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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이 박무택의 조난 소식을 들은 것은 얄룽캉(8505미터)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뭐라고? 무택이가 어쨌다고?"
그는 전화기에 대고 고래고래 악을 썼다.
"무택이가 정상 찍고 돌아오다가... 아무래도 조난당한 것 같습니다. 연락도 두절됐습니다."
엄홍길은 이미 몇 번이나 확인한 사실을 묻고 또 물었다.
"무택이가? 나랑 같이 다니던 그 계명대 박무택이가?"
엄홍길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조난 소식을 전해온 후배에게 도리어 화를 벌컥 내고 말았다.
"그럴 리가 없어! 걘 조난당할 애가 아니야!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그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어찌할 도리가 없어 예언인 듯 기원인 듯 혼잣말처럼 떠들어댔다.
"기다려봐! 무택인 안 죽어!
지금 그냥 무전이 안 되는 것뿐이라구! 무택이 걔는 그렇게 죽을 놈이 아니야! 그놈이 얼마나 강하고 끈질긴 놈인데...!"
엄홍길과 박무택 사이에 걸쳐진 인연의 끈은 길고도 굵다.
그는 1989년 계명대 산악회가 히말출리(7893미터) 원정대를 꾸려 떠났을 때 박무택을 처음 만났다.
당시 엄홍길은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빌라 에베레스트를 경영하고 있을 때였다.
8000미터급 거봉들을 향한 도전을 계속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추스리고 있던 시기였다.
빌라 에베레스트를 경영하면서 생긴 약간의 경제적 여유와 자유로운 생활 덕분에 조금은 타성에 젖어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어느 날 아침 구닥다리 전화기의 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계명대 히말출리 원정대에 사망자가 발생했으니 한시바삐 현장으로 달려가 수습해달라는 급보였다.
엄홍길은 네팔 한국 대사관과 구조용 헤리콥터 회사 등으로 도움을 청하러 뛰어다녔다.
당시는 날씨가 너무 안 좋아 헬리콥터가 이륙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엄홍길은 그러나 특유의 뚝심 있는 추진력으로 사방에 압력을 넣은 끝에 기어코 헬리콥터를 띄워 히말출리 연봉으로 날아갔다.
낮게 깔린 구름과 강렬한 돌개바람 탓에 視界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헬리콥터는 당장이라도 추락할 듯 불안하게 뒤뚱거렸다.
"저기다! 조금 전에 애들을 봤어! 다시 돌아가!"
우연찮게 생긴 구름의 틈 사이로
바삐 철수 중인 계명대 산악회원들의 모습을 흘낏 본 그는 헬리콥터 조종사에게 뒤로 돌아갈 것을 명했다.
헬기가 커다란 원을 그리며 히말출리 연봉 위에서 곡예비행을 했다.
그리고 히말라야의 만년설까지도 날려버릴 듯 엄청난 돌개바람을 일으키며
가파른 비탈길에 가까스로 착지하여 사망자를 옮겨 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대원들이 아우성을 쳤다.
자신들도 함께 데려가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구조용 헬리콥터에 탈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었다.
엄청난 돌개바람, 이미 싸늘하게 식은 조난자, 그리고 헬기에 오르려 아우성치는 초라한 몰골의 원정대원들!
"무슨 월남전의 한 장면 같았어. 거기서 무택이를 처음 만났지.
당시만 해도 그저 원정대원들 중의 한 사람이었을 뿐, 누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말이야."
엄홍길과 박무택 혹은 계명대 산악회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 만남의 자리 자체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던 셈이다.
그 후 엄홍길은 박무택과 등반을 함께 하면서 그의 뛰어난 자질과 묵직한 성격에 점차 매료되기 시작했다.
산악인으로서 박무택의 장점을 꼽아보라고 하면 엄홍길은 주저 없이 말한다.
"우선 겁이 없어요. 자신감에 넘치는 녀석이죠. 일단 결심을 하면 우직하게 밀어붙이는데 그 파워하고 결단력이 대단해요.
테크닉도 나무랄 데가 없고... 그 녀석을 보면 꼭 젊은 시절의 나를 보는 것만 같아서... 한 핏줄처럼 느껴졌었죠."
이후 박무택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등반 파트너가 되었다.
