고,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석가3존불, 16나한상 등을 조성했으며, 1864년에는 관음전과 별당을 세우고, 1869년에 절을 중수했다. 1901년에는 상궁(尙宮) 천씨의 시주로 대웅전과 만세루를 중수하여 절의 면모를 크게 하였다.
이렇게 잘 나가던 보광사는 1950년 6.25전쟁으로 대웅전과 별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 되는 비운을 겪는다. 그 이후 꾸준한 중창불사로 관음전을 새로 짓고 만세루를 해체하여 복원했 으며, 1981년에 석불전이라 불리는 거대한 대불(大佛)을 세웠다. 2003년에는 납골당(納骨堂) 사 업에도 손을 뻗쳐 경내 북쪽에 영각전을 지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고색의 기운이 진한 경내에는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원통전, 어각실, 응진전, 산신각, 지장전, 만세루, 수구암, 설법전, 영각전 등 10여 동의 건물이 가득 들어차 있으며, 대부분이 서향(西向 )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북쪽을 제외하고 경내 주변을 토담으로 빙 둘러 속세와 부처의 세계의 경계를 가른다. 소장문화유산으로는 지방문화재인 대웅보전과 숭정7년명동종, 목조보살입상(지방유형문화재 248 호)을 간직하고 있으며, 지장탱화와 나한탱화등 19세기에 그려진 불화가 다수 있다. 만세루와 어각실, 응진전도 18~19세기에 지어진 건물이며, 어실각 옆에는 영조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무럭 무럭 자라고 있다. 또한 수구암(守口庵)과 영묘암(靈妙庵), 도솔암(兜率庵) 등 부속암자 3곳을 가까이에 거느리고 있다.
서울에서 가깝지만 깊은 산중에 안겨있어 고요함과 고즈넉함이 중생의 마음을 편하게 인도하며, 산새의 지저귀는 소리와 바람의 소리, 그리고 풍경소리와 목탁소리가 전부인 산사이다. 또한 절 을 알처럼 품은 고령산은 숲이 울창하고 봄과 가을에는 꽃과 단풍의 화려한 향연으로 이름을 날 려 휴일에는 많은 등산객이 찾아온다. 고령산을 오르려면 보광사를 거쳐가야 되기에 그날만큼 은 중생들로 경내는 시끌벅적하다. |
★ 보광사 관람정보 * 입장료와 주차비는 없으며, 경내와 일주문 부근에 주차장이 있다. * 보광사 템플스테이(Temple stay)는 부정기적으로 열린다. 개인은 1박 2일, 단체와 어린이는 2 박 3일 일정으로 진행되며, 자세한 것은 보광사 홈페이지를 참조한다. 참가 신청은 홈페이지 에서 하거나 전화로 하면 된다. *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13 (☎ 031-948-7700~1) * 보광사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꾹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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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우측 석축 위에는 단촐한 모습의 전각 2개가 오붓하게 자리해 있다. 우측에 자리한 응진 전은 1863년에 중건된 것으로 원래 이름은 나한전(羅漢殿)이었다. 내부에는 1863년에 조성된 것 으로 보이는 석가3존불과 16나한상이 있으며, 나한탱화는 1877년에 금곡영환(金谷永煥), 한봉창 엽(漢峯瑲曄) 등의 화승이 그렸다. 응진전 곁에 자리한 1칸짜리 산신각은 1893년에 중건된 것으 로 근래에 만든 산신상과 산신탱이 있다. 그들 앞에는 맵시가 돋보이는 3층석탑이 서 있는데, 원래는 대웅전 뜨락에 있었다. |
대웅전 좌측에는 관음보살을 봉안한 원통전이 자리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 물로 이곳에는 예전에 쌍세전(雙世殿)이 있었으나 1994년에 부시고 새롭게 원통전을 지었다. 새로 지은 것이다보니 그냥 지나치고 말았는데, 알고보니 보광사의 불화(佛畵) 가운데 가장 오 래된 지장탱화(地藏幀畵)가 들어있었다. 순간의 방심으로 놓친 그 그림은 1802년 승려 경욱(慶 郁)이 그린 것으로 원래는 부속암자인 수구암에 있었다고 하며, 지장탱화와 나란히 있는 삼장탱 화(三藏幀畵)는 1898년에 제작된 것으로 경선응석(慶船應釋), 금화기동(錦華機同), 용담규선(龍 潭奎禪)이 그렸다. |
첫댓글 총무차장오조님! 감사합니다. 사진으로 미리가본 보광사 경내가 장엄 하네요 ...말사라 조그마한절인줄 생각했는데~~~
빨리보고싶어집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보광사를 미리 공부하도록 해주신 오조님.......
감사 합니다.
오조 총무차장님!
자세한 보광사에 관한 자료 넘 감 사드려요~~ 잘보고 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