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은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 발달을 위하여 가족적 환경과 행복, 사랑 및 이해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여야 함을 인정하고, 한 개인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되어져야 하며, UN헌장에 선언된 이상의 정신과 특히 평화 존엄 관용 자유 평등 연대의 정신 속에서 양육되어야 함을 고려하고…”
1989년 11월 UN에서 체결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이하 아동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의 전문 중 일부다. 우리나라도 이동협약 91년 11월 국회 동의를 거쳐 협약에 가입했다.
아동의 표현,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 보장
아동협약에서는 아동의 권리에 대한 내용을 폭 넓게 규정하고 있다. 아동의 안전, 법적 보호, 신체적 폭력이나 학대, 상해 금지 등 기본적인 내용은 물론 표현의 자유도 보장하고 있다. 아동 표현의 자유는 ‘오직 법률에 의해서’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부모를 비롯한 어른에 의해 아동의 의견이 수시로 묵살되는 것이 일상화된 우리나라에서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여겨지는 대목이다.
아동협약은 또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 역시 보장하고 있으며 함부로 아동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아동 결사의 자유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 과도한 사교육에 지친 아동들이 동네 공원에 모여 “우리는 뛰어 놀고 싶다”며 시위를 하는 것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장애 아동에 대한 권리도 보장하고 있다. 정신적 또는 신체적 장애아동이 존엄성이 보장되고 자립이 촉진되며 적극적 사회참여가 조장되는 여건 속에서 충분히 품위있는 생활을 누려야 하는 것은 물론 장애 아동이 ‘특별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 것.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수년동안 집 안에 감금되어 아이들이 적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할 때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내용이다.
성추행 사건과 같은 형사 사건 처리에 있어서 아동이 우선적인 배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규정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성추행을 당한 아동의 비디오 진술도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인권보호는커녕 학대에 가까운 강제 학습에 내몰리는 현실”
13년 전에 아동협약에 가입했지만, 아동을 둔 부모, 교육자들도 이런 협약이 있는 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정부의 관계부서에서도 국회의 심의를 거쳐 가입한 국제협약을 준수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현도사회복지대 유성종 총장은 “청소년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 산하 학교관계자들도, 청소년 육성을 담당하는 문화부 산하 단체에사도 협약의 존재를 모르거나 알고서도 등한시 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아동협약에 가입한 나라는 협약의 내용을 국민에게 널리 알릴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정부를 협약의 내용을 알리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가입만 해 놓고 후속조치는 사실상 전무한 셈이다. 그나마 민간의 결의로 92년 6월 한국아동단체협의회가 결성되는 수준에 머물렀다. 유총장은 “스웨덴은 협약의 내용을 아이들이 알기 쉽게 번역해서 학교에서 모두 나눠줬다”며 “우리나라의 아동은 인권보호는커녕 학대에 가까운 강제 학습에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동협약은 조약 체결국에게 5년마다 아동의 권리 현황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에 따르고 있지만 거짓보고를 해서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1996년 UN 아동권리위원회에서 이뤄진 국제아동권리협약 이행상황 1차 보고서 심의 때는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아동권리 관련 기관이 활동 중인 것으로 보고해 공식 사과하는 망신을 당했고, 2003년 1월 2차 보고서 심의 때는 아동권리조정위원회의 역할을 허위 보해 공개 해명을 요구 받았다. 결국 우리나라는 UN으로부터 ‘아동인권 후진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아동 복지를 위한 혁신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여전히 우리 아동은 학원으로 내몰리고 있고,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부모의 손에 목숨을 잃고 있다. 국가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가입한 국제협약은 무시되고 있고, 아동의 권리는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5월 5일 어린이 날이 또다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