박무택과 엄홍길은 2000년에 칸첸중가(8586미터)와 K2(8611미터),
2001년에 시샤팡마, 2002년에는 에베레스트를 함께 올라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었던 것은 2000년 봄의 칸첸중가 등반이다.
한 해 전인 1999년, 엄청난 눈사태로 한도규 대원과 현명근 KBS 기자를 잃고 패퇴하다시피 철수했던 칸첸중가이건만,
이 웅장한 몸체의 세계 제3위봉은 이번에도 엄홍길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있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그와 함께 8000미터급 봉을 두 번 올랐고
14개를 모두 오를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던 셰르파 다와 타망의 죽음이었다.
다와의 시신을 간신히 수습한 후 엄홍길은 무려 보름 동안을 넋 놓고 앉아 있었다.
그의 죽음이 준 충격이 크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도 엄청난 폭설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베이스캠프의 식량마저 동이 나기 시작했고, 몇 안 되는 소규모 원정대의 사기는 완전히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러나 엄홍길은 떨치고 일어섰다.
동료들을 무려 세 명이나 먼저 보내고 세 번째 찾은 칸첸중가다.
거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이때 엄홍길을 동행했던 단 한 사람의 파트너가 바로 박무택이다.
본개 산사나이들 사이에는 그다지 긴 말이 필요 없다.
상대가 시야에 보이지 않더라도 함께 묶은 Seil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만으로도
지금 저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동작을 하고 있는지를 제 속마음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엄홍길이 주섬주섬 배낭을 꾸리며 잛게 말했다.
"무택아, 가자."
박부택은 그보다 더 짧게 대답했다.
"예."
두 사람은 그렇게 칸친중가 정상으로 향했다.
어찌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2000년 칸첸중가의 적설량은 역대 모든 기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가슴까지 푹푹 빠지는 눈 덕분에 기존 루트라는 것은 이미 의미를 상실했다.
게다가 원정 기간이 길어지면서 식량마저 동이 나버려 지난 며칠 동안 그들이 먹은 것이라고는 불어 터진 누룽지뿐.
결국 그들은 8500미터 지점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오를 수도 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텐트도 슬리핑백도 없이 8500미터의 절벽에 매달린 채 밤을 지새우는 것, 이른바 '죽음의 비부아크'이다.
"나는 더 이상 유서에 쓸 말이 없어요.
그날 밤에 정말 원 없이 써봤으니까.
밤새도록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100통도 넘게 썼을 거에요."
두 사람은 깎아지른 빙설벽을 피켈로 찍어낸다.
궁둥이라도 붙일 만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너무도 탈진한 나머지 피켈로 찍어내는 동작마저도 숨이 넘어갈 듯 힘겹다.
그렇게 해서 만든 손바닥만한 공간.
그곳에 두 사람은 장갑을 얹어놓고, 안전벨트에 묶은 자일을 하켄으로 고정시키고,
이 세상이 아닌 곳에서 눈을 뜰 가능성이 훨씬 높은 '죽음의 비부아크'를 감행한다.
한국 히말라야 등반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깜빡깜빡 졸다가 불현듯 눈을 뜨면 이건 생지옥인 거에요.
무릎 위엔 그새 눈이 수북이 쌓여버리고, 발아래는 끝이 안 보이는 절벽이고...
여기가 어디지? 내가 어디 있는 거지? 하다 보면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어요.
아, 여기 칸첸중가지... 아 참, 무택이는? 이 자식은 어디 있는 거야?"
엄홍길은 그 생지옥에서 박무택을 부른다.
박무택은 그보다 3미터쯤 높은 절벽 위에 역시 엄홍길처럼 옹색하고 비참한 자세로 그 죽음의 밤을 버티고 있었다.
깜빡 잠이 든 그는 엄홍길이 그의 이름을 몇 번이고 목 놓아 부른 다음에야 가까스로 숨통을 열고 맥없는 대답을 한다.
"예, 형... 저 여기 있어요."
엄홍길은 마치 혼잣말처럼 같은 주문을 되뇐다.
"인마, 졸면 안 돼... 졸면 죽는 거야... 우린 살 수 있어... 힘내!
무택아, 무택아! 내 말 들리냐... 너 인마 졸면 안 돼... 졸면 우리 다 같이 죽는 거야..."
태양은 매일 떠오른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하지만 8000미터 저 위쪽, 이른바 '죽음의 지대'에서는 일상의 진리들이 모두 빛을 잃는다.
과연 오늘도 태양이 떠오를까?
마땅히 그래야 되겠지만 그 평범한 진리를 믿을 수 없다.
태양은 끝내 떠오르지 않고 우리는 이렇게 죽어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암담한 절망 속에서 영하 20도의 추위를 견디고 있을 때 불현듯 태양은 떠올랐다.
엄홍길은 얼굴 위에 낀 살얼음이 따스한 아침 햇살에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을 때 박무택을 깨웠다.
"무택아, 자냐?"
박무택은 한참 후에야 꺼져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눈떴습니다."
엄홍길이 일어설 때 몸에 낀 얼음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그는 얼어붙은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애써 힘찬 목소리로 물었다.
"어떠냐, 올라갈 수 있겠냐?"
박무택의 대답은 언제나 그렇듯이 짧고 분명했다.
"가야죠, 형."
두 사람은 그렇게 칸첸중가에 올랐다.
지난밤부터 연락이 두절된 베이스캠프에서는 이들의 사망 소식을 어떻게 본국에 전해야 되나 가슴을 쥐어뜯고 있을 때였다.
두 사람은 아침 햇빛 찬란한 세계 제3위의 거봉 칸첸중가 정상에 올라 서로를 묵묵히 마주 보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은 마치 인도 대륙이 아시아 대륙과 맞부딪치듯 서로를 격렬하게 부둥켜안았을 뿐이다.
그것은 사선을 함께 넘어온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포옹이었다.
"무택이는 나한테 등반 파트너 이상이에요. 그놈은 내 친동생이나 다름없어요."
박무택이 조난당하기 훨씬 전부터 엄홍길이 늘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다.
실제로 그들은 친형제 이상으로 가까웠다.
꼭 등반과 관련된 일이 아니어도 그들은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였고, 시도 때도 없이 통화를 했다.
엄홍길에 대구에 갈 일이 있으면 아무리 바빠도 꼭 그의 얼굴을 보고 왔다.
박무택이 서울에 오면 아무리 밤이 늦었더라도 꼭 찾아와 자고 가는 집이 바로 엄홍길의 집이었다.
과묵한 사나이 박무택이 수줍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상도 엄홍길이었다.
"형, 나 계속 산에 다니고 싶은데... 찬민이 엄마가 너무 반대를 하네?"
엄홍길은 제 곁에 누워 천장이 내려 앉아라 한숨을 쉬어대는 박무택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10년 전 자기가 했던 고민을 그대로 대물림하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이다.
사실 박무택의 고민은 모든 산악인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산악인의 가족들은 언제나 이렇게 윽박지른다.
그까짓 산에 가면 밥이 나와 돈이 나와?
문제는 그들의 핀잔이 너무도 현실적이라는 사실이다.
"인마 찬민이 엄마 그러는 것도 이해해야지..."
"그래도 가고 싶은걸 어떡해? 회사에 지긋이 앉아 있어도 소용이 없어.
몸만 거기에 있지 눈앞에서는 히말라야가 아른거리는 걸..."
엄홍길은 정색을 하고 일어나 앉았다.
박무택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스르르 일어나 앉는다.
엄홍길은 박무택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마른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듯 또박또박 진심을 토해낸다.
"산에 다니는 거 한고 먹고사는 거, 그거 전혀 별개의 일이야. 그거 헷갈리면 안 돼.
하지만 네가 정말... 이 나라를 대표할 만큼 뛰어난 산쟁이가 되면... 그걸로도 먹고 살 수 있어.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
박무택은 갑자기 저녁 내내 마신 술이 한 순간에 깨어버리는 느낌이었다.
그 역시 엄홍길의 눈을 뚫어져라 들여다 보았다.
이 사람은 지금 프로 산악인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다.
한국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엄홍길을 포함해서 다섯 손가락 이상이 되지 않는다.
박무택은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눈빛으로 물었다.
형이 보기에는 내가 그런 능력이 있는 거 같아?
엄홍길은 특유의 단정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넌 해낼 수 있어. 내가 돌봐 줄게."
엄홍길의 약속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넌 해낼 수 있어.
내가 돌봐 줄게.
이게 전부다.
공식석상에서 기자회견을 한 것도 아니고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공증을 받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선을 함께 넘어온 산사나이들끼리의 약속이다.
그들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잠깐 동안 팽팽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가득 찼다.
박무택으로서는 자기를 그렇게도 아껴주는 엄홍길의 진심을 뼈저리게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박무택은 이내 뒤로 벌렁 누우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분위기를 바꾸었다.
"형, 정말 14개 끝내고 2개 더 할 거야? 16좌?"
"당연하지 인마, 기자회견까지 했는데!"
"알았어, 그건 걱정 마, 내가 다 해줄게!"
"이 자식이? 니가 뭘 해줘 인마?"
"내가 선등하면서 고정 자일 깔고 캠프 치고 다할 테니까 형은 그냥 느긋하게 따라만 오라고...
형 이제 체력도 안 되잖아? 차라리 베이스에 앉아서 원정대장이나 하는 게 어울릴 나이 아니야?"
성질 급하고 직선적인 엄홍길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는 뭐야 인마 하면서 동생의 옆구리를 가격했고, 두 사람은 이내 철없는 소년들처럼 깔깔대면서 서로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새벽이 가까워오는 시간에 두 사람이 얼마나 분탕질을 쳐댔는지 엄홍길의 아내가 잠에서 깨어나 방문을 열어젖혔을 정도다.
그들은 엄마 몰래 장난을 치다가 들켜버린 소년들처럼 난감한 얼굴로 돌아보다가 피식 멋쩍게 웃어버렸을 뿐이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서로의 얼굴을 맞댄 것은 2004년 봄 카트만두에서였다.
엄홍길이 이끄는 얄룽캉 원정대와 박무택이 등반대장으로 있었던 에베레스트 원정대는
같은 날 같은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에 내려섰다.
최후의 인연치고는 기막힌 우연이다.
박무택은 엄홍길의 얄룽캉 원정대에 합류하지 못한 것을 무척이나 미안해했다.
정 많은 동생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엄홍길은 그가 이제 한 원정대를 책임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대견해했다.
저 녀석이 이제 곧 한국을 대표하는 히말라야 등반가가 되겠구나 싶은 마음에 절로 미소가 머금어졌던 것이다.
그들의 마지막 통화는 서로의 베이스캠프를 잇는 위성전화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형, 얄룽캉 쪽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이제 고소 캠프들은 거의 다 구축했고 조만간 정상공격에 나설 예정이다."
"미안해, 형... 내가 갔어야 되는데..."
"야 인마, 너네 등반이나 잘해! 올해 유난히 바람이 심하다던데 각별히 조심하고..."
"형, 마지막 로체샤르(8400미터)는 걱정 마! 내가 미리 가서 고정 자일 다 깔아놓을게!"
박무택의 말은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등반할 때면 언제나 맨 앞에 서서 오르는 엄홍길의 스타일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박무택이었으니 그의 말은 농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선배들 쉬게 하고 제가 앞장서서 고된 일을 해내고 싶다는 그의 속뜻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담이기도 했다.
어느 편이어도 상관없다.
엄홍길은 위성전화를 통해서나마 아끼는 동생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았다.
그는 껄껄대며 되받아쳤다.
"이 자식이 까불기는... 알았어 인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아무튼 등반 잘 끝내고 한국 가서 찐하게 술 한 잔 하자구!"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통화였다.
그리고 불과 며칠 후 엄홍길은 귀국과 동시에 위성전화를 통해 이번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소식을 듣게 된다.
박무택과 장민이 조난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걸려온 위성전화는 더욱 절망적인 소식들을 토해놓는다.
백준호가 그들을 구조하러 올라갔다가 역시 실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오은선이 전해온 소식은 최악이었다.
박무택의 시신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전화기를 깨뜨릴 듯 움켜쥐었던 엄홍길의 손아귀에서도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쉬어 터져버린 그의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이 물기가 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울분처럼 토해낼 수 있는 대사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아니야! 뭔가 잘못된 거야! 무택이는 그렇게 쉽게 갈 놈이 아니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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